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는 눈가에 빛이 일렁이는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리프탄?"




아이가 고요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맥시는 몸을 일으켰다. 잠들기 전보다 한층 어린이의 태가 나는 아이가 그녀의 얼굴 위로 쏟아지는 햇빛을 막고 있는 듯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벌써 또 이만큼 자라 버린건가. 


아직 해준것도 없는데.





"너무 늦게 일어나서 미안해"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감추며 아이를 감싸 안았다. 순순히 그녀의 품에 안긴 리프탄이 그녀의 등 위로 작은 손을 올렸다.










맥시는 리프탄을 안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하루사이 무거워져 금방 팔이 뻐근해왔으나, 리프탄은 그녀의 목에 감은 팔을 풀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기사단들 사이에 앉아 빵을 떼어 먹던 루스가 착잡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올려다보다 시선을 돌렸다. 





"오, 그새 자라셨네요?"



"요즘 애들은 빨리 큰다더니만. 그 속도가 장난이 아니잖아?"



"아아, 마법사님을 뵐 날도 머지않았다는 뜻이겠죠""




웃통을 벗은 채 식당으로 들어오던 헤바론이 반가운 얼굴로 달려와 바지 주머니에서 작은 사탕을 꺼내 리프탄의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단장, 이게 뭔지 알아? 이게 바로 사.."





퉤.




입에 들어가자마자 사탕을 뱉어버린 리프탄이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자, 헤바론의 얼굴이 충격에 굳어졌다. 






"니, 니르타경. 옷은 왜 안 입으시고"




"며칠 뒤 무투대회가 있습니다"





충격으로 말을 잃은 헤바론을 대신해 엘리엇이 다급히 맥시의 질문에 대한 답을 늘어놓았다.





"비공식적이지만 종종 칼 대신 오직 맨 몸으로만 시합을 벌입니다. 전투에서 칼을 잃었을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이죠. 원래는 칼립스 경께서 상대를 해주시는데..."





엘리엇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아직도 헤바론을 무표정하게 노려보고 있는 리프탄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칼립스 경의 부재시엔 부단장이신 니르타경에게 권한이 넘어가게 되어있으니까요"




엘리엇이 설명과 함께 맥시 앞에 놓인 의자를 빼주고 나서야 그녀는 비로소 식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아, 미안해요. 괜히 나 때문에... 일정에 차질이 생겼네요"



"아닙니다 귀부인! 매번 칼립스경께 두드려 맞고 끝나는 행사였는걸요! 요번엔 니르타경께 두드려 맞는 걸로 바꼈을 뿐이예요!"






식탁 끝자리에서 고기를 우물거리던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유리시온이 눈을 반짝이며 끼어들었다. 일찍이 그의 열렬한 시선을 애써 무시해온 맥시도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귀부인! 실례가 안된다면 칼립스 경을 한 번 안아봐도 될까요?"




일순간 식당에 정적이 찾아왔다. 옆에서 포도 알을 떼어 먹던 가로우가 미친거 아니냐는 표정으로 유리를 바라봤지만, 이미 그는 성큼성큼 그들의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리프탄 안녕?"





커헉. 곳곳에서 들려온 기침소리와 함께 두 번 째 정적이 식당을 강타했다. 맥시의 품에 안겨 유리를 올려다보던 리프탄이 천천히 눈을 깜빡이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형은 유리시온 로바르야!"





악의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자기소개에 기사단을 넋을 잃고 그저 리프탄이 훗날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기만을 기도했다. 그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리는 활짝 웃으며 리프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너를 엄청나게 좋아해! 내가 곧 너를 존경하게 될꺼거든! 그러니까 한 번만 안아보자!"



"....뎌.."





꾹 다물려 있던 리프탄의 입이 느리게 열렸다. 그가 꺼내는 두 번째 말에 맥시도 그의 입모양에 시선을 집중했다. 






"...꺼뎌..."





세 번 째 정적이 찾아왔다.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마른 빵을 욱여넣던 루스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 숟가락을 내려놨다.













"맛있어?"



텅 빈 식당에서 고기를 잘라 리프탄의 입에 넣어주던 맥시의 질문에 리프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햇빛을 받은 검은 머릿카락이 찰랑였다. 매섭게 올라가있던 눈꼬리가 온순하게 풀리자 이전 모습은 까맣게 지워지고 천상 어린아이로만 보였다. 작은 입이 오물거리며 음식을 씹어 삼키는 모습이 귀여워 맥시는 충동적으로 그의 살 오른 볼에 입을 맞췄다.





"..."





아이의 몸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음식물을 삼키는 것도 잊은 채 리프탄은 멍하니 맥시를 바라봤다. 






"아...미, 미안"





아이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곁눈질로 그녀를 쳐다보고는 급히 남은 고깃덩이를 입에 넣었다. 맥시는 포크를 내려놓고 턱을 괸 채 아이를 바라봤다. 





"리프탄"




"..."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가 될 거야’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가 될 거야"






그녀의 굳은 다짐에도 아이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맥시의 계속 질문에도 리프탄은 고개를 젓는 것 외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우울하게 그의 얼굴만 바라보던 맥시는 문득 리프탄이 자신을 시장에 데려갔던 생각이 떠올라 리프탄의 어깨에 가벼운 망토를 둘렀다.




“시장에 가면 엄청 많은 것을 볼 수 있어.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오자!”




