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To. 캐나다로 떠나버린 마크리

안녕 마크. 새삼스럽게 편지를 쓰려니까 어색하네...

요즘같은 21세기에 굳이 손 편지를 고수하는 게 참 너답다고 느껴. 이메일 왜 안 알려주는 건데? 넌 참...시대에 뒤떨어졌다. 폰도 없구 있는 거라곤 이메일 달랑 하나뿐인 놈이 그거마저 없애고 가다니. 공부에 집중해야 해서 다 없앴다는데 욕할 수도 없고. 이왕 그렇게 맘먹고 간 김에 열심히 하고 돌아와.

아 손 아파. 이동혁도 옆에서 아까부터 손 아프다고 난리야. 지금 다 같이 카페에서 너한테 편지 쓰는 중이걸랑. 나재민은 앞에서 벌써 훌쩍대고 있고, 이동혁은 방금 말했다시피 지랄 중. 아 아직 인준이는 안 왔어 강의가 안 끝났대. 제노는 집에서 혼자 쓸거래. 그래도 우리 의리 있지? 

아니 근데 이 편지가 언제쯤 도착하는지 알기나 해? 꼬박 2주나 걸린대. 길게는 한 달. 그럼 우린 길면 한 달에 한 번 편지할 수 있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니야? 넌 친구들이 보고 싶지도 않냐. 됐다 말해봤자 뭐해 지금 너한테 잔소리해봤자 한참 뒤에나 볼 텐데...잔소리 그만 할게 ㅋㅋ 무튼 이 편지 볼 때쯤이면 캐나다에 잘 도착한 거겠지?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니가 캐나다 간 게 이해가 안 돼. 한국에서도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굳이 캐나다를? 뭐..니가 자란 곳이라는 의미가 있긴 해도. 

집은 잘 구했어? 입학한 학교는 어때? 너 처음 우리 학교로 전학 왔을 때 적응 못 해서 엄청 힘들어 했던 거 기억하냐 ㅋㅋㅋ 한국어도 못해가지구 발음도 이상하고 억양도 이상하고. 분명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인데 캐나다 사람이라고 하고. 나재민이 너 귀엽다고 다가가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너 완전...음...어...솔직히 왕따행. 인정? 나재민이 하루에 100번 말 걸면 5번 정도 대답해주는 너였으니까. 이제서야 말하지만 난 진짜 이해가 안 갔어. 니가 뭐라고 나재민이 그렇게 쩔쩔매는지...그냥 평소 놀던 친구들이랑 편하게 재밌게 지낼 수 있는데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이랑 친구 하려고 왤케 깝치냐고 내가 꼽좀 줬어 (핀잔 줬단 의미야.) 

나재민이 그렇게 부탁을 해서 같이 껴서 밥 먹긴 했는데 한 마디 안 하고 혼자 이어폰 끼고 고개만 숙인 채로 꾸역 꾸역 밥 먹구. 한식이 입에 맞긴 했냐? 도토리묵 나왔을 때 너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눈 땡그래져서 콕콕 찔러본 거 난 사실 다 봤어 ㅋㅋㅋㅋ 그때 좀 귀여웠음. 그러다가 니가 이동혁한테 치킨 닭다리 넘겨줘서 이동혁이 너한테 뽀뽀하고 앵기고 난리도 아니었는데...넌 당황해서 숟가락 놓치고 ㅋㅋㅋㅋ 우리가 놀려대니까 너 처음으로 웃었잖아 깔깔대면서. 와~난 진짜 너 웃음소리 듣고 깜짝 놀랬다 그걸 어떻게 숨기고 지냈어? 너도 참 대단하다

아, 그것도 기억나냐. 너 나랑 처음으로 단둘이 야자 째고 피씨방 간 날. 피씨방이 뭐냐고 해서 내가 컴퓨터 잔뜩 있는 데라니까 해킹하는 사람들이 가는 데 아니냐면서 나 잡아끌었잖아 가지 말라고 ㅋㅋㅋ 개웃겨 진짜 다시 생각해도. 아무리 외국인이고 한국이 처음이어도 17살이 그게 할 말이야? 아주 겁에 질려서는 내 뒤에 찰싹 붙어서 덜덜 떨며 들어가더니 여기 저기서 게임 하는 거 보고 그제야 표정 풀었잖아. 진짜 바보 이마크. 비록 겜알못 (게임 잘 못한다구. 너 ㅋㅋㅋ)인 너 때문에 크아나 하고 말았지만...나 그때 진짜 재밌었당. 너랑 더 가까워진 느낌도 들었구...니가 수박주스에 환장하는 것도 첨 알아서 뭔가 나만 아는 비밀이 생긴 기분?

아~~~추억 회상하니까 마크리 엄청 보고 싶네. 니 웃음소리도 그립고 이동혁이 나 놀리면 하지 말라고 막아주는 것도 그립고 그냥 다 그립다. 솔직히 진짜 많이 보고 싶어. 지금 여기 다 눈물바다야. 너 보고 싶어서..한국 언제 올거야. 방학 때 오기로 한 거 꼭 지켜라. 우리 너 없으면 슈크림 없는 붕어빵이라고 몇 번을 말해. 아 이동혁 드러워 옆에서 방금 코 풀었으 ㅋㅋㅋ 그거 모르지? 우리 너 입국장 들어갈 때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하다가 문 닫히고 다같이 오열했다 인천공항 중앙에서 ㅋㅋ 사람들이 길 가면서 막 휴지랑 물도 주고 갔어 너무 크게 울어가지구...그만큼 넌 우리한테 진짜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라구.

마크. 아프지 말고 거기서 적응 잘하고 니가 좋아하는 음식 잔뜩 먹고 가끔은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잘 지내. 아, 너가 좋아하는 간식들이랑 인스턴트 음식이랑...좋아했던 내 수박 인형. 우리가 주고 싶은 선물들도 같이 박스에 넣어서 보내. 편지랑 같이 잘 가겠지? 받으면...으아 받았다고 바로바로 메일이나 카톡이 오면 얼마나 좋아. 받으면 편지 해. 2주 뒤에나 알게 되겠지만...어쨌든 이마크 항상 응원하는 거 알지? 화이팅하구. 보고싶다. 건강해야 돼! 우리도 돈 열심히 모아서 캐나다 갈 테니까, 너도 우리 보고싶어지면 언제든 한국 와. 

