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감시해.”


  서슬 퍼런 목소리가 내렸고, 로키의 손목에는 아스가르드인의 힘으로도 절대 끊을 수 없는 두껍고 단단한 팔찌가 채워졌다.

 이곳은 타노스가 그의 전쟁포로를 가둬두는 감옥. 하지만 감옥 안에는 로키 혼자 뿐이었고, 그의 손목에 채워진 팔찌에는 빼곡하게 룬 문자가 적혀있었다.


 “그 팔찌, 착용자의 모든 마력적 힘을 차단하는 장비야. 니다벨리르의 난쟁이들이 특수 제작한 거지. 도망칠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비웃음이 가득 담긴 문지기의 말 그대로, 지금 로키는 어떤 마력의 운용도 불가능했다. 그저 절망에 찬 채로 머리를 감싸 안고 구석에 처박혀있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스무날 하고도 여드레가 더 지났다. 어쩌면 아흐레인지도 모른다. 그가 시간을 알 수 있는 것은 하루 세 번 문지기들이 교대할 때 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세다가 깜빡 기절한 탓에 제대로 셌는지 알 수가 없었다.


 토르는, 브륀힐데는, 다른 아스가디언들은 살아있을까? 혹시 자신을 찾고 있지는 않을까 희망을 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사실 로키는 알고 있었다. 토르에게 보여준 그의 마지막은 타노스에게 목이 졸려 비참한 죽음을 맞는 장면이었고, 토르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이번에야말로 제 아우가 진짜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왜인지 모르게 병사들은 로키를 괴롭히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감옥 한구석에 누워있는 로키를 철창 밖에서 긴 창의 끝으로 툭툭 건드려보는 것이 전부였으나,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는 로키를 만만하게 생각했는지 괴롭힘의 강도는 점점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와서 발로 차보는 것은 예삿일이었고, 한 놈이 로키를 붙잡고 다른 한 놈이 팔다리를 짓밟아 부러뜨리기까지 했다. 마력이 차단된 로키의 몸은 아주 느리게 회복되고 있었고, 수없이 부러졌다가 다시 붙은 그의 발목은 이미 어긋난 탓에 제대로 걷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시간이 더 흘렀다. 이제는 정말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가늠할 수 조차 없었다. 병사들은 이미 한차례 로키를 구타하고 몰려나간 뒤였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포로를 구태여 지키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로키를 지키고 있는 병사는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로키는 느꼈다. 아주 희미한, 차원의 틈을.


 그것은 성인 남성이 간신히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아주 작은 틈이었다. 마력을 차단당한 상태였지만, 로키는 그것에 굴하지 않고 있는 힘껏 마력을 끌어올렸다. 코와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부닥치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로키는 인간이 아니지만, 아무튼 그도 그러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비좁은 균열을 찢고 차원의 틈에 몸을 맡기는 데에 성공했고, 몸이 어디론가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로키가 정신을 차린 것은 눈꺼풀 안으로 파고드는 햇빛 탓이었다. 코를 찌르는 쓰레기 냄새에 이마를 찌푸린 것도 잠시, 이곳도 타노스의 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급해진 로키는 제가 있는 곳을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 마지막으로 발을 땅에 내디디고 걸어본 것이 언제였는지, 도통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이끌고 간신히 쓰레기통 옆에서 벗어났을 뿐인데 이미 모든 체력을 다 써버린듯 기진맥진해버렸다.


 비틀비틀 골목 안에서 빠져나옴과 동시에 옆에서 오던 사람과 부딪히고 말았다. 겨우 걷고 있던 두 다리는 예상치 못한 충격에 그대로 꺾여버렸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아픔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자 앞에서 크고 곧은 손이 뻗어져 나왔다.


 “괜찮나요?”


 창피함이 몰려와 얼굴을 푹 숙인 채 고개만 끄덕이며 뻗어진 손을 잡았다. 따뜻하고 단단한 손. 그 손이 주는 안정감에 로키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상대의 얼굴을 보았고, 그의 얼굴은 당혹감으로 가득 찼다.

 깔끔하게 넘긴 금색 머리, 새파란 눈. 제 형을 연상시키는 외모였지만, 그보다 좀 더 단정한 얼굴.


 “.....솔져?”


 스티브는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였지만, 이내 다시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스티브는 로키의 몰골을 잠깐 훑어보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말을 고르는 듯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음... 보아하니...집이 없는 것 같은데, 맞나요? 바로 이 건물에 우리 집이 있으니까, 잠깐 올라갔다가 갈래요? 그... 옷도 좀 갈아입는 게 좋을 것 같고.”


 로키는 그제야 제 몸을 내려다 보았다. 피가 덕지덕지 묻고 찢어져 있는 옷, 옷 사이로 보이는 상처와 멍, 그리고 온갖 오물들. 그야말로 거지꼴 그 자체였다. 얼굴을 붉힌 로키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하고 스티브 로저스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까, 당신 이름도 못 들었네요. 당신은 날 아는 것 같은데. 이름이 뭐예요?”

 “....”


 로키는 대답 대신 스티브를 빤히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토르는, 토르는 어디 있어? 무사해?”

 “토르?”


 스티브는 갑작스레 토르를 찾는 로키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토르는, 아스가르드에 있겠죠. 아스가르드로 돌아간 지 일 년도 넘었는데...”


 그 말에 로키는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토르가 아스가르드로 돌아갔다고 말하는 것은, 발키리와 아스가디언들이 무사히 노르웨이에 도착해서 아스가르드의 터전을 잡았고, 토르도 살아남았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토르에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야겠어. 노르웨이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 뭐야? 아니, 직접 갈 필요도 없지. 토르더러 오라고 해야겠어. 아스가르드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뭐야?”

 

 분홍빛으로 볼이 상기되어 눈을 빛내는 로키를 보는 스티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니까, 토르와 관련된 사람인 모양이죠? 그런데, 아스가르드와 연락을 취할 방법은 없어요. 노르웨이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아스가르드에 가려면 무슨-통로던가, 아무튼 무지개다리가 필요하고요.”

 “.......뭐?”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바이프로스트를 열어줄 헤임달은 이미 죽었고, 설사 다른 누군가가 바이프로스트를 열 수 있다 해도, 바이프로스트로 갈 수 있는 아스가르드는 이미 부서지고 없다. 


 “잠깐만... 이게 무슨 말이야...? 토르가 미드가르드에 정착한 게 아냐? 다른 행성에 정착한 거야?”


 그리고 문득 로키의 머릿속을 강타하는 의문.


 “지금이... 몇 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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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씨 쓰고 싶던 내용은 한참남았는데 애피타이저로만 3천자를 채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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