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소마츠를 지켜보는 사이 그를 사랑하게 된 카라마츠.

* 공미포 4,943자.


*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몇십번을 본 풍경 속에 묻힌 오소마츠의 붉은 등을 응시했다. 검은 밤하늘 아래 홀로 서 있는 등이 외롭다고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째서 나는 저 등을 안아주지 못했을까, 뒤늦은 후회에 한숨을 내쉬었다.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과거로 돌아오길 반복했지만, 나는 결국 오소마츠를 구하지 못했다. 반복된 실패에 스스로 지쳐 포기해버린 것이 몇 번째 세계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오소마츠가 행복하게 사는 미래를 보고 싶다는 욕심이 수많은 시도를 낳았고 그것은 고스란히 절망이 되었다.

밀려드는 비참함을 피하고자 숙인 시선에 주름진 자신의 손이 보였다. 시간 축에 묶였다던 내 몸은 서서히 늙어갔다. 배고픔도 졸음도 피로도 느끼지 못하는 몸은 서서히 세월에 깎여 작아졌다. 등은 굽고, 얼굴엔 주름이 생겼고, 마음먹은 대로 몸을 가눌 수도 없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찰 정도로 체력이 떨어진 몸으로는 새로운 시도를 할 용기도 낼 수 없었다. 타성과 무기력에 젖어버린 나는 더 이상 오소마츠를 구하려고 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리 노력해도, 무슨 짓을 해도, 열심히 말을 골라 설득해도 젊은 나는 오소마츠를 봐주지 않았다. 어느 세계이든 오소마츠는 혼자로 남았다. 아무런 결실도 보지 못한 채로 내 몸은 이렇게 늙어버렸다.

힘없이 떨리는 손을 쥐고 시선을 올렸다. 오소마츠가 떠난 텅 빈 강둑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저 공허한 공간이 오소마츠의 마음 같아서,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왜 오소마츠의 사랑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저 가련하고 애달픈, 순수하기에 더 슬픈 사랑을.

오소마츠의 사랑도, 그가 안고 있는 고통도 몰랐던, 젊었을 적의 나는 오소마츠에게 결혼식 사회를 부탁했었다. 씩- 웃으며 자기만 믿으라 장담하던 오소마츠는 무슨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나를 원망하지는 않았을까. 그때의 나는 오소마츠의 목소리에 담긴 미세한 떨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오소마츠를 자세히 관찰할 정도로 무관심했던 탓인지, 오소마츠가 능숙하게 자신의 마음을 숨긴 탓인지 묻는 것도 이젠 무의미하다. 수없이 과거를 역행하며 오소마츠를 지켜본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으니까. 내가, 오소마츠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을.

아무리 오소마츠가 자신의 감정을 잘 숨겨도 조금만 세심하게 관찰하면 알 수 있었을 텐데. 나를 보는 오소마츠의 눈빛이, 나를 부르는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나를 향해 뻗는 손길이 다른 형제에게 보여주는 것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인제 와서’라는 말이 어울리는 후회지만, 그 후회가 있었기에 오소마츠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오소마츠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나는 오소마츠를 구할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지금도 오소마츠를 지켜볼 수 있게 붙잡아주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지금도, 가슴을 지배하고 있는 후회가 나를 이곳에 남게 했다.


나를 향해 걸어오는 행인을 슬쩍 피해 오소마츠 뒤를 쫓았다. 젊은 내가 독립하고 홀로 본가에 남은 오소마츠는 제 나름의 삶을 살아갔다. 아르바이트하고, 가끔 집안일을 돕고, 때때로 홀로 달을 바라보며 술을 마신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무표정에서 서서히 일그러지는 얼굴을 타고 눈물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왜 너는, 나 같은 걸 사랑해서 그리도 괴로워하는 건지. 나 같은 건 잊고 너만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좋을 텐데.

천천히 오소마츠의 젖은 눈가에 손을 가져갔다가 숨을 삼키며 거두었다. 오소마츠는 내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데, 내가 그를 위로할 수 있을 리가. 마른 웃음을 흘리며 달빛을 머금고 떨어지는 눈물을 따라 시선을 내렸다.

“마지막, 인가.”

이 몸으로는 이번 세계가 마지막일 것이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마지막을 맞이한다면 오소마츠를 볼 낯이 없다. 마지막으로, 결과가 어찌 되던 마지막으로 오소마츠를 위해 움직여보자. 그렇게 다짐하며 툇마루를 떠나 방으로 들어가는 오소마츠를 배웅했다.




2.


본가에서 멀리 떨어진 젊은 자신의 자취방 앞에서 초조하게 발을 굴렀다. 마지막인 만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만약 이번마저 실패한다면? 마지막까지 오소마츠를 기다리고 있는 고통스러운 미래를 바꿀 수 없다면? 최악의 가정들이 어지러이 시야를 흔들었다.

‘괜찮을 거다. 이번만은 반드시.’

