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Now, let’s stop running from love

 Let’s stop running from us 

 Oh my, my, my! 

 Living for your every move 


 2.

 종결된 케이스에 대한 결과 보고가 이루어지는 회의실 안에서, 아오키는 시종일관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처럼 집중력이 뚝 떨어진 모습이었다. 그를 잘 모르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겠지만, 그를 오랫동안 보아 온 오카베나 이마이, 홋다는 회의가 이어지는 내내 왠지 모를 불안한 심정으로 아오키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마침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보고가 끝나고, 자리가 파하자마자 벌떡 일어서는 아오키를 오카베의 두툼한 손이 확 붙들어 세웠다. 


 “어, 어? 오, 오카베 씨? 무슨 일 있으세요?” 

 “뭐야? 내가 너한테 묻고 싶은 말이야. 뒤 마려운 강아지처럼 회의 내내 집중 못하고 움찔대고 있었지, 너. 마키 씨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넌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랐을걸. 대체 무슨 일인데 이래? 아무리 끝난 사건이라지만 실장이라는 사람이.” 

 “아, 저, ...아, 아뇨, 그게... ... 죄송합니다. 하, 하지만 내용은 전부 제대로 정리했어요. 보세요.” 

 

 그러면서 일목요연하게 마무리 한 약식 보고서를 오카베의 눈 앞에 보란듯이 펼친다. 한 연구실의 실장직을 단지 꽤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후배같은 아오키의 이런 모습을 오카베 역시 좋아했지만, 여기서는 한숨을 쉬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그는 마치 어린아이를 쿡 쥐어박듯 장난스럽게 아오키의 옆구리를 때렸다. 

 

 “아야야, 아파요, 오카베 씨... ...” 

 “이제부터 휴가라고 들떠있기는. 뭔데? 데이트냐?” 

 

 데이트. 갑자기 아오키의 얼굴이 이마에서부터 목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어떻게 막아 볼 틈도 없는 생리적인 변화에 당사자인 아오키는 물론 보고 있던 오카베마저 당황하고 말았다. 그냥 놀려주려고 한 소리였는데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반응할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이것 좀 보라지...? 뭐야, 대체 얼마나 예쁜 사람이길래-“

 “ㅈ, 저 가볼게요, 오카베 씨! 다음에 메시지 보낼게요! 이마이 씨랑 홋다 씨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뭐? 야, 아오키!” 


 그러나 아오키는 이미 모퉁이를 돌아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후였다. 혀를 끌끌 차긴 했지만, 오카베는 아오키가 그런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워서,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흡족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3.

 약속 장소인 시계탑 앞까지 나간 아오키는 십 초에 한 번씩 시간을 확인하면서 역시나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으로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부쩍 추워진 날씨인데다 눈이라도 올 것처럼 하늘이 부옇게 흐렸다. 입술 사이로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입김을 가만히 보고 있던 아오키는,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하얀 수증기 사이로 누군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바람에 팔락일 정도로 얇은 코트 주머니 안에 양 손을 넣은 채, 고개를 약간 숙이고 천천히 다가오는 마키를 아오키는 아주 멀리에서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그는 아주 작게 보이는 마키를 향해 겅중겅중 뛰기 시작했다. 그가 달려오는 것을 알아챈 마키가 걸음을 멈춘 순간, 앞으로 확 뻗친 아오키의 팔이 마키의 몸을 단번에 감싸 품 안으로 끌어들여 안는다. 당황한 마키가 몸을 꿈지럭거렸지만 그럴 수록 아오키는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것처럼 더욱 단단히 팔을 감았다. 


 “너, 아오키. 뭐 하는... ... 못 놔?” 

 “잠깐만요... ... 정말 잠깐만이면 돼요, 마키 씨.” 


 읊조리듯 속삭이면서, 아오키는 마키의 목덜미에 코가 닿을듯이 더 깊숙하게 그를 끌어안고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얼어붙는 것 같은 도쿄의 겨울 공기 사이로 스며드는 마키의 체취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았다. 


