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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 경이 소리치고 사라진지 일주일이 지났다. 리드 경은 자신의 본분을 잊은 건지 호위도 하지 않고 내 방 근처로 나타나지도 않았다. 침대에 누워만 있는 나는 당연히 리드 경의 털끝 하나도 볼 수 없었다. 적반하장으로 소리치고 사라진 괘씸한 리드 경을 나도 다시 찾고 싶지 않았지만! 그 미모... 너무 탐난다.!

 

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아름답다면 종족이고 성별이고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았다. 너무 신경 쓰지 않아서 몇 번은 기혼자들을 건드린 적도 있다. 아아..그런 표정 짓지 마라 그래도 나름의 철학이 있어서 임자 있는 자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주의였지만 그들이 내 매력에 빠져서 자기들이 기혼인 걸 숨기고 내게 접근한 거니까.

이 때 그들의 배우자들이 나를 죽이려고 덤벼들었었다. 물론 그들이 아무리 나를 죽이려고 해도 천하제일 검인 나를 죽일 수는 없었다. 오히려 내 반격으로 그들이 보낸 자객과 몇몇의 가문이 몰락 당하는 참사를 겪었다.

 

결론은 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니 리드 경을 꼭 내 걸로 만들겠다는 소리다! 미모의 실력 있는 기사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니 날 찾아오지 않는 리드 경을 꼬시기 위해 내가 직접 그에게 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일주일을 열심히 재활훈련을 한 결과 현재 엠마의 부축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걸어 다닐 수 있는 상태까지 발전했다.

 

“로즈님 훌륭하세요. 드디어 걸으실 수 있게 됐어요!”

 

엠마는 곧 울 것만 같은 얼굴로 내 걸음마를 축하해 주었다. 꼭 처음으로 걷는 자기 자식을 보고 감격하는 부모 같은 표정이었다. 엠마는 좀 오버하는 경향은 있지만 나-정확히는 로즈황녀-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드디어 리드 경에게 갈 수 있겠구나.”

 

어서 가서 그 잘난 면상을 봐주겠어. 그리고 꼭 내 것으로 만들고 말겠다. 리드 경!

 

“자 리드 경에게 가자!”

 

나는 힘차게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물론 옆에서 엠마가 부축을 해주고 있는 한심한 꼴이었지만.

 

“근데 리드 경이 있는 곳은...로즈님이 가기에는 아직은 좀 먼데요.”

 

엠마가 말끝을 흐린다. 리드 경은 현재 이 궁전의 방 중에 한 곳에서 머물고 있다고 들었는데 같은 궁전 내의 방인데 뭘 저렇게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나의 안일한 생각은 잠시 후 무너졌다.

 

“흐억 흐억.. 엠마 리드 경 방이 헉.. 헉 어디라고?”

 

“여기서 1층 가장 구석 끝 방이에요. 그래서 제가 멀다고 했잖아요.”

 

아니 이렇게 멀 줄은 몰랐다. 분명 황궁에서 제일 작은 궁전이라고 해놓고서는 3층에 넓기는 얼마나 넓은지 복도 끝에서 끝까지 걸어서 내 걸음으로 15분이 넘게 걸린다. 방도 100개가 넘는다는데 이게 황궁에서 가장 작은 궁전이라니... 정말 다른 궁전들은 어떨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게다가 리드 경 방은 내 방과 멀기도 먼 곳에 위치해 있다. 내 방은 3층 중간 방 리드 경은 1층 가장 구석진 방. 호위기사라는 자가 방을 왜 이렇게 멀리 잡은 거야!

 

“리드 경에게 황녀님 방과 가까운 곳에 방을 잡는 게 어떠냐 했더니 완전 얼굴을 이렇게 험악하게 만들고서는 ‘싫습니다’라며 가장 구석진 방으로 가더라고요.”

 

엠마는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극혐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리드 경 흉내를 냈다. 엠마는 상당히 사실주의적인 표정 연기를 보여줬고, 얼마나 리얼했냐면 진짜 리드 경이 어떤 느낌으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뒤에 비치는 것만 같았다.

 

“리드 경, 내가 그렇게 싫은 건가?”

 

“솔직히 저희가 황궁에서 따돌림 당하고 있는데 잘나가던 기사님이 황궁의 왕따들이랑 어울리게 됐으니 기분이 퍽 좋진 않겠죠. 저야 이미 면역이 되었다지만 만약 일반 시종이었다면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거예요... 헙 죄송해요. 로즈님...”

 

나는 엠마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봐주었다. 엠마는 자기도 잘못 한 것을 알았는지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무능한 주인을 두면 그 사람을 따르는 아랫사람들도 무능한 취급을 받는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엠마의 발언은 경을 칠만큼 무례했다. 이번에는 걷느냐고 체력이 떨어져서 경을 칠 힘도 없지만 말이다.