잘 지내!

2019.03.07 널 응원하는 ㅇㅇ


내가 찍은 애들 사진 ㅋㅋ 보고싶지!!





#2 

To. 보고 싶은 ㅇㅇ이

편지 잘 받았어. 선물도. 아니 선물은 왜 이렇게 많이 보냈으 ㅋㅋㅋ 수박 인형 진짜 보고 한참 웃었네. 내가 애냐고 ㅋㅋㅋㅋ 그래도 밤마다 꼭 껴안고 잘게. 여기서 니 냄새 나서 좋다. 박스에 꽁꽁 묻어져 왔는데도 니 냄새가 묻어있어서 신기해. 아 맞아 과자들이랑 인스턴트 음식은 여기에도 맛있는 거 많아. 안 보내도 돼. 그리고 나 혼자 유튜브 보면서 이것저것 잘해먹고 있으니까 앞으로는 그런 거 많이 보내지마. 아, 나는 캐나다에 잘 도착했어. 떠나 온 지 꽤 됐어도 확실히 오래 살았던 곳이라 그런지 모든 게 익숙해. 집은 맘에 들어. 몰랐는데 아버지가 돈을 조금 보내주셨더라고. 그래서 걱정했던 것 보다는 쉽게 집 구했어. 거실도 있고 주방도 있고...아마 너네가 사는 대학가 원룸보다는 훨씬 쾌적할 걸 ㅋㅋ 방도 두 개나 있어서 하나는 침실로 쓰고, 하나는 영화 보는 방으로 쓰고 있어. 되게 잘 지내고 있지 생각보다? 사진 같이 넣어 보낼게. 애들한테도 보여줘 이마크 잘살고 있다고 Vv

학교에서 적응은 나름 잘했어. 처음엔 솔직히 걱정했는데 교수님들이 되게 잘 챙겨줘서 좋아. 아 그리고 한국에서 온 친구도 있어. 이름은 김정우. 경기도 김포에서 왔대. 난 솔직히 너네랑 서울 여기저기만 왔다 갔다 해서 몰랐거든. 근데 경기도 김포시를 모르냐면서 나한테 엄청 화내는 거 있지 ㅋㅋㅋ 그래서 난 한국 사람 아니고 캐나다인이라고 하니까 놀라더라. 한국말 너무 잘해서 당연히 한국인인 줄 알았대. 너희랑 같이 놀면서 유행어 배운 거 알차게 써먹었더니 여권 꺼내보라고 계속 장난쳐서 웃겨 죽는 줄 알았어. 오랜만에 너네랑 있던 때처럼 웃었다니까.

아 그리고 학교 식당이 진짜 맛있어. 돈 내고 알아서 먹고 싶은 만큼 퍼가는 시스템인데 아마 이동혁이 왔다면 환장하고 달려들었을 거야. 걔가 좋아하는 치킨이 매일 나오거든. 그것도 무제한으로 ㅋㅋ 근데 이거 별로 안 좋아. 왜냐하면 동혁이랑 너네가 생각나거든. 매일 매일 너네가 보고 싶어. 학교 후문에 있던 치킨집에서 맨날 닭 다리 걸고 싸움하던 거 생각나고. 맨날 너랑 동혁이랑 살벌하게 싸우던 소리도 그립고. 그래서 솔직히 처음엔 쫌 몰래 울기도 했으 ㅋㅋ (이건 애들한테 말하지마. 비밀이다.) 

나 처음에 너희 학교 갔을 때. 매일 이어폰 끼고 먹는다고 너가 빼라고 난리 쳤잖아. 외국에서 온 거 티 내는 것도 아니고 맨날 팝송 듣는 거 아니냐고. 근데 계속 안 뺐던 건...너네가 말하는 게 싫어서 무시하려고가 아니라. 한국어 공부하느라 그랬던 거야. 라디오 들었거든. 나도 너희랑 친해지고 싶은데 한국어는 어렵고. 발음이 이상하면 너희가 싫어할 것 같고. 재민이가 그래서 야자 끝나구 집 안 가고 한 시간 동안 나 매일 도와줬어. 어차피 난 집에 가도 아무도 없으니까, 재민이랑 같이 우리 집 가서 한국어 공부하고. ㅋㅋㅋ 그래서 한국어 어느 정도 괜찮아졌을 때 말도 하고 그랬던 거야. 이제 와서 말하네...아니 사실 몇 번 말해보려고 했는데 쫌 오글거리잖어. 나도 사실 너희랑 친해지고 싶었다고 말하는 게 부끄러웠으. 

아 맞다. 여긴 지금 4월 10일이야. 네 편지는 4월 초에 도착했는데, Midterm 기간이라서 많이 바빠서 이제야 답장하는 거야. 답장 왜 안 오냐고 불같이 날 뛰고 있을 니 모습이 그려져서 웃기다. 김정우가 앞에서 나보고 왜 자꾸 실실 쪼개냐고 뭐라고 웅얼댄다 ㅋㅋ 근데 너무 행복한 걸 어떡해. 편지 쓸 때면 너희랑 같이 있는 것 같고...힘든 시험공부도 다 생각 안 나고 그래. 실은 조금 어려워. 아예 처음 배우는 공부라 낯설고, 너도 알잖아 나 낯 많이 가리는 거. 김정우 아니었으면 나 진짜 외톨이었다니까. 아웃사이더. 그래서 아직은 정우 말고 친한 친구들도 없어서 아주 쪼~~금 힘들어. 막 학교 끝나면 다들 여기 저기 파티 가곤 하는데...난 그런 거랑 안맞아. 그냥 여기서 열심히 공부해서 빨리 학위 따고 한국 가야지. 진짜 신기한 게, 여긴 내가 자란 곳인데...한국이 더 익숙해. 아주 어릴 때, 기억도 안 날 때 캐나다로 넘어온 거라서 한국에 대한 기억이라곤 고딩 때 뿐인데도 그래. 니네랑 있었을 때가 진짜 좋았나 봐. 