 “한 달 만에 보는 마키 씨예요.”

 “그래서 어리광을 부리시겠다 이거냐? 공원 한가운데에서? 이제 빨리 놔. 숨막히니까.” 

 “아, 앗. 넵! 죄송해요.” 


 그제야 아오키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는듯이 황급히 마키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따뜻하게 맞닿았던 몸이 떨어지자, 마키는 가슴 한쪽이 별안간 뎅겅 잘려나간 듯한 허전함에 약간 삐죽해진 눈으로 아오키를 올려다보았다. 아오키는 마키의 말이라면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들어가라고 해도 들을 인물이었으니, 아오키의 행동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건 마키 쪽의 책임이 약간 더 컸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키는 심술궂은 웃음을 띠며 말했다. 


 “오늘부터 휴가라고? 팔자 좋긴.” 

 

 자기도 휴가 중인 주제에 마치 게으름이나 피우고 다닌다는 듯이 아오키를 윽박지르고, 억울하다는 표정을 보기도 전에 휙 돌아섰다. 그리고는 따라오라, 어쩌라는 말도 없이 자기 혼자 걸어가버린다. 잠깐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오키는 그러나 얼른 마키의 옆으로 가 섰다. 

 마키가 원래 곰살맞은 성격이 아니기는 했지만, 가까스로 사귀게 된 후로도 아오키를 대하는 태도에는 크게 달라진 곳이 없었다. 아오키가 연애를 하며 이런저런 망상에 빠져드는 타입이었다면 아마 마키와의 연애가 생각보다 난항이었을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여전히 맹목적일 정도로 마키를 신뢰하고 좋아했으며 언젠가 마키가 ‘개 같아. 꼬리를 흔드는 커다란 개’라고 말했을-이것이 자신을 매도하기 위함이었는지 순수한 감상이었는지, 아오키는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만큼, 마키의 옆에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각각 큐슈와 도쿄, 결코 가깝지 않은 두 도시에서 눈코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기 때문에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오키는 이따금 쓸 수 있는 연차나 휴가를 모조리 마키를 위해 썼다. 나를 만나는 일 말고 달리 하고 싶은 일은 없냐는 질문에도, 아오키는 어리둥절하다는 반응만 보여 천하의 마키조차 할 말이 없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저, 마키 씨. 저기... ... 오늘 어디로... ...” 


 공원을 나서다 말고, 아오키는 옆을 지나치는 커플을 저도 모르게 흘끔 바라보았다. 대학생쯤 되었을까, 풋풋하고 앳된 얼굴이 설렘과 즐거움으로 둥실둥실 떠오를 것처럼 행복해보였다. 그에 비하면 마키는 한 달만에 만난 연인과의 데이트는커녕, 중요한 범인이라도 잡은 것처럼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아오키는 방금 스쳐 지나간 커플, 그리고 자신과 마키의 관계가 어쩐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는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히 같은 종류의 관계로 이루어진 조합인데, 자신과 마키 사이에는 뭔가 빠져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하지만 마키 씨는 거의 항상 저런 표정이었는데... ... 대체 뭐지, 이 위화감... ...’ 

 “아오키!”


 마키의 목소리를 듣고 움찔 정신을 차린 아오키는 그제야 자신이 멀어져가는 커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멍청하게 서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오키가 허둥지둥 달려오는 것을 보고, 마키는 눈썹을 약간 찌푸리며 말했다. 


 “뭘 하고 있는 거야? 뭐 이상한 것이라도 봤나?” 

 “아, 저, 그게... ... 아뇨. 그... ... 옷이 귀엽, 귀엽구나 해서... ... 아, 아니! 절대로 한눈을 팔았다는 건 아니고요! 그그, 그런 게 아니라! 마키 씨 코트가 너무 얇으신 것 같아서! 춥지 않으실까 해서!” 

 

 우스꽝스러울 만큼 필사적으로 변명하면서 아오키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마키의 표정이 ‘바보 아냐’ 정도인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옷이 귀여워서 보고 있었다니, 갑작스럽게 떠올린 변명이라는 게 이렇게 멍청할 수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마키 씨밖에 보이지 않는데. 


