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을 바꾼 거 같은데?”

“알아보시네요.”

“그럼. 내가 제일 처음 사준 시계구만.”

몸을 틀어 협탁 위로 시계를 치웠다. 다시 누우려 돌아봤을 때 황시목은 한 팔을 내준 그대로 누워있었다. 여전히. 팔베개 습관은 여전한 것 리스트에 속해있다.

“아. 왜 이렇게 이쁘지 오늘.” 

떨어지듯 풀썩 그 품으로 들어 크게 숨을 내쉬어 보는 한여진의 버릇도 여전한 항목 중 하나다.

“맞다. 내가 말했나? 회사 앞에 진짜 맛있는 마라탕 집 생겼어.”

거리의 풍경은 조금 변한 쪽이었고.

“마라탕…지난달에 갔을 때만 해도 없었던 것 같은데요.”

“지난준가 오픈한 거 같던데. 근데 그 집 국물이 진짜…하. 생각하니까 또 침 고이는 거 봐.”

기호 역시 꾸준히 변해온 것 중 하나다.

“매운 음식 너무 많이 드시지 마세요.” 

“다음에 너 오면 거기 갈라구.”

“전 마라탕은….”

“거기 말구. 아무렴 너하고 거길 가자고 하겠습니까아. 내가 말한 데는 좀 걸어야 되긴 한데 그, 길 건너에 쪼끄만 카페 있잖아 왜. 라떼 맛집. 거기 돌아서 내려가는 길 알지. 좀 가다 보면 생태집 나오고.”

“아…네.”

“거기서 한 5분? 10분? 더 가면 딱 너가 좋아할만 한 가게 있어. 저번에 우리 회사 지은이랑 갔었는데 아 지은이 참. 이사간다고 요새 집 알아보는데 우리 동네 쪽도 보나봐.”

새로운 인연은 변한 것 리스트 중 단연 눈에 띄는 항목이다. 

“관리비 오늘까지였던 거 같은데.”

내준 팔을 굽혀 한여진을 더 제 쪽으로 당긴 황시목이 그대로 한여진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아까 퇴근하고 관리하시는 분 만나서 드렸습니다.” “잘했네. 어우 관리비 많이 올랐더라.” 그의 팔에 눌린 뺨을 들썩여 자리를 잡은 한여진이 턱 밑으로 이마를 부비며 투덜댔다. 목덜미에 닿는 한여진의 숨이 간지러운지 황시목 역시 다른 팔로 허리를 감싸듯 안아 틀듯이 밀착했다. 둘은 그대로 맛집 리뷰와 점잖은 부사수의 근황을 공유하고 장바구니 물가를 한탄했다. 

사실 한여진은 알고 있었다. 우리를 훌쩍 완벽한 시점으로 데리고 가지 못하는 시간이 더디고 야속하다 원망했지만 시간은 언제나 자연스럽게. 가장 완벽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당연하게 상대를 가정하는 대화가, 습관적으로 자상한 몸짓이, 아주 사소한 것들이 너절한 날에도 입가에 미소를 피우게 만들었다. 도란도란 서로가 없던 시간을 함께 하는 시간에 부었다.

“아니 그래서 오늘 아침에 시계를 보는데 시계가 딱 7시 7분인거야. 신기하지 않아?”

얼마나 신기했던지.

“음 네. 신기하네요.”

이토록 신기한 일이었다. 당신의 목소리가 나의 목소리를 따라와주는 일은. 우리가 섞이는 일은. 꿈에서나 그리던 포근한 기분은. 

한여진은 꿈 속의 한여진이 부러웠다. 아직 꿈. 다행히도 꿈. 몇 번이고 이 꿈을 꾸고 싶었다. 깨고 싶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알았어.”

품에 묻었던 고개를 들자 한여진의 눈에 그토록 그리던 이가 한가득 담겼다.

“점심 먹고 오후에 일하다 시계를 봤거든. 또 4시 4분이더라고. 확신했지.”

“확신이요?”

“응 확신. 아. 누구누구가 지금 내 생각을 하고 있구나. 날 보고 싶어 하는구나.”

