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명을 제외한 모든 기업명, 인명은 모두 허구입니다. 해당 도시를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문화 등 실제와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 미드 '다이너스티'에서 영감을 받아 쓴 글입니다.


by. 꾹꾹님



#1.


키스라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지민은 앞에 놓여있는 해장국이 식어가는데도 숟가락을 더이상 들 수 없었다. 정국이라는 이 사람은 대체 누구고. 언제 우리가 키스를 했다는거야? 이 사람이 헛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워낙 그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쳐서 이게 사실임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전화 너머로 아무런 대답이 없자 정국이 지민? 이라고 몇번 불렀다. 지민은 한 손으로 풍성한 머리카락을 거의 쥐어 뜯고 있었다. 그의 푹 숙인 고개가 올라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미안한데. 나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거든요. 내가 정말 당신하고... 그랬다고요?"

[네. 상황 설명이라도 해주면 도움이 될까요?]

"아뇨. 아뇨... 듣고싶지 않네요. 미안하지만 끊을게요."

[어... 저기...!]


지민은 바로 통화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 앞에 놓인 물잔을 들어 물을 벌컥벌컥 삼키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리 자신이 막나가는 인간이라고 해도 무려 약혼! 물론 모든게 계약서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와 신뢰라는 이름으로 묶여있는 상태에서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상대방이 그랬다면 당장 계약을 깰 정도로 노발대발했을 일인데... 전혀 예상치도 못하게. 지민 본인에게서 일이 터져버렸다. 지민은 극도의 스트레스가 더해지면서 당장 두개골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방심해도 되는 20대가 지났기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나 높은 혈압은 주의해야 했다. 지민은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방으로 도피하기 위해 저택 로비로 향했다. 2층 계단만 오르면 금방 나만의 세계인 내 방에 도착하는데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과 마주쳤다.


"누군데?"

"뭐?"

"이런 취미는 아니지만... 전화 들어버렸거든. 무슨 사고를 치고 다니는거야? 우리 아들?"

"역겨운 소리는 거둬줘. 안그래도 골치아프니까."

"새엄마한테 예쁜 말만 써야지. 안그래 지민? 그래. 난 네 새엄마잖아. 고민 상담 정도는 해줄 수 있어."


제인이 그 예쁜 얼굴로 씨익 웃어대는데 지민은 기가 찼다. 초등학생이 봐도 그녀의 의도가 보일 것 같은데... 속아 넘어가는게 말이 되나?


"바보같은 짓은 그만하지 그래?"

"네 약혼자를 버리고 무슨 짓을 한거야?"

"......"


지민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멍청한 줄 알았는데 그 멍청함 사이에 예리함도 있었나보다. 지민이 대답하지 않자 제인은 뭔가 단서를 잡았다는 것처럼 더 밝은 웃음을 지었다. 지민이 무시하고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자 제인이 크게 얘기했다.


"언제든 이 새엄마를 의지하렴! Lovely son!"


지민은 몸을 살짝 틀어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보이고는 윗층으로 사라져버렸다. 제인은 뭔가 생각이 많은 얼굴로 어딘가를 향했다. 안그래도 정국의 전화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제인까지 긁어부스럼을 만드니 어지간히 성가시는게 아니었다. 자꾸 '새엄마'를 강조하면서 어떻게든 유대감을 쌓으려고 하는것 같은데 어림도 없는 일이지. 지민은 제 방에 있는 책상 옆에 붙어있는 책장에서 책 한권을 꺼냈다. 뭐라고 써져있는지도 모르겠는 책이었다. 그 책을 꺼낸 지민이 뒤쪽 페이지를 열자 안에서 작은 열쇠가 나왔다. 열쇠를 꺼내든 지민은 책상 서랍 중 하나에 열쇠를 끼워넣고 돌렸다. 그러자 철컥 소리가 나며 작은 서랍이 열렸다.

