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겨울안개


bgm 추천 - 정재형 [편린]







“그게.. 큰 도련님께서 다녀가신 후로....”


“세훈이가?”


“네. 소리를 좀 지르셨는데, 아무래도 대표이사 선임 관련 건으로 오신 듯 했습니다.”


“.... 내 주변도 정리할 때가 됐나 보군. 자꾸 그 쪽으로 정보가 새 나가고 말이야.”


“....”


“권실장은 그런 일은 신경 쓰지 말고, 저사람 약이라도 지어 먹여. 내일 닥터강 이라도 불러서 검진도 받게 하고.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냥 넘기려 들 거야.”


“네. 회장님.”







가물가물 흐리게 뜨여지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려 눈을 깜빡이며 초점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캄캄한 방안의 찬 공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나 앉았고, 바깥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천천히 침대 아래로 발을 내렸다. 실내용 슬리퍼가 차갑다.







“언제 오셨어요.”







무거운 배를 안고, 한 손으론 허리를 짚은 폼이 이젠 제법 익숙했다. 방안 보다 훈훈한 공기에 움츠렸던 어깨가 저절로 펴지는 기분이 들었다. 찌뿌둥한 몸을 늘이고 서있자니, 그 모습을 보는 오회장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었다.







“.. 권실장님은 회장님 오셨는데, 깨우시지 그러셨어요.”


“권실장. 그 사람 몸도 무거운데, 언제까지 서있도록 할 참인가? 차라도 내와.”







회장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거실에 울리자, 민석의 어깨가 흠칫 거리며 뛰어 올랐다. 분명 민석이 하는 양을 지켜보며 흐뭇해하던 사람이 돌연 저렇게 화를 내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화내지 마세요, 회장님. 혈압에 안 좋아요.”


“... 아들놈 냄새가 나는군.”


“아. 배를 잠깐, 만지고 갔어요.”


“아기가 갑자기 딸꾹질을 했어요.”







다른 말은 생략했다. 아기가 놀랐다는 말에 돌처럼 굳어버리던 모습. 조심스럽게 뻗어오던 손가락. 잘 들리지도 않을 만큼 조심스럽던 그 목소리. 모든 것을 오회장이 알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권실장도 그리 생각했기에 아직 말을 하지 않은 거라 생각한다.







“뱃속에서도 딸꾹질을 해?”


“음.. 기지개도 켜요.”


“.. 고 놈. 참..”







오회장의 귀 끝이 붉다. 그 모습에 환멸이 이는 것을 진정시킬 수가 없어, 작게 침음하며 고갤 돌렸다.









오세훈 × 김민석 × 김종인






관계 Part1 中









허벅지 사이로 <삭제> 민석은 저 물건이 꼭 칼끝처럼 보였다. 언제든 이 배를 가르고 들어와 자신과 아이를 모두 해칠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민석은 손을 들어 배를 가리려다말고, 쑥쑥 치고 올라오는 <삭제> 늙은 오회장의 눈가에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삭제> 오회장의 손이 뒤통수를 꽉꽉 눌러왔다.




오회장이 다녀간 나음날, 이른 오전부터 주치의가 찾아와 민석을 고단하게 했다. 원래가 아침잠이 많았던 민석은 닥터의 방문이 탐탁치않아 잔뜩 화가 나있는 상태였다. 그도 그럴것이, 하물며 오회장도 잠든 민석을 깨우지 않고 나갔건만, 고용된 자가 주인을 깨운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부턴 오후에 오세요.”







날이 선 민석의 말에도, 닥터는 작게 미소 지으며 연고를 꺼냈다.







“먹어도 될 만큼 순한 약이에요. 인체에는 물론 태아에게도 전혀 영향이 없을 거예요. 그러니 입가에 바르시고, 혹시 피부가 쓸린 곳이 있다면, 그곳에 발라도 좋아요.”







민석은 어젯밤 일을 떠올리며 손끝을 입가에 가져갔다가 따끔한 통증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괜히 다리를 오므려 허벅지를 숨겼다. 다 알고 있는 듯한 닥터의 눈과 목소리. 아무튼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아침이었다.






*






조용한 집안에선 메이드들만이 분주했다. 기록적인 폭설로 인해, 모든 일정들이 취소되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온 것이다. 높은 담장을 두었으니, 뜰에 나가 잠시 걸어도 될 텐데, 벌써 한참이나 쌓인 눈밭 위를 감히 걸을 자신은 없다. 그러니 컵에 담긴 미지근한 레몬주스를 마시며 동화책을 펴는 수밖에.




눈이 소리 없이 쌓여가는 창밖과 마찬가지로, 민석의 눈 위로 졸음이 쌓여간다. 소리 없이 감기는 눈꺼풀과 점점 미끄러지는 동화책. 결국 무릎에서 낙하한 동화책은, 어느 단단한 손이 다가와 날렵하게 훔쳐내었다.




땅에 떨어지는 그 작은 소리가 아이같이 잠든 민석의 잠을 방해할까 우려되었던 것이다. 종인은 테이블에 동화책을 내려놓고 눈을 맞은 코트를 벗어 그 옆으로 나란히 내려놓았다. 잠든 민석의 앞에 쪼그려 앉아, 눈을 감고 고요에 빠진 민석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살짝 찢어진 입가를 발견하고는, 마치 자신이 다친 것처럼 작게 인상을 썼다. 다시 민석의 옆으로 자릴 옮긴 종인이 그대로 민석의 몸을 당겨 자신의 허벅지 위로 작은 머리를 올려두었다. 볼록한 배가 불편한지, 몸을 뒤척이며 편한 자세를 찾아가는 모양이 귀여워 잠시 감상해본다.











“아가야... 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정해진 날짜, 좋은 시간에 나오너라. 내가 널... 아주 많이 기다리고 있단다.”







개미만한 목소리가 거실을 채우지도 못하고 허공에서 흩어진다. 조용한 하루의 오후 어느 좋은 시간. 종인은 민석의 무사 출산을 기원하며 작고 발간 민석의 손을 쥐고 키스했다. 올망졸망 작은 손톱들 위로 따끈한 종인의 입술이 닿자, 민석은 그제야 편안해진 듯, 미소 지으며 꿈을 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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