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ryoshka - Sacred Play Secret Place


*수영부 카츠키×ts이즈쿠

 *개성 없는 현대 고등학교 AU.

 *리퀘박스, 유냉님 리퀘.



 '당신의 첫 키스는 어땠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사람들은 으레 황홀한 기억을 되짚어 답을 할 테다. 봄의 향기를 훔쳐 흩날리는 연분홍빛 꽃잎과 그 틈에 선 두 사람. 달달 떨리는 손으로 상대의 옷깃을 꽉 그러쥐던 설렘과, 서로의 여린 살이 맞닿던 순간의 향긋한 부드러움.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견디는 심장이 얼마나 팔딱대며 낯설게 박동했는지. 제 첫 키스는 그리 아름다웠다 말을 마친 후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웃음을 애틋하게 지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찬란한 추억이란 거다.


 그러나 카츠키에게 있어 첫 키스란, 절대 황홀하게 되짚어볼 추억이 아니었기에 굳이 스스로 기억을 되짚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연분홍빛 추억은 개뿔. 낯이 홧홧하게 달궈지는 흑역사에 가깝다. 그러니 혹시라도 떠오르려 할 땐 머리를 휙휙 저어 떨쳐버리는 것이 현명했다.

 '캇쨩.'
 '.... 왜.'

 그래. 이렇게 굳이 떠올려봤자,

 "악!!! 씨발!!!!!"
 "흐억!!! 뭐야!!! 왜!!!!"

 씨발, 진짜. 쪽팔려 뒤지겠다고.

 느닷없는 욕과 함께 락커에 주먹을 메다꽂는 카츠키에, 소스라치게 놀란 키리시마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카츠키는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를 깡그리 무시하며 축축하게 젖은 타올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팽개치곤 탈의실을 나섰다. 남겨진 키리시마는 아직 놀라 쿵쾅대는 가슴을 꼭 부여잡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미친 새끼."




* * *



 덜컹거리는 지하철 문에 몸을 기댔다. 퇴근 시간을 넘긴 애매한 시간인지라 빈 자리야 꽤 있었지만 그다지 앉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한산한 지하철 안은 철로와 바퀴가 이따금씩 내는 마찰음을 제외하면 조용했다. 내다본 창밖으로 발간 해가 느릿하게 몸을 태웠다. 아마 해는 집 근처 역에 도착할 즈음 거의 모습을 감출 것이다. 별거 없는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나누며 어슴푸레하게 변한 길을 타박타박 걷고, 갈림길에서 대강 가벼운 인사를 한 후 제집으로 발을 튼다. 이건 카츠키와 이즈쿠가 꽤 오랜 시간 함께 해온 하루의 마무리였다. 그래. 그랬는데,

 "멋대로 가버리냐. 의리 없는 기집애."

 애꿎은 입술 끝을 잘근잘근 씹으며 대충 쑤셔 넣었던 핸드폰을 꺼냈다. 역시나, 뻔하게도 기대했던 연락은 단 한 통도 오지 않았다. 쌓인 몇 통의 메시지를 깨끗이 무시한 카츠키는 손바닥만 한 기계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즈쿠와 말을 섞지 않은지 벌써 사흘이 지났다. 기억이 희미한 시절부터 늘 함께했던 둘에겐 전에 없던 일이다.

 '친구끼린 키스 안 해.'

 그런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정말 순수한 의미의 친구라면, 내킬 때마다 몸을 끌어안고 입술을 맞대는 행위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저와 이즈쿠의 사이를 단지 소꿉친구라 포장했던 것은 비겁한 변명에 불과했다.

 용기 내어 낯뜨거운 기억을 되짚어 보자면, 첫 시작은 중학교 3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던 것 같다. 겨울 날씨는 얼음처럼 차갑게 맑았고, 말을 할 때마다 입김이 새하얗게 흘렀다. 늘 다니던 익숙한 하굣길, 짙은 색의 도톰한 목도리를 칭칭 감은 이즈쿠는 말없이 카츠키와 나란히 발을 맞춰 걸었다. 평소엔 먼저 말을 걸지 않아도 잘만 조잘대던 녀석이 어쩐지 그날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혹시 어디가 아프기라도 한가 싶던 참에, 줄곧 조용하던 이즈쿠가 카츠키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캇쨩."
 "왜."
 "으음… 이런 걸 묻는 건 좀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뭔데."
 "아, 싫으면 대답 안 해도 되긴 하는데....!"
 "씨발, 빙빙 돌리지 말고 그냥 말해."
 ".... 키스해본 적 있어?"