“시계…를 보고 그런 확신이 드셨다고요.”

“황시목. 방금 네 시계. 몇 시였을 거 같아?”

별안간 제게로 넘어온 공을 황시목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응시했다. 당신은 가끔 감당이 어려울 정도로 엉뚱하다 곤혹스러워하면서도 기어코 한여진의 속내를 꿰뚫는 답을 내놓고 마는 눈빛이었다. 

저 봐.

여우가 바싹 얼굴을 기울였다. 마치 긴장이라도 하는 것처럼. 한여진이 가장 원하던 방식대로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몇 시였습니까.”

간지러워 어깨를 움츠렸다가 푸스스 웃음이 터져 버린 한여진이 껴안고 있던 팔에 힘을 줘 더 꽈악 매달리듯 안았다. “궁금해?” “네. 궁금합니다.” 짐짓 진지한 체 하는 목소리와 자신의 오답따윈 의심하지 않는 표정이 사랑스러웠다. “안 되겠다. 우리 여우 거짓말을 너무 잘한다 이제.” “거짓말 아닌데요. 궁금합니다.” “그것만 얘기해 봐 그럼. 솔직히. 4시 4분에 내 생각 했어 안 했어. 아니다 아니다. 방금 전에 11시 11분에. 내 생각 했어? 했지?” 

오늘 같이 좋은 날은 다시 없겠지. 내일은 내일처럼 좋을 거니까. 둘은 더 망설이지 않았다. 서로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잔뜩 안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아마 얼핏 졸음이 묻어나는 한여진의 목소리 끝을 황시목이 눈치챈 다음이었을 것이다. 안고 있던 몸을 살짝 뒤로 물린 황시목이 빤히 코 앞의 한여진을 살폈다. 그 물끄럼한 시선의 뜻을 알면서도 한여진은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듯 깜박 깜박 시침을 뗐다. 물론 자신의 연인은, 이 황시목이란 인물은 녹록치 않았다. 그가 경중을 막론하고 어떤 일이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넘어가지 않는 위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충분히 증명됐다.

기어이 반쯤 몸을 일으켜 한 팔로 비스듬히 기대 누운 황시목이 손가락 끝으로 톡 한여진의 아랫 입술을 가볍게 건드렸다.

“벌려 보세요.”

그에겐 더이상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아까같은 볼멘소리는 이제 통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한여진의 투정에 밀려 제 성미대로 확인하지 못한 한여진의 상처를 마저 샅샅이 살피고, 해결하고, 재우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그는 이제 더 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술을 앙 문 한여진은 마지막 항전을 준비했다. 한 손으로 여진의 동그란 양 볼을 폭 잡아 누르던 황시목이 픽 웃고 말 수 있게. 거 뭐 본다고 나아지냐 붕어입을 하고도 웅얼웅얼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굴을 트는 한여진의 턱을 여우는 지치지도 않고 다시 아프지 않게 잡아 천천히 제 쪽으로 돌렸다. 

“계속 하실 겁니까.”

반항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날 밤엔 한여진이 원하던 거의 모든 걸 얻었던 것처럼 황시목 또한 원하는 걸 취할 수 있었다.

상대에게 처분을 맡긴 채 꼼짝 않고 입만 벌리고 있는 자세 자체가 치과 의자에 누운 마냥 언짢은 건 둘째였다. 물과 같이 잔잔한 얼굴에 번지는 검은 수심을 고스란히 코 앞에 두고 보는 일은 예상대로 고역이었다.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한 한여진은 눈동자만 바쁠 수 밖에 없었다. 이리저리 갈팡질팡 어수선한 시선이 그와 맞는 순간.

“소독. 하고 자죠.”

한여진을 단단히 잡고 있던 황시목이 손이 풀어졌다. 

누가 입병까지 일일이 소독을 하고 사냐, 그럴 일 아니다, 자고 일어나면 낫는다 손사레쳐봤지만 현장 시찰을 끝낸 황시목에게 어줍잖은 변명이 먹힐 리 없었다. 

“계세요. 해 드리겠습니다.”

