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열대 우림과 같은 모습의 두억도. 하지만 기이한 것은 숲 곳곳에 사막화가 진행돼 있다는 것이다. 인하는 이런 모습을 보고 상당히 들떴지만, 종을 제외한 셋은 종을 따라 두억도로 깊이 들어갈수록 이상해지는 풍경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상하다. 그렇게 싫지도 않은데 자꾸만 꺼려지는 기분. 마음과는 다르게 터져 나오는 거부감. 동아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빗소리만 들리는 침묵 속에서 미연이 입을 뗀다.

 

 

“비가 오는 건 맞지만... 그래도 너무 습하네요...”

 

“그러게요. 물속에 있는 것 같아요...”

 

“아, 그건 저희 종족 때문에...”

 

“설마... 그 제라는 분이 종씨네 종족들 때문에 섬을...”

 

“네, 제께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제 동족들은 건조함을 견디지 못하거든요. 저도 그렇고... 그래서 비 오는 날...”

 

“사람을 납치했던 거군요.”

 

“네...”

 

“그 제라는 분은 정말 대단하긴 하네요.”

 

“...”

 

“동아, 왜 그래?”

 

“아니, 그냥 뭔가 짚이는 게 좀 있어서.”

 

“?”

 

“확실한 건 아니니까 말 안 할래.”

 

 

네 명의 시선이 동아에게 쏠린다. 동아는 관심 없다는 듯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뭔가를 고민하는 듯 잠시 인상을 찌푸리지만 이내 다시 표정을 풀고 무표정한 얼굴로 걷기 시작한다. 넷을 지나친 동아가 “뭐해.”라고 한마디를 내뱉자 종이 정신을 차리곤 “이쪽으로...”라고 말하며 넷을 이끈다.

종을 따라서 얼마를 더 걸었을까 목조 건축물의 잔해들이 점점 보이기 시작한다. 상당히 불교적인 색채가 짙어 보이지만 집중해서 제대로 들여다보면 특이점이 상당히 보인다. 불교의 것과는 다른 이색적인 것. 화려함, 색감, 처음 보는 색이 바랜 그림들, 이미 스러져 버렸는데도 풍기는 기이한 분위기. 인하는 이런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종에게 카메라 사용에 대한 허가를 묻지만 종은 “번개라도 맞고 싶으신 겁니까?” 일갈한다. 실망한 인하가 한숨을 쉬고 수첩을 꺼내 땅에 박혀 있는, 틈새로 자란 나무 때문에 갈라져 버린, 다 낡아빠진 건축물의 잔해들을 하나하나 집중해서 보며 무언가를 써 내려 간다. 미연은 그런 인하의 행동 때문에 미사코가 조급해하지 않을까, 종이 허튼짓을 하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미사코는 동아와 함께 굵은 나무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며 대화를 하고 있고, 종은 마치 오랜만에 온 고향의 길을 찾는 듯 기억을 되짚는 것처럼 보였기에 미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얼마 후 다시 종을 따라 걷기 시작하는데 종이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그리곤 넷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동작을 한다. 검은 옷을 입은 둘이 조용히 다가오기 시작한다. 머리까지 덮인 검은 천은 누가 봐도 불길함을 느끼게 만든다. 좋지 않은 느낌이 온 동아가 미사코를 데리고 숨고 인하와 미연은 그런 동아의 행동을 보고 조용히 어디론가 숨어든다. 수풀 속에서 종과 검은 옷을 입은 둘이 대화하는 것을 보는 동아와 미사코. 미사코가 동아에게만 들리도록 아주 작게 말한다.

 

 

“일반적인 주민들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게. 쟤네 동족이 아무리 별종이라도 저런 옷을 전통 복장으로 돌아다니진 않겠지.”

 

“종씨가 업혀서 왔었을 때, 수추도의 전통복장을 입고 있었어요.”

 

“수추도는 한복을 안 입어?”

 

“입어요. 그런데 한복이랑은 별개로 축제나 전통적인 행사할 때 입는 옷은 따로 있어서...”

 

“음... 그럼 저 것들은 확실히 두억도 주민들은 아니네. 그럼...”

 

“...?”

 

“그 제라는 것이 부리는 것들인가.”

 

“그럴 수도 있겠네요.”

 

 

동아의 입에서 제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갑자기 검은 옷을 입은 둘이 동아와 미사코가 숨어있는 수풀 쪽을 쳐다본다. 종은 놀라 둘의 시선을 돌리려고 하지만 검은 옷을 입은 둘 중 하나가 종을 향해 “쉿.”이란 소리를 내자 종은 상기된 얼굴로 움직이지 않고 불안한 눈으로 동아와 미사코가 숨은 수풀을 바라보기만 한다.

