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모든 것을 품어준다. 때로는 가혹하게도 몰아치지만 그래도 물은 모든걸 품어준다.

 

 

러브라이브를 접한 것은 내가 2013년 초의 일이었다. 당시 [옥상의 백합령]이란 게임의 감독 트위터를 팔로 하고 있었는데, 그 감독이 [러브라이브 재미있네?] 해서 어쩌다가 그 애니메이션을 보게 된 것이 그 계기였다.

그러다가 소위 ‘이상한 감기’ 때문에 앓아 누웠고, 때마침 핸드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뀌면서 안드로이드 게임으로 스쿨아이돌 페스티발(이하 스쿠페스)이 나오면서 그 노래를 들으며 거의 요양하다 시피 했었다.

그로부터 1년후, 처음으로 라이브 뷰잉이란게 열린대서 가보게 되었다. 마침 라이브 뷰잉이 열리는 게 뮤즈 4th 라이브였다.

 

처음엔 ‘뭔 라이브를 극장에서 봐?’ 해가지고 궁금해서 가보게 됐는데 사람들이 응원봉 들고 있는게 꽤 웃겼다. 하지만 웃긴것도 잠시, 나는 왜 응원봉 안가져 왔나 싶었고, 다음에 하게되면 응원봉 좀 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이른바 [직접 관람], 줄여서 [직관]좀 해보자는 꿈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인기 있는건 사람들의 경쟁이 심하다는걸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당시 2015년 초반... 너도 나도 뮤즈 5th 직관을 가겠답시고 [e플러스]라는 일본 사이트에다가 응모해서 죄다....

 

[티켓을 구할 수 없습니다]

 

라는 멘트만 뜨게 되었다. 나도 겪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보고 싶어서 현지 뷰잉을 선택했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인기 있는곳, 특히 라이브장과 가까운곳은 거의가 티켓을 구할수 없다는 멘트만 볼수 있었다.

나 같은 경우, 오오미야에 있는 극장에서 보게 되었는데, 그때 원덕언니의 사망소식을 알게되어 라이브를 본게 본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5th는 망했고, 원래는 6th였으나, 어쩌다 보니 파이널을 선언하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항간에는 성우 중 한명의 몸 상태가 안좋아서 파이널을 선언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또 그 그룹의 스토리가 다 끝나서 파이널을 선언해도 될 것 같아서 파이널 선언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타 팬덤 사이에서 “너네는 끝났어!”란 조롱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시작된 [Aquors]. 맨 처음엔 사람들 욕을 그야말로 뒤지게 먹으면서 시작했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사람들 시각으로는 “뮤즈만 있으면 되는데 뭐하러 아쿠아가 나오느냐?”라는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나와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 처음 싱글이 나와서 들어봤을 때 타이틀곡은 그닥이었으나, 두 번째 커플링 곡에서...

 

‘얘네들은 성공할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맞아 떨어져 두 번째 싱글에서 큰 인기를 끌게된다.

그리고 각 유닛 싱글들이 나왔을 때 그야말로!!!! ‘내 영혼을 거기다 바치겠습니다!’ 라는 꼴이 되어버렸던 것이었다.

그렇게.... 2016년도의 가을이 찾아왔다.

 

2016년도의 가을, Aqours가 첫 라이브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건 가봐야 된다’하는 생각에 e플러스에 응모를 했고, 웃기게도 그것이 당선 된것이었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기적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사람들이 저평가 해서 응모를 덜 한건지 알수 없었다.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잘 다녀오세요.”라고 했고, 그렇게 이른바....

 

[물 따라 떠나는 여행]

 

을 하기에 이르렀으니.

그것이 내 인생을 좌우하는 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실은 물 따라 흐르는 여행을 꽤 했었다)


맛보기

2016년 12월의 일이었다. 나는 애니플러스 주최로 행사했던 3인의 상영회를 다녀오게 되었다.

당시에 직접 얼굴보고 대화하는것에 크게 관심없어서 물품 지르면서 까지 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먼 발치에서 보고 상영회만 봤는데.... 사람들 참 재밌데?!

그때부터 2017년의 첫 라이브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2017. 2. 24. 금

보통 내가 일본으로 가게 되면 밤중에 떠나는데, 그러다 보니 일하고서 바로 공항으로 가게 된다.

그날, 이상하게도 하드가 다 날아가는 대 참사에, 법원에, 대한변호사회 까지 가느라고 지쳐 있었다. 왜 그런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더 피곤했다.

어쨌든, 그날 첫 하네다 공항으로 가게 됐는데 새벽에 도착해서 그런가 굉장히 피곤했다.