 “이거 캐시미어야. 하지만 네가 어물거리는 사이 추워질 것 같으니까 넋 놓고 있지 말고 빨리 따라와.”

 “네, 넵! 알겠습니다!” 


 어영부영 다시 마키의 뒤를 따르면서, 아오키는 끝끝내 그 커플에게서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깨닫지 못했다. 똑같이 데이트 중인데 왜 그들이 자신들과는 전혀 달라 보였는지, 뭔가 빠진 것 같은 이 허전함은 무엇 때문인지 고민하며 아오키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키가 자신을 데리고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알아챈 것은 공원을 벗어난지 이십 분쯤 지난 후였다. 깨끗하고 세련된 건물의 낯선 외관을 보고 기가 죽어버린 아오키는 쭈뼛거리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남의 눈에 띌 정도로 큰 키와 어색한 태도가 맞물려 고장난 로봇 같아 보이는 제스처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아오키가 그러거나 말거나, 마키는 마치 자기 집인 양 자연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 티켓을 두 장 샀다. 


 "저, 마, 마키 씨... ... 여긴 어디예요?" 

 "미술관이지, 어디긴 어디야. 한 번도 안 와봤나?" 

 "어, 저기... ... 네. 이런 곳은 한 번도... ..."

 "안목 좀 높여. 데이트 할 때마다 영화나 보러 갔지?" 

 "아뇨, 그렇지는... ..." 


 부정하려 고개를 저었던 아오키는 최근-마키 이전의-의 데이트 코스 몇 군데를 떠올려 보았다가 입을 다물었다. 평일이어서인지, 아니면 그리 유명한 전시가 아니어서인지 미술관 안은 조용하고 한산했다. 내부는 온통 흰색으로 도배되어 있어서, 조명이 많이 밝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화사한 느낌을 주었다. 푸른 색채를 중심으로 한 아름다운 유화였다. 아오키는 미술에 딱히 조예가 있는 편이 아니었지만,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왜 모두들 아무런 말도 없이 한 작품 앞에 가만히 서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시끄러운 곳으로부터 격리되어 고요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그림 여기저기에서 물감처럼 배어나오고 있었다. 마키 역시 아무런 말 없이 그림을 보며 천천히 그림을 옮겼다. 마키의 뒤를 따라 발소리가 크게 나지 않기만을 조심하면서 그림을 살펴보던 아오키는 문득 마키가 멈춰 선 곳의 그림을 보고 숨을 삼켰다. 족히 삼사 미터는 될 것 같은 넓은 폭의 벽면이 바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마키의 뒤쪽에 선 채, 그 압도되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오키는 문득 마키까지도 그 그림의 한 부분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때로는 고요하게, 때로는 사랑스럽게, 때로는 꿈에서조차 보고 싶지 않을 만큼 무시무시하게, 출렁이며 변화하는 바다 한 가운데에 마키는 마치 외따로 솟아난 섬처럼 떠 있었다. 파도에 마모되고 비에 녹아내리면서 언젠가 심해까지 가라앉아 휴식을 취할 날만 기다리는 작은 섬. 그럼 아오키 자신은 마키에게 있어 어떤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망망대해에 표류했다가 운 좋게 섬에 닿은 작은 배? 몇 날 며칠을 이정표도 없이 날아가다 잠깐 날개를 접을 곳을 찾은 갈매기? 

 아니. 아오키는 생각했다. 표류자는 섬에 영원히 머무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갈매기 역시 저토록 작은 섬에서는 둥지를 틀고 살 수 없다. 아오키는 배도 갈매기도 되고 싶지 않았다.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아득하게 먼 푸른 빛만 보이는 바다에서, 영원히 외로웠지만 외로움이라는 단어도 알지 못한 채 혼자서 수천의 낮과 수천의 밤을 견디는 그 섬의 오래된 나무가 되고 싶었다. 섬의 모래톱에 뿌리를 박은 채 아주 약간의 물만으로도 잎을 펼칠 수 있는, 내리쬐는 뙤약볕에 화상 입지 않도록, 비바람과 폭풍에 깎이고 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곳곳까지 뿌리와 잔가지를 뻗쳐서 그 섬을 자기 안에 끌어안고 영원히 살고 싶었다. 마키를 영영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그때 마키가 고개를 돌려 아오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 바다 어딘가에 있을 섬의 단면에서도 저렇게 아름다운 눈을 볼 수 있을까. 


