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학식을 먹고 나와 물을 빼러 화장실에 갔었다. 언제나처럼 화장실 벽에는 게시판에는 차마 게시하지 못할, 하지만 어딘가 유용한 듯한 정보를 담은 노골적인 스티커들이 가득 붙어있었다. 자신감을 되찾아준다는 전단지의 노골적인 그림을 보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는데 타일 게시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과외 전단지 하나가 소변기로 떨어질 듯 아슬하게 붙어있었다. 돌아오는 학기에 나가게 될 교생 실습이 두려워 매일같이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던 나는 과외가 좋은 경험이 될거라고 생각했고, 반신반의하며 강사로 등록했다.
    첫 과외라는 내 이야기에 사기꾼같은 톤으로 첫 달 60% 수수료에 대해 설명하던 전화 속 남자는 아.. 그러시구나.. 하며 그네들의 업계의 룰과 일련의 흐름에 대해 열을 올렸다. 남자에 따르면 일단 제일 중요한 것은 수수료이고,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가정방문 할 때 명문대 생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학생과의 유대감이었다.
    일단, 일 번은 내가 원하지 않아고 업체가 강제로 행하시는 일이시고, 두 번째는 어른을 상대하는 일이라 어찌어찌하면 괜찮겠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마지막 삼 번은 여간 고역이다. 여하튼 전화 속 남자의 세뇌인지 코치인지 모를 말을 철썩같이 믿은 나는 처음으로 남의 집에 가정방문을 하게 되었다.

    음교과와의 소개팅까지 미루고 온 첫 가정방문은 경험. 처음에는 딱 경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나 상냥하게 웃으며 자신의 외동 아들이 가진 못된 성정과 돌이킬 수 없는 아이의 내신 등급을 성토하는 어머니를 보자 왠지 모를 책임감이 아랫배에서부터 치솟았다. 어쩌면 첫 번째 가정방문에 응하지 않은 이 도도한 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걸 지나치게 좋아하거나 과도하게 활동적이어서 친구들과 하는 축구나 농구 따위의 사소한 점수 내기에 목을 매는 아이일지도 모른다. 그래, 교육자의 길이라는건 인간을 개도시키는 일이니까, 이 정도 시련 쯤이야. 열의에 불탄 나는 걱정이 맺힌 어머니의 눈가를 보며 수업을 수락했다. 이상한 점이 있다면 어머니가 내 정면, 측면, 그리고 뒷태까지 사진을 찍어가셨는데 원래 과외라는게 실제로 못 만나면 스마트폰 액정으로라도 만나고 그런 건가보다 싶었다.

    아이의 집은 아파트가 아니었다. 한적한 주택단지에 있는 이층집으로 지은지 꽤 되었는지 방음이 좋지는 않았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역시 마찬가지여서 한 발을 디딜 때마다 삐걱-하는 소리가 났다. 걸음마다 소리를 달고 이층에 올라가자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현관에 있던 나이키 맥스를 신는 나의 첫 제자일것이다. 사실 아이들이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대화가 힘든 종족들이라.. 그래, 언젠가는 나도 아이였겠지.

    문 앞에 서자 말 소리가 조금은 또렷해졌다.

    “야, 아니라니까? 진짜 졸라 새끈해. 아니지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 머리 길이가 뭐가 중요해.”

    큼큼, 어흠!
헛기침을 두 어번 하자 말소리가 뚝 끊겼다.

    “끊어 끊어!”

    다급한 목소리로 통화를 마무리하고 아이가 정적을 유지했다.
학생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주는 선생이라니, 반쯤 성공한 교사인 것 같다.
노크를 하자,

    “네.”

하는 짧은 대답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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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대답을 뒤로한채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의 첫 제자는 예상과는 다른 얼굴로 나를 반겼다.



    “에에? 뭐야!”

의자에 앉아있던 학생이 펄쩍 뛴다.



    “뭐야! 사진이랑 완전 다르네!”
    “응?..”

이 무슨 무례한 언행인가. 그깟 몇 장의 사진으로 나를 다 알기라도 하는 것 처럼 속단한게 무슨 자랑이라고..

    “키가 엄청 크네?”

    응?..

    “아 뭐야..”