하필이면 비행기가 그 유명한 [하늘을 나는 전철] [피치 못할 때 타는] 그 복숭아 항공이었던 것이었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리라!

그때 있었던 일화가 있는데, 당시 하네다 퍼스트 캐빈을 예약했는데 국내선 1터미널에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내린데는 국제선. 그래서 택시를 타야 했는데 어디로 타야 할지 몰라서 반대편으로 간것이었다.

택시 운전수 한테 물어보니 처음에는 잘 몰라서 뭐라하는지 못알아 들었다. 나중에 보니 반대편으로 가라는 것을.

그래서 한참동안 뱅뱅 돌다가 정 안되겠어서 공항 파출소에다 물어보게 되었는데....

나 진짜 바보여서 계단 한층 더 올라가면 반대로 타는 곳이 있는데 그걸 못찾아서 헤맨 것이었다. 그때 진짜로 일본어 더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까스로 하네다 퍼스트캐빈 도착해서 겨우 눈만 감고 나왔다. 당시 되게 늦게 도착해서 새벽 4시 다 되어서 왔었으니까.

 

 

2017. 2. 25. 토(첫째날)

아침이 밝아왔고, 나는 얼른 짐을 빼서 요코하마에 있는 숙소로 옮기게 되었다.

당시 호텔로 예약을 잡았는데, 요코하마 아리나에서 가까운 곳으로 잡게 되어 꽤 널럴하게 다닐수 있었다.

일찌감치 짐을 맡겨두고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신 요코하마 역에서부터 미나토 미라이 쪽으로 다녀오게 되었다.

거기 하늘이 굉장히 맑아서 인상에 남았는데, 하필 그때 그 전날 잠 못잤던 피로가 갑자기 쑥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라이브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그냥 여기에서 시간 때우다 갈까?’ 싶을 정도로 미나토 미라이의 풍경이 너무 좋았던 것이었다.

아카렌가라고 붉은 벽돌식 건물이 있었는데, 거기 풍경도 괜찮았고. 바닷가가 펼쳐져 있는 가운데 놀이기구-관람차-가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은 어쩌면 다시 못볼 풍경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요코하마 길을 거닐면서 속으로 ‘라이브가 아닌 여행이라도 다닐만 하겠는걸?’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은 그때 요코하마 중화가 거리도 걷고 싶었지만, 곧 라이브 시간이 다 되어서 어쩔수 없이 돌아와야만 했다.

그 당시 인상깊던 기억은, 당시 어느 소규모 아이돌 그룹이었던 [사립에비스중학교]던가? 거기의 멤버 하나가 갑자기 죽어버려서 그 멤버에 대한 추모식이 요코하마에서 열렸던 것이 기억났다. 시간되면 거기 가볼까 했지만 꽤 오래 걸릴 것 같아 가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요코하마 아리나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날은 무대하고 꽤 가깝게 앉게 되었다.

나는 첫 직관이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감격스러워서 그때 기억을 잊지 못하겠다.

이게 실화인가 생각했고, 그때부터 [물을 쫓아다니는] 일대기가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라이브가 시작되었고, 애들 나와서 노래 하는데 처음 치고는 굉장히 잘하는 것이었다. 아마 그 폭발력에 모두가 매료가 됐겠지.

아마도 ‘우리가 그 전을 뛰어 넘어야 겠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했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이후 다음날에... 우리는 전설을 보게 되겠지만.

 

1일차때 가장 인상에 남던 것은, 길티키스 이동차에 나와서 노래하는걸 봤는데, 거기서 나오는 코바야시 아이카라던가 아이다 리카코라던가... 굉장히 가깝게 있어서 나도 모르게 넋을 잃고 봐버렸다.

옆에 있던 남자들이...

 

“오! 스게에~(오! 쩐다....)”

“얏베에~, 야베에요....(죽겠네~ 죽겠어....)”

 

이러는데, 이해 하겠더라.

내가 봐도 엄청났으니까.

그렇게 1일차가 끝나고 호텔 가서 맥주 시원하게 마시고서 잠들게 되었으니.

그때 진짜 이것이 고급생활인가? 싶을 정도였다.

당시 일화가 또 있는데, 일본의 라면포트 같은게 있었는데 일반 포트하고는 달라서 물을 일단 넣고 끓인뒤에 버튼 누르면 나오는 식인데 그걸 잘 못다뤄서 하마터면 방안을 물바다로 만들뻔 봤던 것이었다. 다행히 얼른 껐지만....

 

2017. 2. 26. 일(둘째날)

둘째날에는 오모테산도에 가게 되었다. 원래 오모테산도에 봐뒀던 팬케이크 집이 있어서 거기에 한번 가보려고 했다.

