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

엔솔로지 수록글.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지만 수정할 부분 너무 많아서 포기하고 백업합니다.




***

흩어지듯 퍼지는 빛을 긁어모았다. 잡히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어 갈구했다.

그러다 남자는 생각했다. 이대로 잡을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부수자. 

부숴 끌어 안으면 함께일 수 있을테니까.

내 안에서, 영원히.

 


1.
쨍그랑,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산산이 부서져 내린 유리잔이 샹들리에에 비추어 차가운 빛을 발했다.
그 사이에서 흘러가는 진한 적색 포도주가 대리석 옆 고아하게 깔린 아름다운 문양의 카펫과
잔을 놓친 숙녀의 옅은 상아빛 드레스를 타고 검붉은 빛을 내며 흩어졌다.

“이런, 실례를.”

그것을 말없이 바라보던 사내가 애석하다는 목소리로 우아하게 숙녀의 손을 잡아 깨진 유리파편 옆으로 인도했다. 그러자 비명을 터트린 숙녀의 높은 목소리에 경직되었던 홀이 풀리며 작은 웅성거림이 퍼졌다.

“이야, 저런. 저게 바로 ‘소문’의 형님이신가?”

그와 함께 멈추었던 음악이 다시 부드럽게 흐르는 사이로, 감탄하는 듯한 혹은 신기해 하는듯한 시원하고 낮은 목소리가 그저 자리에 서 있을 뿐인데도 계속해 주목을 모으고 있던 소년에게 물음을 던졌다.

“아…. 응. 알고 있었어? 타케시는 처음 보는 걸 텐데.”
“뭐, 유명하잖아. 여러 가지 의미로.”
“여러 가지 의미, 라면?”
“흥, 그저 쓸데없는 소리를 흘러들었을 뿐이겠지. 10대째께서 신경 쓰실만한 일은 아닙니다.”
“응. 하야토군이 그렇게 이야기한다면…”

그런 거겠지만.
기숙사제 퍼블릭 스쿨⑴을 함께 졸업한 일본 유학생 출신으로 사교계나 '가문'의 소식에는 거리가 멀 것이 분명한 야마모토일 텐데, ‘소문’ 이라는 말을 쓰는 것에 놀라 눈을 둥그렇게 떴던 츠나는 이내 고쿠데라의 말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타인에겐 더없이 날카롭던 고쿠데라의 말투가 부드럽고 다정하게 변하는 것을 옆에서 익숙하게 지켜보며 잠시 쓴웃음을 지은 야마모토는 심란한 기색으로 소동의 중심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는 츠나를 향해 안심시키듯 말을 이었다.

“정말 별 이야긴 아니야. 사교계는 별별 헛소문이 도는 곳이니까.”

그만큼 진실이 빨리 퍼지는 곳이기도 하지만.
야마모토는 고쿠데라의 날카로운 시선에 뒷말을 목 뒤로 삼키며 빙긋 웃었다.
뭐, 나라도 할 말 안 할 말 정도는 알고 있으니 그렇게 쏘아 보지 않아도 괜찮다고.
능청스레 어깨를 으쓱이자 고쿠데라가 팍 인상을 쓴다.
그 모습에 츠나가 난처한 얼굴로 고쿠데라에게 고개를 흔들자 수긍하지 못하면서도 인상을 폈다.

─저러니까 츠나의 애견이라는 소리를 듣지.
속으로 혀를 찬 야마모토가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는 동안 고쿠데라는 애써 핀 얼굴로 숙녀의 손을 붙잡고 홀을 빠져나가는 ‘그’남자의 뒷모습을 불쾌하게 바라보았다.

남자는 외향적으로는 누구나 인정할만한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밤의 정적을 모아놓은 것 같은 깊은 흑청의 머리카락과 몇 년 동안 빛을 못 보지 못한 것 마냥 창백한 느낌의 흰 얼굴은 고아했고 희귀하기 짝이 없는 기묘하고 매력적인 청홍의 오드아이는 눈을 마주치면 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거기에 마치 뼛속부터 흐르는 듯한 우아한 행동거지.

그러나 그와 반대로, 악마적이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퇴폐적이고 질척한 분위기와 과장스러울 정도로 흐르는 무성한 소문들.
그래, 그 때문인지 남자의 주변에는 마치 광신도마냥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제 몸을 그 발 밑에 던지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것이 불쾌하고 불결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그것만이 아니라...
고쿠데라는 야마모토를 상대하며 유쾌하게 웃고 있는 그의 자상하고 아름다운 주인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한편 ‘사와다 무크로’ 라는 우습고도 불길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남자는 홀을 빠져나오며 자신의 손을 마주 잡고 얼굴을 붉힌 채 미열이 담긴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를 내려다보며 유혹하는 듯, 혹은 거절하는 듯한 기묘한 미소를 띠웠다.
옆을 스치며 여자의 잔을 ‘깨트린’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은 자리를 피하기 위한 방책이자 가식적인 얼굴을 지워주고 싶었던 약간의 심술이었다.
나오고 싶어서 나온 자리도 아닌데 필요 없는 당부에 묶이고 싶은 생각 따위 전혀 없으니까.
새어 나오는 웃음을 누르지 않으며 여자의 어깨를 정중한 손길로, 의도를 담아 감싸 쥐었다.
그러자 숙인 여자의, 붉게 물들어 색이 느껴지는 목덜미 위로 차가운 눈빛의 그자들과 매우─ 친애하는 형제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겹쳐졌다.

문득 유쾌한 기분이 몸속으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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