편지가 너무 길어졌다. 사실 지금은 열심히 적응하는 중이라 에피소드도 없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해줄 수가 없네. 편지에 아무 말이라도 해도 좋으니까 꼭 꼬박꼬박 답장해줘. 그거라도 없으면 나 진짜 많이 외로울 것 같거든. 옛날 얘기도 좋고. 아! 그리고 애들 사진 좀 보내주라. 다들 대학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 방학 때 한국 갈 수 있으면 꼭 갈게. 약속해. 나도 많이 보고 싶어 ㅇㅇ아.

ps 제노한테 생일 축하한다고 전해줘. 4월 23일에 맞춰서 말해줘 꼭.

Be safe.

2019.04.10 Mark


동혁이가 좋아할 것 같은 chicken ㅋㅋㅋㅋㅋㅋㅋㅋ





#3

To. 바보 이마크

아니 그렇게 적응이 힘들었으면 우리가 편지 보내기 전에 미리 연락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이메일 알려 줬잖아. 너 핸드폰은 없어도 김정우인지 걔가 핸드폰 있잖아. 우리 번호 외우고 있으니까 연락하면 되잖아 이마크 이 똘추야...왜 힘든 걸 혼자 참냐고요. 아 진짜 답답해. 4월에 보낸 건 이제서야 오고. 너 그럼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우리가 모르잖아. 짜증나 죽겠어...넌 진짜 우리 맘 하나도 몰라 너 편지 받고 얼마나 심장이 쿵 떨어졌는 줄 알아? 내가 당장 밴쿠버행 비행기 표 끊고 너 찾아가겠다는 거 나재민이 겨우 말렸어. 답답해 죽겠으니까 김정우 걔 번호라도 적어 보내. 알겠어?

사진 100장 인화해서 같이 보냈어. 우리 다 잘 지내. 대학 생활 적응 잘했어. 이동혁은 1학년 과대 됐어. 여전히 친구 많고 여기 저기 쏘다녀 ㅋㅋ 얼마 전에는 술 쳐먹고 학교 앞 사거리에서 자는 거 누가 신고 해서 경찰서도 갔다. 진짜 얘도 참 여전하지 않냐? 성인 됐다고 철 든 게 하나도 없어. 군대라도 보내야 하나 봐. 인준이는 여자친구 생겼어. 선배랑 씨씨. 얘가 좀 반반하게 생기긴 했잖냐. 입학하자마자 여자 선배들이 잡고 안놔줬대. 결국 진짜 예쁜 선배랑 사귀더라. 아 맞아 제노. 이제노는 뭐 똑같지...가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 기간 되면 연락 안 돼 매일 밤샘 공부하느라. 난 대학교 1학년이 그렇게 공부 열심히 하는 거 처음 봤다. 재민이는 요새 공부 말고 더 재미 있는게 생겼대. 사진 찍는 게 그렇게 좋다나 뭐래나. 매일 카메라 들고 사진 찍으러 다니느라 학교도 잘 안나와. 자퇴할까 고민 중이기도 한가 봐. 근데 사진 대박 잘 찍는다. 얘가 우리 만날 때마다 사진 찍어 주는데 매번 인생샷 갱신. 나재민이 찍은 건 따로 표시해서 보냈으니까 보고 평가해봐. 너도 놀랄걸?

나도 잘 지내고 있어 당연히. 대학교가 이렇게 재미있는 건 줄 몰랐어 ㅋㅋ 선배들도 동기들도 다 좋아. 나 되게 예쁨 받는다? 아 그리고 학교 방송국 아나운서도 됐어. 점심시간 마다 방송 하는데, 에타 (한국 대학교 학생들이 쓰는 커뮤니티..뭐 그런 거.)에 매일 목소리 예쁘다고 올라와 ㅎㅎ 나 쩔지? 내가 한 목소리 하잖아. 아주 알차게 재능 기부하고 있쥐.

나 고딩 때도 3년 내내 방송부 아나운서였잖아. 니가 처음에 내 목소리 맞냐고 하도 안 믿어서 니 앞에서 직접 사연 읽어 줬는데. 니가 막 이거 어디에 제보해야 한다고 막 동영상 찍어가고 ㅋㅋㅋㅋㅋ 방송할 때만 목소리가 좀 바뀌긴 하는데 그래도 그렇게 안 믿는 건 좀 너무했어? 여하튼 넌 나 때문에 편하게 방송국 들락날락했지. 아무도 없어서 매일 열쇠 따고 들어와서 우리 둘이 노가리까고. 수업 째고 싶을 땐 쌤한텐 보건실 간다고 하고 방송실 컴퓨터로 크아 특훈하고 ㅋㅋㅋ 나는 그 날 방송 콘티 짜고 넌 뒤에서 책 읽고 있고...그러다 출출하면 몰래 창문 밖으로 나가서 편의점 라면 순삭 하고 오기도 했는데. 다 기억나지? 

그때가 좋았다 진짜. 너랑 있었던 시간들이 그렇게 소중한 줄 알았으면, 스무 살 되고는 이렇게 못 볼 거 알았으면 너랑 더 잘 지낼걸. 너 꼽 주지 말걸. 처음에 조금이라도 빨리 더 잘해줄 걸...그런 후회가 드네. 갑자기 감성충이라고 진지해졌다고 뭐라 하지마. 원래 있을 땐 소중한 거 모르는데 사라져봐야 안다더니, 지금 내가 딱 그 상태. 근데 솔직히 너도 그렇지? 있을 땐 몰랐는데 없으니까 내가 보고 싶고 아주 소중해 죽겠지? ㅋㅋㅋㅋ 우리 둘 다 쌤쌤이야. 근데 지나간 날 그리워하고 후회해봤자 뭐하냐. 뭐 너 한국 영영 들어오면 그 때 더 잘해주면 되지. 지금은 편지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됐고. 