엠마는 얼굴도 예쁘고, 나를 잘 따르고,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지만 저놈의 입이 문제다. 할 말 못 할 말 구별 못하고 하는 저놈의 입. 지금도 뭘 또 말하고 싶은지 움찔움찔 거린다. 나는 그녀가 또 허튼 소리를 하기 전에 리드 경의 방으로 후다닥 달렸다. 그래봤자 평범한 사람의 속도 정도지만.

 

똑똑똑

 

“리드 경 계세요~”

 

똑똑똑

 

“리드 경~”

 

열심히 달려 리드 경의 방에 도착했지만 엠마가 아무리 문에 노크를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방에 없는 건가? 지금은 제법 이른 아침이다. 이런 시간에 그는 어디를 간 것일까? 내 호위무사가 내 호위도 안하면서 내 허락 없이 밖으로 잘도 쏘다니고 있다. 애초에 내 허락 없이 일주일동안 나타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말이다.

그 때 복도의 창문 밖으로 무언가 휘둘러질 때 들리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는 검을 휘두를 때 나는 검과 공기의 마찰로 나는 소리이다. 누군가가 검술 연습을 하고 있다. 나는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그곳에는 리드 경이 정원에서 상의를 탈의 한 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얼마나 검을 휘둘렀는지 근육질의 몸에는 땀이 흠뻑 흐르고 있었다.

 

“츄릅.. 아이고.. 나도 모르게.”

 

나는 아름다운 리드 경의 몸을 보며 나도 모르게 흐르는 침을 스윽 닦았다. 정말 좋은 몸이다. 탄탄한 가슴! 탄탄한 팔! 탄탄한 복근!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균형이 잘 잡혀져 있다. 어느 곳 하나 과하지 않다. 정말 잘 빠진 몸.. 이 아니라 잘 훈련된 몸이었다.

 

“츄릅... 어머어머! 저도 참 주책이.. 츄릅..”

 

옆에서 엠마도 같이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남자인 나도 이렇게 환장하는 몸인데 여자인 엠마는 어찌 환장하지 않으리. 아차. 지금은 나도 여자지. 가끔 내가 여자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까먹는다.

 

“근데 리드 경 매일같이 이렇게 연습하는 걸까요? 리드 경은 실력만으로는 황실 내에 최고의 기사라고 들었었는데. 이제 연습 적당히 해도 되는 거 아닌가?”

 

“매일 관리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검이라고 해도 무뎌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실력 좋은 검사라고 할지라도 훈련을 게을리 하면 결국 실력은 퇴화하고 말지. 리드 경처럼 저렇게 고수가 되어도 검을 게을리 하지 않고 검을 즐겨야만 진정한 고수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검의 고수로서 리드 경에게 동질감이 느껴졌다. 나도 천하제일 검이 되기 위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지옥 같은 연습을 해왔었다. 매우 힘들고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내 손에 쥐어져있던 검이 나의 심장을 뛰게 해주었다. 검을 잡을 때마다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었다. 그때 내가 검을 쥐었을 때의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 찬 눈빛. 그 눈빛을 지금의 리드 경 또한 하고 있었다.

 

“푸훗.”

 

내가 리드 경과의 동질감을 느끼고 있을 때 옆에서 엠마가 비웃는 듯 한 웃음소리를 냈다. 뭐지? 기분이 나쁘군.

 

“엠마. 왜 웃는거냐?”

 

내 말에 엠마는 키득키득거리며 계속 쪼갠다. 점점 기분이 더 언짢아진다. 엠마를 째릿하고 쳐다보자 엠마가 웃음기를 머금은 말투로 이야기 했다.

 

“아니~ 황녀님은 태어나서 검 같은 거 한 번도 잡아 본 적 없으시면서, 꼭 검을 수십 년 동안 다뤘던 은둔고수 같은 말투로 말하시니까 웃겨서요. 킥킥.”

 

아아.. 엠마 눈에는 검에 검자도 모르는 나약한 황녀님이 아는 척을 하는 것처럼 보였겠군. 속은 진짜 검을 수십 년 동안 다뤘던 천하제일 검이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엠마가 저렇게 웃을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사실 검사로서 검에 대해 모른다고 무시당하는 건 썩 기분이 좋지 않다. 그렇다면 내 실력을 보여주도록 하지.

 

“리드 경.”

 

내 부름에 훈련을 하던 리드 경은 우리 쪽을 쳐다보았다. 우리를 확인하고서는 인상을 조금 쓰더니 고개를 꾸벅하고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황녀님.”

 

인사를 하기는 하는데 웬 건달 같은 인사였다. 황녀를 향한 취급은 둘째치고 기사가 저래도 돼? 저래서야 황실기사가 아니라 동네 건달인 줄 알겠다. 뭐 무례함은 저 멀리 미뤄두고 나는 창문을 뛰어넘어 그에게로 가려고 했다. 했는데...

