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과 함께 즐겨주세요.







얼마 전부터 누가 날 감시한다. 집, 회사… 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상관없다는 듯이 날 뜨겁게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아카아시. 요즘 통 잠을 못 자네.”







점심시간을 빌려 햇볕 좋은 회사 정원에 나와 잠시 눈을 붙였다. 기분 좋은 햇볕의 따뜻함이 뭉쳐져있던 긴장감을 풀어주는데 눈 위로 서늘한 손가락이 맞닿는다. 기분 좋은 따뜻함과 기분 좋은 서늘함은 몸에 안정감을 찾아준다.







잠시만 이대로 있어달라는 듯이 내 눈두덩이 위에 올라온 손 위에 내 손을 겹쳐 올렸다. 손을 올린 당사자는 재촉 부리는 듯한 나의 행동에 살짝 웃음을 흘린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줄 알고 점심 가져왔으니까 좀 먹어.”


“먹을 기운 없어.”


“먹고 나서 말해.”


“사쿠사… 나 진짜 머리가 어떻게라도 될 것만 같아.”







사쿠사 그는 소꿉친구이자 회사 동료이기도 했다. 줄곧 같이 붙어 다녔다. 유치원도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지금 몸 담그고 있는 이 회사까지도. 사쿠사와 나는 성격이 몹시 다르다. 좋아하는 음식도 좋아하는 사람 취향도 정반대이다. 그래도 이렇게 붙어 다닐 수 있는 탓은 서로를 향한 유대감. 줄곧 같이 자라왔으니 그 유대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에서 자고 가.”


“됐어. 너한테 또 피해주고 싶지 않아.”


“머리가 어떻게라도 되어버릴 것만 같다면서. 내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집으로 와.”







사쿠사는 주먹밥을 건네며 무심하게 내게 자신의 집에서 자고 가라며 권유를 한다. 머릿속에서 강렬하게 그의 집으로 가라며 반응한다. 그렇지만 피해를 죽는 것은 죽어도 싫다. 언제부턴가 나는 스토커에게 시달렸다. 처음에는 가벼운 편지로 시작되었다. 나를 연민하고 있다는 내용. 나는 애인이 있는 상태이고 장난 편지인가 싶어서 감흥 없이 집으로 들고 들어와 휴지통에 버렸다. 그리고 분리수거가 있는 날 바로 편지가 내게 도착했다.







[사람 맘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내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려? 내 맘 무시하는 거야?]







소름이 돋았다. 나의 쓰레기를 뒤졌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루가 멀다 하고 편지가 집 앞에 설치된 우체통에 꽂혀 있었다. 편지는 쌓여갔지만 손 대지 않았다. 그러자 집 앞에 상자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마존에서 시킨 배송 물품들인 줄 알고 뜯었다. 집 안에 가지고 들어온 상자를 개봉하는 순간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구역질을 했다.







동물의 시체였다. 영화에서나 접한 끔찍한 것이 내게 도착했다. 맨발로 우체국으로 뛰어가 배송지를 추적하려 했다. 하지만 우리 집 앞에 편지나 상자를 배송한 택배원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사쿠사가 건넨 주먹밥을 씹으면서 사쿠사 어깨에 기대 눈을 감았다. 기분 나쁜 편지와 상자를 매일같이 받은 뒤로 자취하고 있는 집을 한동안 떠나 애인의 집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상사이자 연인인 보쿠토 코타로.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배구부 활동을 해서 알고 지낸지는 꽤 됐지만 만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서로의 궁합이 상당히 좋았다. 그것이 일상생활에서든 잠자리에서든. 







[이 새끼는 뭐 하는 새끼야. 아카아시. 나 좀 화가 나려고 그러네?]







보쿠토상의 집에 도착한 사진과 편지를 받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함께 잠을 자고 있는 사진이 찍혀있었다. 게다가 보쿠토상의 얼굴은 이미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칼질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은 보쿠토상이 응급실에 이동되었다는 소식에 버선발로 뛰쳐나가 머리 붕대를 감고 있는 보쿠토상의 모습을 보고 죄책감과 미안함에 보쿠토상의 손을 잡고 오열 한 적도 있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환자의 후두부가 쌔게 가격 당하긴 했지만 정밀 검사해본 결과 출혈도 없고 이상 반응도 없고 아주 다행입니다.”


