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내 오두막을 세차게 갈기고 지나가는 게 어언 며칠째다. 이 놈의 바람은 그칠 줄도 모른다. 그냥 바람이 아니라 눈보라였군. 나는 작은 창 너머의 세상을 힐끗 건너봤다. 사람은 나뿐이요 들리는 건 바람 소리뿐이다. 장승처럼 외톨이로 지난 세월을 반추하고 반추하면 글이 뱉어 낼 줄 알았다. 그럴수록 나는 헛된 후회와 부질없는 그리움 따위를 간간이 게워낼 뿐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장승은커녕 투박한 목조각만 못한 모양이다. 그래도 돌아갈 마음은 없다. 내 마지막 시는 여기서 나와야 한다.

 잘 깎은 연필을 들었다 놓았다. 작은 오두막을 빙빙 돌았다. 난로를 끼고 앉아 불도 쬐어 보았다. 여기 와서 얻은 것은 연필을 완벽하게 깎는 노하우와 환청뿐이었다. 휘오오, 하는 소리가 어린애 울부짖는 소리로 들렸다. 으아앙 하는 간절하지만 맥 없는 소리. 그 소릴 듣다 보면 뒤틀린 감정이 꿈틀대었다. 어제는 애먼 창문을 내려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어째서 그 비명이 애절하게 들리는지. 너, 혼자니. 나도 혼자란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중얼거리다 나는 이상한 확신이 서고 말았다. 저 어딘가에 외로운 생명이 떨고 있을게야. 그 아이를 찾아야만 한다. 나는 그러한 숙명을 띠고 여기에 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신은, 내게 저 소리를 좀 들어 보라고 글과 말을 잠시 앗아간 것이다. 가슴이 뛰었다. 기이한 기분마저 들었다. 나는 내가 가진 가장 두꺼운 외투를 걸쳤다. 목도리도 칭칭 둘렀다. 그러고는 이 주하고 삼 일 동안 열린 일 없던 문을 거칠게 열어 젖혔다.

 바람은 나를 사정없이 할퀴었다. 낡은 뼈마디가 시렸다. 하지만 형체가 있는 것이 시린 편이 훨씬 나았다. 도취된 기분에서였을까, 바람을 맞서 걷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저 멀리 자작나무 숲이 보였다. 초연하게, 처연하게 서 있는 자작나무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부터 울부짖음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발이 눈에 푹푹 빠지고, 들짐승 발톱 같은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당해도 나는 꼿꼿이 서서 걸으려고 애썼다. 대신 패이는 발자국 하나 마다 생각을 하나씩 버리려고 했다. 나를 그리워할 사람들, 내가 그리워한 사람들, 어릴 적 향수가 묻은 옛 거리 등이 눈에 묻혀 희어지는 상상을 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이곳과 이질적이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모든 것은 곡선이었다. 희멀건한 나뭇가지는 조금의 여지를 남겨둔 채 곡선으로 뻗어 나왔다. 하얀 눈이 쌓인 땅은 무던한 곡선을, 매서운 바람은 날카로운 곡선을, 윙윙 울리는 울부짖음은 끊이지 않는 곡선을 가졌다. 검은 외투를 입은 나는 희부연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는 순간 꼬장꼬장하게도 꼿꼿이 서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옹송그렸다. 이곳과 동화되어야 했다. 그래야 아이가 나를 보고 놀라지 않을 테지. 나는 그 아이가 어떤 사람일지 생각해 보았다. 약한 존재지만 마음은 강했으면 좋겠다. 외로움을 많이 타지만 고독을 즐길 줄 알았으면 좋겠다. 책을 읽는 것이나 멍하니 공상하는 것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주변에서 알 수 없는 아이라는 말을 듣는 편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 나는 내 어릴 적을 떠올렸다. 책에 파묻혀 있던 날들. 다른 아이들이 뛰어 놀던 것을 멀거니 보면서 저 작은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있을지 상상했던 날들. 그 때 내가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면 어땠을까? 나는 그러면 나를 이곳에 가둘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매번 현학적으로 보이기 위해 어렵게 꼬아 둔 말을 뱉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솔직하게 살아도 되었을 텐데. 나는 이런 내 삶을 사랑하면서도 가끔 이렇게 미워했다. 이것은 고질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책 속의 등장 인물이 되어 책 속에서 살다가 책을 덮고 나면 내 존재가 붕 떠 간데없는 그 허무한 감각을 사랑했다. 한편으로는 진짜 내 자신을 찾고 싶어했지만 그것보다는 책을 읽는 게 훨씬 쉬웠다. 나는 모험가도 되었다가 생쥐도 되었다가 계모도 되었다가 성기사도 되었다. 아쉽게도 나는 삼차원의 사람들에게 보다 활자화된 인물들과 더 깊은 교류를 나누었다. 나이가 좀 더 들고 나서는 시집을 읽었다. 작은 조각배 위에 올라 앉아 풍랑에 휩쓸리던 그 시절의 시는 나에게 돛과 같았다. 어딘가로 늘 휩쓸려 다니다 나는 아예 배 한 척을 짓고 돛도 직접 달기에 이르렀다. 조금 더 효율적으로 나를 내 안에 가두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다가가기 어려운 나,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나를 나는 어쨌거나 사랑했다. 그것은 가끔 느끼는 자기 모멸과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아이를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을 해 주지? 혹시 아이가 시인인 나를 동경하게 된다면 뭐라고 할까? ‘꼭꼭 씹어 한참 우물거려야만 그 뜻을 알 수 있는 글은 매력적인 것이란다.’ 하며 머리를 쓰다듬을까? 아니면 친구들과 밖에서 뛰어노는 것이나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하는 것에 흥미를 붙여 보라고 할까? 실체 없는 생각의 벽에 부딪혔을 때쯤 숲 입구에 다다랐다. 숲 속으로 들어가니 바람소리가 잦아들었다. 아이는 눈물을 그친 것일까? 오히려 잘 되었지. 내가 어린 것을 달랠 필요는 없어졌으니 말이다. 참 우습기도 하지, 나는 어린 것들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데. 너무 오랫동안 고독에 절여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조각 낸 언어와 신체 일부와도 같은 외로움을 온 몸에 두른 채 눈밭에 자국을 남기며 걸어가는 기다란 목탄. 이 문장을 입 밖으로 몇 번 내었다. 눈이 뿌드득 밟히는 소리와 어울리는 울림을 가지는 문장이었다.