이제 더워지는데..거긴 조금 더 더우려나? 아닌가. 캐나다는 춥다고 했나. 눈 많이 온다고 했는데 뭐 거기에 여름이 없고 이런 건 아닐 거 아냐. (바보같다고 웃지마 ㅡㅡ)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몸 조심해. 그 정우인가 걔 꽉 붙들고 길 잃어버리지 말고 대학교에서 친구들도 조금 더 사귀고. 유튜브 뭐 보면서 공부하는지 모르겠지만 백종원 치면 맛있는 레시피 많이 나오니까 샌드위치 이런 걸로 때우지 말고 직접 요리 열심히 해서 먹어.

아 그리고 너나 Be safe 하세요 이마크씨. 

ps 제노가 생일 축하해줘서 고맙대.

2019.05.03 ㅇㅇ


얘네 머리 색 보이냐. 대학생 됐다고 아주 살판 났어 ㅋㅋㅋㅋㅋㅋㅋㅋ






#4 

To. ㅇㅇ

내가 널 왜 바보라고 생각해. 난 너 한 번도 바보 같다고 생각한 적 없어. 캐나다도 똑같이 여름에 더워. 근데 날씨도 늘 좋고 햇볕도 쨍쨍해서 기분 되게 좋아. 한국은 여름 되면 습하고 완전 짜증 나는 날씨인데, 여긴 그거에 비하면 쫌 많이 쾌적해. 저녁 되면 선선하기도 해서 혼자 산책도 해. 기분 전환하기 좋아. 기회 되면 너네가 진짜 왔으면 좋겠다. 여기 경치도 좋고, 분위기도 완전 굿이거든. 내가 자주 가는 식당에서 너네랑 같이 밥 먹고 싶으. 돈 모아서 꼭 와 ㅋㅋ 이마크 외롭게 하지 말고. 아 맞아, 나 이제 친구 완전 많아. 완전 CANADA COOL GUY. ㅋㅋㅋㅋㅋ 김정우가 나 완전 인싸됐다고 질투해. (인싸는 김정우가 알려준 새로운 유행어.) 그니까 걱정 마. 니가 생각하는 만큼 나 찌질이 아니야 ㅋㅋㅋㅋㅋㅋㅋ

벌써 6월이네, 한국 떠나온지 고작 몇 개월 되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한국이 가고 싶냐. 여름 되니까 너네랑 같이 계곡 가서 놀던 거 생각나서 죽는 줄 알았으. 나 그것 때문에 한국행 비행기 끊을 뻔했잖아. 우리 고등학교 2학년 때, 시험 끝나고 그 완전 시골로 갔던 거. 사람도 없어서 우리가 평상 다 차지하고 하루 종일 놀았잖아. 니가 내가 좋아할 거라고 수박 가져와서는 계곡에 넣어놓구. 실은 나 그거 떠내려갈까 봐 계속 그 옆에서 지키고 있었다. ㅋㅋ 니가 첨으로 나 좋아하는 거라고 따로 챙겨주고 생각해주고 한 거라서 쫌 소중했거든. (ㅋㅋ 오글거린다.) 그래서 나 그때 니가 잘라준 수박 진짜 배 터질 만큼 먹었다. 수박 좋아하긴 해두 그렇게 많이 먹은 적 없는데, 그냥 니가 챙겨줬다는 생각에 신나서 그 큰 걸 내가 거의 다 먹은 거야 ㅋㅋ 어때 이마크 좀 멋있어?

그때 진짜 웃겼는데. 황인준 비장하게 새로 산 쪼리 신고 와가지고 이동혁이랑 장난치다가 그거 잃어버려서 걔 울었잖어. 진짜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운 거였다니까? 그거 나만 봤어. 인준이 세수하는 척하면서 시뻘개진 눈 열심히 닦는 거. 눈물 닦은 후엔 인준이 빡쳐서 동혁이 머리 꾹 눌러서 못 빠져나오게 하고, 이동혁은 죽은 척하고. 너 놀라서 엉엉 울면서 119에 전화한다고 난리 치고 이제노랑 나재민은 아니라고 너 달래고 ㅋㅋㅋ 나야 배불러서 쉬면서 그거 다 동영상으로 찍었지. 동혁이 둥둥 물에 뜨고 너 갑자기 소리 지를 때 나 완전 놀라서 뛰어 내려갈 뻔했는데, 이제노가 동혁이 대가리 후려쳐서 마저 영상 찍었다. 아 그거 보여주고 싶은데 보여줄 방법이 없네. 이건 내가 소중하게 보관하겠으. 공부하다가 짜증 날 때 보면 엄청 웃겨. 엊그제도 도서관에서 이 영상 보다가 혼자 빵 터져서 김정우가 입모양으로 욕했어 웃을 거면 나가서 웃으라구. 그래서 혼자 화장실 가서 엄청 깔깔댔어. 나가니까 밖에 있는 애가 나 이상하게 쳐다봤다. 근데 웃긴 걸 어떡해.

늘 하는 말이지만, 진짜 보고 싶어. 이런 얘기 하니까 더 보고 싶어. 애들도 보고 싶은데 니가 제일 보고 싶어. 자꾸 너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니가 나 급식 거르면 빵 사와서 챙겨주던 것도 생각나고,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으면 옆에 너가 있을 것 같고, 당장이라도 내가 조는 너 깨워줘야할 것 같은데...아무도 없어. 그래서 쫌 외롭고 슬퍼도 책상 앞에 붙여둔 너네 사진 보면 웃음 나. 제대로 된 가족이라곤 하나 없어서 캐나다에서도 쫓겨나서 어영부영 한국 갔지만, 처음 인천 공항에 도착했을 때 진짜 너무너무 서러워서 엉엉 울었지만, 그래두 한국 와서 너네 만난 거 생각하면. 세상이 맨날 나한테 시련만 주는 건 아닌 것 같으. 그래서 신한테 감사했어. 하나님이 나 아직 버린 건 아니구나. 

다시 캐나다 떠나온 건 내 선택이지만.

가끔씩 후회가 되기는 해.

그래도...나 진짜 열심히 해서 한국 갈게.