점점 다가오는 검은 옷을 입은 둘.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이지만 딱히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동아와 미사코 둘 다 알고 있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여기에 뭔가가 있다고 광고하는 꼴이다 그렇다고 TV에서나 보던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동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수풀 밖으로 손을 뻗는다. 갑자기 나타난 손에 놀란 검은 옷을 입은 둘이 경계하는 자세를 취하자 동아는 손에 힘을 준다. 검은 옷을 입은 둘의 주변에 물방울들이 생겨나 멈춘다. 그리곤 물방울들이 주변의 수분을 빨아들이는 듯 점점 크기를 키워간다. 검은 옷을 입은 둘은 처음엔 수풀을 경계하며 서로 말을 주고받았지만 동아가 손을 뻗은 이후로는 괴로운지 호흡이 불규칙해지더니 갑자기 목을 붙잡고 땅에 무릎을 꿇는다. 검은 옷을 입은 둘이 무릎을 꿇자 땅에서 모래가 피어오른다. 비가 이렇게 내리고 있는데 말이다. 불가능한 일에 놀란 미사코가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딛고 있는 당을 보니 딱 그 둘이 딛고 있는 땅만 마른 모래가 있다. 미사코가 동아를 바라본다. 동아의 눈은 사람의 것이 아니다. 놀란 미사코가 동아가 뻗은 팔의 선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옮긴다. 동아의 손 주변에는 비늘과 비슷한 무언가가 돋아나 있다. 동아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검은 옷을 입은 둘이 자리에 쓰러진다. 모래가 일렁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종이 놀라 동아를 바라보다 절을 하듯 몸을 수그리고 고개를 숙인다.

 

 

“뭐야. 뭐 하는 거야.”

 

“제가 이런 분을 몰라뵙고...! 정말 죄송합니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 별거 아니야. 그냥... 내 능력이야.”

 

“동아씨는... 사람이 아니시군요.”

 

“응.”

 

“보통 사람이라기엔 조금 다른 느낌을 받긴 했지만...”

 

“속이려던 건 아니야. 그냥...”

 

“괜찮아요... 저도 묻지 않은걸요.”

 

“응.”

 

“아, 저기 인하씨랑 미연씨가 오네요.”

 

“… 미사코 고마워.”

 

“네...? 뭐가.”

 

“그냥.”

 

“?”

 

“너 일어나. 난 네가 수그리고 들어올 그런 존재가 아니야.”

 

“아,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혹시 동아님께서도 제가 보내신...”

 

“멍청아, 일어나. 네 행동을 보니까 이제 확신이 들어. 그 제라는 거 용이지?”

 

“그... 그건 제 입으론...”

 

“맞다는 뜻인 것 같네.”

 

“...”

 

“일어나. 나도 그 제라는 것도 특별할 거 없어. 그냥 남들과 좀 다른 힘을 가졌을 뿐이지 숭배 받거나 누군가의 위에 군림할 존재가 아니야.”

 

“… 하지만...!”

 

“하지만 이고 뭐고 그런 자세면 너희 족속은 평생 제의 밑에서만 살아야 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되고. 그러니까 일어나.”

 

“어... 동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 좀 해줄래?”

 

“아, 인하. 어서 와. 미연도. 둘 다 멀리도 갔었네.”

 

 

검은 옷을 입은 둘은 쓰러져 있고 종은 동아를 바라보며 절을 하고 있는 모습에 인하는 잠시 지켜보다 검은 옷을 입은 둘에게 다가간다. 동아를 보며 “완전히 뻗은 거 맞아?”라고 묻는 인하. 동아는 멍한 표정을 짓다 “몰라. 그냥 그 제라는 게 여길 종의 동족들 때문에 습하게 만들었다고 하길래... 몸이랑 그 주변의 수분을 거의 다 빼놨어.”라고 대답한다. 인하는 잠시 고민하다 검은 옷으로 손을 뻗는다. 머리 부분에 있는 천을 벗겨내려 하지만 이상하게 천이 잘 벗겨지지 않는다. 인하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종을 억지로 일으켜 데려온다.

 

 

“뭐... 뭡니까!”

 

“이거 어떻게 벗겨요?”

 

“이걸 왜 벗깁니까! 그러다 천벌...!”

 

“에이 설마요. 이 사람들은 제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정 걱정 되면 어떻게 벗기는지 나 알려주세요.”

 

“꼭 벗기셔야 합니까?”

 

“네. 궁금해서요.”

 

“… 겨우 그런 이유로...”

 

“호기심은 겨우 그런 이유가 아니에요. 그리고 시간 끌지 말고 빨리합시다. 이 것들이 여기까지 왔으면 대충 두억도에 우리가 온 건 저쪽에서도 알고 있다는 뜻 같은데...”

 

“… 알겠습니다. 놀라지나 마십시오.”

 

“왜요? 사람 얼굴 대신에 물고기 대가리라도 있나요?”

 

“정말...! 하... 됐습니다.”

