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이 나옵니다.

**보기 거북할 수 있습니다.

***폭력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쿠로오가 폭력 조직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찾아 와.”


내밀어지는 사진을 받았다. 이번에는 제대로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인지 뿌리까지 금발로 염색한 모양새였다. 얼굴은 조금 야위었나, 슬그머니 사진 속 얼굴을 엄지로 쓸어본다.


“사람 잡아 오는 건 좀 걸립니다. 일주일만 기다려 주시죠.”


“네 놈 동창이잖아? 금방 잡겠네 뭐. 사흘 준다.”


씹창같은 새끼. 이를 악 물었다. 뿌드득 거리는 소리가 나자마자 턱이 억센 손에 쥐어잡혔다. 눈이 마주친다. 비웃음이 만연한 그 얼굴에 침이라도 뱉으려다 제 상사라는 걸 깨닫고 참아냈다. 대신 눈에 힘을 주었다. 이번만큼은, 눈을 내리깔고 싶지 않았다.


“네놈 후장 뚫는 거 지겨우니까 데려오라고. 눈깔 하고는... 입도 뚫어줘야 눈 깔 거냐?”


천박한 말과 함께 더러운 손이 자신의 바지 버클에 손을 댔다. 욕지기가 치밀어오른다. 본능적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머리 위로 남자의 손이 얹혀진다. 착하지, 착해.


씹새끼.


문이 닫히고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간다. 소파에 주저앉았다. 여전히 손에는 자신의 파트너였던 켄마의 사진이 쥐어져 있다. 손아귀 힘에 구깃구깃해 진 것을 쭉 잡아 편다. 주름이 져 얼굴이 울상으로 보였다. 아, 이 얼굴에는 웃음만 가득하게 해 주고 싶었는데.


숨을 삼킨다. 그런데 울음은 삼켜지지가 않았다.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지독할 정도의 비참함이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제 더러움이 그에게까지 옮겨 갈 거라는 사실이 끔찍했다. 떨리는 손으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허공을 수놓는 회색빛 연기가 방안을 채운다. 매캐한 냄새가 옷에 배일 때까지 소파에 몸을 파묻고 담배를 피웠다. 나의 치부는 불태워지지 않는데도.


“오랜만이야, 켄마.”


“...쿠로?”


인사는 짧았다. 내 뒤를 따라 온 부하 몇 명이 켄마의 머리채를 잡고 차에 처박았다. 구둣발 소리를 내며 함께 차에 올라탄다. 둥그렇게 떠진 눈에 이윽고 검은 천이 씌워진다.


그가 본 나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괴로운 표정? 미안한 표정? 어떠하든 그에게 충격을 주었을 거라는 건 확실했다. 양 손과 발이 묶이고 있음에도 발버둥 하나 없으니.


“수고했다. 쿠로. 크- 반반하니 좋네.”


아, 빌어먹을. 남자는 내 눈앞에서 켄마의 눈을 덮고 있던 천을 벗겨냈다. 어두운 조명에서도 빛을 발하는 맑은 눈이 남자의 뒤에 서 있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야, 어딜 봐?”


성인이 되었음에도 남자다운 굴곡이 별로 없는 여린 얼굴이 돌아갔다. 단 한 번의 주먹에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켄마는 눈살을 찌푸릴 뿐 신음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가 다시 나를 바라본다. 함께 배구를 하며 수십 번 보았던 시선. 상대를 관찰하는 눈빛. 켄마는 명백히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어쭈.”


몇 번의 타격음이 들렸다. 바닥에 핏방울이 떨어진다. 여섯 번 쯤, 그 일을 반복하고 나서야 켄마는 내게서 시선을 떼었다. 켄마. 너는 내게서 뭘 봤어? 그에게서는 그 어떤 소리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거 봐라. 물건이네, 물건. 이거 네 때처럼 뒤를 뚫어줘야 앙앙거리는 신음소리가 나오려나?”


남자가 킬킬거리며 나를 돌아본다. 나는 남자의 조롱에 대꾸하지 않고 켄마의 머리채를 잡은 손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차마 그 밑으로 눈을 내릴 수가 없었다.