그때까지 건강해야돼.

ps. 한국 대학 생활 궁금하니까 많이 자랑해줘 

2019.06.10 coooool guy mark :)


날씨 완전 좋아 :)







#5

To. 이마크

참나 쿨은 무슨 쿨. 웃기지도 않아 진짜. 너 편지 쓰면서 울었지? 눈물 그렁그렁 해가지고 또 휴지로 꾹꾹 눌러서 참았지? 안 봐도 뻔해. 니가 뭐가 쿨하냐 완전 찌질이 울보인데. 여름 방학에 진짜 갈라구 했는데, 너도 알잖아 우리 사실 말만 떵떵댔던 거. 진짜 마음같아선 지금 캐나다 땅 밟고 신나 하고 있는데, 애들도 나도 너무 바쁘다. 미안해 마크. 우리도 너무너무 가고 싶은 거 알지. 근데 상황이 여의치가 않네. 내년에 애들 군대 가기 전엔 다 같이 너 보러 꼭 가야 하는데. 이러다 이마크 진짜 못보면 어떡하지. 캐나다 있을 때 한 번 놀러 가서 우리가 애들 앞에서 기 세워줘야 하는데. 너 친구라는 정우한테도 우리 마크 잘 챙기라고 안 그러면 우리한테 뒤지게 혼난다고 단단히 일러주고 와야 하는데. 아 몰라. 그냥 니가 한국 와. 우리 다섯 가는 것보다 너 하나 오는 게 빠름.

계곡 갔던 거 당근 기억나지. 그걸 어케 잊냐 우리 다같이 처음으로 놀러 갔던 건데. 야 그리고 나 그때 이동혁이 장난치는 거 알았거든? ㅡㅡ 내가 일부러 놀란 척 한 거야 이동혁 민망할까 봐 ;; 진짜 넌 날 너무 몰라 내가 너보다 눈치가 빨라. 넌 눈치 드럽게도 없잖아. 너 매년 생일 때마다 완전 허접한 서프라이즈 파티 했는데 넌 그거 매번 속아 넘어갔잖아. 고1 때는 나랑 나재민이랑 싸웠다니까 그거 곧이곧대로 믿고선 와가지고 둘이 포옹하라고 하고, 화해 악수 하라고 하고. 가운데서 눈알 굴리면서 엄청 걱정하고 오웅 재민 그건 좀 심했으...같은 소리나 하고 있고 ㅋㅋ 그거 때문에 웃음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 이동혁이 케이크 들고 정독실 들어오니까 한 1분간은 상황 파악 못해서 어리 둥절 하다가 그제서야 소리 지르고 막 이거 뭐냐고 하고 ㅋㅋ

근데 너 왜 맨날 생일 파티 할 때마다 오열한 거야? 진짜 별 거 아닌 생파 해주는데도 너 완전 감동 받아서 맨날 그렁그렁. 툭 치면 눈물 주르륵 흘리고. 우리가 그렇게 감동적이었나? 그건 쫌...아닌 것 같은데. 2학년 땐 너 생일 까먹은 척했더니 진짜 상처받아서 우리랑 말도 안했었잖아 ㅋㅋ 나 진짜 이마크 그렇게 삐진 건 처음 봤어. 3일로 넘어가기 직전에 너네 집 앞에서 생일 파티 해주니까 또 눈물 그렁그렁 해가지고 우리가 진짜 까먹은 줄 알았다고 나 완전 상처받았다고 하면서 영어로 뭐라 뭐라 하는데 진짜 개웃겼다 ㅋㅋㅋㅋㅋㅋㅋ 그거 나한테 영상 있음. 아 이것도 usb에 넣어야지~니 흑역사 보면서 좀 웃어. 

작년은 솔직히...뭐 다 같이 오열 파티였지. 9월에 원서 써야 하는데 넌 별말도 없구, 맨날 담임이랑 상담 한 시간씩 하고 와서 얘기도 안 해주고. 그러다가 너 생일날 지하실에서 폭죽 터트리면서 황인준이 너 얼굴에 케이크 가져다 박았는데 그거 떼지도 않고 갑자기 어깨 들썩들썩하길래 우리 진짜 완전 놀라서 황인준 혼내고...얼굴에 생크림은 잔뜩 묻혀가지고 엉엉 울면서 나 캐나다 간다구. 나 이제 너네 못본다고 막 오열했잖아. 너 달래주다가 우리도 울고, 영영 안 오는 건 아닌데 왜 못 본다고 하냐고 이동혁이 너 패고...아니 근데 진짜 평생 못 보는 것도 아닌데 그때 우리 왜 그렇게 울었을까? 너도 3년 동안 본 것 중에 젤 크게 울었잖아. 우리도 애기긴 했나봐 ㅋㅋ

으아아아아 다음 달이 벌써 이마크 생일이네. 가서 못 챙겨줘서 어쩌냐. 혼자라도 미역국 끓여 먹어. 아 너 생일마다 울 엄마가 해준 불고기랑 잡채랑 미역국 먹어야하는데 ㅋㅋㅋ 엄마가 옆에서 아쉽다고 택배로라도 보내주냐는거 겨우 말렸어. 맘 같아선 보내고 싶은데, 상할 것 같애 여름이라. 아 편지는 일부러 너 생일에 맞춰 갈 즈음에 보내는 건데 제발 8월 2일에 도착 했으면 좋겠다. 우리 선물은 usb 꽂아서 보면 아마 재생 될 거야. 시대에 뒤떨어진 이마크라지만 컴퓨터나 노트북은 있을 거 아냐. usb 사용법은 알지? 아니다 너 못미더워. 포스트잇으로 적어서 보낼 테니까 모르겠으면 그거 보고 차례대로 따라 해. 뻘짓하다가 그거 부시지 말고. 

우리 선물 보면서 또 혼자 질질 짜지 말고. 

굳건히 공부 빡세게 해서 얼렁 한국 건너 오거라. 

ps. 너 다니는 학교 얘기나 좀 해. 한국 대학생활은...아 몰라. 다음에. 

그리고 너 부모님 얘기 이제 우리한테 털어놓을 때도 됐어.

마크야. 뭐가 됐든 들어줄 테니까 편하게 얘기해도 돼.