가능성 낮은 말로 자신을 달래며 긴장으로 땀에 젖은 손을 옷에 닦다가 퇴근 중인 젊은 자신을 발견했다. 심호흡하며 망설임에 묶인 발을 옮겼다.

“카라마츠 군?”

“응? 무슨 일인가, 올드 맨?”

어렵게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부른 젊은 자신은 나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올드 맨’이라는 호칭에 쓴웃음이 나왔다. 세월에 변화된 얼굴은 이제 젊은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젊은 자신은 나를 아무런 연고도 없는 늙은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딱히 상관없다. 그렇게 생각해도. 내가 미래의 자신이라는 것도 믿지 않아도 좋다.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부디 이번만은 이 늙은이의 말에 귀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 언제나 잔인했던 신에게 작디작은 바람을 보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미래의 카라마츠라네.”

“뭐, 뭐라아~!?!? 어떻게 그런 일이…, 아! 하지만, 자세히 보면 확실히 나처럼 핸섬한 얼굴이다….”

젊은 자신은 다른 세계에서 그러했듯이 한 톨의 의심조차 하지 않고 내 말을 순순히 믿으며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 곧이어 콧김을 내며 흥분한 채 이것저것 묻기 시작하는 젊은 자신을 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저, 정말인가!?”

“그래. 같은 직장의 타카하시 씨는 와인을 좋아하니까 적당한 걸 선물해주면 앞으로 잘 챙겨줄 거다.”

“오오!! 좋은 정보 땡큐! 역시 미래의 나다!! 그래서 그 시계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건가?”

“아…. 데카판이 만들어 줬다.”

“역시 무슨 일이 있으면 닥터 데카판이로군.”

반짝이는 시계를 보며 홀로 고개를 끄덕인 젊은 자신이 갑자기 입을 다물고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 묻고 싶은 게 또 있다….”

눈을 뱅글 한 바퀴 굴려 멋쩍은 미소를 피우고 선글라스를 꺼내 코에 걸친 젊은 자신이 조심스럽게 운을 떼며 제가 가장 묻고 싶었던 것을 입에 올렸다.

“그…, 그래서 미래에는 내게 러버-가 생기는 건가…?”

손을 꼼질 거리며 묻는 젊은 자신에게 쓴웃음을 돌렸다. 보통의 반응이지만, 그럼에도 씁쓸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목구멍까지 치민 한숨을 삼키고 가느다란 미소를 꾸몄다.

“그건 다음에 만났을 때를 위해 남겨두도록 할까. 내일 이 시간에 또 오겠네.”

“오, 오우!! 알겠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젊은 자신을 집까지 배웅하고 발을 돌려 아카츠카구로 향했다. 시끌벅적한 술집 안, 취한 손님들 사이를 오가며 묵묵히 커다란 맥주잔을 옮기는 오소마츠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맥주잔 여러 개를 한가득 들어 테이블 사이를 바쁘게 오가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손목을 주무르는 모습에 가슴이 시렸다. 오소마츠는 때때로 자신이 얼마나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는 걸 알까. 왜 아무런 잘못도 없는 네가 그런 표정을 지어야만 하는 건지. 왜 너는 행복해질 수 없는 건지. 부질없는 질문을 던지며 슬그머니 가게를 나와 밤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젊은 자신과는 여러 번 만남을 가지며 서서히 친밀감을 쌓아갔다. 젊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고민을 들어주고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 조금씩 알려줬다. 내 이야기 하나 하나에 감탄하거나 안타까워하거나 호들갑을 떠는 젊은 자신의 모습은 퍽 재미있었지만, 서서히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떨어져 갈수록 초조함이 커졌다. 오소마츠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머지않았으니까. 언제 이야기해야 좋을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과거의 실패로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을 때 젊은 자신이 먼저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 건가?”

“아, 그게 말이다…. 실은, 전에 우연히, 아주 우연히! 형님의 아르바이트 처를 지나게 되었는데 당신이 보여서….”

“…그래서?”

“왜…, 그런 눈으로 형님은 본 건가?”

숨을 삼키고 뭔가가 못마땅한 듯이 눈썹을 찌푸린 젊은 자신의 질문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연히 봤다, 라…. 주말에 오소마츠와 술을 진탕 마시고 돌아가는 길에 나와 눈이 마주친 것을 알고 있는데. 젊은 자신을 업고 가로등 아래를 걸어가던 오소마츠의 뒷모습을 가슴속으로 밀어 넣고 대답했다.

“나는 오소마츠를 사랑하고 있다.”

“엩.”

아, 이런. 이렇게 진심을 담아서 말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저도 모르게 나온 부드러운 목소리에 당황해 입가를 매만졌다. 오소마츠를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하게 풀어지는 동시에 슬픔의 바다에 잠기고 만다. 내 목소리가 어떤 감정을 담고 있는지 알아챈 젊은 자신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뻐끔거렸다.

“놀랐나?”