그 서랍 안에서 옛날에 쓰던 것 같은 휴대폰을 꺼내들어 전원을 켰다. 요즘 스마트폰과 다르게 옛날 폰들은 배터리 성능이 더 좋은 것 같은건 착각인가. 지민은 살짝 웃고는 버튼을 이것저것 눌러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아. 오랜만이야. 부탁이 있어서 연락했어. 아직도 실력은 쓸만하겠지? 그럼. 나야 잘 지내지. 뭐 별건 아니고 누구 하나 조사하고 싶은게 있어서. 누구냐고? 그 전에 일단 내 비서 보낼테니 기밀 유지 서약부터 하자고. 우린 프로잖아? 문자 보낼게. 그럼 끊어."


지민은 전화를 끊고는 버튼을 톡톡 눌러 어딘가로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자신의 비서 노아에게 연락했다.


[네. 사장님.]

"노아. 부탁이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비밀리에 움직였으면 좋겠어. 그냥 지나가는길에 서류 하나만 전달하면 돼."

[네. 저택으로 가겠습니다.]

"고마워."


지민은 노아와 전화를 마치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침대에 다이브했다. 감히 날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겠어. 지민은 센스있게 놓여진 침대 옆 협탁 위 진통제를 발견하고 한입에 꿀꺽 삼켰다.




#2.


지민이 시카고로 돌아온지 겨우 몇 주. 아버지와는 약혼파티 때문에 사이가 좋지 않았고, 제인과는 언제 잡아먹어도 이상하지 않을 원수지간처럼 지냈다. 그나마 의지하는 사람이 헨리였지만 헨리도 워낙 집에 붙어있길 싫어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마주치는게 쉽지 않았다. 이 넓은 저택에서는 누가 어디있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제일 자주 만나는 사람은 의외로 태형이었다. 나름 약혼을 해서 그런건지, 언론을 의식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먼저 태형이 연락오는 경우가 많았다. 꽤나 진심으로 이 약혼을 대하고 있긴 한가본데? 지민은 그런 태형을 밀어내지 않았다. 

그들이 데이트 하는 모습은 매일 가십지에 오르내렸다. 

둘이 비싼 레스토랑에서 만나 하는 얘기라고는 별것 없었다. 회사를 운영하는데 관심이 워낙 많은 두사람이기에 생각보다 운영이나 마케팅과 같은 경영 이야기에 죽이 잘맞았다. 둘이 화목해 보이는 모습으로 파파라치에 찍히는 이유였다.


"그 부서는 없애는게 낫지 않겠어? 실적이 너무 안나오잖아."

"그래도 투자 가치는 있잖아. 좀 아깝기도 하고."

"나라면 없앴을거야. 그 부서의 사람들도 더 잘하는 파트에 넣어주면 되는거 아냐?"

"의외로 그 부서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더라고."

"흐음... 그래?"


대화 내용은 거의 회사 동료거나, CEO 모임 같기도 했다. 지민은 태형이 이렇게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일거라고는 생각 한 적 없었다. 그래서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중이었다. 반면에 태형은 조급했다. 겉으로 보기엔 여유가 가득한 사람처럼 지민과 이야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 지민을 자신에게 반하게 만들어야 했으니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고, 좀 더 분위기를 잡아보고도 싶은데... 지민은 본인이 의도치는 않았겠지만 완벽한 철벽이었다. 지민은 의무처럼 저녁식사를 마치고는 자신이 계산을 했다. 모든게 자신을 연애상대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태형은 조금 표정이 굳었다.

그러면서도 레스토랑 밖을 나서기 전에는 손을 꽉 잡았다. 우린 지금 시카고에서 가장 행복한 커플이어야 하니까.


"헉. 태형. 나 오늘은 따로 들어가봐야할 것 같은데?"

"회사가게?"

"아니. 즐거운 일이 생길 것 같거든 집에."

"그래 뭐. 나도 기사 따로 부를게. 먼저 가."

"고마워. 또 봐. 형."

"야!"


지민이 활짝 웃으며 리무진을 타고 떠나버렸고, 태형은 조금 뻘쭘하게 길가에 서있었다. 전화 한통이면 금방 기사가 차를 끌고 오겠지만 길거리의 파파라치들은 약혼한 커플이 1분이라도 떨어져있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태형! 둘이 싸웠어요?"

"......"

"싸웠구나. 둘이 거짓으로 약혼했다는 소문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여기봐요 태형!"

"......"