“아카아시… 그렇게 울지 마. 거봐- 의사 선생님도 괜찮다잖아.”


“그치만… 저 때문에….”


“너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조심성이 없어서 그런 거야.”







분명 스토커의 짓이었다. 나의 연인을 다치게까지 만들었다. 정말 신에게 감사해야 할 일인지 보쿠토상에게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응급실에서 안정을 취한 보쿠토상은 바로 퇴원을 했고 나는 호텔로 짐을 옮겼다. 본가로 가게 되면 부모님에게로 피해가 갈 우려가 있었고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사쿠사에게도 피해를 주는 것은 싫었다. 호텔이라면 아무래도 프라이빗을 지켜주는 공간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도망쳐도 소용은 없어. 그래도 그 빌어먹을 새끼 옆에서 자고 있는 네 모습을 볼 바에는 여기가 천 배는 나아. ]







회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자 침대 위에는 쪽지가 올라와 있었다. 복도를 지나가고 있던 하우스 키핑 직원을 붙잡고 혹시 내 방에 누가 들어갔다 나왔냐고 다급하게 물었다. 직원은 객실 청소 시간 의외에 그 누구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은 경찰을 불러 CCTV 요청을 하였다. 호텔 시큐리티 직원과 함께 CCTV를 확인한 결과 내가 회사에 있는 시간 한 남성이 객실 청소 시간에 내 방에 들어갔다 나온 것이 확인되었다.








경찰에게 스토커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물었더니 최대한 노력하겠다고만 답하고 돌아갔다. 남성이 남성을 스토커 한다? 웃기는 소리도 작작 하지? 라는 표정이었다. 내 편이 되어야 할 경찰들의 행동에 나는 낙담했다. 이 두려움을 공권력이 해결하지 못 하면 누가 해결해주는 거야? 라는 실소와 함께 나는 그대로 체크아웃을 하고 자취 집으로 돌아갔다.







[아카아시. 호텔보다는 집이 최고지? 나도 그래. 이 집안엔 너희 향기가 가득하니까.]







비밀번호를 아무리 바꿔도 스토커는 우리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식탁에 내가 좋아하는 유채겨자무침이 잔뜩 차려져있거나 분명 끄고 나갔던 티비가 퇴근 후 돌아와보면 켜져 있다던가 구입한 적도 없는 야한 게이 동영상이 틀어져 있다던가 화장실 선반에 놓인 내 칫솔 옆에 누구의 것임을 알 수 없는 새 칫솔이 놓여있다던가… 스토커는 점점 나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스토커?”


“하하- 웃기지? 남자가 꼴사납게 스토킹 당하고 있다니.”


“이게 왜 웃어넘길 일이야. 당장 경찰에 신고해야지.”


“도움 요청은 진작에 했어. 증거도 여러 번 넘겼고.”


“그런데도 잡히지 않는단 말이야?”


“잡히지 않는 게 아니라 잡아주지 않는 거야.”








나는 이 일은 용기 내어 사쿠사에게 말했다. 연인인 보쿠토상 다음으로 내 사정을 알고 있는 인물이다. 사쿠사는 제 일처럼 심각성을 받아들였다. 내 손목을 끌고 잔뜩 화를 내며 경찰서로 달려가 화라도 낼 기세였다. 그저 나를 이해하고 걱정하는 친구가 있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사쿠사는 내가 당하고 있는 일들을 듣고 난 뒤 자신의 집에서 거주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한 적이 있다. 아니면 제가 우리 집에서 거주하겠다. 라며 고집을 부리기에 염치 불고하고 짐을 싸서 그의 집에서 며칠 신세를 지기도 했었다. 








“좋은 아침! 아카아시!”


“아… 네. 시로후쿠상. 좋은 아침입니다.”