 

“엠마... 도와줘.”

 

전혀 뛰어 넘을 수가 없다. 창틀은 가슴 아래까지 오는 높이였는데 멋지게 창틀을 휙 하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실제로는 다리 한 짝도 못 올리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엠마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는데 엠마도 힘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그런지 엠마는 아래에서 나를 받치며 낑낑거리고 나는 올라가려고 낑낑 거리는 추한 장면이 되어버렸다.

 

“로즈님~ 꼭 여기로 넘어가셔야겠어요? 여기 창틀은 너무 높아요~”

 

이런 추한 자세로 넘어가야 하는 게 나도 쪽팔리지만 여길 못 넘고 돌아가는 것도 쪽팔린다. 걍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넘어가는 게 더 낫다.

 

그 때 엠마와 둘이 창틀을 넘어가려 씨름을 하고 있던 모습을 리드 경이 보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걸 하려는 건 아니겠지?

 

“리드 경! 오지 마! 설마 그거 하려는 거 아니지? 그거 하지 마! 명령이다! 나 혼자 넘어갈 거다!”

 

하지만 리드 경은 내 명령에도 불구하고 굳이 나에게 다가와 창문에서 낑낑거리는 내 양 팔에 손을 끼워 넣더니 번쩍하고 들어올린다. 그리고 정원 쪽으로 나를 사뿐히 내려놓았다.

 

아아... 예상했던 일이 일어나버렸다. 나는 멋지게 창틀을 뛰어넘어 리드 경에게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결국 창문하나 넘지 못해 리드 경이 나를 들어 올려 창문을 넘어왔다. 그것도 아주 가뿐하게. 깃털 같다는 듯이 리드 경이 나를 들어 올렸다.

둘에게 ‘나는 이렇게 멋지오!’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오히려 나약해 빠진 황녀라는 인식만 더욱 심어주었다. 나는 너무 창피해 벽에 머리를 박고 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여기는 무슨 일이십니까. 로즈 황녀님?”

 

나는 벽에 머리를 박은 채로 흘긋 리드 경을 쳐다봤다.

 

“내 궁전에 내가 돌아다니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자네야 말로 내 호위는 안하고 여기서 뭐하고 있었지?”


그러자 리드 경은 어깨를 으쓱하고 뻔뻔스런 표정을 지었다.

 

“황녀님께서 저를 황족모독죄로 기사작위를 뺏으시려는 줄 알고 그 때까지 알아서 근신 중이었습니다.”

 

근신은 개뿔. 애초에 나는 근신이라는 말도 한 적 없고 자기 혼자 화내고 자기 스스로 근신한 거면서 말은 잘한다. 애초에 근신한다는 놈이 여기서 검이나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 근신했다는 것에 어불성설이다. 리드경은 그냥 나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리드 경은 내가 우스운가?”

 

내 말에 리드 경의 눈썹이 으쓱한다. 그리고서는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본다.

 

“솔직히 우습죠. 황궁에서 황녀님에 대한 소문이 어떤 줄 아십니까? 아무런 능력도 없는 허울뿐인 황족. 황제폐하조차 존재 유무를 잊고 계실 정도로 존재감 없고, 게다가 할 줄 아는 것 하나 없으며 자기 몸 하나 간수 하지 못하는 허약한 몸의 황궁의 금고만 축내는 골칫덩이. 이게 로즈 황녀 당신에 대한 세간의 인식입니다.”

 

알고 있던 이야기지만 나를 무시하는 자의 입에서 들으니 기분이 더욱 거지같다. 하지만 그냥 듣고만 있을 수는 없지.

 

“그럼 그런 쓸모없는 황녀 밑에서 호위무사나 하고 있는 자네는 더욱 쓸모없다고 말하는 꼴이 됐군.”

 

내 말에 리드 경의 눈빛에서 불꽃이 튀었다. 물론 나는 그 눈빛을 불꽃 튀는 눈으로 째려봐 주었다. 얼굴 좋고 실력도 좋지만 꼬일 때로 잔뜩 꼬인 인간이다. 나는 리드 경과의 신경전에 피식하고 웃었다. 그리고 그를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리드 경. 자네에게 제안을 하나 하지.”

 

리드 경 당신 더 이상 나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지. 당신을 꼭 내 발 닦개로... 아니 내 충성스러운 부하로 만들어주지! 부하로 만들어서 이런저런.. 아니 자꾸 속마음이 나오는군. 어쨌든 리드 경 당신에게 내 위엄을 보여주겠다! 실력으로 말이야!

 

“나와 대결을 하자! 물론 검으로!”

 

천하제일 검의 실력을 보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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