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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화려한 새가 열어준 문을 통해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 길목에서 어떤 남자를 봤었다. 자신과 똑 닮아 있었다. 칠흑보다 검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그가 배를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니, 사실 남자는 배 따위는 타고 있지도 않았다. 그냥 맨 몸으로 갔다. 어떻게 저런게 가능한거지? 생각하면서도 남자는 그저 전진했다. 이미 ‘신’도 본 적이 있는데, 이젠 어떤 걸 보든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남자가 게이트의 밖으로 나왔을 때,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그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들어있었다.

 남자는 걸었다. 흔적을 따라, 냄새를 따라서 걸었다.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도착했다. 자신이 죽여야 할 남자의 집에.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남자의 집에. 그리고 자신이 살던 집 앞으로.

 맨 처음 여행을 했던 ‘진짜 파란머리 천사’는 자신의 시간 여행으로 인해 바뀌어버린 역사를 바로잡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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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령 어떤 사람이 돌뿌리에 걸려 넘어졌다고 해보자. 그런데 많은 사람이 자신과 같이 이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을 본 남자는 모두가 성만 내고 지나갈 뿐, 그 누구도 돌뿌리를 치워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남자는 인간의 도덕성에 대하여 큰 의구심을 품게 되었고, 그 일을 계기로 그는 훗날 위대한 철학자가 되었다. 

 보통을 그렇지 않지만, 이 경우에 돌뿌리 하나는 역사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작은 존재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아무개가 그랬다. ‘파란머리 천사’라는 돌뿌리에 걸려서 넘어진 남자가 그였다. 그래서 아무개는 일종의 ‘변수’였다. 그리고 그 변수가, 평행한 시공간을 간신히 붙잡고 있던 싱크를 향해 상당히 크게 작용할 것이라는 것을 ‘시간을 관장하는 신’인, 녀석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로 잡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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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배에 오르기 전, 여행사에서 그에게 시간여행의 원리를 간단히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간여행의 위험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일이었기에 간단히만 짚고 넘어갔었다. 

 시간 여행이란, 과거로 가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사는 세상에서, 시간대가 다른 평행우주가 하나 생기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그랬다. 남자가 살던 시대 이전에는 타임머신이 없었다고 한 말이 그랬다. 모순이었지만 말이 됐다. 애초에 ‘시간대’라는 것은 하나였지만, 인간이 타임머신을 개발한 이후, 여러 평행 우주가 생기기 시작하고, 그 시간대는 사람들이 여행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그 수가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심지어 미래로 가는 시간여행은 과거로 가는 것과는 완전히 개념이 틀려서, 아직 상용화는 커녕, 단 한번의 성공 사례조차도 없다고 했다. 

 어쨌든 그 수 많은 ‘평행 우주’를 ‘평행’으로써 있게 해주는 것은 결국, 그 시간대와의 싱크(Sync,조화) 였다. 평행 우주의 과거는, 온전한 미래로부터의 과거가 아니라, 말하자면 별개의 세상의 별개의 과거였다. 그래서 크지는 않지만 조금씩의 변수가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뒤틀린 ‘변수’들은 더 이상 평행 우주를 ‘평행’이 아니게 만든다. 그리고 원래 균형을 이루던 우주들이 그런 식으로 조금씩 균형을 잃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니, 모쪼록 과거에 너무 큰 영향을 끼치는 행동은 자제하라고도, 여행사에서는 충고했다.

 

 변수는 제거해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남자는 자신이 만든 ‘변수’를 제거하라고, 신으로부터 명령받은 것이다. 그것도 죽기 직전에. 그것도 자기 자신을 죽이라고. 맨 처음 자신이 시작한 이 여행을 다른 우주에서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지만, 그리고 그 여행이 벌써 수십만 번이나 반복되어서, 사상 최대의 변수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도 믿지기 않았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변수들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아니, 의무가 있었다. 이쯤에서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어야만 했다. 남자는 지금 문 앞에 있다. 자신이 예전에 거주하던 집의 문 앞에. 아직 이 시간대에서는 과거의 자신이 거주하고 있을 집의 대문 앞에 섰다. 그를 깔끔하게 죽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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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개는 집에 돌아왔다. 하루종일 걸린 윤지민과의 데이트를 끝내고 이제 막, 집으로 돌아온 찰나였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도어락에 손가락을 가져다 댈 때마다 높은 기계음이 삑- 하고 귀를 찔렀다. 

 철컥- 문을 열자마자 4등분 됀 창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집안은 묘하게 정적이 흘렀다. 이런분위기는 어디선가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아무개는 괜시리 심장이 조여오는 듯한 느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야, 자냐?”