“아차! 이거 아카아시 앞으로 도착한 택배.”


“택배요? 저… 혹시 누가 보냈는지는…”


“미안! 어제 내가 좀 일찍 퇴근해서 말이야. 비서실에 놓여있었어.”


“아.. 그래요?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회사 선배이자 비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시로후쿠 유키에상을 통해 회사에서 상자를 받았다. 보낸 이의 정보가 아무것도 적혀져 있지 않는 의심스러운 택배였다. 열어보기 두렵다고 그냥 방치해놓고 있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로 가지고 들어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아카아시는 나 말고 다른 놈들 후리고 다니는 취미가 있나 봐? 내가 너 좋다잖아. 왜 난 안 보는 건데??]








사쿠사와 똑닮은 인형이 들어있었다. 허나 피 칠갑을 하고 있는 기괴스러운 인형… 그 다음날 나는 사쿠사에게 아무 말없이 짐을 싸 들고 다시 자취 집으로 돌아왔다.








“다 먹었으면 다리 빌려줄 테니까 눈 좀 붙여.”







주먹밥을 반 정도 먹고 생각에 잠긴 내 모습을 보고 사쿠사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말 안 해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쓸 조차 없이 사쿠사의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사쿠사는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 내 얼굴 위에 덮어주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자.”







사쿠사는 가디건으로 덮힌 내 얼굴 위에 손가락을 올려 이마, 콧대, 콧망울, 인중, 입술, 턱을 순서대로 천천히 쓸어내리며 내게 말했다. 간질거리는 손길이지만 그것을 신호로 나는 마법처럼 잠에 빠졌다. 멀어져 가는 의식 와중에도 마지막으로 기억되는 촉감의 끝은 입술 언저리였다. 








“아카아시. 괜찮아?”


“괜찮습니다. 아까 점심 전에 잠을 자긴 했어요.”


“아아- 사쿠사가 옆에서 챙겨줬나 보네? 하아… 내가 업무만 바쁘지 않았더라면 내가 챙겨주는 건데.”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짐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챙겨줘서 고마워요.”


“오늘 우리 집으로 갈래?”


“아… 괜찮습니다. 오늘은 사쿠사 집에 가기로 했어요.”


“사쿠사 집에?”


“네.”


“……….. 아카아시.”


“네?”


“우리 집 가자.”







서류 결재를 위해 팀장실로 이동하였다. 나의 연인은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넥타이가 거슬렸는지 엉망으로 풀어 버리고 항상 바짝 세운 그의 머리도 엉망으로 헝클어져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가 풀어헤친 그의 넥타이를 단정하게 다시 묶어 주고 헝클어진 머리도 손으로 정리해주었다. 보쿠토상은 나의 손길에 내 손을 잡더니 내 손가락에 입맞춤을 한 뒤 피곤에 절어있는 나의 눈동자를 보며 걱정부터 해준다.






오늘따라 그의 행동이 이상하다. 평소에는 나를 우선적으로 놓고 배려해주는 사람이다. 평소라면 사쿠사 집에 가겠다는 나를 사쿠사의 집까지 데려다주고 내일 아침 데리러 올 게라며 이마에 입맞춤을 해줬을 그이다. 그러나 지금은 질투하는 아이처럼 내 손을 힘을 주면 잡은 뒤 투정을 부리고 있다.







“보쿠토상?”


“내가 다치는게 보기 싫으면 조금 거리 있는 호텔이라도 가자.”


“……………………….”


“아카아시는 내 연인이야. 아무리 친구라도 아카아시가 나보다 사쿠사를 더 의지하는 건 싫어.”








맞는 말이다. 나는 보쿠토상이 다친 모습을 본 이후로 보쿠토상에게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었다. 








“나한테 기댔으면 좋겠어. 아카아시. 나도 충분히 다리 같은 거 빌려 줄 수 있으니까.”








