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 데구르르- 탁-타닥퉁탕.

 터지는 소리부터 폭탄이 우주선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까지. 모든 소리가 거꾸로 들린다. 시간이 반전되는 듯한 착각 속에서 보디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눈 앞의 폭탄과 눈씨름을 하며 다만 네가 터지지 않기를 간절히 염원했으나 그 찰나도 순식간이었다. 비웃기라도 하듯 폭탄은 긴 찰나 후에 터졌다. 폭발음 속에서 보디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고, 아무것도 볼 수 없었으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영원한 순간동안 긴 암흑이 찾아왔다.

 아마도 이것이 죽음의 감각일 것이다. 어렴풋하게 깨달을 수 있는 감각이었다. 폭발음이 들린지 약 1초, 세상은 여전히 암흑이었다. '행성 살인마' - 죽음의 별이 제다 시티에서 떠오를 때 하늘에 짙게 깔렸던 먹빛이 이와 비슷했다. 

 제 죽음을 목전 앞에 두니 알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의 죽음 속에서 거닐 때에는 알 수 없던 생생한 감각이 온 몸을 짓눌렀다. 아직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잠깐 동안의 암흑 속에서 머무르고 싶었다. 깨어난다면 그때야말로 모든 것이 영영 멈출 것이다.

 모든 것이 순식간이었다. 제다 시티에서 갤런 어소의 딸, 진 어소가 했던 말과 같이. 죽음 앞에서 사람이란 이리도 무력해진다.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선택지조차 없는 갑작스러운 죽음, 모든 죽음이란 그랬다. 시도때도 없이 급작스레 찾아온다. 생이란 그에 비하면 찰나다. 찰나동안 빛나다 사라지는 별빛과 같이, 끝내 깜깜한 우주에 집어삼켜지는 별들의 시체이자 모체 - 스타더스트와 같이.

 나의 스타더스트. 

 갤런 어소의 말이 잔잔하게 떠올랐다. 그는 적진에서 인질로 잡힐 수도 있는 딸의 이야기를 입밖으로 내뱉으며 감상에 젖을 만큼 유약한 이가 아니었다. 다만 때때로는 나약한 면모를 비쳐보일 때도 있었다. 화물기 조종사인 보디는 우연치 않게 그와 친분을 쌓은 후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정말 가끔씩 그가 나의 스타더스트,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자신의 두 손을 마주잡고 이마에 그것을 댄 채 소리죽여 눈물 한 방울을 떨어트리는 것을 보았다.

 갤런, 당신의 딸이 우릴 구할 거예요. 눈앞에서 보이는 이것이 주마등이란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말을 걸어도 그는 듣지 못한다. 다만 제게 메세지를 내민다. 보디는 놀라 되묻는다. 이게 뭐죠? 갤런은 보디를 본다. 보디 룩, 난 자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늦지 않았다는 믿음도. 

 한낱 화물기 조종사에겐 너무 어려운 임무였을까? 아니면 자신은 이미 제국의 편에 서서 너무 많은 이들이 죽는 것을 방관했기 때문일까? 보디는 제다 시티가 멸망하는 것을 보고 눈을 감았다. 자신이 늦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이 일을 맡아서 모든 것이 일그러지고 망가졌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보디 룩, 갤런에게 받은 기회를 망친.. 이어지는 진의 말에 당장 이 사태에 뛰어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지각쟁이였다.

 이들은 숱한 시간을 싸워왔다. 6살때부터 싸워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에 반해 자신은 이제야 막 행동으로 옮기는 이나 다름 없었다. 포스가 정말로 있다면, 아직까지 남아있다면 그 포스는 자신과 함께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믿지도 않았지만, 포스는 치루트같이 숱한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고 노력하는 이에게나 찾아오는 수련의 산물이 아니었던가. 포스를 '쓰는' 이가 되지 못하더라도 포스의 손길을 받는 이도 되지 못할 것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의 고리가 뚝 끊어졌다. 암흑이 걷히고 눈꺼풀이 들린다. 한순간에 너무 많은 고통이 찾아오니 신경계가 끊어지기라도 한 걸까, 무음의 세계 속에서 존재조차 느껴지지 않는 사지가 움직이질 않는다. 고통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피부의 감각도 없다. 

 하하, 하. 보디는 애써 웃는다. 자신은 할 일을 다 했다. 임무를 완수했다. 자신은 반란군이다. 이제 그 별만 막으면 돼요, 겔런. 그리고 카시안, 진. 죽음의 별 말이야. 그리고 난 당신들을 도왔어. 난 명예롭게 죽는거야.

 쓸쓸한 자기위로 뒤에 자꾸만 공포가 엄습한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죽음이 있을 리가 없다. 보디가 자꾸만 숨을 들이마쉰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테지만 숨소리를 낸다. 죽기 싫다고 발악할 몸뚱아리조차 온전치 않다. 보디는....

 유의미한 삶이길 바랬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광경을 봐서, 자신이 운송한 탄약이 6살 아이를 벌집으로 만드는 것을 봐서,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고 악독한 삶을 살고 있다는 죄책감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때, 손을 내민 것은 겔런 어소였다. 속죄와 동시에 자신의 목숨이 조금이라도 가치있길 바라서 그의 손을 잡았다.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바뀔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몰랐던 것이다. 수없이 많은 보디가 늘 이리 죽어나갔다는 것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수없이 많은 개인들이 이제서야 보였다. 값진 희생이었다지만 우리 모두는 사실 알고 있다, 그들을 기억해줄 이가 아무도 없으며 그들의 희생에 대해 값진 대가를 치루는 이도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지금 보디 룩의 삶은 유의미한가, 무의미한가?

 자문했다. 답이 나올 리는 없었다. 

 겔런 어소, 당신에게 얻은 기회를 잘 썼는지 모르겠어요. 다만 당신이 만족했다면 난 잘 한 것이겠죠... 

 중얼거리며 이 자그마한 전투에 희생당했으며 희생당하고 있고 희생당할 영혼들을 떠올렸다. 문득 하늘이 검어진다. 찰나의 빛이 찾아온다. 영원한 죽음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자신은 해변가의 수조개의 모래알 중 하나일 뿐이던가. 무의미한 개인이 휩쓸려나가 유의미한 일을 만들기 마련이라고 보디는 생각했다.

 다만 자신이 잊히더라도 진 어소만큼은..

그제야 차분한 산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완전히 홀로 버림받은 느낌이 들어 오히려 위로 올라가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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