그녀의 잿빛 눈동자가 결연하게 빛났다. 




애용-


리프탄을 품에 안기 위해 뻗은 팔로 다리 주변을 서성이던 로이가 뛰어들었다. 맥시는 반사적으로 로이를 안아 올렸다. 고양이가 길게 울며 그녀의 팔에 고개를 부비자, 맥시도 목덜미를 쓸어주며 가볍게 입을 맞췄다.  




“로이, 다녀와서 놀아줄게. 나간 김에 너희 간식도 많이 사올게”





“안아조”



아이의 선명한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맥시가 놀란 눈으로 목소리의 주인공을 내려다보자, 리프탄이 그녀를 향해 두 손을 벌린 채 다부진 표정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리 아파. 안아조”





맥시는 얼떨결에 고양이를 내려놓고, 리프탄을 안아 올렸다. 아이는 익숙하게 그녀의 가는 목에 팔을 두르고 의기양양하게 고양이를 내려다봤다. 애용-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를 올려다 보던 로이는 유유히 벽난로 앞으로 걸어가 몸을 늘어뜨렸다. 



하루가 짧아. 부지런히 움직이자. 맥시는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애써 누르며 방을 나섰다.











“성 밖을 나가시는 건 안 됩니다”





단호한 우슬린의 목소리에 발끈한 맥시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철벽처럼 문을 막고 서있던 기사단 사이로 엘리엇이 비집고 나와 그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귀부인을 알아보는 영지민들이 모여 들껍니다. 자연스럽게 어린 칼립스 경에게 이목이 집중될 테고요 그...당연한 말이지만, 어린 칼립스경은 어른 칼립스경과 너무 닮아서 쓸 떼 없는 말이 돌기 좋습니다. 위험에 노출되기도..”



“칼립스 경께서도 갑작스런 변화도 모자라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 되는건 싫으실 거예요! 원체 그러신 분 아니십니까. 그렇죠 마법사님?”




엘리엇의 말에 힘을 실어주듯 가벨도 말을 보태며 옆에 서있는 루스의 발을 건드렸다.





“제가 여기서 한마디 거든다고 제 목숨도 하루 연장 됩니까?”



“기사는 목숨을 가지고 흥정하지 않습니다!”



“안타깝지만 전 시한부 마법사라서요” 



“칼립스 경이라면 칼을 쥘 수 있는 나이만 되도 마법사 나부랭이의 목쯤은 쉽게 내리치실 수 있겠지. 연장이 아니라 단축 될 걱정은 안 되나보군”





가벨의 말의 콧방귀를 뀌던 루스가 우슬린의 목소리에 움찔했다. 이렇게까지 구차하게 살아야하나. 따지고보면 사실 나도 피해자 아닌가. 유능한게 죄목이라면... 아니. 개같이 굴러도 이승이지. 그럼그럼. 입술을 잘근거리던 루스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칼립스경이 싫어하실 겁니다”





사뭇 진지해진 마법사의 목소리에 맥시의 눈이 커졌다. 




“원래 귀부인과 단둘이 있는 시간을 방해하는 걸 가장 질색하는 분 아니십니까. 게다가 지금 칼립스경 세상에 유일하게 믿을 만한 사람은 귀부인 뿐 일 텐데. 아직 이 성도 익숙치 않은 혼란스러운 상황에 시끄러운 시장에 데리고 나가셨다가 본인을 내다버리는 줄 알고 귀부인에게 조차 마음을 닫아버리면 어쩌시게요. 성도 넓고 쾌적한데, '이 성이 니 성이다. 넌 앞으로 이 돈 많이 쓴 엄청난 성의 주인이 될 몸이다. 자부심을 가지고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자라라' 라고 설명 해주시는게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됩니다”



“우리 마법사 말 잘한다”



헤바론의 휘파람 소리에 맥시가 고개를 숙였다. 숨도 쉬지 않고 말을 뱉어내던 루스는 호흡에 한계를 느낀 듯 비틀거렸다. 





“...내려조”





맥시의 풀죽은 얼굴을 올려다보던 리프탄이 땅으로 몸을 기울였다. 놀란 그녀가 조심스레 땅에 내려주자 아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현기증으로 비틀 거리는 마법사의 앞으로 걸어갔다. 리프탄의 서늘한 시선을 느낀 루스가 본능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루스 앞에선 리프탄이 이를 앙다물고 있는 힘껏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안 아픈데 아픈 척이라도 해야 하나. 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가다 엉거주춤 주저앉아 정강이를 움켜쥐었다. 리프탄의 눈동자가 분노로 이글거렸다. 






“너 말 하디마”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렘드라곤 기사단 전체가 일제히 루스에게서 몸을 돌렸다.







“대마법사가 신의 뜻으로 이 땅에 내려왔다가 인간의 간사함에 지쳐 사라졌노라고. 대신 말해 주실 분계십니까?”





대마법사의 공허한 목소리가 공기 중에 흩어졌다.





<계속>


* 본 연성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배경 및 소재의 저작권은 '상수리나무아래' 김수지 작가님께 있습니다.

* 본 연성은 2차 창작 요소가 짙으므로 문제가 될시 즉시 삭제하겠습니다. 불펌 또한 절대 금지합니다.



상수리나무아래_연성을 쓰고 있습니다. 죽기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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