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ibal X Phantom

흑집사 AU

W. DD




 신성을 모독하는 목소리가 지하의 온 공간은 꿰뚫고 지나다닌다. 놓여진 촛불들 가운데에 주기도문을 거꾸로 읊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하나로 합쳐져 마치 기괴한 성가와 같았다. 신의 창조물이 마치 자신의 부모를 부정하여 모욕하고 악마의 꾀임에 넘어가 광기에 눈이 먼 이들은 기도를 올린다. 기도는 인간들에 의해 창조된 의식일 뿐, 누구에게 기도를 하냐는 선택 또한 인간들에게 달린 것이다.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혀 머리를 조아리며 하는 의식 속에 마지막 어린 희생양이 모습을 드러낸다. 양손이 등 뒤로 묶인 채로 목재로 이루어진 무대단상 위로 올라 선다. 지그시 감고 있던 두 눈을 뜨자 매혹적인 금빛 눈동자가 짙은 어둠 속에서 빛이 난다. 죽음을 앞둔 양이지만 두려움이 없는 메마른 표정을 가진 그는 조용히 노래를 읊었다.


 “Sanguis Bibimus. Corpus Edimus….”


 난잡한 소리들 사이로 뻗어나는 아름다운 음색, 그 노랫소리를 들은 이들은 하나 둘씩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죽음을 앞둔 양이 부르는 노래, 실로 악마 소환 의식에 가장 어울리지 않은가. 저음과 고음의 사이를 자유로이 헤엄치는 그의 목소리는 감히 신의 선물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의식을 개최한 이는 눈물을 달고, 어떠한 소리도 나오지 못하는 입을 벌리고 있었다.


 “Sanguis Bibimus. Corpus Edimus. Tolle Corpus Satani. Ave.”


 마지막 음이 허공으로 완전히 흩어지나 그제서야 주최자가 걸음을 옮겨 금빛 눈의 어린양 앞에 섰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어린양의 머리 위로 모든 신성한 것을 모독하듯 성수를 대신해 기름을 부었다. 역겨운 기름 냄새가 코를 찌르지만 지그시 감은 눈과 표정에는 평온하기 그지없다. 그대로 기름에 젖은 상태로 역십자가에 몸이 묶인 그는 지옥과 같은 불이 자신을 집어 삼키기를 기다렸다. 횃불이 다가오고, 십자가에 닿기 직전에 사방을 밝히던 촛불들이 꺼진다. 이내 비명소리가 촛불의 빈자리를 대신해 울려 퍼진다. 횃불을 든 남자는 어둠 속에 살아 숨쉬는 자는 마치 자신 혼자 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공포에 잔뜩 질려있던 그 순간 등 뒤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횃불을 떨구고 만다.



 지겹도록 악마의 이름을 부르는 썩어빠진 영혼들, 너무 더러워서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은 정도였다. 배가 고픈 참이었지만 저열한 음식으로 혀를 더럽히고 싶지 않았던 차에 귀에 꽂히는 노랫소리, 그는 바로 집중했다. 풍부하게 울리다 가녀리게 흐르는 노래에 바로 이거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영혼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준 낮은 바람도 없으며 어린 양의 입장에서 고결했다. 저들의 손에 사라져버리기 전에 그는 조금이라도 빨리 이 노래를 부른 이에게 가까워져야 했다. 다가가서 달콤한 말로 유혹을 한 뒤, 절망의 구렁텅이에 집어 넣어 그 영혼을 한입에 집어 삼키려 했다.

 의식이 완성 되기도 전에 나타난 악마는 자신이 탐할 영혼을 탐하기 위해 절차를 밟았다. 주변의 맴도는 벌레들을 짓이기며 지나갔다. 겁에 질려 나가 떨어진 불이 십자가에 닿았다. 불은 순식간에 번졌고, 어린양의 오른쪽 얼굴을 잡아먹었다. 손끝이 떨리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는 소리에 이대로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찰나의 생각이 지나갔다. 하지만 눈에 비치는 영혼이 더욱 아름답다.


 “불을 먼저 꺼야겠군요.”


 작은 입바람으로 손쉽게 꺼져버린 불, 통증에 그만 기절한 그를 품에 안았다. 마른 몸은 천 위로도 척추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 전에 피부가 녹아 내린 화상은 어떻게 해줘야 할지 그는 고민했다. 이대로 상처를 없앨 수 있다.


 “그러기엔 제겐 이익이 없군요. 이대로 두는 편이 더 좋을 거 같기도 하고.”


 이 상처로 그대가 조금 더 어둠에 가까워진다면 그것 또한 즐거운 여흥이 되겠지.


 눈을 뜨자 낯선 천장이 보인다. 정신을 차리니 차가운 오른쪽 뺨과 눈가, 그리고 느껴지는 통증에 그는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불에 타버려 재가 되어있어야 할 몸이 멀쩡하다. 무엇보다 자신이 포근한 침대에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다 파악하기도 전에 들려오는 나긋한 목소리에 몸을 움찔 떤다.


 “깨어났군요, 에릭.”

 “어째서 내 이름을….”

 “그것보단 당신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 지부터 설명해드려야겠군요.”


 갑작스레 나타난 남자가 들고 온 홍차와 함께 지금까지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은 에릭은 스스로도 어색할 정도로 차분했다. 자신을 그 날에 소환된 악마라고 소개하는 이를 믿어도 될지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겠지만, 에릭은 달랐다.


  “그래서 내게 원하는 게 뭐지?”

  “저는 당신을 원합니다.”

  “뭐…?”

  “아, 물론 그냥 가져가는 게 아닙니다. 저와 계약을 하시면 원하시는 바람을 이루어드리죠.”

  “대신 영혼이 그 대가인가 보군.”

  “그렇습니다.”


 다정한 목소리로 눈에 띄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남자에 에릭은 고민했다. 바람, 자신의 바람은 무엇인가. 그는 어째서 자신의 영혼을 탐내 하는가. 목숨과 바꾸어서 이뤄낼 바람이 가치가 있는가. 아니다, 아니었다. 어둠에 몸을 담그고 살아온 이가 이제야 와서 두려워할 이유가 있을까. 에릭은 찻잔을 내려 놓은 뒤에 웃음을 자아냈다.


 “Si deus me relinquit Ego deum relinquo”

 “당신의 이야기가 완성되기 전까지 저는 언제나 곁에….”

 “그 전에 자네 이름이 뭐지?”

 “한니발 렉터, 한니발이라고 불러주세요.”

 “렉터, 라고 부르겠네.”




오유x한니발 (크오) 외에 잡다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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