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었어.
나도. 다니엘.
내가 더 지훈아.
그래 그래. 그렇다고 치자.

재회의 포옹은 애절했고 간만의 한 키스는 달콤했다. 이래서 연애에는 적당한 밀당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오랜만에 서로를 품에 안은 두 사람은 마치 샴쌍둥이가 된 듯 붙어있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포개져 있었다. 꼬물거리는 지훈의 손가락 사이에 다니엘은 제 손가락을 넣어 꽈배기처럼 겹쳐서 꼬았고 그럼 지훈은 옆에 앉아있는 다니엘의 태평양만큼 넓은 어깨에 기대서 얼굴을 비볐다. 물론 결과론적인 깨달음이지만 2주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별의 시간은 두 사람에게 서로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 사건이 됐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경험을 또 한 번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값진 경험이었어도 숨이 쉬어지지 않고 속이 답답한 느낌은 평생 한 번이면 충분했으니까.

손을 뻗으면 언제나 닿을 곳에 있었기에 마치 우리가 일상에서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하루를 살아내듯 그렇게 쉬이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친구로 지낸 10년과 연인이 된 1년. 결코 결을 같이 할 수 없는 카테고리였다. 친구에서 연인이 됐다고해서 친구처럼 대해서는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다니엘은 예전처럼 투닥거리는 시간도 아까웠다.

앞으로는 무조건 뭐든지 지훈이한테 보고하고 절대 복종해야지. 지훈이네 집까지 뛰어오며 다니엘이 주문처럼 외운 가장 커다란 교훈이었다.

거자필반 회자정리.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면 언젠간 다시 만난다는 말이 감정의 고통까지 담은 말이 아님을 느낀 지훈은 앞으로 혹여 다니엘이 잘못하더라도 절대 헤어지자는 말을 먼저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벌을 주는 사람도 아픈 체벌은 그 누구에게도 이득이 아니라는 걸 느꼈으니까.


지훈아. 그런데

징역이니 집행유예니 뭐 그런 건.
무효무효. 내가 잘못했어.
그럼 나 형 안 살아도 되나.
응응. 없어졌어.
접근금지도?
없어졌으니까 지금 니 좆이 내 허벅지를 찌르고 있는 거 아닐까?

지훈의 말대로 성난 다니엘의 페니스는 지훈을 향해 서 있었다.

접근금지 명령 살아있었으면 이것부터 교수형이었어-

지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니엘은 지훈을 번쩍 들어안고 침대 위에 다소곳이 눕혔다. 그리고는 제 허벅지 사이에 지훈을 가뒀다.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왼손으로는 지훈의 오른팔을 내리누르며 침대 매트리스에 붙였고 오른손으로는 제 셔츠의 단추를 위에서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 내려갔다. 다니엘은 내려다보이는 지훈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봤다. 동그란 이마도 잘 생겼고 촉촉한 눈동자도 참 예쁘다. 오똑한 콧대는 참 반듯했고 도톰한 입술은 물을 가득 머금은 체리 같았다. 영원히 사라져 다시는 제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혹은 제 꿈처럼 이 예쁜 것이 다른 사람의 품에 안겨 소유권이 이전될 수도 있었다. 다니엘은 며칠 전 꾼 꿈이 다시 떠올라 강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훈아”

다니엘이 묵직하게 지훈을 불렀다. 아래 깔려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던 지훈은 입모양만으로 왜? 하며 속으로는 하던 거나 마저 빨리빨리해- 중얼거렸다.

한창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의 두 남자가 독수공방으로 밤을 지새운지 벌써 2주가 넘어가고 있었으니 이건 누구 하나만 안달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이번 일을 통해 느낀 건데”

다니엘의 말은 느릿하고 톤은 더 낮아졌다. 다니엘은 보통 진짜 중요한 일을 말할 때 목소리를 깔았다.

“니 없으면 내는 죽겠더라.”

그리고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것까지.

“니도 그랬나.”

말을 오래 듣고 있을 시간이 없으니까 짧게 Yes or No 로 답 해라.

다니엘의 표정은 짐짓 심각했다.

얘는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싶어 지훈은 장난처럼 웃지도 못하고 그저 고개만 주억 거렸다.

“으. 응-”

그 고갯짓 끝에 아래로 엎어진 다니엘이 지훈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리고 는 긴 호흡으로 그 목덜미를 빨아당겼다.

으음.. 음. 음. 좋아. 좋아. 다니엘. 아. 아.  아- 아 좀 아픈데? 아. 아파. 아파!

“아프다고! 이 개자식아!!!”

지훈이 제 몸을 덮치고 있는 다니엘을 밀치려고 애를 썼지만 원체 나는 체급차를 무시할 수 없었고 작정하고 버티고 있는 다니엘을 밀처내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뭐하는 거야!!”