그러나 1시간 동안 대기해야 한다고 해서 그냥 포기하고 근처에 있는 메이지 신궁이나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날 맥주먹고 오전 내내 배고픈 상태로 가다보니, 몸이 영 말이아니었다. 배는 고프지, 머리는 어지럽지, 근처에 식당은 나오지 않지.

그러다가 근처에 라멘집이 있어서 거기서 라멘 한그릇이랑 교자 한접시 해치우게 되었는데, 국물이 굉장히 기름졌다. 그래도 배고파서 국물까지 다 해치웠던 것 같았다.

그 상태로 메이지 신궁을 가보게 되었는데, 감상을 들려주자면 아예 신토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끔 하는 것 같더라.

아이한테 신사 입구에 들어가면 90도로 인사하도록 시키고, 또 거기 임금이 국민들에게 적어 놓은 글귀가 있어 봤는데 마치 자신이 은혜를 다 베푼 듯이 적어놨었다. 근데 넓긴 넓더라.

거기다 신사에 바친 것 같은 일본주 통들이 눈에 띄였는데, 그게 좀 더 이색적이긴 했다.

나는 딱히 거기다 고개 숙이긴 싫어서 그냥 휙 둘러보고 나와 곧바로 아키하바라로 갔다.

 

아키하바라에서 여러 가지 것들이 눈에 띄었다. 선샤인 풀 프린팅 옷들이 눈에 띄었다.

거기서 와타나베 요우 티셔츠랑 츠시마 요시코 티셔츠가 눈에 띄였는데, 그거 사고 싶었지만 샀다간... 인간적으로 버려선 안될걸 버릴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거입고 돌아다니기도 그렇고... 집에도 들여다 놓기에도 애매하고. 걸리면 죽음이었으니까.

그래서 그것은 그냥 관두기로 했다.

대신에 동인지 몇권 건지긴 했다. 아키하바라에서 동인지 판매하는 곳, 거기가 토라노아나인지 애니메이트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어쨌든 들어가서 사기는 했다.

니코마키, 요시리코, 그리고 코토리의 스쿨아이돌 데이즈 까지! 작지만 굵직한 지름이었다.

그런 후에 열쇠고리도 4개정도 구입했다.

 

아키하바라를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좀 아슬아슬해서 그냥 신칸센 타보기로 했다. 그때가 첫 신칸센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뭔놈의 신칸센이 이렇게 비싸?!

난 아무리 해도 신칸센은 적응이 안돼서, 표 살때마다 실수하곤 한다. 아마 이것을 읽는 독자들도 몇 번 실수 했었을 것이다. 그래서 돈 좀 날려먹게 되었다.

어쨌든, 아키하바라에서 요코하마로 가는데 의외로 일찍 도착하게 되어 신 요코하마 역에서 킹블레이드 하나 사게 되었다. 그럴만도 한게, 뮤즈 블레이드가 있었는데, 그것이 색깔에 한계가 있었고, 아쿠아 블레이드도 있었지만 돈 때문에 1개만 사게 되었다. 그래서 킹블레이드를 하나 더 사게 되었다.

그러고서 러브라이브 콜라보 물품이 있길래 뭣좀 더 살려다가 포기했던 것이 있었는데, 안산 것을 땅을 치고 후회했다.

물통이었는데 왜 안샀지?

 

어쨌든 시간이 되어 둘쨋날의 라이브를 즐기게 되었으니!

여기서 전설이 시작된다.

아쿠아 퍼스트 라이브 둘쨋날 직관이든 라이브 뷰잉이든 보신 분들은 다 아실테지만,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적어봅니다.

곡 리스트는 1일차와 같았다. 어쩔수 없었다. 왜냐면 싱글 음반이 별로 없었으니까. 그래도 멤버들 많이 하는 것이라 딱히 뭐라할수 없었다.

그런데, 러브라이브 공식이 그야말로 일반인인 멤버들을 너무 혹사 시킨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으니!

작중에 피아니스트를 꿈꿨다가 좌절하여 시골인 시즈오카 누마즈로 도피한 인물이 나오는데, 문제는 피아노하곤 전혀 인연이 없던 성우에게 피아노를 맡기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 부분은 조금 논란이 있는 부분이지만, 내 느낀점을 말하자면 피아노 앞에 서는 순간 그 멤버의 표정이 살짝 굳는걸 보게 되었다. 실은 그 전날에도 표정이 조금 굳어지는걸 봤었지만 첫째날에는 별 일없이 넘어갔다.