    아직 가방도 내려두지 못 한 채 방문과 책상 가운데 그 어느 쯤에 서 있던 나는 천천히 슬금슬금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래 이 아이가 어떤 아이던 내가 받아들여야 할 아이이다.



    “남자에요?”


    아이의 경악하는 얼굴만큼이나 나도 놀랐다. 상냥하고 예의가 몸에 배어있던 어머님과는 전혀 다른, 쌩판 다른 아들내미라니. 양아치의 정점을 찍어야 할 수 있다는(우리 때는 그랬다.) 쌩은발 이라니! 내가 대답하지 않자 아이는 재차 물었다.


    “남자에요?”
    “응. 누가 봐도 그렇지 않니?”
    “군대 갔다왔어요?”
    “응.”


    뱅뱅 돌아가는 회전의자에 엉덩이를 반 쯤 걸친 아이의 헐렁한 교복에 명찰이 있을리 만무했다.

    “이름이 뭐야?”
    “이름도 모르고 과외를 와요?”

으응.. 아는데, 할 말이 없어서.

    “이민우에요. 쌤은요?”
    “나는 정필교.”
    “촌스럽네.”

    그래 미안하다.



    “책 사왔지?”


대답대신 책상을 툭툭 친 이민우학생은 그딴걸 왜 묻냐는 얼굴이다.
쫄지말자. 학생에게 쫄 필요는 없다. 필교야 힘내자.



    “펴봐. 학교에서 어디배워?”
    “무슨.. 삼각형? 함수? 뭐 그런건데..”
    “삼각함수?”
    “그랬나?”


    말이 짧다. 아니다. 쫄지 말자. 쫄지말자 필교야.
그 뒤로 나는 정말 열심히 왜 싸인은 빗변 분의 높이 인지. 코싸인은 빗변 분의 밑변인지. 탄젠트는 왜 밑변 분의 높이인지 한시간 동안 열변을 토했으나,


    “아 그러니까. 싸인이라는 거는 높이가 빗변을 깔아뭉갠거고 코싸인은 밑면이 빗변을 잡아먹은거고.. 탄.. 탄 뭐였지?.. 탄…”
    “탄젠트..”


쫄지말자.

    “아, 탄젠트. 탄젠트는 높이가 밑변한테 적극적으로 들이댄..”
    “어어, 맞아 맞아.”
    “….”

한 마디도 지지 않던 이민우학생의 입이 갑자기 다물어지고 눈빛이 그윽해진다.


    “쌤, 챙피해요?”
    “….”
    “아아.. 나 좋아하는구나? 첫 눈에 반했구나?”



이 당돌한 아이를 어찌해야 좋을꼬.. 프로이트는 말했다. 사람은..

    “난 남자도 괜찮아요. 새끈하면 됐지 뭐. 나 사실 허리도 가늘고,”
    “야!”

그래 나 얼굴 빨개졌다! 니가 그렇게 빤히 안쳐다봐도 얼굴 뜨끈뜨끈하다고.


    “너는 애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 머리는 새하얘가지고!”
    “쌤은 샛노랗잖아요!”
    “나는 대딩이고 임마!”
    “괜찮아요. 노란색 잘어울려요. 그럼 대딩이니까 시간많죠? 내일 데리러 와요. 나, 신화고.”



당돌하다. 요즘 애들은 다 이렇게 당돌할까.



    “다섯시. 나는 야자 안해요.”


내년에 교생 실습을 나가면 저렇게 당돌하게 몸을 부대는 아이들이 가득한걸까.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멍하게 이민우학생의 얼굴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이민우 학생이 내 손목을 척 잡더니.


    “자! 맘에 드니까 잡아도 되요! 내 손!”

그래, 야들야들.. 아니 이게 아니지.


    “이제 다시 해요 탄..탄센트 그거.”
    “탄젠트야 탄젠트. 탄젠트는 이렇게 분모가 무한으로 작아지고..”


그래 탄젠트던, 탄센트던 뭐가 중요하겠니.
니가 내 첫 제자가 되었고, 나는 깊은 마음까지 너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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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는 그랬다. 그렇게 마음 깊이 제자로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진짜 딱 제자로만,
그러려고 그랬지…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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