어느새 침대에서 나가 옷가지를 주워 입고 한여진의 옷까지 챙겨주고 난 황시목은 한여진이 뭘 더 해볼 새도 없이 방에서 사라졌다. “나 진짜 괜찮은데!” 목청을 돋워보았자 금세 휑해진 옆자리가 죄스러운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입 안에 뭐 바르면 찝찝한데.”

구급상자를 들고온 황시목은 익숙하게 약을 찾아 들었다. 

“바르고 바로 주무시면 그럴 일 없을 겁니다.”

그때쯤 모든 걸 포기하고 순순히 입을 벌리던 한여진은 그러나. 황시목이 제 손 위로 연고를 죽 짜는 걸 보고 눈이 휘둥그레져 도로 꾹 입을 닫았다. 설마 저걸 그대로 넣겠다는 건가 저 남자는.

“그…면봉이 통에 어디 있을 거야.”

“찾아봤는데 없었습니다.”

어쩐지 상자 하나 들고 오는 것 치고 시간이 걸리더라니. 

“그래? 그럼 내가 바르…아니이 잠깐 잠깐! ……. 이 양반.”

이미 나머지 손으로 한여진의 뒷통수까지 안듯이 받친 황시목을 아슬아슬하게 밀어낸 한여진은 그 서슴없음에 실소가 샜다.

“깜박하신 거 같은데 나도 손이 있거든요. 심지어 멀쩡해.”

연이은 제동이 불만스러운지 드디어 황시목이 제법 뚱한 표정을 드러냈다.

“내가 바를게.”

더 확실한 거부에 결국 작게 한숨을 쉬며 물러난 황시목은 차분히 다시 설명했다.

“약. 바르고 주무셔야 합니다.”

“알아요. 안 그럼 너 잠 못자는 거 안다구. 바르겠다니까? 이리 줘.”

“혼자 하시려면 잘 보이지도 않는 상처 부위를 억지로 거울에 비춰가면서 해야 되는데요. 제가 하면 더 쉬울 거고 더 빨리 끝납니다. 직접하시려면 당장 손부터, 닦고 오셔야 되고요.”

추가타로 이미 박박 닦고 온데다 연고까지 잔뜩 짜올린 자신의 손을 황시목은 슬쩍 여진에게 들어올려 보였다. 뭐 이런 막무가내가 다 있나 싶었지만 반박은 하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걱정을 끼친 주제에 할 말은 무슨 할 말. 입이 열 개라도 군말은 더 못할 만한 입장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져 자꾸만 괜한 고집이나 부리는 방식으로 비어져 나왔다. 밖에서 매일 보는 그런 인간의 그저 그런 고집을, 아집을 넌더리 내며 흉보던 인간이 다름 아닌 한여진 자신이었으면서.

그러다 옮아. 물든다고. 닮아갈 거야. 

아무리 좋아도 너무 좋아하는 티는 내지 말 것. 아무리 싫어도 너무 오래 싫어하진 말 것. 사람이란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건지. 이게 선배의 조언을 고리타분하다며 등한시한 어리고 어리석었던 후배에게 내려지는 벌인가 싶어 자조가 샜다.

못났다 한여진. 속으로 가벼운 환멸을 삼킨 한여진은 닫았던 입을 다시 벌렸다. 서 있는 황시목이 드레싱하게 편하도록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 기세가 전 같지 않은 티가 났는지 황시목의 손이 서둘러 한여진의 뒷통수를 받쳤다.

“면봉을…다시 한 번 찾아볼까요.”

“아이야 걍 해.”

“그럼 말씀하신 것처럼 손 닦고 와서 직접….”

하여간 이런 눈치는 귀신같이 빨라선. 그 찰나의 침울을 그새 들킨 모양이었다. 기껏 좋았던 분위기는 어디 가고 저 하나 때문에 오밤중에 이게 다 무슨 수선인지. 이토록 헌신적인 연인에게 별 수고를 다 끼치는 자신이 한심할 뿐이었다.

“저 괜찮습니다요. 지인짜 괜찮으니까 눈치 그만 보시고 진행하시죠 선생님.”

