우구사니 / 현대배경 / A5 / 72p / 7000원
* 원작에 없는 동인설정, 날조 있음.
* 자살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 우구이스마루가 주인을 전력으로 사랑하는 이야기를 보고싶어 쓴 이야기입니다. 주인이 숨만 쉬어도 좋아할 우구가 나옵니다.
* (약스포, 사니와 정체&글 분위기) 여주인공이 사니와입니다. 가볍지 않은 분위기에서 시작합니다만, 행복한 미래를 향해 롤러코스터 타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 사니와의 외모묘사나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스토리상 설정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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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회사를 퇴사하는 것이었다. 무미건조한 인사와 약간의 퇴직금으로 나는 완전히 외부인이 되었다. 회사를 나오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허탈했다.
집에 와서 방에 있는 물건을 전부 꺼내봤다. 추억이 담긴 물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아무리 봐도 그런 물건을 찾을 수 없었다.
작은 편지지를 샀다. 유서라는 걸 써보려다가 첫 문장부터 막혔다. 누구에게 써야할지 알 수 없었다. 결국 편지지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남아도 될 이유를 찾을수록 혼자란 사실만 뼈저리게 느껴질 뿐이었다. 이 세상에 나를 붙들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온기 하나 없는 차가운 새벽에 집을 나서면서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날 필요로 해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왜 이제야 깨달은 걸까. 항상 귓가에 죽으라고 속삭이던 그 말을 진작 들었어야 했다. 이 악물며 버텨봤자 돌아오는 건 싸늘한 시선뿐이었다.
마지막을 생각하며 다리까지 걸어가는 길, 이 조용하고 추운 새벽에도 길가의 사람들 속에서 따뜻함을 한 조각씩 찾을 수 있었다. 내겐 너무나 먼 광경이었다.
홀로 다리에 섰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나는 날 붙들어 줄 무언가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텅 비어 있는 다리에 이물질같이 놓여있는 검. 그 검에 손을 대는 순간, 갑자기 벚꽃을 휘날리며 웬 남자가 나타났다. 어느 누가 보면 영화촬영이라고 생각 할 만큼 진풍경이었으나 죽을 결심을 하고 있던 내 눈에는 그저 귀신 아니면 저승사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곳이 다리란 것도 잊고 뒷걸음질을 치다 턱, 뒤로 몸이 넘어갔다. 세상이 거꾸로 무너지는 것 같았다. 떨어지며 본 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웠다. 색색의 반짝이는 빛들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나도 저렇게 빛나고 싶었어. 빛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이, 강한 힘에 의해 붙들렸다. 떨어지는 걸 용서하지 않는다는 듯이 점점 억세지는 손힘에 이끌려 나는 곧 그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울고 있었다. 울면서 웃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말 하나를 툭 던졌다.
“내 주인을 같이 찾아줘.”
나는 이 상황에서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
하필 오늘 같은 날 정신 나간 사람을 마주하게 되다니. 그냥 돕지 말고 지나칠 것이지. 이런 식의 마지막을 생각했던 건 아니지만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남자는 너무나 손쉽게 나를 끌어올려버렸다. 살아남았다는 게 허탈했다.
“…전 이만 가볼게요.”
고맙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고 헛소리 받아줄 자신도 없고. 그래서 내뱉은 말이었다. 더 이상 방해 말고 제 갈길 가자고. 근데 그 남자는 내 앞을 다시 가로막았다.
“네가 없으면 난 살 수 없어.”
“……하?”
또라이가 걸려도 상또라이한테 걸렸다고 어이없어 하고 있는데, 그 남자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 손이 투명했다. 저도 모르게 뻗은 손이 그 또라이의 손을 그대로 통과해버렸다. 잡혀야 할 것이 잡히지 않아 갈 곳을 잃은 손을 황망하게 쳐다보다가 투명하지 않은 그 남자의 팔을 덥석 잡았는데, 다행히 감촉이 느껴졌다. 하지만 팔 밑의 손은 여전히 잡히지 않는다.
“해가 뜰 때쯤 소멸하려나.”
그 남자는 그저 담담히 그렇게 중얼거렸다. 자신의 소멸을 꼭 다른 세계 이야기처럼 말한다. 덕분에 나까지 머리가 차가워졌다. 웃기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미친놈도 나랑 별 다를 게 없는 놈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내 알 바 아니다.
“…근데요?”