태형은 파파라치들의 저급한 질문에 일체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무표정으로 차가 언제 오는지만 기다리고 있었다. 차는 금방 올거고, 나는 조금만 참으면 돼. 그런데 자주 얼굴을 보이는 파파라치 하나가 조금 신경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


"태형! JK알아요?"


태형의 흥미가 동해버렸다. 태형은 그 이름이 대체 왜 나오는 것인지 궁금했고, 인간의 호기심은 죄악이라고 불릴만큼 사람의 행동을 제멋대로 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태형이 그 질문을 한 파파라치를 바라보자 플래시가 파바박 터져댔다. 그가 반응을 했다는 것은 무언가 있는 것이다. 신이 난 파파라치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당신 피앙세인 지민과 JK가 조금... 분위기가 이상하던데요? 위네트카 파티에서도 손을 잡고 빠져나간데다 태형의 약혼파티에서는 둘이 키스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뭐라고?"

"오! 태형! 당신도 모르는 이야기였군요? 이게 사실이면 파혼할 생각인가요?"

"......"


태형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무응답으로 일관했지만 뭐라도 건진 것 같은 파파라치는 신이 나서는 계속 입을 조잘거렸다. 태형의 앞에 매끈한 애스턴마틴이 들어왔고, 운전기사가 내려서는 조수석 문을 열었다. 파파라치는 태형에게 과도하게 달라붙었다. 이건 선을 넘는 행동이었다. 결국 화가 난 태형이 파파라치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버렸다. 그 모습은 아주 다양한 각도에서 몇십장이나 찍혀버렸다. 다음날 아침의 가십지가 두려워졌지만 태형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다. 할리우드에 비하면 아주 고상한 대응이었으니까.



#3.


지민은 아무것도 모르고 운전기사에게 집에 빨리 가달라고 재촉했다. 그가 이렇게 신이 난 이유는 비서인 노아의 연락 때문이었다. 지민은 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노아가 보낸 메세지에는 '비밀이 있네요.' 라고 써져있었다. 무슨 비밀일지 정말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현관문을 쾅 열고 2층으로 호다닥 뛰어올라갔다. 책상 위에는 갈색의 서류봉투가 있었다. 지민은 방문을 조용히 잠그고 서류봉투를 열었다. 안엔 클립이 끼워진 종이 몇 장과 사진이 있었다. 

종이는 마치 이력서처럼 제인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써져있었다. 그녀가 어디 출생인지 부모님은 어떤지, 가족과 화목한지. 회사에는 어떻게 입사하게 되었는지까지. 취미나 버릇같은 정말 사소한 것들도 모두 적혀있었다. 그것보다 중요한 내용은 이것이었다.


제인은 어떤 남자와 연인관계였다. 현재 관계가 애매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남자가 유부남이라는 사실. 이것은 지민의 아버지인 필립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새로운 남자의 등장이었다. 지민은 올라오는 희열감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지민은 계속해서 서류를 읽어내려갔다. 제인과 연인사이인 남자는 아내가 있는데, 아내가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사이에는 아이까지 있다고. 제인과 그 남자가 현재까지도 연인사이인지는 애매하지만, 필립과 만나게 된 제인이 먼저 그 남자와 연락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써져있었다.


"역시 돈을 보고 온게 맞네."


사진에는 으슥한 곳에 세워진 차 내부가 찍혀있었다. 가로등을 피해 세워진 차 안에는 어떤 남자와 제인이 진하게 키스하는 사진이 있었다. 지민은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그 남자의 얼굴이 조금 익숙하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누구지? 왜 이렇게 익숙하지? 의구심과 감출 수 없는 기쁨을 가지고 다음날 출근을 하기 위해 잠에 들었던 지민은 회사에 출근하고 나서야 그가 누군지 기억해낼 수 있었다.

아직 COO가 임명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중요한 후보이자 세레니테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지민은 중역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는데... 거기에서 그 남자를 발견하고 말았다. 중역 회의에 업무보고를 하러 나온 개발팀 팀장이었다. 그의 이름은 제이드. 아주 가정적인 남자로 소문이 나있는 사람이었다. 30대의 나이에 이 대기업의 팀장직을 맡고 있는 능력남인데다, 라틴계열이라 얼굴도 꽤나 잘생겼다. 

