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렸을때 뉴트는 자신이 귀머거리가 된건 아닐까 싶었다. 그 정도로 고요한 사막이었다. 한참 후에 바람이 한줄기 스쳐지나갔고, 모래가 움직이는 소리에 뉴트는 그곳이 그저 조용한것일뿐이란걸 알았다. 어째서 여기 이렇게 누워있었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려하니 머리가 욱씬대고 울렸다. 손을 움직여 뒷통수를 만져보자 축축한것이 느껴졌다. 보지 않아도 그것이 피라는건 알 수 있었다. 피를 흘리며 사막에 쓰러진 남자.
소설의 도입부같다는 생각을 하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것은 저녁거리를 사서 차로 향하던 것이다. 아마도 거기서 강도를 당했던 모양이었다. 머리에 피를 흘리며 꼼짝을 않는 뉴트가 죽었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죽이려던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뉴트는 사막 한가운데에 아무것도 없이 서있었다.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대로라면 죽을것이 뻔한데 그 와중에도 사막의 밤하늘은 아찔할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냥 여기서 죽어도 별 후회는 없을것 같았다.
그렇다고 정말 죽을 생각은 아니었기때문에 뉴트는 달과 별이 뜬 위치를 확인했다. 대충 어느쪽으로 가면 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별에 관심이 많던게 이런식으로 도움이 되다니, 사람일 알 수 없는거라고 허탈하게 웃으며 뉴트는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정말 사막 깊은곳까지 와서 버려둔건 아니겠지. 어느정도 희망은 있을지도 모른다. 걷지 않으면 그 희망마저 버리는 일이기 때문에 한쪽 다리를 잘면서도 뉴트는 계속 걸었다. 꼭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오로지 모래의 산 뿐이다. 정말 죽을지도. 그래도 정말 사막 깊은곳까지 와서 버려둔건 아니겠지. 어느정도 희망은 있을지도 모른다. 걷지 않으면 그 희망마저 버리는 일이기 때문에 한쪽 다리를 잘면서도 뉴트는 계속 걸었다. 꼭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오로지 모래의 산 뿐이다. 정말 죽을지도. 끔찍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그거고, 일단은 움직여야한다. 사람은 물을 마시지 않으면 삼일을 견딜 수 없었다. 이렇게 건조한 곳이라면 이틀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아. 차라리 기절한 채로 말라죽는게 편했을지도. 눈을 떠버린 자신이 조금은 원망스러워졌다.
뉴트는 해가 쨍한 오후에는 입고있던 옷으로 그늘을 만들어 견뎠고 저녁이 되면 걸었다. 겨우 하루가 지나갔는데 이미 한계였다. 입술이 쩍쩍 갈라지는건 그렇다쳐도 까끌까끌한 모래를 삼키는듯한 목 상태는 괴로울정도였다. 밤을 꼬박 걸어도 빛은 볼 수 없었고 오로지 밤하늘 별만이 반짝일 뿐이다. 이 모든게 허무했다. 결국은 여기서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어버리는걸까? 이럴줄 알았다면 좀 더 놀걸. 일만했던 지난날이 아쉽다. 밝은 빛이 뜨는 것을 보며 뉴트는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더 걸을 힘도 없었다. 그냥 잠을 자고 싶었다. 뉴트는 몰려드는 수마에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솔직히 말해서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번에야말로 사후세계에서 깨어난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사후세계가 이렇게 생활감 있는 곳일까? 뉴트는 제 시야에 보이는 낡은 천막을 보며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어릴적 교과서에서나 봤던 몽골인의 천막 같은 모습이었다. 바람이 살랑거리는, 그런 풍경.

"***?"

그 때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낮지도, 그렇다고 소년같지도 않은 목소리. 뉴트는 부스스 몸을 일으키려다 온몸이 욱씬거리는통에 그만 두었다. 고개만 겨우 움직여보니 웬 동양인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천막은 몽골인의 그것인데, 남자의 차림새는 지나치게 21세기였다.

"****. ***?"

그러나 뉴트는 남자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딘가 외국의 언어였다.

"저기... 뭐라고 하는건지 모르겠는데. 당신이 날 살려준거야?"

뉴트는 뉴트대로 말을 해 보았지만 이번엔 남자의 얼굴 한가득 물음표가 떠올랐다. 낭패였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 이름이 뭐야? 나는 뉴트. 뉴, 트."

뉴트는 저를 살려준 남자의 이름이라도 알고싶어 제 이름을 댔다. 반복하는 뉴트, 라는 단어에 남자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무언가 깨달았는지 작게 아, 하는 소리를 냈다.