보쿠토상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의 말에 아차 싶어 보쿠토상 뒤에 노을이 담긴 창문을 바라보았다. 회사 정원이 정면으로 비치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곳은 내가 사쿠사의 다리를 빌려 잠든 곳. 보쿠토상은 바쁜 와중에도 이곳에서 나와 사쿠사의 모습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보쿠토상… 일 끝날 때까지 회사에 남아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는 기가 죽어있는 보쿠토상을 향해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나의 대답에 보쿠토상은 토끼같이 귀를 쫑긋거리며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이런 사람을 두고 내가 엄한 두려움에 소중함을 챙기지 못하고 있었다.







사쿠사에게 미안, 오늘 애인이랑 같이 보낼게. 라는 짧은 메세지를 보냈다. 바쁜지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사쿠사가 근무하고 있는 팀의 말단 여직원으로부터 따뜻한 캔 음료를 전달받았다.







“대리님이 가져다 드리라고 하셨어요. 점심도 제대로 챙기지 못 하셨다고요?”


“아… 뭐….”


“네! 아차차- 같이 전달해달라고 했던 말로는 자기는 신경 쓰지 말고 몸 잘 챙기라고 하셨어요.”


“고마워요. 음료까지 전달해주고 미안하네요.”


“저는 그럼 이만!”







사쿠사다운 배려 넘치는 행동이었다. 고마움에 전달받은 음료를 손에 쥐고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유채향이 은은하게 퍼져 나온다.








“여기 분위기 참 좋지 않아?”


“그렇네요.”


“무엇보다 고기가 엄청 맛있어!!!”


“푸핫- 보쿠토상 테이블 매너가 안 좋아요.”







보쿠토상이 업무를 마치자마자 회사 뒤쪽에 대기시켜놓은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아무래도 보쿠토상 개인 차량은 이미 스토커가 알고 있을 테고 완벽하게 스토커의 눈을 피할 수는 없지만 개인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보다는 훨씬 이 편이 좋다고 판단했다.







오랜만에 찾은 여유였다. 좋은 전망과 그에 따라오는 좋은 분위기. 사랑하는 연인과 그와의 행복한 식사까지. 이 행복감이 유지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내게 스토커가 붙었을까 고기를 씹으며 속으로 원망도 조심스럽게 했다.











*








“코노하? 너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아으으- 조용히 좀 해 봐. 보쿠토. 정신 사나워.”


“설마 회사에서 주무신 겁니까?”


“눈 떠보니 회사잖아.”







사내 연애라는 것은 감추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같이 고등학교 시절 배구부 부원이었던 코노하 아키노리상에는 금세 들키고 말았다. 보쿠토상이 부엉이 눈을 하고 굉장히 당황해했었는데 코노하상은 담담하게 뭐… 고등학교 때에도 둘은 심상치 않았으니까… 라며 축하해줬다. 







어제 보쿠토상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출근 역시 같이 했다. 부득이하게 둘 다 어제 같은 옷을 하고 출근했지만 회사에 우리처럼 어제와 같은 옷을 하고 있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코노하상이었다.







코노하상은 항상 칼퇴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업무가 많이 밀려있어도 시간안에 할 일을 맞추고 퇴근 뒤 다음날에 마저 하는 사람이 회사에서 잤다니… 매우 놀라웠다.







“네가 일을 이렇게 전투적으로 할 줄 몰랐어.”


“아으으- 머리가 깨질 거 같아.”







코토하상은 일을 하기 위해 남았던 것 같진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자리가 코노하상의 옆자리였기 때문에 어제 퇴근하기 전까지 그가 하고 있었던 업무량과 비교하면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좀 괜찮으십니까?”


“이상하단 말이야. 기절하다 싶이 잠든 건 또 처음이네.”


“…………….”


“어이- 보쿠토. 나 잠시 마사지룸에서 안마의자 좀 하고 있을 테니까 나는 좀 봐주라-.”


“어? 어어… 오냐…”







코노하상은 온몸이 뻐근하다는 듯이 기지개를 펴며 마사지룸으로 이동했다. 회사 사람들이 한두 명씩 출근하기 시작했고 보쿠토상은 눈치를 보더니 나를 팀장실로 따라 들어오라고 말했다.