 나목들 사이를 걷노라니 두꺼운 옷이 괜히 죄스럽게 느껴지고 벌거벗은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걷는데 기이하게 푸른 관목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푸르고 뻣센 잎 위에는 눈이 하얗게 쌓였고 가지마다 뱀딸기 비슷하게 생긴 열매들이 조롱조롱 달려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탐스러워서, 주저없이 열매를 따 입에 넣었다. 열매는 달았다. 몇 개를 입에 더 넣었다. 너무 달아서 혀가 아렸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이 들었다. 기분에 취해 나는 그만 벌러덩 뒤로 누워 버렸다. 오랫동안 쌓였던 눈이 제법 포근하고 단단하게 나를 받쳐 주었다. 목탄은 눅눅해져서 더 이상 검은 자국을 남길 수 없게 되었다. 잘 된 일이다. 그래도 젊은 날 사모하던 이가 이 순간에 떠오르는 것은 목탄의 속이 여전히 검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시집에는 내 안에 있는 검은 덩어리들을 다 토해 내고 맑은 몸으로만 저 멀리로 떠나려 했는데, 그러기에는 글렀지 싶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꽤 아름다운 마지막 페이지다. 여태 가진 적 없던 가장 깨끗한 심상들과 내가 단발적인 역설로 엮여 있었다. 누가 나중에 나를 보고 시로 지어서 나에게 헌정했으면.

 잠이 쏟아졌다. 나는 편한 자세로 돌아 웅크렸다. 안락했다. 전혀 춥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따뜻하게까지 느껴졌다. 눈을 끔벅거리는데 보라색의 형체가 눈 앞에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환각이로구나. 슬며시 눈을 떠 그 형체를 응시했다. 보라색 나비였다. 이 계절까지 살아 있는 걸 보아하니 독을 품었을 것이다. 눈 앞의 존재를 그렇게 멋대로 정의했다. 나비는 내 코 위에 앉았다. 나는 저 날개를 확 낚아챌까 하다가 가만 두었다. 나비를 이렇게 가까이 본 적은 없었다. 자세히 보니 날개 무늬가 제법 규칙적이다. 나비에 대한 시를 왜 여태 쓰지 않았을까? 종이와 연필을 가져왔더라면 유서로 남겼을 텐데, 그건 좀 아쉽게 되었다.