 또 쓸데없이 목소리를 높이며 리크를 불렀다. 방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새 집 냄새와 함께 스멀스멀 다른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니, 이 냄새는 지금에서야 그가 눈치 챘을 뿐, 진작 집 안 전체에 퍼져 있었다. 어디선가 맡아본 경험이 있었다. 또 그 새가 생각났다. 화려한 새. 아무개가 차로 치었었고, 또 리크가 데리고 있던 그 새. 이 반년간 죽을 힘을 다해 모은 그 새의 찬란한 깃털들. 영화처럼 그 순간순간들이 계속 스쳐 지나갔다. 장면마다 떠올랐다. 그 냄새를 맡으며, 또 그 기억들을 떠올리며 집 전체를 한 바퀴 돌았다. 그 어디에도 리크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두둑한 편지가 수 통. 군청색의 깃털과 함께 편지지에 넣어지지도 않은 채로 식탁 위에 펼쳐져 있었다. 

 그 편지에는 리크가 이곳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편지가 아니라 무슨 일기장 같았다. 저가 이순신이라도 된 양 난중일기라도 쓰려는 건가 싶었다.

 오묘한 심정으로, 아무개는 그 편지지들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읽다보니 점점 알게되었다. 리크는 자신과 같은 상황에 같은 처지였었고, 그도 아무개와 같이 파란머리 천사를 만났었다. 아무개는 양화대교 밑에서 구해졌지만, 그는 동생과 함께 바다에 빠져 죽을 뻔 한 것을 구해졌다고 한다. 

 

 부모님의 장례를 다 치른 다음날, 그분들의 골분을 뿌려드렸다. 아무개는 그러지 못했지만 그는 울었다. 그렇다고 아주 펑펑 시원하게 울어버린 것도 아니고 그냥 숨죽여서 계속 울었다. 그때 그의 축 늘어진 다크서클 아래로는 4일간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장례를 끝냈고, 그러다가 해양장을 했고, 돌아가는 길에 차를 낭떠러지 밑으로 떨구었다. 눈물이 시야를 가려서였는지, 아니면 고의였는지는 적혀있지 않았다. 다만 차는 바다속으로 뛰어들었고, 리크는 거의 다 죽어가는 순간까지 그의 동생을 꼭 붙잡고 있었다고 한다. 헤엄쳐서 올라가지 못하게 하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마지막 가는 길에는 같이 있고 싶었어서, 죽음을 직감하고 동생이 추울까봐서 그랬는지도 적혀있지 않았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집의 천장이 보였다. 그리고 그 때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이제야 일어났네? 너 이틀 내내 잠만 잤었어.” 

 목소리. 자신과 닮은 목소리. 아니 같은 목소리. 그리고 검은 머리에 정장차림. 그것이 그의 ‘파란머리 천사’와의 첫 대면이었다고 한다. 

 그 뒤로 리크는 쭉 아무개와 비슷한 일을 해왔다. 다만 그는 윤지민과는 정상적인 연애를 했고, 그녀와는 전혀 다른 고객과의 트러블도 멋지게 해결했다. 그리고 6개의 깃털을 다 모았다.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는 깃털 6개를 사용해서 타임머신이 지나갔던 회로를 다시 여는 방법이 적혀져 있었다. 깃털은 타임머신을 열기 위한 동력이었다. 그리고 추신으로는 그 방법을 이용해서 리크가 먼저 자신이 살던 세상으로 돌아갔다고도 적혀져 있었다. 작별인사를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는 적혀있지 않았다. 그저 안녕이라고 적힌 두 글자만이 움푹 패여있었다. 어지간히도 힘을 주어 쓴 모양이다. 이것이 그가 작별을 고하는 방법이었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리크는 약속을 지켰다. 6번째 깃털을 손에 쥔 지금, 그는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서운했다. 리크의 방식을 존중하는데도. 그리고 그는 입밖으로 뱉은 말을 전부 지켰는데도 불구하고 서운했다. 이제는 서운하다 못해 화가났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등을 돌려버린 그 망할 웬수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편지에는 과거로 언제 가야 한다고 특정해 놓지는 않았지만. 아무개는 그것을 지금 당장 행해야 한다고 굳게 생각했다. 사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쿵 쿵 쿵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인지, 어떤 용무로 왔는지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 그리고 그 누가 왔더라도 딱히 열어줄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그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쿵 쿵 쿵

 또 들려왔다. 그래도 아무개는 깔끔하게 무시해 버렸다. 집에 없는 줄 알았으면 돌아가겠지. 라고만 생각했다. 동생이 아직 이 집을 알고 있을 리는 없었다. 윤지민과는 방금 헤어지고 돌아온 직후다. 아무도 올 사람이 없었다. ‘택배라도 온 건가’ 생각하고 넘겼다. 그런데 또.

