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You're my HERO

배우 다이치 X 배우 스가와라(72th 전력-주인공)



written by. GGyutizel







밖은 쏟아지는 팬들의 함성과 끊임없이 터지는 카메라 셔터 소리, 그리고 격양된 리포터들의 말소리에 시끌시끌했지만, 스가와라가 앉아있는 벤은 그저 고요했다. 이제 나가면 되는데 좌석에 가만히 앉아 물만 연신 들이켜는 그의 긴장감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 매니저도, 스타일리스트들도 그에게 말을 걸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몇 시까지 가면 된다고?”



“지금 들어가도 돼. 벌써 타가키 상은 도착했다고 기사 떴어.”



“그래? 그럼 나가야겠다. 어디 이상한 곳 없지?”



스가는 옆자리에 있는 스타일리스트에게 목을 쭉 빼며 물었다. 오는 도중에 살짝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살짝만 만져주고 나머지 메이크업이나 의상은 더 손대지 않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쉬었다. 구겨질 정도로 힘주어 쥐고 있던 페트병을 내려놓고 차 문을 열었다.







“각각 들어오는 배우들의 모습에 이곳, H 방송국 앞 취재 열기는 매우 뜨겁습니다! 네, 말씀드리는 순간, 올해 최고의 짝사랑 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스가와라 코우시 씨가 입장하고 있습니다!”



차에서 땅으로 발을 내디뎠다. 일직선으로 쭉 뻗어있는 레드카펫을 밟으며 걸어오는 스가와라의 모습은 평소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방송에 나오던 그와 전혀 달랐다. 5:5 가르마에 팬들이 ‘더듬이’라고 칭하는 위로 치솟은 머리카락은 어디 가고 7:3 가르마에 왁스로 멋스럽게 스타일링 한 그는 잘빠진 블랙 수트를 입고 있었는데 명치까지 내려오는 깃이 벨벳이라 카메라 셔터가 터질 때마다 빛에 반사되어 그를 더 밝게 만들었다. 레드카펫을 걸어오면서 자신의 이름을 외쳐주는 팬들에게 가볍게 팬서비스를 하며 안내에 따라 포토존에 섰다. 시상식에 오기 전, 거울 앞에서 수십번 연습한 미소와 포즈를 취하며 간단하게 마친 그는 기자들에게 가볍게 인사한 뒤, 다른 배우들이 있을 시상식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 스가!”



“선배님, 먼저 오셨습니까.”



스가와라가 출연한 드라마에서 주인공 아버지 역할로 나오셨던 선배님이 먼저 자리에 앉아 이제 막 회장으로 들어오는 그를 반겨주셨다. 늦어서 죄송하다는 스가와라의 사과에 그는 호쾌하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늙은이가 할 일이 없어 먼저 온 것을. 밖에 기자들 많더냐?”



“사진 찍히는데 눈도 못 뜨겠던데요?”



“허허허, 나이가 죄야. 늙으니까 아직도 눈앞에 흰점이 왔다갔다 한다니까.”



“늙으시긴요. 아직 젊고 멋지신데요.”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다가 자연스럽게 상 이야기로 넘어갔다. 이번 로맨스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을 짝사랑하지만, 그저 옆에서 지켜보고, 그녀가 힘들 때마다 도와주는 역할을 맡은 스가와라는 이 배역을 계기로 연기자로서 기반을 다지고, 인지도를 얻었으며, ‘국민 짝사랑 남’, ‘스윗남’등 많은 별명을 얻었었다. 대본 작가가 대사를 잘 쓴 것도 있지만, 절절한 연기와 달달한 목소리 덕분에 매회 짤이 생성되어 드라마가 끝날 때쯤에는 ‘스가어록’이라는 제목으로 동영상이 돌아다닐 정도였다. 데뷔 이래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지금이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이번 시상식에서 우수연기자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기쁨의 최고 절정이었다.



“선배님도 공로상에 노미네이트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공로상이라니. 최우수연기상 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이러니까 진짜 늙은이 같잖아.”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너야말로 우수연기상에 올랐다면서? 축하주는 언제 사는 거냐?”



“하하, 받지도 않았는데요?”



“후보 중에서 너 말고 받을 사람이 안 보이던데 무슨 소리야?”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말하는 선배의 말에 스가와라는 그저 하하, 웃을 뿐이었다. 받으면 좋겠지만 받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는데 뭐 어떤가. 상이야 받으면 좋지만, 본인이 좋아서 연기한 것이지 상을 받으려고 연기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같이 연기했던 동료들이 하나씩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들과도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터질 듯한 함성에 모두 고개를 들었다. 누구냐는 궁금증에 몇몇 사람들의 추측이 난무했지만 아무도 확신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상식장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올해 최고의 사극이라 일컫는 드라마의 주인공 남녀, 사와무라 다이치와 시라자키 나나미였다. 그들은 들어오면서 입구에서부터 동료 배우들과 인사와 축하를 주고받았다. 선배들과 먼저 인사를 나눈 다이치는 마지막으로 스가에게 눈을 돌렸다.