 

 

종이 조심스럽게 쓰러진 둘 중 하나를 뒤집는다. 숨을 가다듬고 목 부분의 검은 천으로 손을 집어넣는 종. 무언가를 찾는 듯 이리저리 뒤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양손을 모두 집어넣는다. 잠시 후 손을 뺀 종이 천천히 얼굴 부분의 검은 천을 벗긴다.

하얀 피부가 드러난다. 소년이다. 소년은 누구라도 호감이 생길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크고 깊은 상처가 아문 흔적이 있다. 종은 차마 그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한다. 인하는 손을 뻗어 상처를 손으로 만져본다. 그리곤 얼굴을 찡그린다.

 

 

“누가 낸 거죠 이 상처?”

 

“이 사람들은 제의 호위병입니다...”

 

“제가 냈다는 뜻인가요?”

 

“…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런가 보군요. 제라는 사람, 생각보다 더 쓰레기 같은 놈이네.”

 

“...”

 

“사장님 이건...”

 

“칼날 같은 거로 벤 거 같아요. 흉터만 봐도 이렇게 깊은데... 이것도 아마 그 제라는 놈의 능력으로 상처를 내고 아물게 한 거겠죠.”

 

“역겹네요...”

 

“추정해보건대... 이런 악습은 아마 자기 호위병들한테 모두 저질렀을 거고 그래서 다들 검은 천으로 온 몸을 둘둘 말고 있는 거... 몸에도 저런 상처가 많을 거 같네요. 그렇죠?”

 

“...”

 

“부정은 안 하시네요. 얼굴도 앳된 걸 보니... 나이는 종씨보다 어리겠고...”

 

“...”

 

“누구의 죄를 논하자는 건 아니지만... 종씨가 아는 건 이 섬 주민들도 다 아는 거겠죠?”

 

“… 네...”

 

“이거 제라는 놈... 신이 아니라 자릿세 받는 깡패였네요.”

 

 

웃으면서 종을 바라보는 인하. 종은 인하의 웃음에서 섬뜩한 무언가를 느낀다. 동아는 인하가 종과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쓰러져 있는 둘에게 다가가 상처에 손을 가져다 대 본다. 그리곤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숙인다.

미연은 안타까움에 쓰러져 있는 둘을 옮겨 나무에 기대놓고 혹시 자신들을 따라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인하에게서 억세고 굵은 새끼줄을 받아 둘을 묶어 놓는다. 이대로 둬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보통 사람과는 다를 테니 죽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뒤이어 들었기에 그냥 그대로 두기로 한다.

 

 

“서둘러야 할 것 같아요.”

 

“네?”

 

“그냥... 그런 느낌이 드네요.”

 

“나도 미사코 말에 동의해.”

 

“… 그러죠. 비난은 나중에 해도 되니까. 아니, 제를 만나면 직접 면전에 대고 해야겠어요. 그런데 종씨 제의 호위가 이 둘만 있는 건 아니죠?”

 

“네... 당연한 걸...”

 

“그럼 이 둘의 소식이 안 들리면 찾으러 오겠네요.”

 

“그보다는... 이미 제께서 이 상황을 어림짐작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음, 우리 그냥 잡히는 척 할까요?”

 

“네?”

 

“더 걸어가기도 귀찮고... 그리고 가는 것도 거의 잠입 하다시피 하는 거니까...”

 

“너무 무모합니다!”

 

“제가 만약 이 섬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면 현씨의 행방도 알기 쉬울지도 모르고... 저는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다가 제에게 영영 잡히시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음,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왜요? 설마 저 두 분을 믿고 그러는 건가요?”

 

“아뇨. 그냥... 살면서 한 번도 절 붙잡고 있을 수 있는 건 못 봤거든요.”

 

 

인하의 황당한 답에 종이 무겁게 한숨을 내뱉는다. 그리곤 자신에게 동의해 달라며 다른 일행을 쳐다보지만 미연은 딱히 자신의 의견이 없어 보였고, 동아는 언제라도 인하의 말을 따를 준비가 돼 있어 보였다. 그리고 미사코는 현을 찾을 수 있다면, 현의 행방을 알 수 있다면 뭐라도 할 기세로 보인다. 종은 이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기에 인하를 보며 말한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여기서 죽치고 앉아서 기다리기라도 할까요?”

 

“아뇨, 그건 너무 티 나고... 종씨 두억도 주민들만 아는 길로 가요. 조금 조심스럽게.”

 

“… 이 사람은 똑똑한 겁니까? 대책이 없는 겁니까?”

 

“나도 잘 몰라. 근데 내가 겪어본 거로는 아마 후자에 가까워. 그렇지만 효율적이잖아.”

 

“모르겠습니다.”

 

“한 번 정도는 믿을 가치가 있어.”

 

“하아...”

 

“종씨 뭐해요. 빨리 가요.”



?

갑자기 조금 바빠져서 하루 늦게 올리게 되네요 ㅠㅠ 죄송합니다.

다들 더위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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