 "아오키?" 

 "아, ...네. 마키 씨. 왜 그러세요?" 

 "너야말로 왜 그래? 재미 없어?" 

 

 목소리를 낮춘 채 가까이 다가 온 마키를 내려다보면서, 아오키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마키의 뒷모습을 보며 자신이 했던 생각은 아직 비밀로 묻어두고 싶었다. 언젠가, 언젠가 자신이 지금보다 더 큰 나무가 되면, 그래서 얼마든지 마키를 끌어안을 수 있을 만큼 단단하고 강한 뿌리를 가지게 되면 그 때 말하리라. 아오키는 대답 대신 빙긋이 웃으며 무심결에 마키의 손을 잡았다. 


 "... ...손." 

 "네? 아, 아! ...아, 그, 저기, ... ...죄송합니다." 

 "왜 사과하는데?" 

 "... ...네? 아뇨, 그게... ... 저기, 바깥에서 멋대로... ... 그, ...이렇게." 

 "흠, 그런 것치고는 놓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 ..." 

 

 놓고 싶지 않아요. 아오키는 지금 자신의 표정이 어떨지 상상하지 않으려 애쓰며 마키를 쳐다보았다. 분명 애처롭고 꼴사나운 표정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맞잡은 채 떨어지려 하지 않는 손을 무감동한 눈으로 들여다보던 마키는 마침내 바람이 빠지는 듯 가볍게 웃는 소리를 내면서 가자, 하며 몸을 돌렸다. 그러나 작은 손 하나는 여전히 아오키의 손 안에 가만히 쥐여진 채였다. 마키의 손을 잡은 채 행복함에 녹아내릴 것 같은 기분을 잠시 느꼈던 아오키는 불현듯 공원에서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틈 없이 맞잡은 손으로 시선을 내린 그는 바보처럼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자꾸만 빈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마키의 옆에 꼭 붙어 섰다. 



 4.

 "마... ... 마키 씨, 여긴... ..." 


 아오키는 목이 빠지도록 고개를 젖힌 채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높다랗게 솟은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로비에서 새어나오는 은은하고도 환한 불빛과 깔끔한 정장을 입은 채 대기하고 있는 도어맨, 발렛 서비스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서너 대의 차는 하나같이 아오키가 받는 연봉을 몇 년이나 꼬박 모아야만 겨우 살 수 있을까 싶은 것들이었다. 


 “왜 그러고 서 있어, 아오키. 빨리 와.” 

 “오, 오늘 저녁 식사... ... 예, 예약하셨다더니, 그게 여기였어요?” 

 “그래. 왜? 굉장히 맛있는 곳이라던데. 난 외식 같은 건 좀처럼 하지 않지만 그래도 데이트니까 어쩔 수 없지.” 


 데이트. 그 단어가 이렇게나 떨릴 만한 말이었던가? 아오키는 마치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십대 꼬마처럼 시종일관 우왕좌왕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유키코와 사귈 때도 이런 레스토랑에 자주 왔었다. 이렇게 호화스러운 곳은 아니었을지라도, 그래도 각자 안정적인 사회 생활을 하고 있는 어른들의 연애였기 때문에 당연히 고등학생의 연애처럼 가볍고 마음 편한 곳만 찾아다니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마키와는 달랐다. 마치 모든 경험이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일들처럼 현실감이 없었고 어딘가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아차 하는 사이에 터무니 없는 실수를 저지를 것처럼 긴장으로 마음이 꾹 조였던 적도 여러 번이다. 

