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저 훈입니다."

민현과 우진이 조반을 거의 비웠을 때 쯤. 기다렸다는 듯 문간을 지키고 선 지훈이 찾아왔다. 오직 민현만이 불러주는 이름, ‘훈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면모에서 지훈 특유의 당당한 자존감, 그리고 애정 받고 자란 아이만의 특권인 자연스러운 어리광이 엿보였다. 그런 과시적인 뻔뻔함이야말로 우진에게는 결핍된 부분이었다. 마침 밥도 다 먹어가는 참이었으니 민현은 망설임 없이 지훈을 들였다.

"들어 오너라."

장지문을 열고 들어온 지훈은 민현과 나란히 겸상하고 앉아 있는 우진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다만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날카롭게 치켜 떴을 뿐이었다. 알게 모르게 저를 의식하는 지훈의 견제 쯤은 익히 알고 있었던 우진은 그만 자리를 비켜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주섬주섬 밥상 내갈 채비를 했다.

"다 드셨으면 이만 치우겠습니다, 형님."
"그래. 나가 보아라."

민현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우진은 그대로 방을 나갔다. 지훈에게 괜한 미움을 사면서까지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굳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을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화로 속 숯이 이따금 타닥, 타닥, 타는 소리만이 남은 적막 속에서 민현이 지훈에게 물었다.

"훈이 너, 또 조반을 거른 것이냐."
"......예."
"규칙적인 식사를 해야 신체가 바로 잡히는 것이다. 특히 예랑은 몸이 재산이라고 이르지 않았더냐."

아침부터 방주로서의 훈계를 시작하는 민현에게 속이 상한 지훈이 반박했다.

"압니다. 그치만....!"
"무어냐."
"그치만, 형이 나으리께 불려나간 걸 아는데 내가 어떻게 밥을 먹을 수가 있겠냐구요."

붉어진 얼굴로 토로하는 지훈을 마주하자 민현도 입을 다물었다. 훈계 따위가 먹힐 상황이 아니었다. 지훈은, 그런 표면적인 이론과 명분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닦여지지 않은 어린 아이의 감정,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소용 없는 연심이 직격으로 쏟아져 왔다.

"난... 형이 나으리 만날 때마다 너무 불안해요. 이대로 형이 나으리의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방주도, 기방도, 나도 다 버리고 가 버리면 어떡하지. 나으리는 충분히 그럴 만한 신분도, 재력도 갖고 계신 분이잖아요. 마음만 먹으면 형을 데려가버릴 수 있는 사람이란 말이에요. 난 그게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구요..."

지훈은 버림 받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 했다. 

민현이 처음 아이를 데려왔을 때는 한 시도 민현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었다. 엄격한 선대에게 회초리로 맞기도 하고, 혹독한 훈육을 받으면서도 지훈은 체벌 이상으로 민현과 격리되는 것을 무서워 했다. 결국엔 선대마저도 지훈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서 민현과 같은 방을 쓰는 것을 허락 받기까지 했으니 대단하다고, 민현을 내심 감탄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예랑으로서 자리가 잡힌 시점부터 줄곧 독방을 사용해왔던 민현은 제 이불 속으로 꼬물꼬물 파고드는 아이가 귀엽고 안쓰러워서 끝내 밀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매번 어리광을 받아주다 보니 지훈은 몸은 커졌어도 마음만은 민현에게 맹목적인 그대로였다.

"훈아. 너는 내가 왜 여태껏 방주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니."

지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애초부터 지훈에게서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던 민현은 곧 일러 주었다.

"내가 예랑을 하면서 하룻밤에 얼마나 벌었을 것 같니. 내 신분 문서를 사들일 수 있는 금액 정도는 석 달만에 벌었어. 나는, 고작 재물이나 부귀 따위를 위해 이곳을 지키고 있는 게 아니야. 세상에서 헤아릴 가치는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어."

민현은 소맷부리에서 곰방대를 꺼냈다. 화로에서 옮겨 온 불씨를 붙이고, 후우-, 연기를 내뱉으면서. 천천히 설대 끝을 톡톡 두드린 민현이 지훈에게 말했어.

"내가 그토록 수 없이 나으리를 거절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단순히 재물을 탐하기 위해, 더 나은 신분을 위해, 팔자를 뜯어 고치기 위해, 기방에서의 생활에 신물이 나서. 손님에게 입적되어 기방을 나간 예랑들을 민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참한 말로는 민현이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싫증 난 주인에게 버려지고 나면 이제 나이마저 꽉 찬 추한 몸뚱이는 사창가 매음굴에서도 사 주지 않는다. 주인의 총애도 하루, 이틀, 이레, 그리고 몇 달 정도는 계속될 지 모른다. 하나 당장의 연심이 언제까지고 이어지리란 보장은 없다.

그렇다. 민현은 사람의 마음을 믿지 못 했다.
사랑한다는 말도, 연모하고 은애한다는 고백도 그저 한 순간의 욕정에 불과할 뿐인 것을.

어쩌면 민현에게 버려질까 두려워하는 지훈 이상으로, 민현 역시 누군가의 진심을 받아들이기 무서운 걸지도 몰랐다.

