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슬 불어온다. 추석때 집에 갔더니 귤이 벌써 한 바구니가 있었다. 아직은 노란기가 덜한 초록색 귤들. 우리 집은 하우스 감귤이 아니라 노지에서 재배를 해서, 껍질이 울퉁불퉁하고 생긴게 예쁘진 않다. 하지만 뭐 어때, 속만 맛있으면 되지 뭘. 아버지가 차례상에 올리려고 조금 이르게 수확해두셨다. 몇 개를 까서 먹고있으려니, 아버지가 옆에 앉으신다. 곧 귤이 나올 때이니, 저번처럼 주문 좀 받아두라고. 암요. 그럼요. 제가 그런건 또 잘 하지요. 자신은 없지만 너스레를 잔뜩 떨어놓았다.

육지에 올라와서 (엄청나게 제주도스러운 표현이구만) 지내는 동안, 내 고향이 제주도라고 밝히면 꼭 물어오는 질문이 있었다. 바로 '집에 귤나무가 있나요?' 그러면 멋쩍게 대답하는 수 밖에. '아뇨, 집에는 없구요. 할아버지가 과수원을 하세요.'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오. 역시 그렇군.' 하고 이것 저것 더 물어보았다. 사실 참 난감한 질문이다. 우리 집에 귤나무가 없더라도 이웃 집에, 학교 가는 길에, 심지어 학교에도 귤나무가 있으니까. 감귤국이라고 놀려대도 할 말이 없지. 요즘엔 제주도 말고 다른 곳에서도 감귤을 많이 재배한다고들 하는데, 그래도 제주도는 계속 감귤국일게다.

인스타그램에 홍보물을 올린다. 깨작깨작 그림도 그리고, 글도 정성스럽게 작성한다. 처음엔 카카오톡으로 직접 연락을 달라고 주문을 받았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번거로운 일이더라. 나와 사이가 어색한 사람들은 귤을 주문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노랗고 탐스럽게 생긴게 죄라면 죄겠지. 그래서 직접 연락하지 않고도 주문할 수 있게 구글 설문지를 만들었다. 답변이 딱딱 정리되니 나도 전달하기가 편했다.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매년 효녀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러려고 서울 친구들을 만든 것인가. 동생들도 학교 친구들에게 많이 팔았다. 아무래도 육지 친구들에게 '제주도 친구가 파는 귤'은 특별해 보이나보다. 

사실 우리집은 과수원을 직접 운영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할머니께서 혼자 과수원을 운영하기 힘드셔서 다른 분에게 돈을 주고 빌려주었다. 우리 가족 먹을만큼의 귤 나무들만 빼고. 우리 아빠는 '가족 먹을 만큼' 이라고 했지만, 매년 이렇게 몇십 박스를 파는 걸 보면 우리 아버지가 생각보다 통이 크신가보다. 어쨋든 가족들이 먹을 것이라 농약도 치지 않고 정성스레 가꾼 귤이다. 못생겼지만 맛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계속 사주신다. 회사 직원들도 없으면 섭섭해하고. 아버지가 보내주시는 두세박스가 금새 동이난다.

홍보물을 올릴 때 멘트도 고민하게 된다. 어떤 때는 '자식들은 뿔뿔히 흩어졌지만, 과수원은 그대로 제주도에 있습니다. 제주도의 가족들이 먹다 지쳐서 팝니다' 하고 적었었다. 이번엔 뭐라고 쓸까. 이것 저것 생각해보았지만 딱 떠오르는게 없었다. 카피라이터가 되기엔 글렀다. 그래서 그냥 담백하게 썼다. 가을은 귤의 계절. 무농약 극조생 노지감귤. 10kg 2만원. 아주 간단하죠. 귤 맛있어요. 많이 사주세요.


꾸준히 읽고 열심히 살고 싶은 게으름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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