"뉴트."
"맞아! 뉴트. 당신은?"

뉴트는 자신을 가리키며 이름을 한번 읊고, 손가락을 옮겨 남자를 가리켰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 ** 민호. 민호."
"미..눠?"
"**. 민.호."
"밍.호우."

남자는 잠깐 눈을 찌푸렸다 이내 웃어버렸다. 보조개가 푹 파인 웃음이었다. 아까와는 영 딴판의 표정에 뉴트도 웃어버렸다.
민호는 일주일이나 뉴트를 침대 밖으로 나서지 못하게 했다. 좀이 쑤셔서 죽을것 같았지만 정성스럽게 간호하는 민호의 얼굴을 보고있으면 조금 더 응석을 부리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응석이 많은 편은 아닌데 왜일까. 아마 민호가 단단해 보였기 때문일터다. 뉴트는 일주일동안 간단한 단어를 배웠다. 예를 들자면 물, 배고파, 화장실, 아니, 응. 그리고 민호. 가장 처음 배운 민호의 말. 대부분의 말은 여전히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생활이 불가능한것은 아니었다.
겨우 침상에서 일어나자 민호는 뉴트를 바깥으로 안내했다. 기절했던 곳은 사막이었는데, 눈에 보이는 곳은 온통 풀과 꽃 천지였다. 자신을 어떻게 찾았느냐고 묻고싶었지만 간단한 대화조차 통하지 않는 사이였다. 그런 어려운 말을 물을 수 있을리가 없었다. 질문을 하는 대신 뉴트는 천막을 주섬주섬 분해하는 민호의 곁에서 눈동냥으로 민호를 도왔다. 어쩌면 도왔다는건 뉴트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뉴트가 무언가에 손이라도 댈라치면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던 민호가 무언가 말을 뱉었다. 알아들을 수 있는건 아니, 라는 민호의 말과 no 라는 뉴트의 언어 뿐이었다. 결국 잔뜩 뿔이 난 민호가 짜증스러운 손으로 뉴트의 손을 찰싹 내리치곤 저쪽에 가있으라는 듯 말 옆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도와주고 싶은데."
"****, ***. 안 돼."

제법 단호한 거절이었다. 뉴트는 시무룩하게 말 곁에 가 섰다. 말의 맑은 눈동자가 뉴트를 바라보더니 한번 길게 울었다. 괜찮다고 달래주는 것인지 아니면 바보같다고 놀리는 것인지. 동물의 언어를 알 리 없는 뉴트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뉴트의 도움을 빙자한 방해가 사라지자 민호는 익숙한 손길로 빠르게 천막을 정리했다. 그렇게 커다래보이던 것이 순식간에 접혀버리는걸 보고 뉴트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대단하다, 민호."
"***."

뭐라 답한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뿌듯해보이는 표정이 잘난척을 하는것 같아 뉴트는 웃었다.

그날 저녁엔 야영을 해야했다. 다시 천막을 펼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는것을 보면 아마도 잠시 밤을 지새고 다시 길을 떠날 생각인것 같았다. 민호는 작게 불을 피우고 말에게 물을 나누어주었다. 문득 어디서 물을 찾아온 것일까 궁금했지만 어차피 답을 들을 수 있을 것도 아니었다.

“너는 어쩌다 여기서 살게 된거야?”
“***, ****. *****.”
“나는 집에 갈 수 있을까?”
“******.”
“하긴 서로 대화도 안되는데.”
“***.”

민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뉴트는 민호가 분명히 무언가 욕설같은 것을 내뱉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좁혀진 미간이나 툭, 뱉어버린 말이 그랬다. 그래도 그 욕설이 조금은 다정한 목소리를 하고 있는것을 보아 나름 친밀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통하지 않는 말을 계속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두사람 모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적어도 뉴트는 그랬다. 민호도 계속해서 무어라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작게 타오르던 불이 생명을 다해갈 때 쯤에는 작게 뭉친 이불더미로 만든 베개를 베고 누워있었다. 누워있다기보다는 베개에 반쯤 기대어 있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잠에 취해 뉴트는 ‘somewhere only we know’를 흥얼거렸다. 갑자기 떠오른 노래였지만 가장 어울리는 노래이기도 했다. 민호가 조용히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면서 뉴트는 잠의 신을 뒤따랐다.

1,2차 글쟁이 호박곰입니다 ㅇ_ㅅㅇ)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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