지민이 본인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을 알아챈 제이드는 대체 그가 왜저러는지 몰라 발표도 대충대충 해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에 필립이 역정을 내자 제이드는 이를 아득 물었다. 지민은 순간적으로 제이드의 눈빛을 읽었다. 저건 분노였다.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제이드는 제인을 필립에게 뺏긴 기분이겠지.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이었는데 돈만 보고 떠난 것 같으니 제인도 미우려나. 아니지, 저런 불륜남들은 자신의 애인을 뺏어간 다른 남자를 증오하지. 지민은 그 꼴이 참으로 우습고 역겨워서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회의를 마치고 임시 사무실에 들어와 앉은 지민은 아버지에게 사진 하나를 보냈다. 그 사진은 자신의 비서 노아가 보고한 '결정적인 증거' 였다. 회의도 맘에 안들었는데 마침 지민이 보내온 사진은 필립을 멍하게 만들었다. CEO 사무실에 앉아 휴대폰을 든 채로 필립은 멈춰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둘째아들 지민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다 질투심 많은 제인까지 케어해야 했다. COO자리는 제인의 것이 분명했다. 지민의 탁월한 경영 능력이 아깝긴 하지만 지민은 그 많은 직원을 통솔할 리더십은 부족했다. 직원들은 제 가족처럼 아낄 능력이 있을까? 그건 의문이었다. 제인은 그런 큰 자리를 주면서까지 제 옆에 두고싶은 여자였다. 그만큼 그녀에게 한눈에 반해있었다. 그런 그녀의... 알고 싶지 않았던 비밀을 알아버린 필립은 멘탈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내부적으로 아웃스탠드가 인수합병을 위해 움직인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오는 마당에 필립은 신경쓸게 너무 많았다. 지민때문에 일이 계속해서 꼬여가는데 마침 지민이 보낸 사진은 사실상 크리티컬이었다. 필립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이성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억지로 심호흡을 해야만 했다.

태형과 지민이 정말 사랑해서 약혼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는데다 태형의 의도가 무엇인지 누가봐도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파혼을 시켜야만 했다. 그런데 필립은 자신의 약혼부터 지키는 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먼저 지키게 하는 것. 지민은 자신이 제인에게 진심인 것을 알아챘고, 이 틈새를 노렸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더욱 똑똑하고 교활하다. 필립은 빼다박은 것처럼 자신을 닮은 지민에 헛웃음이 터졌다.

한편, 지민은 뿌듯한 표정으로 화장실을 가는 척 사무실을 나왔고, 일부러 빙 돌아 아버지의 사무실 앞을 지나갔다. 통유리로 된 사무실 안을 바라보니 필립은 고개를 푹 숙이고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지민은 재빨리 지나가며 씩 웃었다.


"미션 성공."


필립은 지민이 지나간 것은 모르고 있었지만, 타이밍 좋게 지민이 지나간 후 고개를 팍 들고는 눈을 힘주어 떴다. 제인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태형을 지옥까지 떨어트려주겠어. 필립이 웃었다. 둘은 각자 다른 생각으로 기쁜 것처럼 보였다.




#4.


태형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비서가 건넨 가십지를 보고 바닥에 집어던져버렸다. 어제 반응을 해버린 탓도 있겠지만 지민과 JK의 연관성에 대해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걸 보니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평소라면 헛소리만 올라오는 가십지이니 몇몇 독자층만 보겠지만 이번 기사는 메이저 신문사들도 기를 쓰고 달려들 것 같았다. 지민과 JK가 키스하는 흐릿한 사진과 함께 태형이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는 사진이 동시에 실렸기 때문이었다. 태형은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의 파파라치사진은 그렇다치고... 이 키스하는 사진은 대체 뭘까. 사실 흐릿하기 때문에 명확하게 그들인 것을 알아볼수는 없겠지만 태형은 달랐다. 태형은 약혼파티의 지민을 사진으로 찍은 것마냥 기억하고 있었다. 신발이라던가, 머리모양이라던가. 태형은 기억력이 유달리 좋아서 한번 본 사람은 잊는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JK의 착장도 잘 알고 있었다. 아주 흐릿하고 멀리서 휴대폰으로 확대해 찍은 것 같은 노이즈가 잔뜩 있었지만 태형은 알 수 있었다. 그게 정말 지민과 JK라는 사실을. 