"형 그럼, 앞으로도 내 곁에 있어 줄 거죠."

단지 그 사실에 안심한 나머지, 예쁘게 사르르 웃음 짓는 지훈의 얼굴이 안타까울 정도로 행복해 보여서. 민현은 찰나라도 좋으니 그 아이에게서 기쁨을 앗아가고 싶지 않아졌다. 듣고 싶은 대로만 듣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지훈의 단순하고도 일방적인 공세는 굳이 거절할 의지마저 꺾어 버렸기에. 민현은 설대 끝을 살살 까딱이며 대답했다.

"그래. 네가 예랑을 계속 하고, 내가 방주로 있는 한."
"그러면 됐어요."

그제야 마음 놓고 몸을 널브러트린 지훈이 민현의 허리를 꼭 끌어 안으며 무릎을 베고 누웠다. 몸은 커버렸는데 하는 짓은 아직도 어린 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더 이상 지훈에게 훈계 할 생각을 접은 민현은 보드라운 머리칼을 사르륵 쓰다듬어 주었다. 민현의 배 밑에 얼굴을 폭 들이박고는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실실거리며 웃는 지훈은, 도저히 미워할 수 없이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형... 나 혼자 두고 가지 마요. 함께 죽을 때까지 함께 하기야."

고집을 피우는 지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민현은 곰방대를 빨았다.

그래.
노력은 해보마.

그것이 민현이 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11.

"훈아."

못된 버릇이 또 도졌구나.

곰방대를 끈 민현이 손을 뻗어 탁상 위로 물리려 하자, 여태 민현의 무릎을 베고 누워 아랫도리를 희롱해대던 지훈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벌어진 옷자락 속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미 옷 위로 하도 만져대서 뜨끈하게 달아오른 속살을 느릿하게 쓸었다. 그러다 아예 민현의 의복 속으로 고개를 들이 밀더니 허벅다리를 베고 누운 채로 안쪽의 민감한 살갖을 빨아대는 것이었다. 

흐읍, 거칠어진 숨 소리와 질척한 타액의 마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작게 한숨을 내쉰 민현은 결국 제 손으로 옷단을 들춰 주었다. 공기가 부족한 것도 모르고 정신 없이 안쪽의 유희를 탐닉하던 지훈이 발갛게 붉힌 눈가로 민현을 올려다 보았다. 이미 그 야살스런 눈꼬리에 그득하게 피어오른 정욕이 만연해 있었다.

"장난 그만해."
"저는, 한번도... 장난이었던 적 없는데."

속곳이 질척해지도록 천 위로 물고 빨아 대느라 정신이 빠진 지훈은 호흡이 엉망이었다. 머리로 피가 몰리면 눈에 뵈는 것도 없이 발정이 나는데, 어설프게나마 배운 것이 있으니 제가 가진 기술을 총동원해 민현을 달아오르도록 무던히도 애쓰는 지훈을 보고 있노라면 흥분이 아니라 웃음이 났다. 그 노력이 가상하여 민현은 지훈의 코 앞에 다리를 활짝 벌려주었다. 이번에는 호흡 곤란이 아닌 다른 이유로 목덜미까지 시뻘개진 지훈이 크게 뜬 두 눈을 끔뻑거렸다.

"무얼 그리 보고만 있어. 줘도 못 먹느냐?"

민현의 도발에 동공지진이 일어난 지훈은 더 이상 감당하지 못 하고 민현의 허벅지에 고개를 파묻었다. 피가 잔뜩 몰려 붉어진 귓바퀴에서 김이라도 나올 것만 같다. 민현은 차마 눈도 못 마주치고 고간을 움켜쥔 채 몸을 웅크린 지훈을 보고 피식 웃었다.

"전의를 상실했느냐."
"형, 제발... 더 이상의 자극은 위험해요. 코피라도 나면 꼴 사나우니까..."
"그럼 이제 치우거라. 슬슬 다리가 저리던 참인데."

세운 무릎 위로 턱을 괴고 콧방귀를 뀌는 민현을 보자 지훈에게도 사내의 오기란 것이 발동하여, 그대로 와락 떠밀어 눕히곤 민현의 몸 위로 올라탔다. 그 바람에 옷깃이 벌어져 가슴팍을 아슬하게 드러낸 채 진중하고도 솔직한 눈빛으로 갈급하게 내려다 보는 지훈의 시선을 마주하자 민현도 웃음을 거두었다. 지훈은 속눈썹마저 바르르 떨리는 긴장감이 역력한 얼굴로 청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나를 가르친 건 형이잖아요."

그러니까... 확인해주는 것도 형의 역할이에요.
지금 내가 어떤 남자가 되었는지. 


"발기한 주제에 그런 대사를 쳐 봤자 하나도 멋이 안 나는걸."
"어-어쩔 수 없잖아요, 날 이렇게 만든 것도 다 형이라구요!"
"말대꾸를 하다니."

눕혀진 채로 무릎을 살짝 세워 지훈의 고간을 까딱 까딱, 맛만 보듯 건드린 민현이 눈을 내려깔며 웃었다.

"훈이 너, 많이 컸구나."