 쿵 쿵 쿵 쿵

 지긋지긋 하게 대략 십 초 정도의 텀을 두고 계속해서 문을 두들겼다. 아무개는 마음 속으로 한번만 더 무시하기로 다짐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이번엔 미친듯이 두드렸다. 분명 옆에 초인종이 있음에도 굳이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세게 두드렸다. 어떤 미친놈인지는 몰라도 제대로 된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향해 다가가는 와중에도 노크 소리는 몸추지 않았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하고 계속 두드렸다. 이쯤되면 아무개는 슬슬 불안해졌다. 살인마라도 찾아온 건지. 그래서 먼저 대문에 달린 외시경을 통해서 밖을 내다 보았다. 

 

 바깥쪽 로비에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은 로비고 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까맸다. 무언가로 외시경을 막아놓은 것이었다.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차단한 것이 분명했다. 아무개는 침착하게 행동했다. 당장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쿵 쿵 쿵......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이번엔 더 두드렸다. 아니 두드린 것이 아니었다. 강하게 때렸다. 문을 쾅쾅 부술듯이 때리고 있었다. 아무개는 현관문에 락을 걸어놓았다. 그리고 문을 천천히 열었다. 그 열린 문 틈새로 안전하게 범인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문을 열었다. 하지만 현관문이 움직였을 때 먼저 보인 것은 눈동자였다. 까만 눈동자. 자신과 똑 같은 얼굴에 똑같은 눈동자를 한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남자는 아무개와 눈을 마주치자 마자,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사람의 힘이 아니었다. 그건, 물리학적인 힘이 작용한 것이 아니었다. 미지의 능력으로 문을 콰직 부수고 저 멀리 팽개쳤다. 아무개는 현관에 그대로 쓰러졌다. 아직 리크의 편지는 손에 들려있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우선 호의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무개는 그대로 일어나서 도망쳤다. 

 

 이층 한옥집에서 벗어나려고 4등분이 되어있는 창문을 열고 도망치려고 했다. 그 좁은 틈새에 몸이 들어갈까, 어깨가 통과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욱여서라도 집어 넣어야만 했다. 남자는 부서진 현관의 너머로 한발짝 들어왔다. 남자가 눈짓하자 온 집이 다 풍비박산이 났다. 아무개는 창문을 향해 뛰었다. 나무로 된 창틀을, 도약하는 힘으로 부시고 창밖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다시 뛰었다. 이층 고풍의 한옥집의 창문을 깨고 마당을 나와서 달렸다. 그제서야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남자는 추격하지 않고 깨어진 창문을 통해 고개를 내밀고 아무개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포기한건가? 다 끝났나 싶었는데 이젠 초능력이라니! 이런 씨발!’

 시간여행에 질리지도 않고 이젠 정체모를 암살자라니, 아니, 이걸 암살이라고 부를 수나 있을까. 그것은 암살이라기엔 너무 화려한 등장이었다. 

 근처의 골목길에서 달리기를 멈추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무릎을 잡고 빌빌거렸다. 너무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머릿속에서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답답한 교통체증 사이에 끼인 차들의 바퀴처럼 머리가 일하지 않고 멈춰있었다. 나와 닮은. 리크와도 닮은 남자. 이 혼잡한 상황 속에서도 그것 하나만은 분명하리만치 알 수 있었다. 그 남자는 아무개 자신이었다. 과거에서 왔는지, 미래에서 왔는지는 몰라도 그랬다. 아마 초능력까지 가지고 있으니, 우선 아무개보다는 미래에서 온 것 같았다. ‘뭐지? 그 능력은, 염동력?’ 눈짓 한번에 온 집안이 박살나버릴 정도의 위력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경찰에 전화한다고 한들, 그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을 것이었다. 당연했다. 대체 어느 누가 “괴한이 집 문을 부시고 들어와서 염동력으로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저는 간신히 도망쳤습니다.”라는 말을 그리 순순히 믿어줄까. 답답했지만 그 혼자서 해결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숨을 한차례 고르고 그는 골목에서 빠져나와서 사람들이 많은 상가 거리로 향했다. 초겨울의 날씨는 쌀쌀했다. 아무개는 그제야 제 손에 들린 리크의 편지를 눈치챘다. 

“내가 들고 온건가...?”

 퍼뜩 그는 생각했다. 이것만 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과거로 갈 수 있지 않나? 그러면 아무리 초능력을 사용하는 남자라 해도, 따라오기에 벅찰 것이다. 그리고 아무개는 그제서야 또 눈치챘다. 

“좆 됐다............!”