 이런 아오키에 비해 마키는 능숙했다. 긴장한 모습은 찾을래야 찾아볼 수 없었고 너무 당연한 것처럼 느껴져서 이따금은 업무의 연장 같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때때로, 마키 자신마저 의도치 않은 부분에서 마키가 아오키를 자연스레 리드할 때마다 아오키는 마키와 자신의 나이 차이를 새삼스럽게 실감하고는 했다. 


 ‘역시 이것도 연륜의 차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나...?’ 


 직원의 정중한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자마자, 고급스러운 유리잔에 차가운 물이 가득 채워지고 메뉴판도 없이 곧 전채가 나왔다. 적당한 도수의 와인과 맛있는 음식, 귀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깔리는 음악과, 그리고 테이블 너머에서 불빛을 받으며 말없이 식사를 하는 마키의 모습. 아오키는 이따금 음식을 먹는 것도 잊고 홀린 사람처럼 마키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그와 눈이 마주치면 황급히 식사에 열중하는 척 와인이 맛있다는 둥, 뭐가 향이 좋다는 둥 하나마나 한 소리를 했다. 그리고 그러느라고 마키가 자신을 보며 희미하게 웃고 있다는 것은 차마 눈치채지 못했다. 


 “휴가가 사흘이니까, 내일까지는 여유가 있겠군.” 

 “네? 아, ...네. 맞아요. 내일까지는... ...” 


 마키 씨랑 계속 함께 있고 싶어요. 아오키는 방금 전에 삼킨 고깃조각이 목에 턱 걸리는 것 같은 기분에 얼른 물을 들이켰다. 귓불과 뒤통수까지 순식간에 열이 차올랐다. 너무 뻔뻔한 생각인가? 마키 씨는 바쁘실지도 모르는데, 아니 하지만... ... 어쩌면 마키는 저녁을 먹고 다시 연구실로 돌아갈지도 몰랐다. 그러면 거기까지 따라가겠다고 해도 될까. 마키가 일을 하는 동안 커피라도 끓여주면서, 일하는 마키의 뒷모습을 오랜만에 바라보고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마키가 자신이 일을 돕는 것을 허락해준다면 기꺼이 하리라 생각했다. 


 “저, ...마, 마키 씨는... ... 저기, 이따가 다시 돌아가실 건가요?” 

 “돌아가?” 

 

 나이프를 쥔 손을 허공에 둔 채, 마키의 표정이 처음으로 어리둥절한 빛을 띠었다. 아오키는 자신이 또 실수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마키의 반응이 어떻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허둥지둥 말을 덧붙였다. 


 “그게, 마키 씨는 많이 바쁘시니까요. 아니 저도 물론 열심히 하고 있어요. 하고 있지만! ...저, 저랑 마키 씨는 비교가 안 된다고 할까, 그러니까... ... 호, 혹시 이따가... 연구실로 돌아가신다면 저기, ...저, 방해 안 할 테니까... ... 저도 같이 가서 마키 씨랑, 그게... ...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 ...” 

 “흐음, 그래.” 

 “괘 ,괜찮나요?” 


 반색하며 고개를 들었던 아오키는 순간 말문이 턱 막힌 얼굴로 마키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는 얇고 납작한 카드를 보았다. 저 카드, 저런 걸 어디서 봤더라. 신용카드는 아니고, 아니 그보다 저 숫자들... ... 


 “네가 그렇게까지 내 일을 걱정해주다니. 미처 몰랐군, 아오키. 그럼 아쉽지만 모처럼만에 예약한 스위트룸은 취소하고 연구실로 돌아가볼까?” 

 “안돼요, 가지 마세요!!” 


 순간 덜커덩, 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의 유리잔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다행히 마키가 붙잡는 쪽이 빨라서 소란은 면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순식간에 아오키에게로 쏠려 있었다. 그대로 테이블 아래로 꺼져버리기라도 할 듯 흐느적거리며 주저앉은 아오키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드물게도 마키가 소리내어 웃고 있다는 것만이 위안이랄지, 부끄러움을 더하고 있달지, 미묘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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