중심을 잡기 위해 황시목의 허리께에 올려놨던 손을 내려 장난스레 엉덩이를 토닥이자 희미하게 굳었던 시목의 미간이 풀어졌다.

한여진에게 붙박힌 황시목의 시선은 늘 그랬듯 지극했다. 충분히 배려하며 천천히 입 안으로 들어온 손가락 역시 평소처럼 따뜻했다. 문제는.

“부를 어 켜까.”

자꾸 침이 고였다.

“음. 불은 더 안 켜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까 염증 정도랑 상처 위치는 확인을 해서….”

여린 점막을 쓸어내는 손가락 끝의 조심스러운 감촉이 쓰라리는 동시에 너무 간지러웠다. 이불을 말아쥔 손 끝이며 발 끝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이게 지금 기분이 나쁜건지 좋은건지 모를만큼 순식간에 뒷목을 타고 올라오는 오싹함에 무심코 입술을 말아 손가락을 무는 시늉을 하자 멈칫 드디어 손가락의 움직임이 그쳤다. 

“한여진 씨?”

내려다보는 시선에서 한여진의 통증 정도를 다시 가늠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곧 그 역시 한여진의 짓궂은 시비 중 하나라고 판단했는지 한일자로 입꼬리를 꾹 늘리고난 황시목이 다시 한 번 부드럽게 타일렀다.

“당장은 통증이 심하시겠지만 이래야 회복 속도가 빠릅니다.”

“웅웅.”

“저….”

“웅.”

“약을 아직 더 발라야 할 것 같은데요. 죄송하지만 입을 좀 다시…. 빨리 끝내겠습니다.” 

한여진이 겁을 먹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의 추측은 틀렸지만 이제 안 아플 거라는 둥의 공염불은 기어코 못하는 솔직한 예고가 그나마도 없던 기운을 쏙 빼버린 덕에 한여진의 입은 그의 의도대로 다시 벌어졌다.

겁을 먹었던가. 한여진은 겁을 먹은 게 맞았다. 다만 그를 위협하는 공포의 정체가 곪아 터진 입 안의 통증이 아닐 뿐이었다.

드레싱을 마무리하며 체크하듯 위아래로 한여진을 훑어 보고난 황시목이 다가와 입다 만 한여진의 잠옷 단추를 마저 채웠다. 

“크이리야.”

“큰일이요?”

“이러다 나중에 황시목 없음 암 것도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밥 차려줘, 커피 내려줘, 하다 하다 입 속에 약까지 발라주네.”

“번갈아 하는 일인데요.”

늘상 그랬다. 황시목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아 했다. 그리곤 실제로 많은 일들을 그와 같이 대수롭지 않게 덤덤하게, 묵묵하게 해치웠다. 당장을 위한 일도 미래를 위한 일도.

“아냐. 허투로 볼 일은 아니지. 매 끼니 해결하는 일만 해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난 지난주 저녁도 밀키트 때려넣고 꼼수로 겨우 때웠다구.”

세월 좋아 참. 혀를 차는 한여진을 황시목이 자리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쳐다봤다.

“먹은 사람 모두 충분히 만족한 식사였습니다.”

“어…그래?”

“네.”

“그렇까지 말해주면야 뭐. 나야 다행이지만. 그래도 맛이 그게 비교가 되나. 암튼. 이런 누가 다 해주고 응? 이런 거 이렇게 호락호락 익숙해지면 안 돼요.”

달칵 구급 상자의 걸쇠를 닫던 황시목이 지나가듯 대답했다.

“왜 안 됩니까.”

“아니 그러다….”

저도 모르게 그를 따라 가볍게 대꾸하던 한여진의 입이 천천히 그쳤다. 협탁 쪽으로 등진 채 서 있던 황시목이 어느새 다시 또 물끄러미 한여진을 돌아보고 있었다. 둘은 이미 같은 뒷말을 짐작하고 있었다.

“혼자 할 줄 알아야지 뭐든. 다 큰 어른이.”

“할 줄 아시지 않나요.”

정적이 흘렀다. 구급상자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려버린 황시목의 등이 한참 묵묵했다.