“여, 스가.”



“이제 왔냐?”



“차가 좀 많이 막혀서 말이야.”



가볍게 악수를 하고, 하이파이브한 뒤 지정석으로 돌아갔지만, 다이치는 스가와라를 지나가면서 그만 들리도록 작게 속삭였다. 오늘 유독 멋있네.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파트너 배우와 저 멀리 가버렸다. 같은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쉬워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아무도 보이지 않게 숨겨 얼른 메시지를 보냈다. 시상식을 시작한다는 소리에 모두 지정석에 앉았고,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진행자 두 명이 팔짱을 끼고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     *    *




시상식은 다른 방송국과 다를 것이 없었다. 신인상을 시작으로 아역상이 이어지고 중간중간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곁들어졌다. 동료 배우가 상을 받을 때는 제가 상을 받은 것처럼 박수를 보냈고, 친한 동료가 받으면 그보다 조금 더 기쁜 마음을 담아 보냈다. 시상식이 지루하다 싶을 때쯤 끊고 가겠다는 PD의 신호와 함께 진행자가 2부에서 계속된다는 대사를 했다. 잠깐이나마 여유로운 시간이 되었지만, 이번엔 연기대상 카메라가 아닌 다른 예능이나 기자, 그리고 팬들의 카메라에 긴장은 늦출 수 없었다. 또한, 2부에는 스가와라가 가장 긴장하고 있는 우수연기상 시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드라마 동료들과 친한 배우들이 스가와라에게 미리 수상 축하한다며 인사를 건넸지만 스가와라는 쟁쟁한 배우들이 많다며 겸손하게 대답했다. 장난스러운 말싸움을 주고받다가 2부를 시작한다는 소리에 얼른 자리로 돌아갔다. 1부에서와는 또 다른 의상을 입고 나온 진행자들은 다시 단상에 올라가 능청스럽게 연기하며 진행했다. 다시 시작되자 긴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좌석마다 준비된 물이 있었지만, 자꾸 바짝바짝 타는 목에 계속 들이키다 보니 어느새 빈 병만 남아있었다. 옆자리의 동료 배우가 자기 몫을 주었는데 그것마저 벌써 반병 넘게 비워 버렸다. 긴장감에 팔다리가 저릿할 지경이었다. 피도 안 통해 손발이 굳고, 차가웠다. 두 손을 깍지 끼워 이리저리 주물러보기도 하고, 입김을 호호- 불어보기도 했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음이었다. 바로 다음이 스가와라가 노미네이트 된 우수연기상 차례였다.



“다음은 우수연기상입니다. 후보부터 만나보시죠.”



중앙 스크린 화면에 우수연기장이라는 다섯 글자가 큼지막하게 떴다. 후보들을 하나씩 보여주는데 커다란 화면에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구석 작은 화면에는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는 배우들이 잡혔다. 두 번째로 호명된 사람은 스가와라였다. 드라마 제목과 역할과 함께 밝은 연기, 슬픈 연기가 자료 화면으로 나왔다. 전부 모니터링 했고, 몇 번이나 돌려본 장면인데도 이렇게 보니 새삼스러웠다. 스가와라를 포함해 총 6명의 후보가 나오고, 작년 수상자가 봉투에서 올해 수상자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꺼냈다. 긴장감을 북돋는 드럼 소리가 깔리고, 감질나게 뜸을 들이는 수상자는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입을 열었다.



“올해 우수연기자상은- 축하합니다, 잡동사니 고양이의 노가사키 스스무 씨!”



스가와라 코우시가 아니었다. 노가사키는 동료 배우들의 축하를 받으며 무대로 올라가 벅찬 감정을 추스르며 수상 소감을 말했다. 그와 반대로 스가와라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축하를 받았다. 아쉽고 안타까움이 서린 축하였다. 다른 사람이 대신 화를 내고 안타깝다고 말해줘도 어쩔 수 없었다. 상을 받은 건 자신이 아니었으니까. 할 말은 없었다. 뭐가 고마워서 감사하다고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대신 안타까워해 줘서 일 것이다.


우수연기상이 끝나자 이번엔 최우수연기상이 진행되었다. 좀 전과 같이 중앙 스크린에 여섯 글자가 뜨고 후보들이 나오는데 가장 먼저 올해 모든 방송사, 같은 시간대 드라마를 통틀어서 가장 인기 있었던 사극, ‘시간을 넘은 꽃’의 주인공인 사와무라 다이치가 가장 먼저 거론되었다. 초반에 젊은 무사 역할로 나왔지만 알고 보니 신분을 숨긴 왕이었던 다이치는 모든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10대부터 50대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커다란 화면에는 다이치가 연기했던 모습들이 나오는데 이 드라마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았던 장면인 여자 주인공을 구하고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본인도 다시 보니 부끄러운지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바로 아래 작은 화면에 비췄다.