 깃털을 전부 집에 두고 왔다는 사실이 그제서야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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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의 이름은 현수였다. 김현수. 사실 그 이름이 진짜 이름인지는 몰랐다. 그냥 어느정도 그가 언어를 인지하게 되었을 무렵부터 주변의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불렀다. 그가 버려진 고아원에서는 어느 겨울날에 문앞에서 그를 주웠다고 했다. 그 사실을 알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 그는 어느 선한 인상의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당시에 그의 나이는 만 7세였다. 하지만 그 부부는 곧이어 배가 불러왔고, 둘째가 태어났다. 아니, 첫째였다. 적어도 김현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동생이 태어난 뒤로부터 그는 자식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다. 굶어 죽을 것 같아서 냉장고를 뒤지다가 잡혀서 뺨을 맞은 적도 있었다. 왜 지금까지 그들이 그를 버리지 않는지가가 궁금할 정도로 천대받았다. 지금 생각하자면 그것은 아마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이미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실은 자신을 입양해온 것도 전부 그 이미지를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이십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그의 안쪽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 소리는 긴 세월동안 꺼지는 일도 없었다. 

김현수는 그 이름으로 이십년 가량을 살아왔다. 그러다가 호빠가 되었다. 그가 가진 단 하나의 재능인 외모가 빛을 바랐다. 그냥 하릴없이 길을 걷던 우울증 걸린 백수는, 옷 하나만은 뭘 걸쳐도 어울리는 핏이 났다. 그러다가 마담과 만났다. 그 호빠에서 일한 세월이 개월에서 년단위로 올라갈 때 쯤, 김현수는 어느 후배와 만났다. 그 후배는 그가 무슨 행동을 하던간에 신결질적인 눈초리를 보내왔다. 마치 그를 이미 인생의 낙오자라고 낙인찍어놓기라도 한 것 같은 눈빛이었다. 같은 가게에서 일하는 본인은 그렇게 잘났나? 사실은 김현수도 그 후배가 싫었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할 수 있겠는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일상이었다.

 

그 안에서 김현수는 나름의 노력을 했다. 그 홀대받던 집구석에서 쥐 죽은듯이 공부해서 대학에 합격했고,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고등학생 때 부터는 아르바이트를 해 왔다. 군대에 있던 2년간에도 죽어라 공부만 했다. 그리고 그렸다. 그는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탈출구는 사회 뿐이라고 생각하며 나아갔다. 그렇게 아직도 빠듯하게 살고있을 무렵이었다. 김현수를 경멸하는 눈초리를 보내던 그 후배가, 정말 의외로 먼저 말을 걸어왔다. 꿈에서도 생각치 못한 일이었다. 언젠가 김현수가 이 호스트일을 그만둘 때 까지도 한마디 섞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때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본인이 마지막으로 사람과 이야기 했던지가 정말 오래되었다는 것을.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모두가 하나같이 그를 경멸했다. 하지만 이제 단 한명. 그 후배는 그를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존경이 담겨있었다. 그 눈을 계속 보고 있자니, 김현수는 자신이 쓸데없고 부질없게 그 후배에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불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했다. 그때부터 그 후배는 호스트에 나오는 일이 뜸해졌지만 김현수는 아직도 그 후배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의 이름도 그 후배가 모르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김현수는 자신의 안에서 여러가지 감정이 오가는 것을 싹 밀어버리고 일을 시작했다. 마담이 그를 룸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김현수는 룸으로 들어간다. 근처 쓰래기통에서는 달걀 썩는 비린내가 올라왔다.

 ‘지긋지긋한 냄새.’ 김현수는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그 후배가 데려왔다던 신입도 어느샌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둘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김현수는 그들이 어느 외국의 바닷가에라도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별로 그런 경치에 어울리는 이미지는 아니었다. 그럼 아직도 이 동네에 살고 있을까. 벌써 여름에나 있었던 일이지만, 겨울이 지나가는 지금에서도 그는 그 후배를 기억하고 있었다. 

 딸랑-

 가게의 문에 달린 방울이 소리를 냈다. 누군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혹시라도 그의 손님일까, 김현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 였다. 그 후배였다. 이 밤중에. 그가 정말 오랜만에 가게를 찾아왔다. 무단 결근을 그렇게나 해놓고 찾아왔다. 마담한테 무슨 쓴소리를 다 들으려고 이제서야 찾아왔다. 그래도 그랬다. 김현수는 그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유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후배가 반가웠다. 너무나 반가웠다.

 김현수는 그때 새장을 나온 새가 된 기분이었다. 새를 평생 새장안에서 기른다면, 그 새는 답답한줄도 모르고 살지만, 한번이라도 새장 밖으로 나와본다면, 그때부터 그 새는 죽을때까지 새장 밖의 세상을 그리워하며 산다는 것이다. 지금의 그가 딱 그랬다. 이전까지는 인식조차 못하고 있던 시선들을 알게된 것이. 그리고 그 중압감에 계속 짓눌리던 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새장이었고 쇠창살이었다. 그리고 그는 어쩌면 그리워 했을지도 모른다. 새장 밖의 세상을. 그 후배가 나타나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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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에 나가게 되어서 업데이트가 늦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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