그 정도 믿음은 이제 쌓이지 않았나. 

2019. 07. 02 너를 믿는 ㅇㅇ


애들이랑 오랜만에 다 같이 놀러 갔다 왔어. 너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6 

To. 고마운 ㅇㅇ

진짜 thanks. 울진 않았는데 많이 감동쓰. 너 영상은 언제 배운 거야? 완전 잘 만드는데? 사실 돈 주고 맡긴 건 아니지? ㅋㅋㅋㅋ 와 나 진짜 담임쌤 나왔을 때 진짜 놀랐다. 진짜 쌤도 많이 보고 싶었는데 연락 드릴 방법이 없어서 가끔 아쉽고 그랬거든. 근데 진짜 고마워...쌤 얼굴 까먹을까 봐 종종 머릿속에 그렸는데, 이제 안 그래도 되겠다. 역시 ㅇㅇ. 센스 하난 최고. 애들 영상 편지도 감동 ㅋㅋ 너네 진짜 나랑 있을 땐 그런 말 한마디도 안 하더니 카메라 보면서는 왜 이렇게 말을 잘 해. 나 보면서 하나하나 대꾸하면서 봤으. 내 영상 메시지도 찍어 줘야 하는데...어렵겠지. 너네 내 얼굴 까먹는 건 아니지. 이마크 까먹으면 안 된다. 기회가 되면...꼭 너네랑 마주 보고 말해주고 싶어 고맙다구. 편지로만 보내는게 이제 쫌 미안하기도 한데, 진짜 어쩔 수가 없어. 미안.

어 음...부모님 얘기는 일부러 안 한 건 아니야. 일부러 안 하고 싶었으면 우리 집도 안보여줬구 엄마 아빠 얘기 아예 꺼내지도 않았어. 숨긴 건 아닌데 너네는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ㅇㅇ이 니가 대표로 읽고 그냥 애들한텐 차근차근 설명해줘. 나 완전 콩..콩가루? 콩가루 집안 그거잖어. 그래서 설명하면 약간 긴데...그래도 니가 궁금해하니까. 그리고 이젠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나 입양된 건 알지. 몇 개월 때지? 몰라 이건. 진짜 완전 어렸을 때라고만 알어.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한국에서 부모님이랑 자랐던 기억은 없으. 첫 기억의 시작이 캐나다에서 엄마랑 놀던 거. 나한테 영어 동화책 읽어주던 거. 같이 빡빡이 캐릭터 나오는 만화 보면서 노래 따라 불렀던 거. 그거거든. 아마 엄청 어릴 때 캐나다로 갔을 거야. 엄마는 날 진짜 많이 사랑했어. mark 라는 예쁜 이름도 주고, 한국 까먹지 말라구 친부모님이 지어준 이름도 계속 기억하게 해주셨거든. 이민형이라고, 내가 말한 적 있을걸? 무튼 되게 잘 지냈어. 같이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놀이 공원도 가고 교회도 다니구. 엄마는 나를 매일 자랑스럽게 소개했어. 이웃집 아주머니들 만나면 나는 울 엄마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엄마는 내 머리 쓰다듬으면서 Mark 라고 소개하던 거. 잠들기 전에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그랬던 거 아직도 생생하거든. 엄마 눈빛이나 따뜻한 품 이런 거 있잖아. 시간이 지나도 평생 잊을 수 없는 것들.

근데 엄마가 돌아가셨어 나 중학교 들어가는 해에. 원래도 아팠는데, 갑자기 쫌 심해졌댔나. 나 엄청 많이 울었거든. 무서웠어. 엄마가 없으면 나 진짜 못살 것 같아서. 아빠는 나한테 엄했어. 엄마랑 있을 땐 안 그랬는데, 엄마가 없으면 가끔 뭐라고 하고, 종종 소리도 지르고, 어...음 아주 가끔. 아주 가끔 때리기도 했어. 아빠가 왜 날 그렇게 미워하나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몰라. 결론이 안 나왔어 그땐.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가 나를 입양하는 걸 반대했던 거 아닐까? 난 솔직히 나쁜 짓 안했거든. 아무리 엄마는 내가 진짜 아들이라구. 친자식이라고 마음으로 낳았다고 매일 사랑해주셨지만...그래도 입양아잖아. 진짜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 아니잖아. 그래서 혹시라도 내가 나쁜 짓 하면. 울 엄마 속상하게 하면 나 다시 한국 가면 어떡해. 그래서 더 잘했어 더 예쁜 짓 하구 공부도 열심히 했어.

근데 아빠는 그래도 날 안 사랑했어. 아빠한테 혼나도 맞아도 난 맨날 아빠한테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빌었어. 사실 잘못한 건 없었거든. 엄마 돌아가시기 전엔 그래도 매일 엄마랑 같이 있으니까. 정말 특별한 날 아니면 혼나거나 맞은 적은 없었는데 엄마 돌아가시고 나선 매일 맞았어. 이유는 다양했어. 내 표정이 맘에 안 든다거나 (웃고 있으면 웃고 있다고, 무표정이면 무표정이라고 막 짜증 냈어.) 시험에서 하나 틀렸다거나, 급식비 내라고 통신문 전해줬다거나, 아침에 신문 온 거 집에 제때 안 들여놨다거나.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어. 

그러다가 16살 되던 해에 아빠가 집을 나가라고 했어. 어디로 가냐고 나 갈 곳 없다고 울면서 빌었는데 발로 채였어. 가방이랑 같이 쫓겨났어. 진짜 부모가 있는 한국으로 꺼지라구. 비자랑 이런 것도 나 모르게 다 준비해놨더라. 학교도 자퇴시켜놨어. 그래서 막 진짜 울고불고 매달렸는데. 나 앞으로 학교 안 다니고 그냥 일 나가겠다고 집에만 있게 해달라고 아빠한테 부탁했는데 안된대. 이 집에 내가 있는게 꼴도 보기 싫대. 그래서 한국에서 집 구하고 살 수 있는 돈이 들어있는 통장이랑 (그래도 울 아빠 돈 잘 벌었거든.) 여권이랑 내 짐들이랑 그렇게 쫓겨났어.