“사람을 하나 죽이고 죽으면, 뒷맛이 씁쓸하지 않겠나?”
아. 역시 내가 다리에서 뭘 하려했는지 눈치 챈 모양이었다. 아니라고 시치미를 떼려다가 말았다. 왠지 이 사람은 신고를 한다거나 그럴 것 같지 않았고, 곧 사라진다는 이상한 사람이니까.
“그게 왜 제가 죽인 게 되는 건데요.”
“네가 도우면 살 수 있어서.”
“그건 그쪽 사정이잖아요.”
“정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나?”
그래, 솔직히 말하면 그대로 모른 척 하기 힘들었다. 저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신경 쓰이니까. 불쌍하다거나 하는 도덕적 이유는 아니다. 다만 사라지기 전에 찝찝한 걸 남기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더 이상 누가 날 싫어할 이유를 만들기 싫었으니까. 이유 없는 죄책감은 사양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탁해도 해줄까 말까인데 저렇게 뻔뻔하게 나오는 태도에 울컥했다. 저쪽도 예의가 없는데 나까지 예의를 차릴 필욘 없다.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면 되잖아?”
“너밖에 없어.”
말이 짧아졌는데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그리고 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설명을 하라고 눈만 깜빡이며 쳐다보니 손을 보이면서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해가 뜰 때쯤 소멸할거라고 했었지.
여기서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찾긴 확실히 힘들 거다. 인적 드문 새벽이다. 해가 뜨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고 이 시간에 여긴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다. 나는 일부러 인적 드문 곳으로 왔지만, 이 사람은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왜 이런 곳에 와서 날 귀찮게 구는지 알 수 없었다. 짜증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
“같이 주인을 찾아준다고 하면 된다.”
“…그게 다야?”
“그래.”
“그렇게 안 하면 당신이 죽는다고?”
“찾아주는 건가?”
남자는 손에 이어 팔까지 투명해지고 있었다. 조심스레 손을 뻗었지만, 역시 그대로 통과하고 말았다. 아까까지 잡혔던 팔의 감촉이 꼭 거짓말 같았다. 솔직히 꿈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코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안 믿을 수도 없었다. 사람을 찾아준다고 하면 이 남자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거면 된다고 하니. 요즘은 SNS도 있고 사람 찾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그래야 한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 싫은 티 팍팍 내면서 대답했다.
“그래. 당신 주인이라는 사람, 찾아줄게. 됐지?”
그러자 그 남자는 환하게 웃었다. 이제 죄책감 얹지 말라는, 하려던 말도 잊고 멍하니 바라보게 될 정도의 예쁜 웃음이었다.
“그럼 계약 성립이다.”
“응?”
“늦은 소개를 하지. 나는 고비젠의 우구이스마루. 이름의 유래는 나도 잘 모르지만 뭐, 잘 부탁해. 내 임시 주인.”
임시 주인? 그 말에 반응하는 것보다 빠르게 입술에 뭉클한 게 닿았다. 자기소개를 한다며 천천히 내 앞에 다가와서 살짝 허리를 숙이던 게 인사가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걸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이, 이 미친놈아!!!”
그는 계약에 필요한 과정이라고 변명하면서 내가 휘두르는 주먹을 손으로 가볍게 막았다. 아까까지 투명했던 손에, 닿았다. 나는 어벙벙한 표정을 지었고 그 남자는 다시 웃었다. 그게 열이 치밀어서 다시 주먹질했다. 남자는 처음과 달리 내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더 짜증나게 했다.
어느새 새벽하늘에 빛이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차가웠던 새벽에 따뜻함이 스며든 하늘, 이제 못 볼 거라고 생각했던 풍경이었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하루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자기 주인을 찾아달라고 하는 이상한 짐을 떠안은 채로.
*
“기억을 못한다고?”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마.”
사기를 당했다. 사람은 계약이란 걸 할 때 제대로 살펴보고 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난 돕는다고만 했지 계약의 계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계약 당했고. 그래서 이건 내가 바보 같아서 당한 게 아니라 저 사기꾼이 나쁜 거다. 어떻게 저 내용을 사소하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너는 사실 사람 모습을 한 검이고, 주인을 찾는다며 무리하게 여기까지 왔고, 그 탓에 힘을 다 써버려서 네 존재를 유지시켜 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래서 주인을 찾아달라는 말로 나와 임시 주종관계를 맺었고, 그런데 그 주인이란 사람의 기억이 날아간 상태다?”