거머리야 뭐야. 지금 내 피 빨아먹는 거야? 이거 완전 등골까지 빨아먹을 기세잖아?

바둥대는 지훈을 두 팔로 제압하고 다니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훈의 목덜미를 빨아댔다. 잠깐 고개를 들어 뭔가를 확인하더니 다시 파묻고 하던 일을 마저 했다.

지훈은 더 이상. 그리고 한동안 제 말이 먹히지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이내 체념한 듯 멀뚱멀뚱 천장만 보고 누워있었다. 원래 사랑하는 사람과의 스킨십은 고통이 동반돼도 그보다 더한 쾌락이 있기에 그 통증마저 아름답게 해석되는 법. 일단 잠자코 봐주기로 했다. 다니엘 없이 산 그 2주간 이런 무게가, 고통이, 체온이, 향기가 얼마나 그리웠던가. 그래.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렇게 2-3분의 시간이 흐르고 다니엘이 원래 제 위치로 상체를 들어 돌아갔다.

“뭐야. 너 지금 뭐한 거야.”

지훈이 다급하게 물어보며 다니엘이 연신 빨고 물고 흡입하던 제 목덜미를 손으로 만졌다. 오돌토돌 피부가 부어있는 듯한 촉감이었다. 이 개자식. 진짜 너는 개야.

지훈의 울그락 불그락 한 얼굴을 뒤로하고 다니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훈의 책상 위에 있던 탁상용 거울을 들고 와 지훈에게 건넸다. 황급히 받아든 지훈은 거울을 통해 비로소 다니엘이 무슨 짓을 했는지 볼 수 있었다. 지훈의 왼쪽 쇄골 바로 위 지점에는 붉다 못해 푸르뎅뎅한 키스마크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도 교차로 두 개. 그래서 꼭 하트 모양으로 보였다.

“야 이 자식아!! 티 나잖아!!”

소리지르는 지훈에게 다니엘은

“겨울이라 안 보인다.”

거기에 한 마디를 더 보탰다.

“그리고 티 나라고 남긴 거고.”

다니엘은 덤덤하게 답을 내리고 다시 거울을 원래있던 위치에 내려놓고 다시 지훈에게 돌아왔다.

“정도껏 해야지. 미친놈아. 무슨 주홍글씨도 아니고.”

다니엘은 눈을 흘겨 저를 노려보는 지훈의 말을 자르고 어깨를 붙잡고 눈을 맞추며 말했다.

“거울 볼 때마다 나는 강다니엘 겁니다- 기억하라고 남겼다.”

다니엘의 말에는 장난기가 조금도 서려있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하고 이성적이라 지훈은 그 말에 조금씩 설득당하고 있는 듯도 했다. 나직한 다니엘의 어조에 지훈의 올라붙어 있던 호흡이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갔고 그 틈을 타 다니엘은 말을 이었다.

“분하면 내한테 복수해라”

이건 또 뭔 소리야. 뭘 복수-

“니도 내한테 남기라고. 원하는 곳에”

역시 복수에 있어서는 다니엘이 지훈보다 한수 위일지도 몰랐다. 벌을 주는 사람도 아픈 체벌은 연인 사이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지훈이 이번 경험을 통해 느꼈다면 다니엘은 이미 알고 있었다보다. 남기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뭐 마냥 아프기만 한 고통은 아니었으니 이만한 복수가 더 있을까.

“후회 안 하지. 너”

여유 있게 끄덕거리는 다니엘을 보며 지훈은 빠르게 몸을 스캔했다. 마냥 로맨틱하기만 한 키스마크가 아니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한 만큼 입술로 때려줄 거야! 지훈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합- 기합을 한 번 넣었다.

“오케. 누워. 너.”

상체를 드러낸 다니엘이 이번에는 침대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이 자식. 나 안 만나는 동안에 운동 엄청 했네. 또 새로운 몸이 됐어.

지훈은 감탄하며 손끝으로 불뚝 솟아있는 다니엘의 가슴부터 복부까지 자리한 근육의 양감을 느꼈다. 독한 자식. 마지막 내 방 침대 위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다니엘은 두 팔을 제 머리 뒷통수에 교차로 베고 누워 신기한 듯 근육을 구경하는 지훈을 구경했다.

그래. 한참 구경해라. 너를 위해 만든 거니까-

목이고 가슴이고 복부고 어디든 받아들일 준비를 한 다니엘에게 근육 구경을 끝낸 지훈이 야살스럽게 웃으면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다니엘의 입술에 촉- 가볍게 입을 맞췄다.