그러나 둘째날이었던 당일날, 표정 굳는게 영 심상치 않았다. 마치 울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이러다 울어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자리를 잡고 1소절 정도 치다가 갑자기 간주가 멈춰버린다. 그걸 보던 나는 ‘뭔 일 생겼나?’ 해서 무대를 보는데 다시금 간주가 이어지면서 다른 멤버들이 춤추다가 또다시 음악이 멈춰버린다. 뭔 일이 나도 나버린 것이었다.

사람들은 웅성거렸고, 나도 큰화면에 비친 모습을 보는데, 피아노 앞에 앉아 있던 사쿠라우치 리코 성우 아이다 리카코가 긴장감을 이기지 못해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만 것이었다.

멤버들 일부가 달려가서 달래주고, 또 몇 명은 대열 흐트러지지 않게 자리 유지하고 있었다. 나를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은 괜찮을까 걱정했고, 다들 아쿠아 응원봉 색깔을 리코 색인 벚꽃색 핑크로 돌리기 시작했다.

 

[힘내라~ 힘내라~]

 

다들 그렇게 외쳤고, 잠깐의 정적이 이어진 후, 다시금 자세를 고쳐잡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관객석은 죄다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틀리던 부분에서 이번엔 다시한번 성공하게 되었다. 저 상태에서 다시 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도 끝까지 완주한걸 보면서 보는 내가 다 잘했다고 생각했다. 보는 사람들이 다 조마조마했던 부분이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수고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장면이었다. 그런데 아쿠아를 좋아하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꽤 기나긴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그래서 그 곡의 피아노만 보면 사람들이 가슴저미는 경험을 했었다고....

 

그리고 다음 라이브 예정이 나왔는데, 다음 라이브 예정일을 보면서 나는 절규에 차서 외치게 되었다.

 

“난 못가!!!!!”

 

그 당시에 두 번째 라이브가 2017년 여름에 했었는데, 내가 절규한 이유는 나에게 외할머니가 계셨다. 그런데 이번 라이브가 끝나고 한 2~3일 후에 요양원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 느낌이 싸 한게 그때 즈음에 돌아가실 것도 같은 느낌이 들었고, 또 다른 것은 여름 동안에 외할머니 한테 장조림 한 것을 요양원에다 져다 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짐 싣는 당나귀 꼴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의 직관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실제로 마지막 라이브 할적에 그 예상은 들어 맞았으니....

 

그렇게 라이브가 끝나고 나서 뒷풀이를 하게 되었다. 간만에 만난 사람들 하고 회포도 풀겸.

거기서 많은 얘기들을 주고 받았다.

좀더 젊은 사람들이 라이브를 자주 왔으면 좋겠다던가, 여자애들도 라이브 관람을 좀 더 했으면 좋겠다던가 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고서 공항으로 가려고 했다.

 

공항으로 가려는데, 여기서 또 한가지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요코하마에서 하네다 공항으로 가려면 케이큐 카마타에서 그냥 쭉 가던가 해야 하는데 내가 바보짓을 하는 바람에 전철이 시나가와로 가게 되어버리는 엄청난 대 참사가 벌어진 것이었다. 그것도 막차시간에 그런 짓을 저질러 버려서 머릿속이 새 하얗게 변해버렸다.

 

‘이거 집에는 어떻게 가!’

 

이대로 나는 국제미아가 되는가! 하면서 그렇게 나는 일본 귀신이 되는건가? 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러다가 택시 타고 공항가야 겠다는 생각 밖에 안들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택시, 택시...”를 중얼거리며 택시 정류장 어딨냐고 물어보게 되었다.

다행히 정류장 찾아서 안되는 일본어로 하네다 공항까지 부탁드린다고 하고 조마조마 하면서 타게 되었다.

한번 가는데 거의 한 우리나라 돈 5만원은 훌쩍 넘는 것 같았다. 어느나라나 그러겠지만 역시나 택시는 비싸다....

 

그래서 다행스럽게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 타고 귀국하여 출근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그리고 너무 피곤해서 조퇴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가 해준 청국장 김치찌개가 너무나도 그리웠습니다.

그 이후로 헤이와지마를 볼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움찔 한다고....

 

여행후기 - 물맛에 취하다 보니 물만 찾게 되더라. 물은 더욱더 맛있어 졌고 사람들은 서서히 물 중독에 빠지게 되었다. 나도 어찌보면 물 중독이나 다름없는데, 지금 이 위험한 상황 때문에 그 물 맛을 당분간은 느낄 수 없게 된 것이 너무나도 슬플 따름이다.

 

결론 : 물을 주세요!

 

 

 

 

외전 끝! 외전 반응이 좋으면 아예 아쿠아로 일대기를 한번 써보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8편 - 해빙(解氷)편이 이어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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