“한여진 씨는 이 모든 걸 혼자서 해왔습니다.”

“….”

“그래야 하는 땐 당연히 혼자서도 다 하실 줄 알고요.”

혼자라는 일. 그건 일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무한한 자유와 아득한 고독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점을 찾아야만 하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고된 과업이었다. 성취의 잔을 들어올리는 일도 실패한 대가를 마시는 일도 오롯이 한 사람의 몫일 때. 막연한 가능성과 선명한 한계를 굴곡 없이 받아들이는 일은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넘어진 다음엔 일어나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믿었지만 때때로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의심이 머리 위로 떨어질 때면. 어느 날 어느 순간의 마지막 장면이 덮쳐올 때면 한여진은 무력했다. 끝내 체념에 삼켜진 채 위로하는 이도 비웃는 이도 없이 아무도 모르게 혼자 스러져버린 사람. 바닥에 엎어진 그 사람의 몸을 뒤집어보는 순간. 뭉개진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한여진은 몸서리치며 비명을 질렀다. 하루는 분명 자신의 얼굴이었건만. 

“제가 해드리는 일들의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드세요?”

어느 하루는 당신의 얼굴이었다. 

“…그럴 리가.”

어느덧 또 덜컥 내려앉는 속을 몰래 쓸어내렸다. 쥐어짜듯 대꾸하는 목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서둘러 이불을 정리하는 척 몸을 일으킨 한여진 역시 황시목에게서 등을 돌렸다.

“넌. …황시목 네가 뭘 하면 너무 고품질이라 문제라니깐.”

“그럼 해달라고 하세요.”

이불을 털어 평평하게 펼치려는데 생각만큼 되질 않아 몇 번을 거듭해야 했다. 괜히 길이를 맞추고 각을 쟀다. 이불 끝을 접어 안 하던 모양을 만드려는데 어느새 침대 반대편에 선 황시목이 마주 잡아 폈다. 

“제가 있는데 왜 계속 당신이 혼자 하는 일에 익숙해져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금세 평평해진 이불을 내려다봤다.

“아무래도 성가시기도 할 거고….”

미간을 찌푸린 황시목이 비스듬히 고개를 틀었다. 내가 당신을 성가셔 할 거라고, 설마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느냐는 반문이었다. 서운함을 내비치는 최대한의 표현이었다. 한여진은 예전부터 당해내질 못했다. 그의 이 무언을.

“알았어. 무슨 말인지 알았으니까 그만 좀 째려보면 안 될까. 처치 끝나셨으면 약통이나 갖다 놓고 오세…풉. 아이 알았다니까 글쎄. 그럴게요. 해달라고 할게.”

이렇게까지 널 위한다며 도망치는데 이렇게까지 날 위해 잡는다. 네 손 위에 내 손을 덮으면 네가 손을 빼 다시 내 손 위로 네 손을 덮는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더 한 이불을 덮고 한 이불을 마주 펼치며 살 수 있을까. 충만감에 비례해 차오르는 까닭 모를 불안. 경계가 모호한 양가감정이 그날따라 저울 위에서 유난히도 기우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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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전 1편을 처음 업로드했을 때(2023년 1월) 혹시 코멘트를 보신 분이 계시다면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멘트는 시간이 지나면 날려버리는데다가 초중반부는 계절감이 없지 연재는 또 좀 빨리 하나;; 코멘트로 사족을 붙이는 걸 자제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러다가 곧 (당연히) 전개될 계절 키워드를 보시고 황당하실 것 같아 미리 코멘트 드립니다. 

짜잔. 드문드문 업로드 되고 있는 이 글은 경찰(사냥꾼)과 검사(여우)의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려고 시작한 크리스마스 외전이랍니다. 짜잔.

…황당하시죠. 죄송합니다. 유명 웹툰 작가의 조언대로 작가의 부족으로 작품 내에서 설명이 안 되는 특징은 그냥 대놓고 써붙이는 게 나을 것 같아 다급히 부제를 크리스마스 외전으로 수정했습니다. 

이 크리스마스 외전은 4월 내 완결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꾸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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