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차다못해 경박한 군악대의 연주 소리, 이어 들리는 세 번의 관악 소리, 그 직후의 열 일곱 발의 예포음. 그 중간에 서 있는 이는 그저 묵묵히 시선은 전방을 향한 채,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군인의 명예와 신념을 다하여 최고의 끝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바로 내가.


 내 가슴이 이리도 무거웠던가? 그간 노력해 왔던 결실이 나에게 묵직하게 남아 있다는 것을 부득불 느끼며 수십 번은 달았을 훈장과 휘장들을 머릿속으로 일일히 그 숫자들을 헤아리니 남모를 미소가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씰룩인다.


 내 어깨는 그간 꾸준한 단련이 없었다면 이미 무너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군인으로서 별 하나는 손아귀에 쥐고 가야지, 라며 입버릇처럼 이야기 했지. 그것이 나의 목표였지만 막상 그 별이 두 개, 세 개가 되니 남은 이해 못 할 부담감과 무게감에 더해 긍지 높은 성취감이 내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이 자리에서 그 누구보다도 나를 빛내고 있었다.


 그래. 내가 이 자리에 서 있기 위해 얼마나 쉼 없이 달려왔던가. 나 자신을 죽이며, 생각을 지우며, 보고도 못 본 척 하며 그렇게 군 생활이라는 마라톤을 뛰었지. 장병들의 우렁찬 박수를 받으며 의장대와 발 맞추어 단상 위에 우두커니 올라서면 정말로 이 상황은 연출도, 연습도 아닌 실제 상황이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사츠츠 중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전군의 경례를 받으며 나 또한 오른손을 눈썹 위에 날카롭게 가져다 놓으며, 칼 같은 각도로 손을 다시 허리 아래로 내린다. 귀에 스치지도 않는 고리타분한 참모장의 연설은 전쟁 영웅이니, 케론군의 충성스러운 역군이니, 명예로운 군인이니 하는 말로 나를 띄워올릴 뿐이었다. 그가 운행하는 비행기에 탑승해 쉼 없이 떠오르는 나의 자존감에 비해 나의 손은 미세하게, 그렇지만 나를 주시하고 있는 이 시선들 중 눈썰미 좋은 몇몇은 알아 챌 정도로. 기쁨과 섭섭함, 해방감과 허무함으로 떨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넘겨주는 마이크를 잡으며 오랜 기간 동안 내 밑에서 수고해 줘서 고맙다고, 내가 없더라도 케론성을 위해서라면 너희 하나쯤은 충분히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을 길러야만 한다고. 어디선가 한 번 쯤은 들어본 적 있음직한 이야기를 무미건조하게 내뱉으면 다시 한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나에게 쏟아진다.


 박수 한 번 받기 정말 쉽군,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으면 대장님의 탄력 없는 손가락이 내 가슴에 마지막 증표를 달고, 고개 숙이는 일 없이 군인답게. 마지막 경례를 그들에게 바치고 그렇게 나는 단상 아래로 내려온다.


 수많은 이들이 축하한다고 내 곁에 다가와 따뜻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지만 내 시선은 이미 그들에게는 향해 있지 않았다. 연거푸 찾아오는 이들을 정중하게 내치고 주위를 둘러보자면 정말로 익숙한, 그리고 이 자리에서 꼭 보고 싶었던 이들의 얼굴들이 보인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먼저 서로를 알아봐 주는 이는...



"사츠츠-!"



 말 뿐으로, 듣기 좋은 이야기 뿐으로 나에게 감언이설을 불어넣던 이들과는 달리 나를 진심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해주던 그들은 역시 오늘도 이 좋은 자리에 참석해 주겠지. 하는 나의 생각은 어김없이 틀리지 않았다. 곱게 나이를 먹은 츠나나와 마음으로 웃어주는 자히라는 번갈아가면서 나를 껴안으며 축하한다는 말을 끊임없이 내 귀로 흘렸다.



"뭐야 츠나. 너무 오랫만에 보는 거 아닌가? 어떻게 나 보다 더 보기 힘든 사람이 있나."