지훈은 분했다. 여전히 농짓거리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는 민현의 가벼운 반응에 울컥하면서, 그 눈짓 한 번으로도 착실하게 반응하는 제 아랫도리가 원망스러웠다. 이렇게 민현의 도발 하나하나에 넘어가버리면 한도 끝도 없다는 걸 잘 안다. 어른스럽게, 남자답게 대처해야 해. 각오를 다잡은 지훈은 부러 민현의 무릎으로 발기한 양물을 문지르면서, 애써 허세를 부렸다.

"얼마나 컸는지... 확인해 볼래요?"

아무리 민현 앞에서는 서툴고 어리게만 느껴진다지만, 지훈 역시 예랑이었다. 그것도 이 일대에서는 가장 상위에 군림하는 예랑이었다. 접객을 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음란한 말도 막상 민현에게 하려니 말끝이 살짝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색스러운 분위기를 유도하고 상대를 매료하는 오묘한 화술은 지훈의 장기로 꼽히는 영역이었다. 지훈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제 심장 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그윽한 눈빛으로 민현을 바라보았다. 그런 지훈을 마주 바라보던 민현은─

"아니."

단칼에 거절한다.
그 바람에 맥이 풀려 민현의 가슴팍으로 고개가 풀썩 무너져내린 지훈에게, 민현이 덧붙였다.

"바닥에서 하는 건 부담이 크거든. 이따가, 내 방으로 오던지."

그 말에 다시 고개를 반짝 든 지훈의 열렬한 시선을 못본 척 무시한 민현이 가슴팍을 밀어냈다. 제대로 힘을 쓰면 지훈 정도쯤은 간단히 저지할 수 있으면서 여태까지 그냥 받아준 것이었다. 멍하니 밀려난 지훈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옷 매무새를 정돈하는 민현을 뒤에서 와락 끌어 안으며 재촉했다.

"이따가요? 이따가 언제요."
"오늘 일과 끝나면."
"아 그건 너무 늦어요! 새벽에나 끝날텐데 그럼 형 잘 시간도 없다구요."
"그건 밤새 안 재우겠다는 뜻인가? 꽤 자신 있나 보구나."

민현의 응수에 얼굴이 붉어진 지훈이 우물거렸다.

그게 아니라, 우리 같은 예랑들은 피부 관리도 중요하니까 제 때 자는 것이 중요하다고 형이 그랬으니까...
물론 형 피부는 당연히 꿀피부지만! 쓸데없는 걱정인 거 알지만, 나는 형만 관련되면 오만가지 걱정이 다 되고 그러니까요.
바보 같죠.

그렇게 말하는 지훈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민현이 결국 웃었다.
역시 지훈은, 사랑스러울 수 밖에 없는 아이였다. 민현은 지훈의 앞머리를 넘겨 잡고 이마에 이마를 맞댔다. 뜨끈하게 달아오른 체온은 여전히 아이의 것처럼 높으면서도 어딘가 어른스러운 내음이 났다.

"고맙다. 훈아."
 

이마를 맞댄 채 살짝 턱을 당겨 지훈에게 입을 맞춰 주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돌아선 민현은 제 뒷모습을 지훈에게 보이는 것에 자꾸만 가슴이 벅차 오르려 하는 스스로에게 조금 놀랐지만, 이내 먼저 방을 나갔다.

 

언젠가 이 아이가 나를 무너뜨리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

오랜만의 방주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음 편이 미뤄지다가, 이 사진 보구.... 아 이건 방주다. 방주가 올라갈 타이밍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가주구요. 전편에서 우진이가 덮어준 하얀 비단 두루마기가 이 우산의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었네요. (물론 이번편은 ☆윙년☆ 이지만.)

사실 두번 나뉘어 올라갔던 것을 윙년으로 한번에 몰아서 올리려니, 분량이 꽤 많네요. 방주에서 민현과 지훈의 관계성은 그 만의 독보적 영역이 있어서, (저 역시 굉장히 고대했던) 윙년 편을 쓸 때는 지훈이 어떤 인물인가 보여주는 것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어린 지훈이 그토록 민현에게 맹목적이었던 이유는, 역시 그거겠죠 어릴 때 한번 버려진 경험이 있으니까.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라기보다는, 민현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클 거예요. 지금의 지훈은 어린 아이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여러 의미로 소년과 남자의 중간 단계에 있는 상태인데, 아직 민현에게서 독립하지 못 했지만 더 이상 마냥 어리지만은 않은 아이입니다. 한참 성욕이 만연하기도 한 나이고요. 실은 진짜로 합방(^^)도 시켜주고 싶었지만, (제 머릿속에서 윙년은 이미 여러 번 잤습니다...) 아쉽게도 이번엔 미뤄졌습니다.

민현과 지훈의 관계는, 민현이 선대와 가졌던 관계와 유사합니다. 민현 입장에서 어쩌면 그것의 오마주라고도 볼 수 있겠고요. 유사하지만 똑같지는 않다는 점에서, 지훈이에게 일말의 희망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제가 방주에서 가장 응원하고 싶은 애가 바로 지훈이에요. 힘내라 훈아()....


RPS 년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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