그리구 혼자 한국에 왔어. 한국어 진짜 못해서 나 서울역에서 노숙할 뻔했는데. 그래도 16년 키워준 아들이 굶어 죽는 건 걱정됐는지 한국...뭐 어디에 연락해 놨대. 그래서 그분 따라가서 집도 구하고 다닐 학교도 정하고. 그리고는 고등학교 입학 때까지 집에 틀어박혀 지냈어. 친부모 찾을 생각은 아예 안 했어. 지금 만나봤자 뭔 얘기를 해. 가끔 궁금하긴 해.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아. 나 왜 입양 보냈어요. 나 왜 캐나다에서 눈치 보며 살게 했어요. 나 왜 인종차별 당하게 했어요. 한국에서 지내면 나 더 잘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솔직히 나 보고 싶었죠. 이런 것들. 

근데...딱히 원망도 안해. 이유가 있었겠지. 어른 됐나 봐. 지금은 아빠도 안 미워. 꼬박꼬박 돈 대주거든.

쩝. 오늘 편지는 우울하네...

이런 얘기 별로 하고 싶진 않았는데...

그래도 너니까 얘기 하는거야.

나 이젠 괜찮으니까 이거 보면서 또 괜한 걱정 하지 말고.

시간 될 때 답장 해줘. (바쁘면 안 해줘도 돼.)

이번 달 Be safe. 언제나 몸 조심 사람 조심. 

ps. 학교 생활이 뭐 별 거 있냐. 재미없어. 딱히 할 말도 없으. 

그냥 저냥 열심히 공부하면서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 마. 


2019.08.11 mark lee



나 까먹지 말라구 ㅋㅋ






#7

To. 매일 쓸 데 없는 걱정 하는 이마크

내가 널 어떻게 까먹어. 매일 너 사진 닳도록 보는데. 절대 안 까먹으니까 걱정 마. 너나 내 얼굴 까먹지 마. 

넌 진짜 바보다. 어떻게 3년 우리랑 지내면서 저런 얘기를 그냥 묻어 놓고 지내. 안 답답했어? 나라면 슬프고 속상해서 매일매일 울고 화풀이했을 것 같은데 넌 어떻게 참았어. 지금은 괜찮아? 사실 안 괜찮겠지...너 우리한테 한국 이름 알려준 적 없어. 맨날 마크리 마크리 했지 이민형이라는 이름이 있는 줄은 몰랐네. 그 이름 알았으면 매일 그걸로 불러 줬을 텐데. 그래도 소중한 이름이었을 거 아냐 너한텐. 그래서 이 편지에서라도 많이 불러줄라구. 너 소중한 한국 이름.

민형아. 힘들었지.

덜렁 한국에 떨어져서 얼마나 무서웠냐. 열 여섯살 짜리 애가. 눈물도 많고 겁도 많은 이마크가 인천 공항에 와서는 두리번거리면서 낯설어했을 상상하니까 마음이 저려. 감히 내가 너의 지난날들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는 없겠지만...그 힘들었던 시간들이 너에게 얼마나 상처를 줬을지 가늠도 안 되지만 민형아. 그래도 넌 진짜 매 순간 사랑 받고 있었다는 거 잊지 마. 하늘에 계신 너희 어머니도 언제나 너 사랑하고 있었구. 우린...우린 너의 열여섯을 모르지만. 그땐 이민형이란 사람이 세상에 있는 줄도 몰랐지만. 너 오면 사랑해줄 준비 하고 있었던 걸로 치자.

나쁜 기억이 마지막인 그곳엔 다시 왜 갔어 민형아. 한국에서 우리랑 더 행복하면 되잖아. 나 솔직히 아직 니가 좀 짜증 나고 미워. 공부하겠다고 지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우리 버리고 떠난 니가 미운데. 더군다나 너희 아빠 얘기 들으니까 니가 살았다는 그 동네가 진짜 좆같은데...그래도. 그래도 너한텐 지옥 같았던 몇 년의 시간들을 새로운 기억들로 채워나가면 되니까. 힘들겠지만, 없었던 것처럼 덮고 새 출발 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렇게 잊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니까 또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민형아 있지, 너는 진짜 칭찬할 것밖에 없다. 뜬금없나? 아니 근데. 나 너한테 칭찬해주고 싶은 게 많거든. 지금 해야겠다. 원래 사람은 미리 미리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야 한대. 혹시 모르잖아 못하게 될 줄. 아침에 건강했던 사람이 저녁에 죽기도 하고. 인생은 모르니까. 매 순간 후회 없이 살아야 한대. 그래서 나 너한테 잔뜩 칭찬해 주려고. 지금 이 말들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애서. 

가끔 웃을 때 나 때리는 건 좀 아파. 아침에 잘 자고 있는데 30분이나 일찍 전화해서 깨워주는 건 짜증 나긴 해. 근데 그래도 넌 진짜 착해. 가방에 츄르랑 고양이 사료 잔뜩 담아서 길고양이들한테 매번 밥 주는 것도, 지나가는 어른들한테 꾸벅꾸벅 인사하는 것도, 늘 고마움을 표현하는 걸 잊지 않는 것도, 누가 나 놀리면 아니라고 나서서 내 칭찬해주는 것도 다 착해. 묵묵히 뒤에서 노력하면서 할 일 다 해내는 것도 멋있어. 가끔 의도치 않게 사람 설레게도 해. 야자 째고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나랑 같이 있어서. 나 때문에 여름인데 따뜻하게 느껴진다구 했잖아. 그 때 나 진짜 심쿵. 아 맞다. 웃을 땐 갈매기처럼 눈썹이 휘어지는데 그게 진짜 귀여워. 웃긴 일 생기면 평소엔 내지도 않는 하이톤으로 깍깍대면서 웃는데 그 웃음소리가 진짜 매력 있어. 발표할 땐 하나도 안 떨고 또박 또박 말도 잘하면서 끝나면 나한테 와서 떨렸다고 찡찡 대는 거 사랑스러워. 급식 시간에 수박 나오면 광대 뽈록해져가지고 영양사 쌤한테 쌤 쫌만 더 주세요 하고 애교 부리는 거 보면 안아주고 싶어. (그래서 맨날 맨날 수박 나오라고 몰래 기도했어.) 방송실에서 콘티 쓰다가 뒤 돌면 안경 쓰고 책 읽는 니가 있어서 든든했어. 하교할 때 애들 다 가고 우리만 남았을 때 이어폰 나눠 끼고 노래 들으면 매일 내가 좋아하는 노래만 틀어주는 네 배려심이 고마웠어. 다 같이 영화 보러 가면 내 것만 따로 캬라멜 팝콘 사주는 것도 . 공부하다가 손 아파서 손 털고 있으면 가져가서 손 주물 대면서 마사지 해주는 것도.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머리 박지 말라고 손대주고 있었던 것도. 선생님한테 혼나고 있으면 옆에서 장난 치면서 내 기분 풀어줬던 것도. 입시 상담 하고 펑펑 울고 나온 날 내 손에 말없이 초콜렛 쥐여줬던 것도. 다 고마웠어.