“정확하다.”
믿기 힘든 내용이라 받아들이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저 내용을 이해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이가 없어서. 주인이란 게 뭔지 몰라도 조금 도와주면 될 것 같아서 하겠다고 한 건데 저래선 어떻게 찾느냔 말이다.
“……파기할거야, 계약.”
“가능한 기대에 부응하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해.”
“어째서?!”
“강제로 파기되려면 너나 나 둘 중에 하나가 사라져야 하니까.”
“없어져, 없어져라 이 사기꾼아!”
“차라도 마시고 진정하지 그래.”
호르륵, 남자는 여유롭게 차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갈 곳이 없다기에 어쩔 수 없이 집 안에 들여놓았더니 오자마자 차를 찾곤 어느새 저러고 있는 것이다.
둘 중 한명이 사라지면 된댔으니 엿 먹으라며 원초 계획처럼 확 뛰어내리면 되지 않나 싶다가도 저 놈부터 사라지지 않으면 한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빙글빙글 웃으며 차를 건네는 저 얼굴을 보니 더욱 그렇다. 차를 네 얼굴에 끼얹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고 있는데 굳이 내 손에 차를 쥐어주려고 하시니 정말 끼얹어줘야 하나. 진지하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뭐,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진 마. 검이라곤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츠쿠모가미, 말석이지만 신이다.”
“아, 그래~”
“적어도 내가 사라진 뒤의 네 안위는 보장해주지.”
“말로는 뭘 못해.”
“네게 엮여있는 저주나 악몽 같은 걸 없앨 수도 있단 말이다.”
“……그런 게 가능해요?”
건성건성 대답하다 저도 모르게 나온 존댓말에 앞의 남자는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츠쿠모가미, 물건에 깃든 신이라고 한다. 별로 권위가 높은 신일 것 같진 않은데, 족집게여서 존댓말이 튀어나와 버렸고 없애 줄 수 있다는 말에 놀랐다.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봤지만 그는 내 눈빛에 아랑곳 않고 차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근데, 별 의미 없을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지?”
“……사기꾼 말 안 믿으니까.”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리 없다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으나 꾹 참았다. 속 안의 어둠을 남에게 드러내는 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본 이 남자에겐 더더욱 보이기 싫었다. 그 남자는 차를 마시다 말고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얼굴에 방금 올라왔던 감정의 색이 묻어 있을 것 같아서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버렸다.
“넌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어.”
“……뭐, 뭐야, 진짜.”
“넌 내 주인이니까.”
“계약 끝나면 남남이거든요.”
어제 처음 봤으면서 닭살 돋는 말을 내뱉는 남자에게 톡 쏴붙였다. 책임도지지 못할 말은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참 예상치 못한 말로 사람 당황시키는 건 잘 하는 남자다. 종잡을 수 없는 사람, 아니 검, 아니 신이던가. 어쩌다 저런 알 수 없는 것에 휘말리게 되었는지 생각하다 한숨을 푹 쉬었다. 그냥 다른 계약자 찾게 사람 많은 곳에 던져놓고 내가 사라지면 되지 않을까. 내가 특별한 사람인 것도 아니고 계약을 대신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충분히 있을 것 같았다. 저 사람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기약 없이 이대로 살아있으란 말인가.
“혹시나 싶어 말하지만 바보 같은 생각은 하지 마.”
“……뭐래.”
뜨끔. 사람 속을 읽기라도 한 듯 타이밍 좋은 말에 깜짝 놀랐다. 움찔한 어깨를 눈치 채지 말았으면 하고 속으로 빌면서 최대한 태평한 척을 했다.
“신과 인간의 계약이다. 인간이 파기하는 건 불가능해.”
“…내가 저질러버리면 끝이잖아?”
“신과의 계약을 어기면 네 혼은 내 것이 돼. 그런 법칙이다.”
“못 죽어?”
남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가벼운 끄덕임이 내게는 마치 사형선고처럼 무겁게 쿵 내려앉았다.
“그런 게 어디 있어! 기억도 못하면서 언제 찾을 줄 알고! 그러면 이렇게 하자. 널 도와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찾아. 내가 도와줄게.”
“안 돼.”
“왜?”
“네가 적임이다.”
그 뒤로 차를 빼앗아도 보고, 우는 척도 해보고, 제 나름대로 위협도 해봤지만 다 소용 없었다. 그는 네가 적임이니까 바꿀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빼앗긴 차를 애석한 듯 쳐다보기만 했다.