“…………..”


“………………….”







팀장실로 들어오자마자 둘은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또 스토커 짓인가? 젠장.. 이젠 주위 사람들까지 괴롭히는 건가?? 나는 몹시 무서워졌다.








보쿠토상은 생각에 잠긴 나를 말없이 끌어안아 주었다.







“괜찮아. 아카아시.”


“하하.. 해외라도 나가야 할까 봐요.”


“이번 일 끝내면… 우리 장기간으로 해외로 여행 가자.”


“………………………….”


“어떻게라도 구실 만들어서 휴가 기간 만들 거니까… 그럼 우리 해외로 가자.”


“……… 고맙습니다. 그치만 보쿠토상이 무리하는 모습은 보기 싫어요.”







팀장실에서 나온 나는 자리로 돌아와 코노하상의 자리를 멍하니 바라봤다.







정리 없이 너저분한 자리… 괜히 죄송스러워서 코노하상의 자리를 말없이 청소하기 시작했다. 굴러다니는 펜들을 제자리에 꽂고 일정 등이 작성된 포스트잇은 잘 보이도록 파티션에 붙여 놓았다. 굴러다니는 종이들을 주워 책상마다 배치된 휴지통에 집어넣는데 익숙한 캔 음료가 보인다.






“……..??”







그리고 내 자리를 바라보았다. 어제 사쿠사에게 받은 캔 음료가 내 자리에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코노하상이 내 것을 마셨다는 소리인가? 어제 보쿠토상을 기다리다가 깜빡하고 그냥 자리에 두고 왔었다. 남이 먹었어도 상관은 없었지만….







“내 자리 정리하고 있었네? 땡큐-.“


“아.. 코노하상. 마사지룸으로 가신다더니요?”


“누가 사용 중인가 봐. 문 잠겨져 있더라고.”


“코노하상 어제 제 음료 마시셨나요?”


“음료? 아아! 그 유채향 나는 음료? 맞아. 내가 마셨어. 아? 설마 마시면 안 되는 거였나?”


“아뇨. 딱히 마셔도 상관없었습니다. 나중에 더 좋은 커피로 보답하시겠죠?”


“그래, 내가 오늘 커피 살게.”


“죄송합니다…”


“응? 뭐가??”


“아니요.. 그냥요…”


“시덥기는… 아! 맞아, 아카아시. 아카아시 요즘 잠 못 잔다고 했었나?”


“네?… 아.. 네, 그랬었죠.”


“어제 그 음료수 효과 직방이던데? 나 그거 먹고 바로 기절하듯이 잠든 거 같아. 무슨 수면제 성분이라도 들어있는 건가?”







코노하상은 가벼운 농담 삼아 들으라는 말투로 내게 말을 했다. 그리고 나는 말없이 코노하상 자리에 버러져있는 캔 음료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수면 성분은 전혀 들어가 있지 않는 음료이다. 평소에 내가 즐겨 찾는 음료인데다가 수면 부족인 내가 수면 성분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것은 제일 잘 느끼고 있다.








“…………………”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아무것도 아닙니다. 코노하상. 저 잠시 옆 부서에 다녀올게요.”


“아- 사쿠사 만나러? 알겠어.”







어떻게 된건지 사쿠사에게 묻고 싶었다.








“대리님이요? 아직 출근 안 하셨어요.”








사쿠사가 근무하고 있는 부서에 도착해서 물으니 사쿠사는 아직 출근하지 않은 모양이다. 어제 내게 음료를 전달해준 말단 직원이 나를 먼저 맞이해주었다.







“참, 한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아요?”


“뭔데요?”


“어제 사쿠사 대리가 건네주고 음료 혹시 누구에게 받은 거라던가, 내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바뀌었다던가 그런 일은 없었어요?”


“네… 저는 대리님에게 받자마자 바로 아카아시 대리님에게 전달해주었을 뿐인데요? 그리고 이 음료는 사쿠사 대리님이 제게 부탁해서 제가 직접 매점에서 사서 드렸었거든요!”