태형의 표정이 좋지 않자 가만히 있던 비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장님. 어떻게 할까요?"

"...무대응이 원칙인거 알잖아요."

"네. 그렇지만... 곧 메이저가 물겁니다."

"뭐, 그때쯤엔 지민이 나설수도 있겠죠. 필립은 자신의 아들들의 가십이 뜨는 걸 극도로 싫어하기때문에 금방 묻힐겁니다."


태형은 그렇게 당당히 말했다. 그리고 점심시간때쯤 비서의 급한 연락을 받은 태형은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메이저에 기사가 떴습니다."

"...뭐라고요?"

"신문사의 아는 사람을 통해 물어보니... 세레니테가 오히려 기사를 내라고 했다고 합니다."

"필립이요? 지민의 기사인데?"


태형은 아차 싶었다. 필립의 목적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필립은 우리의 관계를 지지하지 않는다. 즉, 파혼을 시킬 생각인 것이다. 태형은 작게 욕을 읊조렸다. 필립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이쯤되면 지민에게 연락이 와야하는데 지민은 톡 한통도 없었다. 이 인간은 대체 뭘 하는거야. 비상사태라고. 결국 태형이 먼저 지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번 가지도 않았는데 지민이 금방 받았다. 평소라면 왜? 하고 받았을텐데 지금은 달랐다. 지민은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자기? 무슨 일이야?]

"...너야말로 무슨 일이야?"

[우리 자기. 나 보고싶어서 연락했어?]

"......어? 어... 응?"

[나 보고싶으면 회사로 오면 되는데 무슨 새삼스레 전화를 했어. 그래서 자기 지금 올거야?]

"아...? 아. 응 뭐 할 얘기도 있으니까... 갈게 그럼."

[응 알겠어~ 나도 보고싶어. 웅 사랑해. 좀 있다가 봐!]


전화가 끊어졌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물론 태형이 원하는게 이런거긴했지만, 낌새도 없이 갑자기 이래버리니까 다른사람이 받은건지 통화목록을 다시 확인할 정도였다. 가십 기사를 보고 충격이라도 받은건가. 태형은 멍하다가 문득 JK와의 키스사진이 떠올라 살짝 열이 올랐다. 그래. 박지민. 내가 갈테니 어디 변명이라도 해봐. 태형은 수트 자켓을 챙겨들었다.


"나 이대로 퇴근합니다."

"네. 들어가세요 사장님."


아웃스탠드는 오후 1시도 되지않아 퇴근한 사장님에 축제가 벌어졌다는 소문이...


태형이 세레니테 앞에 도착했다. 메이저 신문사들이 후속기사를 위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태형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자들이 달려들었다. 뭐라뭐라 질문을 해댔지만 태형은 무표정과 무응답으로 그대로 로비로 들어가버렸다. 로비에서 경비원과 눈이 마주치자 그들은 아무것도 묻지않고 태형이 들어갈 수 있게 게이트를 열어주었다. 태형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밖을 슬쩍 바라보았는데 기자들은 그대로 진을 치고 있었다. 금방 돌아갈 생각은 없나보네. 태형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띵-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열렸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직원들은 태형의 얼굴을 보고는 뒷걸음질을 했다. 


"......? 안타세요?"


하하, 저희는 괜찮아요. 옆에 곧 옵니다. 직원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를 피했다. 결국 혼자 엘리베이터에 탄 태형은 최상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 내리자마자 태형을 맞이하는 사람은 지민의 비서 노아였다. 태형이 어색하게 인사하자 노아는 태형을 붙잡고 끌고가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사장님을 구해주세요..."

"네?"

"보시면 알겁니다... 하."


노아가 한숨 끝에 데려간 곳은 지민의 사무실이었다. 그 안엔 처음보는 남자가 소파에 앉아 건방진 모습으로 테이블 위에 발을 올려놓고 앉아있었다. 그는 태형이 등장하길 기다린 것처럼 태형을 보자마자 활짝 웃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태형에게 다가와 인사하듯 포옹하고는 슥 떨어졌다.


"아 오셨구만! 하하 반가워요. 초면에 미안하지만, 빨리 헤어져요 둘이."