 지금 저게 저 녀석 입에서 나온 소리가 맞나? 완전히 벙쪄 걸음을 멈춘 카츠키와는 달리 이즈쿠는 비교적 태연한 얼굴로 카츠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고? 혹여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어 되묻자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카츠키의 귀에 똑똑히 되돌아왔다. 캇쨩은 키스해본 적 있냐구.

 "하, 그건 왜?"
 "내일 사와베 군이 데이트를 하재."

 조금 전엔 뒤통수를 후려맞은 기분이었다면, 이번엔 가슴이 묵직하게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사와베는 아마 저희 반 반장을 말하는 것일 테다. 단정하고 공부도 곧잘 해 주변의 평판이 제법 좋았고, 카츠키와도 마주치면 가벼운 인사 정도는 하는 사이였다. 그 새끼가 이즈쿠를 좋아했던가? 언제부터? 연달아 터지는 둔탁한 충격에 뒷골이 지끈댔다.

 "근데?"
 "친구들이 그랬어. 사와베 군이 날 좋아하니까, 우리가 키스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
 "그래서 만약에 하게 된다면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어."

 캇쨩은 알아?

 그 말에 입을 맞춘 것은 순전히 충동이었다. 치아가 달각대며 맞물리는 어설픈 키스는 성급했고, 쪽팔릴 정도로 형편없었다. 겨울 공기에 차갑게 얼었던 입술의 온도가 조금 올랐을 즈음 카츠키는 얼굴을 떼어냈다. 그러자 발갛게 달아오른 이즈쿠의 입매가 묘한 호선을 그렸다.

 '아, 예쁘다.'

 사실 어렴풋이 이즈쿠를 예쁘다고 생각한 건 처음이 아닐지도 몰랐지만, 명확한 문장이 머릿속을 선명하게 메운 건 확실히 처음이었다. 하지만 핑크빛 기류도 잠시, 수줍은 얼굴로 새붉은 입술을 연 이즈쿠는, 카츠키에게 두고두고 수치심을 불러일으킬 트라우마를 선사했다.

 "캇쨩."
 ".... 왜."
 "캇쨩도.... 처음이구나?"

 캇쨩도 못하는 게 있을 줄 몰랐어.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 끝을 배배 꼬며 웅얼댄 이즈쿠는 상대의 자존심을 처참하게 박살 내곤 멀거니 선 카츠키를 지나쳐 총총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 내가 그렇게 형편없었단 거야? 부아가 들끓었지만 부정할 순 없었다. 이즈쿠의 말마따나 정말로 처음이었으니까. 씨발, 그걸 처음부터 잘 하면 오히려 이상한 거라고! 뒤늦게 이즈쿠가 걸어간 길을 향해 소리쳤지만 이미 인적 없이 휑한 길엔 제 변명을 들어줄 사람 따윈 없었다.

 그 뒤로도 카츠키는 종종 이즈쿠와 키스했다.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다시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하게 해주겠다는 오기가 뻗치기도 했고, 그냥 하고 싶은 날도 있었다. 키스는 점점 능숙해졌다. 혀를 매끄럽게 움직일 줄 알게 되자 서로의 치아가 미숙하게 부딪혀 덜그럭대는 사고는 생기지 않았고, 숨을 쉴 타이밍을 알게 되자 모자란 호흡에 머리가 핑 도는 일도 사라졌다. 방황하며 주먹만 꽉 쥐던 이즈쿠의 손은 언젠가부터 카츠키의 어깨를 차분히 짚었고, 팔을 들어 목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둘은 아무도 모를, 소꿉친구의 정상궤도에서 벗어난 일탈을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뀔 동안 즐겼다.

 그날 이즈쿠가 데이트에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처음 키스를 한 날로부터 거의 한 달이 넘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반 아이들이 떠들어대는 말을 우연히 들은 카츠키의 표정에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묻어났다. 흡사 애써 불문했던 일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달은 사람처럼.

 네가 원하는 우리 사이의 정의는 도대체 뭘까.

 사실은 알고 있다. 카츠키에게 있어 이즈쿠는 알기 쉬운 사람이었으니. 또한 그것은 역으로도 마찬가지일 테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우리는 그런 사이니까.

 지금 가슴이 울렁대는 건 지하철 문에 몸을 기댄 탓일까. 새파란 물결이 번지는 수영장에 담근 마음이 사정없이 일렁였듯, 이것 역시 그저 가슴이 덜컹대는 우연인 걸까.

 답을 택하기에 앞서, 평소처럼 발을 맞춰 함께 걷는 상상을 해본다. 썩 나쁘지 않은 그림이었다.




+)덧붙여서 쓰고 마치려던 게 세 편으로 나뉘었어요...(?)

히로아카 연성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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