“싸가지 없는 새끼. 내가 그렇게나 교육을 시켰는데. 말귀를 못 알아먹지. 이래서 길고양이란- 너는 좀 길들이는 맛이 있었으면 좋겠네.”


다시 검은 천이 켄마의 눈을 감쌌다. 남자가 거칠게 몸을 밀치자 켄마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바닥이 제법 큰 소리를 내며 울린다. 여태껏 잠잠하던 켄마가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남자는 손쉽게 버둥거리는 켄마의 양손을 움켜잡고 바지 버클을 우악스레 벗겨낸다.


“...아악! 으, 하악!!”


나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의 명령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이러했을 것이다. 남자의 거친 몸짓 아래 짓눌려있는 켄마의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 속에 담았다. 이건, 내 탓이야. 나 때문에. 켄마 마저.


마음속에서 불길이 일었다. 주먹이 파르르 떨릴 때 까지 손을 꽉 말아쥐었다. 진심으로, 저 새끼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켄마의 아래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수놓았다. 목소리는 끊긴지 오래다. 바람이 구멍을 통과하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계속 들리는 걸 보니 아무래도 목이 나간 것 같았다. 원래부터 큰 소리 치는 녀석은 아니었으니까. 몇 십분 동안의 고문은 그의 몸 어딘가를 고장내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아- 시원하네. 야, 다시 들어올 때 까지 좀 치워 놔.”


남자에게 붙잡혀 있었던 켄마의 다리가 철퍽,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지루해 지면 인형을 바닥에 내버리는 아이와도 같이 켄마를 밀쳐 낸 남자가 방을 나갔다. 마법에 풀린 듯이 다리가 움직였다. 살이 없어 도드라지는 갈비뼈가 들쑥날쑥하게 움직인다. 손끝이 닿았다. 켄마의 몸이 튀어올랐다.


“......”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뭐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나 때문에 이렇게 되어버린 친구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의 옆에 쪼그려 앉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몸 곳곳에 난 손자국과 핏방울을. 그의 목에 난 손자국이 내 목을 졸라온다. 차가운 무언가가 내 손을 더듬어온다. 퍼뜩 놀라 엉망진창인 켄마의 얼굴에 시선을 둔다.


“...풀어 줘.”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조심스레 뒤통수로 손을 뻗어 질끈 묶인 검은 천을 풀어내렸다. 드러난 눈은 내 뇌리를 때렸다. 원망도, 절망도 없는 눈. 다만, 고요하게 나를 담고 있을 뿐인 눈. 나를, 이해하고 있다고 말해오는 눈.


“씨발......”


쥐어 잡힌 손이 아닌 다른 손으로 눈가를 거칠게 문질렀다. 손바닥에 축축한 물기가 배였다. 켄마는 말이 없었다. 제 차가운 손이나 빨리 데우라는 듯 손가락을 꿈질거릴 뿐.


숨을 가다듬었다. 입가를 끌어올렸다. 그가 내 속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 속을 보여주어야 했다.


물기 가득한 손으로 뒷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다.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매캐한 향기가 흠집난 마음을 메웠다. 후에 그 구멍이 시커멓게 물들지라도.


“담배, 줄까?”


망설임 없이 고개가 움직인다. 잔뜩 터지고 상처 난 입술을 살짝 벌려 담배를 물려주었다. 그러나 그의 호흡으로 허공에 떠오른 연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입에 물린 담배를 낚아채어 비어버린 입술에 내가 입 맞췄으니까.


그의 마음에 난 스크래치는 내가 메워야 마땅했다. 입안에 머금은 알싸한 담배 연기를 그에게 밀어넣었다. 나를 용서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깊게.

하이큐 위주 글 연성/ BL, GL, NL 0 / 오이이와, 쿠로켄, 쿠로아카, 보쿠로, 보쿠아카 그 외 등등 / 리버스 전부 괜찮습니다. / 글의 저작권은 시라즈네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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