 나비가 내 코에서 날아가 내 머리 위를 맴돌았다. 천사 머리 위의 고리처럼. 너라도 나를 축복해 주는 게 어디냐. 녀셕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녀석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내 몸이 누인 자리 위를 계속 팔랑팔랑 돌았다. 뭘 하려고 그러는 걸까? 자세히 보고 싶어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번에는 녀석이 나에게 가까이 왔다 멀어졌다를 반복했다. 이제 녀석이 원하는 바를 알겠다. 나는 일어나서 섰다. 나비는 내게서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나비를 쫓았다. 나비는 조금씩 더 빨리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처음에는 천천히 몇 발짝을 앞으로 떼었을 뿐이었지만 이내 연속적으로 걸어야 했고 걸음은 갈수록 더 빨라졌으며 마침내 눈밭을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소리없는 웃음이 실실 새 나왔다. 마지막으로 힘껏 달린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도.

 얼마나 달렸을까, 자작나무 숲이 거의 끝나가는 지점에 이르렀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잠시 멈추었다. 녀석도 멈춰섰다. 달려온 길을 보려고 뒤를 돌았는데 내 뒤에 찍힌 발자국이 너무 작았다. 어딜 보나 어른의 발자국으로 보기는 힘들었다. 나비가 날아와 왼손에 앉는 바람에 그제야 손을 봤다. 희고 부드러운, 주름살 하나 없는 아이의 손이었다. 오른손을 쥐었다 펴 보았다. 그 작은 손을 내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볼이 말랑하고 따뜻했다. 거칠고 움푹했던 얼굴은 간데없었다. 팔다리도, 머리칼도, 다 어린아이의 것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새 어릴 적 가장 좋아하던 두꺼운 군청색 외투를 입고 있었다. 한평생 흐릿하게 타던 기름불의 마지막 발악이라도 되는 걸까, 나는 생각했다. 이제 와서야, 여기에서야 좀 그럴싸한 말이 떠오른다. 신이 내게 글을 돌려주신 모양이다. 억울하지는 않다.

 나는 폴짝폴짝 뛰었다. 깨끗한 눈밭을 신이 난 강아지처럼 푹푹 눌러 밟았다. 나무 사이사이를 작은 물고기가 되어 지나다녔다. 양 팔을 펴고 가장 큰 새처럼 제일 작은 비행기처럼 날았다. 나는 겨울을 좋아했다, 했었다. 아마 이만했을 때쯤. 나는 허영스러운 염세주의의 껍데기가 허물어지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눈이 너무 하얘서. 이제 필요도 없는 것이다. 작은 팔다리를 대중없이 휘두르면 날뛰다 엎어지고 말았지만 그건 그거 대로 나쁘지 않았다. 입 안에 차가운 눈이 들어왔다. 별 생각 없이 삼키고 아예 뒤로 누웠다. 하늘이 정말 높았다. 양 팔을 땅에 댄 채로 위 아래로 쓸었다. 팔이 지나간 궤적은 날개라고 하기에는 조잡했다. 조잡한 날개나마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목이 칼칼했다. 너무 오래 울었는가 보다. 몇 날 며칠을 나를 들어달라고. 오두막 안에는 짓다 만 활자의 정렬이 몇 묶음 있긴 하나 그건 공개되지 않는 편이 낫겠다. 내 유고시집은 지금의 이 은밀한 순간이 되어야 한다. 나비는 어디에 가 있다가 다시 온 것인지 바로 누운 내 얼굴 위를 아까처럼 빙빙 돌기 시작했다. 이번엔 진짜 천사의 고리다. 나는 그 유려한 몸짓을 눈으로 쫓았다.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그러고 보니 아이에게는 아무런 말도 못 해줬군. 분명 시인인 나를 동경할텐데 말야. 픽 웃음이 나왔다. 눈 결정 하나도 못 날릴 웃음이었지만 그 바람에 기름불은 힘을 잃고 말았다.

흐려지는 정신 속에서 번쩍 떠올렸다. 내가 다듬고 깎은 문장 중에서도 가장 멋드러진 것이었다.

 내가 찾던 '아이'는 결국 '나'였다.

물 하(河), 때 시(時). 물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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