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 죽겠다…….


아, 아니다. 죽는 것은 싫으니까. 다시 말하자면 딱, 기절하기 직전까지 아팠다. 하나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어깻죽지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미 굳어진 피와 새로 솟아오르는 피. 길쭉한 상처는 폭은 좁았으나 깊이가 꽤 깊었다. 보급병에게서 받아온 수통을 들고 한숨을 쉬었다. 자폭 직후, 갑자기 찾아든 성장통 때문에 반사적으로 굳어진 몸이 제 때 반응하지 못했다. 스물 둘인데도 여전히 키가 자란다는게 이젠 놀랍지 않았다.

지친 하나는 임시 막사 근처의 바위에 걸터 앉았다. 진영이 소란스러웠다. 여기 저기를 바쁘게 오가는 상처투성이의 군인들. 반대로 저기 한 켠의, 일렬로 눕혀지고 있는 군인들. …그래, 어쨌든 멀쩡히 두 다리로 서 있을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무리한 작전인건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강행한 것은 여기가 전선의 마지노선이었기 때문이다. 여기를 빼앗기면 물자 공급이 힘들었다. 탈론도 그것을 알았는지, 평소보다 격렬했던 전투는 M.E.K.A가 파견한 의무관들이 전부 전사하는 참사를 빚었다. 시이발, 후방에서 치고 들어오는 놈들이 있을 줄 어떻게 아냐고. 전형적인 게릴라 전술에 당한 게 어이가 없었다. 똑바로 일할 것이지. 괜시리 전략부를 원망했다.

M.E.K.A가 처음부터 탈론에 신경을 쓴 것은 아니었다. 창설 목적은 원래 기계인 옴닉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대인 전투가 아니라. 그러나 상황은 작년 말, 하나가 갓 소위를 달았을 때 급변했다. 해외에서 오버워치를 상대로 깔작이던, 탈론이라는 테러리스트들의 국내 유입이 그 원인이었다. 도시 한복판에서의 격전은 국민들을 불안에 밀어 넣었다.

유언비어가 삽시간에 펴져 나갔다. 그에 정부는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맞불을 놓았다. M.E.K.A를 오버워치에 파견해 탈론과의 전쟁에 참전하겠다. 대신 오버워치도 일정 부분 국가 수호에 협력해줄 것. 물밑에서 이런저런 부가 조약에 대한 거래가 이루어졌고, 설마-하던 파견은 다음 해 봄이 다 가기 전에 성사되었다.

하나는 그렇게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세계 각지로 파견을 나갔다. 굳이 제가 차출된 이유는 가끔씩 한국으로 돌아갈 때마다 느낄 수 있었다. 공항에 깔린 기자들 앞에서 장관과 경례를 주고 받는 연출. 이러다 죽으면 순직이라는 허울만 좋은 감투를 씌우겠지.

그건 진짜…뭣 같겠네.

하나가 찢어진 전투 슈트의 어깨 부분을 벌렸다. 검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상처에 대고 물을 뿌렸다. 날카로운 통증이 몸을 꿰뚫었다. 또다시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따지자면 M.E.K.A에 입대한 것도 온전한 자원은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집에 들어선 검은 양복과 군복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하나를 두고 부모님은 그들과 격렬한 언쟁을 벌였다. 고성이 오갔으나 하나는 결국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겉으로는 프로게이머로 전향한다는 목적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때부터 훈련을 받았다.

스물이 되자마자 입대 제의가 정식으로 들어왔다. …거절하지 못했다. 거의 반 정도는 강제 임관이었다.

집, 부모, 친구. 그 모두가 족쇄가 되었다. 저 하나 살자고 전부를 죽일 순 없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하나, 그러니까 D.Va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을 저버릴 수도 없었고. 억지춘향으로 군인이 되었어도 하나의 심정은 그랬다. 언제더라, 이젠 못 보는 제 상관에게 털어놓은 심정이었다. 그 상관은 쓸데없이 착해빠진 새끼라며 시부럴 시부럴 그가 할 수 있는 욕은 다 했던 것 같다. 그 욕을 들으면서 어쩐지 실실 웃음이 새었던가…….

물이 비워진 수통을 탈탈 털어내는데 요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호송기들이 내려 앉는게 보였다. 벌써 착륙해 물자를 내리기 시작한 쪽도 있는 모양이었다. 오버워치의 지원이다. 의무관도 섞여 있겠지. 드디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수통을 세차게 털어냈다. 그때 타박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하나의 앞에서 멈추었다.

"다쳤나요?"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하세요? 포스트를 구매하고 이어지는 내용을 감상해보세요.

  • 텍스트 7,630 공백 제외
70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