"알잖아. 나 요즘 여행 다니고 있는 거. 역시 군인이 좋긴 좋아~ 매달 꼬박꼬박 용돈도 넣어 주고. 풍족하지 않지많은 몇 개월에 한 번씩은 여행 다닐 돈은 생기니까~"



 옆을 돌아보면 자히라가 자신에겐 할 말이 없냐는 듯 빤히 나를 응시하고 있다. 하하, 풍선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 소리를 내며 그의 머리를 조심히 쓰다듬고 있자면 기분 좋다는 듯이 나에게 엉겨 온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보기 좋다는 둥 둘이 천생 연분이라는 둥 좀처럼 입을 다물지 않던 츠나나는 어느 새 휴대폰 카메라까지 꺼내 들곤 했다.



"히라한테도 할 말 많지. 얘 만큼 나한테 시달렸던 사람도 없을 거다."


"맞아요 중령님. 에휴~ 내 속 썩이는 건 중령님 밖에 없었지~ 그치만 별 달더니 사람이 달라지니까 나름 편했다구요~"


"어머 얘. 아직도 중령님이라고 부르니? 채팅에서만 그러는 줄 알았더니만... 하튼 사츠츠 너, 이제 할 일도 없으니까 애 좀 호강시켜 줘라. 나이 먹고 네 수발이나 들고 있는 거. 이제는 그만둬야지."


"어쭈. 간만에 명령이다? 너는 뭐, 어린 애들 가지고 노는 거 그만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런 이야기가 돌던데? 스웨터인지 뭔지 하는 곳에서 츠나나 너 때문에 진 빠져서 못 나오겠다는 남자애들이 그리 많다고. 힘이 남아 돌아서 좋겠수."



찰싹, 퍽. 등과 정강이를 자동차가 깔아 뭉갠 듯, 얼얼히 아프다. 분명히 피멍이 들었을 거다. 지독한 아픔에 눈 앞이 살짝 번쩍, 하고 나면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와 있다. 저 힘만 세고 무식한 년... 이라고 속으로 욕을 조금 하다 보면, 어느새 다른 이들은 일과를 위해 이곳 저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넓은 연병장에는 우리를 제외하면 몇 사람 남지 않았다.


 츠나나를 따라 조금 걷자, 그는 주차장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나름 깔끔하게 관리 된 중형 세단 앞에 서면 츠나나가 능숙한 운전으로 차를 빼 내고, 뒷 문을 열어 우리를 재촉한다. 자히라와 나는 뒷자석에 나란히 앉아 자동차의 미세한 떨림을 즐기며 차창을 열어 여느 때 보다도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슬며시 내 손을 잡아오는 자히라를 떼어내지 않고 초목들이 무수히 스쳐 지나가고 이내 다가올 선선한 가을의 바람을 맞으며 구름의 갯수를 세고 있자면 츠나나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노을이 예쁘지?"


"... 노을?"


"그래. ...노을이라는 거, 한 순간이더라. 노을이 떠오른 그 순간이 너무너무 예뻐서 내 손에 담아 보려고도, 눈 한번 껌뻑이지 않고 바라보기만 해도. 해가 저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거든. 사츠츠, 너라면 어떻게 할 거야? 내 황혼은 이미 어스름해져서 저 너머로 사라져 가고 있잖아.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만히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는 것 밖에 없어."



 글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결국 내가 달려온 길은 케론군 하나만을 보던 길이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가 이미 앞서 가 닦아놓은 도로였으니까. 새삼 생각 해 보면 츠나나도, 자히라도. 그들 또한 나 처럼 도로를 달리긴 했어도 샛길로 빠지기도, 지름길을 만들어 보기도. 혹은 도로를 부수기도 했었으니까.


 여유있는 예금과 달달이 들어오는 연금. 온전히 내 소유인 집과 자동차. 그 뿐이라면 모든게 완벽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여전히 완벽하다. 안정적인 나의 노후는 끝없는 밤이 찾아오더라도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래, 이 길을 달리는 동안 내가 지금처럼 단 한번이라도 하늘을 바라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하늘이 파랗다 라는 기본적인 학습된 명제만은 불변하지만 나는 그래서 잠깐이라도 멈추어 서서 그 명제의 참을 확인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 보았던 적이 있었을까?


"... 츠나나."


"왜?"


"너 답지 않게... 밥이나 먹으러 가자. 짜장면? 짬뽕? 뭐?"


"소고기요, 중령님."


 꼬옥 안기는 자히라의 허리께를 보듬으며 다시 차창을 올린다. 글쎄, 노을이라? 태양이 지고, 잊고 있던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고 있는데. 그건 황혼이 아니라 동이라고 하는 거다 츠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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