“올해 최우수연기상! 아- 이 분이시네요. 축하드립니다! 다들 누군지 궁금하시죠?”



모든 드라마의 주연들만 모아놓은 최우수연기상은 바로 전의 우수연기상보다 더 긴장감 높은 음악과, 더 뜸을 들이는 진행으로 사람들의 답답함을 자아냈다.



“하하, 여기서 더 뜸을 들였다간 욕먹겠어요. 정말 발표하겠습니다! 바로-”



꿀꺽-


모두가 동시에 침을 삼켰다.



“시간을 넘은 꽃의 사와무라 다이치 씨!”



다이치의 이름이 호명되자 무대 옆 설치된 폭죽이 연속으로 터졌다. 시끄러운 무대효과와 공중에 흩날리는 꽃가루가 시상식장을 휘덮었다. 다이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일어나 주위 배우들에게 축하를 받으며 무대로 걸어나갔다. 제가 상을 받은 것처럼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스가와라는 박수를 보내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양손의 엄지를 세워 축하했다.



‘그의 근처에 있었다면 나도 저렇게 안아줄 수 있었을 텐데...’



마이크와 스피커를 거쳐 전해지는 그의 수상소감을 들으면서 스가와라는 쓰게 느껴지는 입 안을 씻어내기 위해 남은 물을 모조리 마셔버렸다.









스가와라가 우울하지 않게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들은 평소보다 더 과한 액션으로 장난을 걸었다. 스가와라 또한 그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최대한 밝게 장난을 맞받아쳤다. 다들 수고했고 고맙다는 인사를 끝으로 차에서 내린 스가와라는 그가 집에 들어갈 때까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는 그들에게 보라는 식으로 씩씩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탁- 철컥.


현관문이 닫히자 도어락이 잠겼다. 갑갑한 구두를 얼른 벗고 왁스로 빳빳하게 굳은 머리도 얼른 풀어헤치고, 목을 꽉 죄는 보타이와 불편한 정장을 다 벗어 던지고 싶었지만 그럴 기운이 나지 않았다. 문에 기댄 채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상을 받으려고 연기를 한 것도 아니고, 유명세를 탔다고 상이 올 거라고 확신한 적도 없었다. 못 받으면 어때, 나중에 받으면 되는 거지. 말만 그랬던 모양이다. 이렇게 허탈하고, 헛헛할 줄 알았더라면 그냥 받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더 열심히 할 걸 그랬다.


삐삐삐삐삐삑-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 갑자기 열린 문에 몸을 바로 할 틈도 없어 스가와라는 그대로 뒤로 몸이 넘어갔다. 위험하다 싶을 때, 비밀번호를 열고 들어온 누군가가 넘어지는 그를 받쳐줬다.



“뭐 하는 거야, 위험하게.”



“하하, 왔어?”



“이제 왔어? 한참 전에 출발한 거로 아는데.”



“최우수연기상 수상 축하합니다, 명품 배우님.”



“됐어, 너까지 그러지 마. 부끄럽다.”



“우리 애인님이 받아오신 트로피 구경 좀 해볼까?”



다이치 손에 들린 트로피를 뺏어 현관 센서 등에 이리저리 비춰보았다. 투명한 트로피에는 금색으로 ‘2017 H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멋지네. 최우수연기상이라 그런가? 트로피도 더 멋진 것 같아.”



“스가.”



“나도 내년에 더 열심히 해서 상 받으련다. 서러워서 살겠어?”



“.......”



“왜 그런 표정이야. 내가 부족해서 못 받은 건데.”



“누가 부족하다는 거야.”



“하하,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더 배울 것도 많고. 다음번엔 조연이 아닌 주인공 맡아서 다이치랑 같은 상에 이름 올릴 거니까 긴장하라고?”



피식 웃으면서 말하는 스가와라를 붙잡아 세운 다이치는 다른 손에 쥐고 있던 꽃다발을 내밀었다.



“이미, 넌 나한테 주인공이야. 네가 하는 모든 대사, 표정, 몸짓까지. 어떤 배역보다 더 눈이 가고, 몰입되는걸.”



“다이치의 주인공이라- 그거 괜찮네.”



“내가 드라마라면 그 주인공은 너야, 스가.”



“다이치가 주인공이 아니라?”



“응, 너야.”



“...나도-”



조금 촌스럽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었으며, 손발이 오그라드는 고백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고맙고, 또 사랑스러운 고백이었다.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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