".....무슨 말을 하는겁니까?"


갑자기 나타난 낯선 남자가 하는 말에 어이가 없는 와중에 지민이 태형에게로 급히 다가와 팔짱을 슥 꼈다. 그 모습에 태형이 당황해서 지민을 쳐다봤는데 워낙 난처한 눈빛을 하고 있어서 태형도 급히 표정을 바꿨다. 세상 어울리는 사랑스러운 커플인 척. 지민과 태형이 동시에 그 남자를 바라보니까 그는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둘이 거짓인거 다 알아요. 지민! 내 앞에서 먹히지도 않는 연기하는거야?"

"당신 누굽니까?"

"아 나요? 나 박지민 전 애인입니다."


태형이 무슨 말이냐는 듯 지민을 바라봤는데, 지민은 눈을 살짝 접어 헤헤 하고 웃을 뿐이었다. 대충 상황을 보자니 전 애인이 갑자기 찾아와서 헤어지라고 하는 상황인 것 같은데... 그러니까 날 부른건가? 우리가 건재함을 보여달라는건가. 태형은 눈치채고는 손을 들어 지민의 볼을 슬쩍 쓰다듬었다.


"당신이 전 애인이고 뭐고, 내 피앙세한테 무슨 볼일이 있는겁니까?"

"피앙세? 하하하 어이가 없네요. 둘이 거짓으로 약혼한거 내가 모를 것 같아요? 지민과 가장 어울리는건 납니다."

"내가 당신 얼굴을 모르는걸 보니까... 그다지 유명세가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요? 어디가 어울린다는거지?"

"자기. 살살해~"


지민은 갑자기 찾아온 전 애인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안그래도 이것저것 해결할 일이 많은데다 겨우 하나 해결해서 기분 좋았는데 기분 잡치게 진짜... 기껏해봐야 일주일이나 제대로 만났을까? 여행지에서 심심해서 몸 몇번 섞은 것 뿐인데 엄청난 집착을 해대서 피곤했다. 헤어지자고 했을때는 꽤 쿨하게 헤어졌고, 가끔 연락오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다고? 너 이렇게 골치 아픈 인간이었니. 지민은 가장 먼저 생각나는게 태형이었다. 태형은 생각보다 빨리 와줬고, 지금의 대치 상태 유지 중...

전 애인은 태형의 공격에 얼굴이 구겨졌다. 솔직히 몸만 좋고 나이가 좀 어릴 뿐,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니까. 지민의 애인이라거나 지민의 피앙세가 되기엔 가진게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마침 옆에 있는 일명 피앙세는 엄청난 재력과 능력, 외모까지 가진 사람이었으니 그러고 싶지 않아도 비교가 되었다. 그는 이걸로 물러나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는 떠나려는 듯 재킷을 들었다.

그는 나가면서 기대하라고 말했다.


지민은 한시름 덜었으니 팔짱을 풀고는 태형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태형은 괜찮냐고 물었다. 그러게 왜 저런 남자를 만났냐고 잔소리까지 장착했다. 지민은 뭐 지나가는 사람이었다고, 가벼운 사이에 불과했다고 말했지만 그가 내뱉은 마지막 말이 영 찝찝했다. 그래도 지민이 자신에게 귀여운 애칭도 부르고, 애교까지 부려대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으니 그 남자는 용서하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에 본인이 직접 세레니테까지 행차한 이유도 잊어버린 태형이었다.


그냥 그렇게 한바탕 소동일 줄 알았는데 그 여파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지민이 고마운 마음에 태형에게 밥을 사고, 나름 또 즐거운 이야기들을 나누며 각자 집으로 돌아갔는데 온갖 찌라시를 퍼다 나르는 인터넷뉴스에 엄청난 사진이 떠버렸다.



[세레니테의 악동 '지민' 나체 사진 유출]

 


잘 준비까지 다 마친 태형이 침대에 누운 순간에 비서에게 연락이 왔고, 비서의 입에서 나온 내용은 꽤나 충격이었다. 나체 사진이라니 이건 또 무슨 얘기야... 태형이 너무 놀라서 멍하니 있다가 급히 지민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었지만 그의 휴대폰 전원은 꺼져있었다.



짐른은 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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