마크야 그래서 널 진짜 좋아했어.

난 진짜 너 좋아했어.

이걸 왜 이제서야 말하냐고 하겠지. 근데 솔직히 너 내가 좋아하는 거 알았잖아. 맞지. 근데 친구 사이 깨질까 봐 너 겁나서 매일 내 말 돌렸잖아. 내가 너 엄청나게 좋아하는 거 알면서. 그래놓고 계속 잘해줬잖아. 맨날 맨날 우린 친구라구. 우리 ㅇㅇ이 내가 챙겨줘야지 내가 제일 친한 친군데 하면서 선 그은 거 모를 줄 아냐. 나 눈치 빠르다고 했잖아. 그래서 맘 접었어. 나도 그냥 너랑 친구로 지내야겠다 싶어서. 근데 그냥 얘기해주고 싶어. 나 너 진짜 많이 좋아했다고. 너 얘기 들으니까 더 해주고 싶어 너희 아빠가 너 미워했던 크기만큼, 아니 그거의 열 배 백 배로 내가 너 좋아했어. 그니까 너 아빠한테 미움받았던 거 내가 다 없앤 거야. 상쇄한 거야. 너도 내가 너 좋아하는 거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그걸로라도 위로해. 너가 미움받았던 것보다 엄청나게 너 좋아하고 응원하고 예뻐하고 귀여워하고 사랑해주는 나 있었으니까. 

갑자기 삘 타서 고백 하는 거 아니야. 연애하자는 것도 아니야. 너가 그렇게 무서워하던 거. 우리 친구 사이 깨져서 영영 못 보는 거. 나도 무서워. 나도 그래서 꾹 눌러 참았어. 근데 어차피 넌 한동안 한국 안 오니까 그냥 얘기할래.한국 오면 이 편지는 잊어. 얘기도 꺼내지 마 알았지. 술 취해서 나불대면 진짜 죽는다. 물론 넌 그런 애 아니란 거 알지만. 이마크 내가 진짜 많이 좋아해. 그리고 응원해.

그니까.

그니까 지금도 힘들 수 있겠지만.

외로울 수도 있겠지만.

저 멀리 한국에 나 엄청 좋아해 주는 사람 하나 있다고 생각하면서.

좀만 더 버티고 지내. 알겠지.

보고 싶다. 오늘따라 더 보고 싶네 이민형.

2019. 10. 13 ㅇㅇ.









#8

To. ㅇㅇ

할 말이 많은데. 너한테 답장해줘야 하는데. ㅇㅇ이가 정성스럽게 써준 글에 나도 정성스럽게 편지 써서 보내야 하는데. ㅇㅇ이가 오해하고 있었던 거 다 내가 하나하나 바로 잡아 줘야 하는데. 보내면 한 달 걸리는 편지로 보내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내 목소리로 눈 보면서 말 해줘야 하는데.

근데 미안해. 

한동안 바빠서 편지 못쓸 것 같아.

지금도 길게 쓰고 싶은데 그게 안 돼. 

답장 안 해도 돼. 편지할 수 있게 되면 다시 할게.

편지 보내도 답장 못 할 것 같아. 

기다리지 마. 

아, 미리 Merry Christmas. 같이 못 보내서 아쉽지만. 

하나 더. Happy New Year. 21살 된 거 축하해.

21살은 더 빛날 거야 ㅇㅇ아.

너 생각 하면서 나 열심히 지내고 있어.

꼭 보자. 우리. 



ps. 나도 너 좋아해. 열 일곱 살 때부터 좋아했어. 

ㅇㅇ이 얼굴 빨리 보고 싶다. 

우리 만날 수 있겠지.

나 진짜 언제 한국 갈 수 있을까.

우리 내년 크리스마스는, 새해는 꼭 같이 보내자.


from. mark

2019.12.21









#10

너 무슨 일 있어??

010-xxxx-xxxx 내 번호. 잊어버렸을까 봐.

보자마자 전화 해

이메일 주소 yzyz10@naver.com

전화 어려우면 이메일로라도 연락 해

2020. 01. 23









#11

마크야.

걱정 돼.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너 무슨 일 나면 우리 있잖아

우리가 니 가족이잖아

마크야 괜찮으니까 언제든 연락해

우리 다 너 기다리고 있어

이동혁은 화내면서 당장 캐나다 가겠다고 난리고

나재민은 앞에서 손톱만 물어뜯고 있어

황인준은 너 뭔 일 난 거 아니냐면서 벌써 울고불고 난리났고

이제노는 한숨만 쉰다고

우리 진짜 걱정 돼 마크야

마크야...

마크야 빨리 연락 주라 제발.

2020. 02. 15








#12

이마크

너가 다닌다던 학교

너가 캐나다 가서 진학한다던 학교에 

너 없대

전화해봤는데 이마크도 없고 이민형도 없대

너 어디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진짜...

제발 답장 좀 주라 연락 좀 주라 제발 마크야 진짜 제발....

나 진짜 너 없으면 죽어

2020. 03. 08










#13 

마크야

나 너 찾으러 가려고

2020. 0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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