“몸이 더 좋아져서 주는 상”

“에게, 고작 이 버드키스 한 번으로? 내 미친 듯이 운동했는데”

촉- 이번에는 다니엘의 입술 끝에
촉- 이번에는 다니엘의 왼쪽 볼에
초오- 이번에는 다니엘의 왼쪽 턱에-

그리고 더 이상 지훈의 입술은 다니엘의 왼쪽 턱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허. 이 자식

“니 지금 내 턱에 남기는 거?”

다니엘의 물음에

“으아 아우에아 아이아으”

니가 아무 데나 남기라며-

뱉은 말에 책임은 져야 했고 독특한 지훈의 성향을 몰랐던 것도 아니었다.

다니엘은 자신의 왼쪽 턱을 물어뜯듯 빨며 눈은 치켜떠서 반응을 살피는 지훈의 모습이 무섭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여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다니엘의 턱을 빨던 지훈이 마지막 촉-하는 소리와 함께 상체를 일으켰다.

“야- 작품이다. 작품”

턱주가리를 아주 어퍼컷으로 날리려다 내 부드럽고 탱탱한 입술로 어루만져 준 걸 행운으로 알아라-

지훈도 자리에서 일어나 다니엘이 했듯 똑같이 책상 위에 단정히 놓여있던 거울을 가지고 와 다니엘의 얼굴에 들이댔다. 다니엘의 왼쪽 턱에는 몽고반점 같은 보라색의 키스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위치상 그 누구도 키스마크라고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자리였다.

“마음 좀 풀렸냐.”

다니엘은 거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지훈에게 물었다.

“아니 아직-”

지훈은 다시 야살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일체의 어떤 걸로도 가리지 말 것.”

다니엘은 지훈을 살짝 흘겨보고 상체를 일으켜 지훈의 손목을 그러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알았어. 그럼 이제”

다니엘의 입꼬리도 슬슬 하늘 방향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하던 거 마저 하자.”

지훈의 동의가 표현되기도 전에 다니엘은 서둘러 지훈의 바지를 벗겨냈다.

복수 끝. 이제부턴 본능에 맡기는 거야-

한동안 지훈의 방은 외설스러운 두 사람의 거친 호흡만이 넘실댔다.



니엘아. 하나 더 남겨도 돼?
또 어디
너 가슴에
근육 믓찌나
어. 엄청 믓찌다
그럼 서비스다. 하나 더 남겨라.
여기 심장 있어. 이 심장은 나한테만 반응해야 된다는 의미야.
나? 내 심장은 원래 그랬는데?


좋아져서 친해지고 싶었고 친해지고 싶어서 좋아졌다. 좋아지니 이해하고 싶어졌고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니 사랑하게 됐다. 사랑하니까 갖고 싶어졌고 갖고 싶어지니까 욕심이 과해질 때도 있었다. 그 욕심이 때로는 서로를 서운하게도 하고 그 욕심에 오해가 생겨서 이별이라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하지만 진심이 아니었던 이별선언은 어차피 그 행위보다는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

니 밤마다 어디를 그리 쏘다녔어.
나? 그냥 영화도 보고 카페도 가고
혼자?
응. 혼자
어땠는데?
재미.
....
엄청 없더라.
그랬어?
어. 너랑 하니까 재밌었던 것들이었어.
지훈이 철들었네.
야. 나는 원래 철 만땅이었거든. 니가 문제지


불타오른 사랑만큼 그 열기에 상처가 더 쉽게 생기고 그 아픔은 더 오래갔다. 하지만 결국 그 자리에 새 살이 돋고 결국 그 살은 원래 있던 것보다 더 튼튼하고 반듯할 것이다.

지훈아. 난 이제 니 말만 들을 거야.
뭐야. 그럴 필요는 없어.
싫어. 보니까 니 말이 다 맞는 것 같아.
그걸 이제야 알았어요.
귀찮아도 다 들어줘야 돼
별게 다 걱정이셔. 말만 해.
자신만만하네.
그럼. 내 선택은 언제나 다니엘 네가 최우선일 테니까.


한층 더 견고해진 두 사람의 사랑이지만 어찌 매일 햇빛만 쨍쨍할 수 있겠는가. 가끔 우산을 챙겨가지 않은 날 내리는 비처럼 당황스러운 일도 있을 테고, 얼어붙은 빙판길에 넘어져 온몸에 멍이 들 날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든든하게 서로의 손을 붙잡고 버티고 있을 것이기에-

큰 산 하나 넘어온 두 사람의 몸은 전보다 더 밀착돼 있었다.

다니엘의 말대로 지훈의 키스마크는 사라질 때까지 지훈만이 볼 수 있었고 다니엘은 한동안 빙판길에서 어떻게 넘어졌길래 턱에 그렇게까지 멍이 들었는지 주위 사람들의 안타까운 걱정을 듣고 살아야했다.

J의 이야기는 녤윙으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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