“아악! 우리 집 물건들한테 잘해줘서 내 편인 츠쿠모가미 잔뜩 만들 거야! 너부터 없앨 거라고!”
“응원하지.”
“……진짜, 진짜, 재수 없어.”
“뭐, 내 주인도 여럿의 츠쿠모가미를 거느렸다. 너도 할 수 있어.”
“그래, 네 주인도 하는데 내가 못할 리…어라, 기억나는 거야?”
“단편적으로는.”
“그건 다행…이 아니라! 기억할거면 제대로 하란 말이야! 나는 몰라, 너 알아서 해!”
쾅, 그가 건네줬던 찻잔에 감정을 실어 내려놓고 건들이지 말라는 분위기를 팍팍 풍기며 침대에 등을 돌려 누웠다. 오랜만에 화를 낸 것 같았다. 화도 화를 낼 자격이 있는 사람이 낼 수 있는 거니까. 오늘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탓에 침대에 누우니 피로가 몰려왔다. 그대로 잠에 들었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사락, 사라락,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감촉이 기분 좋았다. 꿈에서 이런 따스한 감각을 느끼는 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고, 다정한 손길에 머리를 부비며 한껏 어리광 부렸다. 그러자 그 손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나는 순식간에 불안감이 차올랐다. 그럼 그렇지 내게 행복감을 주는 꿈이 있을 리 없다고, 잠시 맘을 놓은 틈에 저 손이 파고들어 날 꼬집고, 할퀴고, 매서운 말을 퍼부을지도 모른다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손은 장난스럽게 머리끝을 만지작거리며 목가를 간지럽힐 뿐이었다. 이런 꿈이 있을 리 없다고 무서움을 참으며 눈을 살짝 떴다. 맑은 차색을 닮은 눈동자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둥그레지는 내 눈과 대조적으로, 반대편의 눈이 가늘게 휘며 곡선을 그렸다.
“일어났나?”
“꺄아아아아!”
내 머릴 다른 사람이 쓰다듬는 건 별로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당연히 꿈인 줄만 알았는데, 범인은 내 침대 옆에 앉아있던 우구이스마루였다. 나는 그의 손길을 뿌리치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하필 그가 내 근처에 앉아있던 바람에 그의 얼굴이 훅 가까워졌다. 나는 너무 가까운 거리에 놀라 벽 쪽으로 슬금슬금 물러나면서 장난스러운 표정의 우구이스마루를 노려봤다.
“뭐, 뭐, 뭐야?”
“잘 못자는 것 같아서.”
잔뜩 경계하는 내 모습에 우구이스마루는 아무 짓도 안 했다는 듯 두 손을 양옆으로 들어보였다.
“신경 쓰지 않고 더 자도 돼.”
“어떻게 신경 쓰지 말라는 거야!”
다른 어떤 것보다 다정한 손길이 무서웠다. 거기에 익숙해지고 나면 혼자가 되었을 때 저도 모르게 그 손길을 찾게 될 것 같아서. 꿈은 꿈으로만 남아야 했다.
“하지 마, 이런 거.”
그는 앉아있던 침대에서 폴짝 내려와 대답 않고 의뭉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더 뭐라 하려다가, 잠결이라지만 그 손길에 어리광 부리던 내 행동이 떠올랐다. 얼굴이 화아악 달아올라 화장실로 도망갔다. 언뜻 보였던 우구이스마루의 싱글싱글 웃는 얼굴이 내 얼굴에 더 불을 지폈다.
차가운 냉수로 세수를 하며 얼굴의 열기를 잠재우고 머리도 식혔다. 문을 열고 나가니 우구이스마루가 차를 한 잔 건네주었다. 가해자는 저렇게 속 편해 보이는데 나도 당당해져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차를 건네받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옆에 앉아 한 모금 마셨다. 따스한 카모마일 향이 퍼져 긴장이 스르륵 풀렸다. 우구이스마루가 항상 여유로워 보이는 건 차 덕분일지도 모른다.
“어때?”
“별로.”
괜히 심통을 부려봤다. 너랑 있는 것도 차도 싫다고.
“나는 좋아해.”
왜 굳이 주어를 빠뜨리고 말하는 건지. 나는 다정한 손길에 잠에서 깨어나는 것도,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받는 것도 익숙하지가 않는데. 이 사람의 의도가 뭘 향해 있는 건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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