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에는 남이 버린 프로젝트를 주워 왔던 이야기를 풀었었죠. 오늘은 남이 버린 쓰레기를 주워온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A 기관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이야기에 앞서 설명해 드리자면 A는 지역의 동종업계 기관들과 경기지역 6개 기관 연합에 가입되어 있었습니다. 회원 기관으로는 A, B, 그리고 Z, Q 기관과 나머지 두 기관이 포함되어 있었죠. 팀장들끼리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정기회의가 있었고 이 기관들끼리는 업무상 왕래가 잦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업계는 그 안에서 한 다리만 건너도 아는 사람이 나올 정도로 좁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A 기관에서 B 기관으로 이직했을 때. 저도 모르는 사이에 두 기관 팀장들 사이에서 저에 대한 정보가 이미 공유되어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이 업계에 정이 뚝 떨어지게 된 계기이기도 하죠.



어쨌거나 모든 기관은 업무 특성상 항상 공간부족이라는 문제를 겪습니다. 아주 고질적인 과제라 A 기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기관마다 다르긴 하지만 매년 두 번 정도 일정 기간을 두고 대대적으로 자료를 정리합니다. A 기관 역시 여름철에 한 번, 겨울철에 한 번씩 자료를 정리했습니다.

대략 PC를 관리할 때 폴더정리를 하고 휴지통을 비우거나 디스크조각 모음을 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첫 시설부터 마지막 시설까지 자료 사이의 공간을 확보하고 잘못된 배열을 바로잡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용률이 떨어지거나 쓰지 않는 자료를 따로 빼두죠. 업계에선 이 작업을 '자료를 민다'라고 표현합니다.

이용률이 떨어지는(그렇다고 아예 이용하지 않는 것은 아닌) 자료는 별치공간. 사람 손을 전혀 타지 않는 자료는 보존공간으로 보냅니다. 내용이 완전히 똑같아 중복되거나 기관의 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 자료는 폐기까지 고려합니다. 단, 폐기는 최후의 최후까지 가서야 선택하는 방법이므로 대개는 별치공간이나 보존공간으로 보내 자료를 처리합니다.



A 기관은 매년 두 차례에 걸쳐 기관 내 모든 인력이 동원되어 자료를 미는 작업을 실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공간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별치공간이나 보존공간까지 자료로 꽉꽉 들어찼고 정말 아슬아슬한 한계까지 갔거든요.

부유한 재단은 이럴 때, 건물을 증축하거나 공간 확보를 위한 리모델링을 합니다. 하지만 A 기관은 당시 건물 자체가 30년이 넘어 노후된 공간이었고 재단의 재무상태도 불안정했습니다. 관장실도 물이 샜는데 하물며 다른 업무공간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같네요.

자료를 미는 것도 한계가 있다면, 다른 부서와 협력을 하여 보존서고를 옮기는 방안도 생각합니다. 아니면 정말로 폐기까지 가야 했죠. 하지만 A 기관의 당시 운영팀장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방법을 선택합니다.


아까 언급한 경기지역 6개 기관 연합 말인데요. 그 당시, 업무 연합에서 Q 기관은 기관의 시설을 모조리 바꾸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자연스레 기존까지 사용하던 낡은 시설들은 폐기해야 했습니다. A 기관 운영팀장은 여기에 주목합니다.

곧장 Q 기관에 연락합니다. 그쪽에서 버리는 설비들을 넘겨달라고요. 네, A 기관 운영팀장은 Q기관의 낡은 물품을 가져오기로 한 겁니다. 그것도 A 기관이 운송비를 부담하는 것으로 협의까지 했다며 자랑스럽게 팀원들에게 통보합니다.

운영팀장이 팀원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자신의 결정을 실행할 만큼 행동력이 빠른 인물이란 건 2년 만에 처음 알았습니다. 제 기억에 운영팀장은 평소엔 기관 운영보다는 대외적인 평판과 재단 내에서 자신이 기댈 위치와 안위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또 작은 것도 책임지기 싫어해 어떠한 결정도 쉽게 내리지 않으려고 하기도 했는데 말이죠. 이럴 땐 또 빛의 속도로 움직일 줄이야.


자료를 비치할 공간이 부족하니 테이블이나 의자 등 다른 시설물을 줄여 공간을 늘린다. 이 판단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A 기관은 재단의 도움도 바랄 수 없으니 예산이라도 아껴야 했겠죠. 그런데 굳이 Q 기관도 수명이 다했다고 판단해 폐기를 결정했던 물건들을 받아와야 했을까요?

물론 당시 지원팀 계약직 신분이던 제가 운영팀장 결정에 가타부타 말할 권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팀의 말단 직원인 저조차 의심하게 하는 행동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입사 동기였던 운영팀 계약직 친구의 한탄이 이어졌습니다.


대체 왜 쓰레기를 받아오는 건지 모르겠다고요. 당장 쓸 예산을 절약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라고요. 제 동기는 Q 기관에서 해당 시설물을 폐기하기로 했다면 응당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안전성이 가장 의심스럽다고 했고요. 지금은 돈을 아껴도 몇 년 뒤에 안전 문제가 생기면 지금보다 돈이 몇 배로 더 들지도 모른다는 걱정까지 든다고요.

동기뿐만 아니라 운영팀원들은 팀장의 결정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죠. 하지만 운영팀장은 대단한 뚝심으로 이를 추진합니다. 정말로 운송비까지 내서 Q 기관에서 버리려던 시설들을 A 기관에 배치합니다. 이로써 공간문제를 해결했다며 뿌듯해하던 운영팀장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분명 Q 기관에서 받아 올 때부터 휘청거리던 시설들이었습니다. 몇 년 안에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건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었을 겁니다. 제 딴에는 묘수를 냈다며 좋아했지만 둘도 없던 팀킬이었다는 것을 제발 좀 깨닫길 바라지만, 요원해 보입니다. 다시 생각해도 황당하기 짝이 없는 에피소드였네요.

쓰고 싶은 걸 쓰고, 만들고 싶은 걸 만듭니다

김단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