말단 직원은 내게 한치의 거짓도 없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설마 이 사람이… 라고 생각하는 순간과 함께 의심을 버렸다. 생각할 것도 없이 어제 일을 침착하게 말해주는 눈동자를 보니 이 사람은 확실히 스토커가 아니다. 게다가 날 스토킹하는 사람은 남자이다.







“아…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사쿠사 대리한테는 내가 왔다 갔었다고 말하지 말아줘요.”


“네! 알겠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함과 동시에 두통이 몰려왔다. 사쿠사… 설마 너는 아니겠지? 친구를 의심하다니 난 정말 쓰레기네…








사쿠사를 의심하고 있는 동시에 사쿠사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서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사쿠사의 주위를 피해 다녔다. 점심은 보쿠토상과 먹었고 쉬는 시간에는 코노하상에게 차를 얻어 마셨다. 







사쿠사를 애써 피해 다닌다고 생각했는데 난 사쿠사를 피해 다니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사쿠사가 그저 회사에 나오지 않아서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 병가요?”


“아.. 감기라도 걸렸는지 목이 상당히 쉬었더군.”


“그렇군요… 근데 저를 왜?”


“자네 사쿠사 대리랑 잘 아는 사이이지? 이 서류 좀 꼭 좀 부탁하네. 내일 해외 바이저와 중요한 미팅 때문에 우리 부서가 다들 정신이 없거든. 사쿠사 대리가 오늘까지 처리할 내용인데 우리 부서 사정이 좀…”


“아… 그런 거라면 제가 지금 시간 내서 다녀오겠습니다.”


“고마워. 아카아시 대리. 내가 나중에 보쿠토 팀장 통해서 지금 일은 꼭 보답할게.”


“아닙니다… 그럼 저는 이만…”







사쿠사가 근무하고 있는 팀장에 의해 난 부름을 받고 나서 사쿠사가 오늘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이봉투를 손에 쥐고 바로 사쿠사의 집으로 이동했다. 웬만해서는 회사에 나오는 사쿠사가 얼마나 아프길래 병가까지 냈을까 싶어 택시를 타고 사쿠사 집으로 가는 내내 생각에 잠겼다.






집 앞에 도착하고 벨을 누르려는데 잠이라도 자고 있을까 그냥 알고 있는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예상처럼 집 안에 불은 모두 꺼져있었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죽 집에 들러서 사온 죽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사쿠사의 침실 문을 살며시 열었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올 줄 알았는데 침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프다는 녀석이 어디라도 간 건가 싶어 침실에 들어서 사쿠사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







사쿠사 얼굴을 보며 무슨 얘기를 꺼내야 할까 싶어 새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 무슨 소리지?”







시계 초침 소리마저도 없는 조용한 공간에서 옷장 안쪽에 미약한 소음이 들려왔다. 마침 컴퓨터가 부팅되는 소리같은 파워 소리였다.







옷장으로 다가가 옷장 문을 열었다. 보이는 것은 옷들뿐이었다. 신경이 예민해져 들은 소리가 싶었지만 다시 한 번 옷 너머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옷을 양 사이드에 옮겨 놓자 옷장 안에 여러 화면이 보이는 티비가 놓여있었다.







“이런 게 왜 이런 곳에…. 아니 그보다.. 원래 여기 이런 게 있었나..?”






화면 속에는 여러 장면들이 비쳤다. 사쿠사 집에 며칠 신세 졌었을 때도 이런 것은 본 적도 이런 소리를 들은 적도 없었다. 








“………!!!!!!!!!!!!!!!!”







익숙한 풍경이다. 우리 집…… 우리 집은 물론 보쿠토상의 집, 그리고 우리 회사 속의 내 자리까지 CCTV로 비춰지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소리 지를 틈도 없이 기겁을 하고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등 뒤로 무언가와 닿았다.







그리고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아카아시. 여기서 뭐 해?”








싸늘한 눈빛으로 날 내리깔아 보고 있는 사쿠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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