“그, 그야….”

“안 그래도 이것에 대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들어 주겠나?”

“아, 알겠다….”

동정심인지 호기심인지 알 수 없지만, 젊은 나는 내 이야기를 거절하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천천히 나와 오소마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오소마츠의 마음을 모르고 결혼했던 것, 딸이 있었던 것, 그 딸이 오소마츠를 사랑했던 것, 오소마츠가 아무것도 전하지 않은 채 죽은 것.

담담히 하지만 무겁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내내 젊은 나의 얼굴은 시시각각 변했다. “그런, 게 가능한가?”하고 되묻는 젊은 나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믿기 힘든 이야기라는 것은 알고 있다. 믿고 싶지 않은 마음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래도 들어줬으면 해. 오소마츠가 나를 사랑해줬듯이, 늦었지만 나 역시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오게, 콜록콜록.”

“괘, 괜찮은 건가?”

“괜찮, 콜록콜록!”

“어, 어이!?”

마른기침 끝에 질척이는 뭔가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아, 이게 나의 마지막인가. 기특하게도 나를 걱정해주는 젊은 자신의 얼굴을 보며 어두워지는 시야에 몸을 맡겼다.




3.


눈을 뜨자 새하얀 공간이 나를 반겼다. 나는 결국 죽었나.

“오소마츠는….”

죽었지만, 나는 너를 만날 수 없는 걸까….

“아, 다행이다. 일어났군.”

옆에서 들려오는 젊은 자신의 목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내가 누운 침대 옆 의자에 앉은 젊은 자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 팔에 꽂힌 링거를 응시했다.

“갑자기 쓰러져서 놀랐다. 급히 닥터의 연구소로 데려왔는데, 괜찮나?”

“아…, 여긴 데카판의 연구소인가. 저승이 아니었나….”

“저승?”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되묻는 젊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상체를 지탱한 팔이 후들거려 제대로 일어날 수 없는 나를 젊은 자신이 부축했다.

“고맙다.”

“….”

지나치게 마른 목소리에 가만히 나를 보던 젊은 자신이 뭔가를 말하려는 듯이 입을 달싹거렸다. 그래, 묻고 싶은 게 많겠지. 삐쩍 말라 뼈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손을 보며 한숨처럼 말을 꺼냈다.

“나에겐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엩.”

“그러니 늙은이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준다 생각하고 끝까지 내 이야기를 들어줘.”

“…알겠다.”

결의에 찬 젊은 자신의 대답에 빙그레 미소 지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뻑뻑해진 눈을 깜빡이다 문득 오소마츠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오소마츠는 내 보잘것없는 고민을 들어주며 다 잘 될 것이라 웃었다. 형의 얼굴을 하고 내 머리를 쓰다듬던 그 모습이 지독한 후회를 가져왔다.

“나는,”

정말 비루한 마지막이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채, 이렇게 떠나야 한다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막을 새도 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나는, 내가 오소마츠의 마음을 더 빨리 알았다면 결혼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만난 젊은 카라마츠들은 그렇지 않았어. 그 누구도 오소마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 내가 여행했던 수많은 세계 중 오소마츠가 행복해진 세계는 없었어. 오소마츠는 누구도 받아주지 않은 마음과 함께 죽어버렸다.”

“….”

“이렇게 뒤늦게 오소마츠를 사랑해봤자 뭐하나, 오소마츠는 이미 죽었는데!! 오소마츠가 죽어버린 세상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무서웠다. 오소마츠가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유키코에게 오소마츠를 구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무슨 낯으로 원래 세계에 돌아가면 좋은 건가….”

울음 섞인 목소리가 떨렸다. 무기력함 속에 감추고 있었던 울분이 단번에 폭발했다. 자신을 향한 한심함에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물었다. 내게 분노할 자격 따위 없는데.

“하아…,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오소마츠는 너를 사랑하고 있어. 오소마츠의 마음을 받아들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내가 말해준 미래가 아닌 너 자신의 인생을 살아. 오소마츠는 네가 행복해지길 바라고 있을 테니까. 대신 오소마츠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줘. 무시하지 말아줘. 나처럼 후회할 일은, 하지 말아줘…. 노인네의 죽기 전 마지막 부탁이니….”

달달 떨리는 손으로 젊은 자신의 손을 움켜쥐었다. 부탁이라고 몇 번이고 흐느끼는 사이 젊은 자신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아아, 다행이다. 마지막만큼은 네가 괴롭지 않을 미래를 만들 수 있어서.

마른 웃음을 띄우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구멍 뚫린 물통처럼 몸을 떠난 자신이 어딘가로 흘러갔다.





* 남겨진 마지막 세계의 카라마츠는 과연...?


25↑ 오소마츠상 카라오소(カラおそ)/오소른(おそ右) 파고 있습니다. 주로 카라오소/오소른 위주 소설 글을 올리고 가끔 오소카라도 올립니다. 글은 격주로 올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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