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화는 야심가다. 아주 어린 나이에 그녀는 결심했다. 2층에서 벗어나겠다. 위로 올라가겠다. 그래서 다시는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해주겠다. 난화가 가진 것은 남의 기분을 맞춰 주는 혀와 꽤 이쁘장한 외모가 전부였다. 필연적으로 난화는 시집을 갔다. 상대는 만두집 사장으로 본부인과 첩이 있는 남자였다. 난화와 10살 이상 차이나는 나이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8층이라는 이유로 혼인을 받아들였다. 혼인식은 없었다. 거의 팔려가는 신부였기 때문이다. 난화가 2층을 떠나면서 본 마지막은 어머니가 “독한 년.”이라 말하는 순간이었다. 2층을 벗어나면 차별과 시선에서 벗어날 줄 알았다. 난화는 순진했다. 성채는 난화의 기대를 처참히 짓밟았다. 본부인의 텃세는 날마다 난화를 때렸다. 첩은 시기와 질투로 매일 난화를 괴롭혔다. 서방은 처음과 다르게 점점 냉랭해졌다. 방관과 무심함 속 난화는 이리저리 치였다.

그 날도 똑같았다. 본부인은 아침부터 심기가 불편했다. 인사를 똑바로 안했다는 이유로 난화의 뺨을 때렸다. 거기다 첩은 난화의 모든 신발을 숨겼다. 덕분에 시퍼렇게 멍이 들은 얼굴과 맨발로 가게를 도왔다. 그런 난화를 본 남편은 “복도로 쫓겨나고 싶어? 신발은 어디있어?”라는 핀잔만 줬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난화는 맨발로 뛰쳐나왔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도 어차피 성채이다. 결국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 계단에 앉아 펑펑 울었다. 오열에 가까운 눈물이었다.

그때 누군가 난화의 발을 잡았다. 소스라치게 놀란 난화는 우는 것도 잊고 자신의 발을 잡은 손을 봤다. 거친 손의 주인은 동양인 여자였다. 처음 본 여자는 냉정해 보였다. 무표정에 칼같이 잘린 단발머리가 그런 인상을 더욱 강하게 했다. 거기에 흰자만 보이는 왼쪽 눈과 무스탕 때문에 여자는 위험해 보였다. 난화는 공포심에 질려 잡힌 발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여자는 두 손으로 발을 잡고 묵묵히 있을 뿐이었다. 여자가 반대쪽 발을 잡았을 때 난화는 이 난데없는 행동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꽁꽁 얼어붙은 발이 체온으로 따뜻해졌기 때문이다. 난화는 울컥 눈물이 나와 고개를 돌렸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우는 건 난화의 높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술을 깨물고 눈물만 흘렸다. 여자는 난화의 눈물에 반응하지 않았다. 보통 얼굴이라도 보겠지만 이 여자는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두 손으로 발을 덥혀주고 손수건으로 더러워진 발을 닦아줬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신발을 벗어서 난화의 발에 신겨주었다. 끝까지 여자는 난화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신발을 벗어 준 여자는 계단을 올라갔다.

따뜻했다. 더러운 발을 아무렇지도 않게 잡았던 두 손, 자신의 신발을 벗어주는 것, 체온으로 얼어붙은 두 발을 녹여준 것. 그리고 난화의 자존심에 금이 갈까 아무 말 없이 가는 것마저도 따뜻했다. 생긴 건 냉랭해서 추운 여자가 해준 것은 따뜻했다. 난화는 여자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난화는 생각보다 빨리 여자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Y가 몇일이 지난 후에 8층 복도를 점거했기 때문이다. 난화는 그때 Y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Y는 복도의 왕으로 불렸다. 원노인을 죽인 후 복도 출신을 모아 조직을 만들었다. 그리고 복도 점거를 시작했다. 신생 조직은 벌써 꽤 큰 조직 몇 개를 박살냈다.

난화는 그 여자가 Y인 것을 알고 질투심이 생겼다. 복도출신이 자기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것도 싫지만 자신과 다르게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올라갔다는 것이 부러웠다. 그 감정은 Y와 그 조직이 만두가게에 왔을 때 폭발했다. 난화에게 거침없이 막말과 손찌검을 하던 사장과 본부인이 Y에게는 예의를 갖췄다. 굽신거리는 모습이었다. 난화는 주변 사람들도 알아 볼 정도로 표정관리가 안됐다. 결국 사장에게 머리채를 잡혀 밖으로 끌려 나왔다. 그런데 가게 밖에서 Y가 마치 기다린 것 같이 있었다. Y를 본 사장은 90도로 깍듯이 인사했다. 난화는 그 모습이 한심해 보여서 고개만 숙였다. 그러자 사장의 주먹이 날아왔다. 사장은 쓰러진 난화를 두고 Y에게 예의를 모르는 것이라 그렇다 변명을 늘어놨다. Y는 담배를 물고 가만히 있었다. 처음부터 Y의 태도는 관망에 가까웠다. Y가 반응하지 않자 민망해진 사장은 가게 안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난화는 사납게 Y를 노려봤다. 그런 난화를 보던 Y는 옆으로 가서 손을 내밀었다. 난화는 그 손을 내리쳤다. 이미 상처 난 자존심에 수치심까지 더해졌다. 자신보다 낮은 출신인 사람에게 이런 취급을 받는 자신을 보인 것도 그 사람이 측은지심으로 배려해주는 것도 다 싫었다. 결국 두 볼에 눈물이 흘러 바닥을 적셨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해봤자 너만 상처받을 것 같아서.”


처음으로 Y의 이야기를 들은 난화는 놀랐다. 침묵으로 돌아올 줄 알았던 질문에 답이 왔다. 놀란 눈으로 Y를 봤다. Y는 여전히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난화는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Y는 엉망이 된 난화의 머리를 봤다. 왜 그러는지 물어보는 듯 했다.


“사장에게 머리채를 잡혀서 그래요.”

“그래. 아까 보니 그런 것 같네.”


Y는 난화의 머리 장식을 하나씩 빼냈다. 그리고 머리를 손으로 정리해줬다. 아무 것도 없는 머리지만 아까보다 훨씬 괜찮았다. 그리고 Y는 난화에게 겉옷을 벗어줬다. 질질 끌려와서 옷이 엉망이 됐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 우는 난화에게 Y는 손수건을 줬다.


“죽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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