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리 생일기념으로 제작되었던 회지입니다. 웹상으로 공개된 글에서 교정 및 편집을 거쳤으며 짧은 외전이 포함되어있습니다.



Kiss my Lips

by. 880818G



팔자에도 없는 스토커 짓을 시작한 건 집돌이 강대성에게 신세계를 알려주겠다며 싫다는 거 억지로 끌고 갔던 클럽이 화근이었다. 별다를 것 없는 토요일이었다. 클럽은 언제나 물이 좋았고, 즐비하게 늘어선 사람들을 제치고 승현이 다가갔더니 가드들은 익숙하게 웃으며 입구를 먼저 열어주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을 기분 좋게 흘리면서 쿵쾅거리는 사운드에 피가 끓는 기분을 느끼면서 먼저 자리 잡고 있는 일행들이 있는 VIP 룸으로 익숙하게 향하는 동안까지도 컨디션 최고조에 아주 기분이 좋았다. 먼저 자리 잡은 최승현은 개인적으로 같은 집돌이인 강대성이랑 평소에도 친해지고 싶었다면서 제 곁으로 이끌었고 술자리의 주도권을 단숨에 채간 승현이의 소란스러움에 엉켜 다들 순식간에 제 앞의 잔을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하니 절로 흥이 한껏 올랐다. 흥에 겨워 나가자 나가자! 하면서 와- 하고 춤을 추러 가려고 강대성을 보았다가 하도 최승현이랑 딱 붙어서 신나게 떠드는 모습에 그냥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채린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살벌하게 눈을 치켜뜨며 욕을 내뱉던 말던 질질 끌고 나가는 것을 못 이긴 척 따라주던 채린과 당치도 않는 부비부비를 시전하면서 요란하게 몸을 흔들어대던 이승현의 시야에, 문제의 ‘그’가 포착되었다. 미친 자처럼 몸을 흔들던 승현이 제 자리에 딱 굳자 미친 놈 발광도 가지가지 한다고 인상을 쓰면서 욕을 지르는 채린에게 승현이 답지 않게 소심한 손동작으로 채린을 붙잡으며 저렴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대애바악.”

“아, 왜 또!!”

“저기 봐봐.”

“아, 뭐어!”

신경질적으로 승현의 팔을 떼어내며 승현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의 끝에는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는 그, 권지용이 서서 선글라스를 벗지 않고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처럼 멀뚱히 서있었다.

“저 인간은 왜 클럽에서 선글라스도 안 벗고 지랄이래니.”

“야, 넌 무슨 여자애가 말을 그렇게 해?”

“니가 뭔 상관이야, 니가 저 인간이랑 아는 사이도 아니고.”

“아는 사이하면 되지.”

“니가? 대체 왜애-?”

“존나 멋있잖아.”

“멋있는 거 다 얼어 죽었다니?”

“채린아, 너는 그게 문제야. 세상을 조금 더 쾌적한 시선으로 보렴.”

“너도 지랄이네. 근데 저게 뭐 어쩐다고 보란거야.”

“응, 맞아, 채린아. 지금 너는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하고 있는 거야.”

“벌써 취했어?”

“아니, 지금 너는 이 자유연애주의자 이승현이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첫 눈에 반한 그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거란다.”

맷집 없는 인간이었다면 아마도 전치 4주쯤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개지랄 한다며 채린에게 얻어맞았다. 엄마한테도 안 맞는 등짝스매싱을 시원하게 철퍼덕 하고 얻어 맞아놓고도 승현은 그리 좋다고 피실피실 웃으며 룸으로 들어갔다. 이것저것 짐을 챙기더니 이제는 완전 최승현과 죽이 맞아 시시덕대고 있는 대성에게 건성으로 손을 흔들어주면서 나가려는 걸 의아하게 보면서 어디 가냐고 묻는 대성에게 승현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면서 “빨리 가서 꿈꿔야해.” 라는 헛소리를 내뱉고 사라졌다. 머리 위로 물음표를 잔뜩 그리고 있는 최승현과 강대성에게 채린이 담배 불을 붙이면서 “권지용한테 첫 눈에 반했다던데 그 꿈꾼단 소리겠지 뭐.” 라며 심드렁하게 대꾸해줬다.

 


 

권지용이랑 사귀어야겠다고 말을 하기가 무섭게 “쟤 앞에 서있는 애가 여친이야, 클럽 졸라 좋아하는 여친이라고. 저 권지용님은 게이가 아니에요, 끽 해봤자 너님이 할 수 있는 건 스토킹뿐이라구요.” 라면서 신랄하게 비난했던 이채린은 천재다, 라고 승현은 생각했다. 싸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뽑아야지 싶어서 야심차게 권지용에게 들이대겠다고 해놓고 정작 하는 것이라곤 주변 친구들한테 찡찡대서 얻은 권지용의 하는 일과 주요 활동지가 전부였다. 그래도 대한의 건아 이승현, 그 두 가지 정보를 조합해서 주요 활동지 부근을 3일을 돌아다니는 결과, 권지용의 차가 주차된 곳을 발견했고 그때부터 뻔질나게 그 동네로 출퇴근 도장을 찍었다. 권지용이 들락거리는 고급 빌딩에 아무래도 권지용의 작업실이 있는 것 같았다. 주로 곡 작업을 하는데 가끔 내키면 누나가 운영하는 편집샵에 가서 매장도 봐준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주요 활동지는 청담과 합정이었고 주말에는 가끔 이태원 클럽도 간다고 한다. 1주일 넘게 양쪽에서 허탕을 친 결과 오전 11시쯤 합정에 나타났다가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대체로 오후까지 거기 있고 중간에 나올 때는 오후 4시쯤 청담으로 이동을 하곤 했다. 1주일가량을 더 허탕 친 결과 수, 목 이틀만 청담으로 가고 그 외엔 거의 홍대 합정에 머무르고 이태원엔 금, 토 아니면 안 간다는 사실까지 파악한 승현은 이게 뭐라고 그렇게 뿌듯한지 본인도 알 수 없는 길이었다.

 

아이돌 사생팬 마냥 권지용 뒤를 밟고 다니기 4주, 그러니까 한 달이 조금 넘었을까, 이제 이승현은 권지용의 합정에 위치한 작업실 앞에 권지용이 자주 가는 카페에 먼저 가서 카라멜라떼를 달달하게 해서 쪼옥쪼옥 빨며 권지용을 기다리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그럼 이제 슬슬 접근 하는 방법도 생각을 해야 했는데 이게 도무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도 안 하는 게 날마다 어딜 그렇게 꼬박꼬박 쏘다니냐는 엄마의 잔소리에도, 신고 있던 킬 힐 벗어서 굽으로 저를 찍어 내릴 것 같은 채린이의 아르바이트 소개 시켜준다는 잔소리에도 굳건한 멘탈이었건만 요상하게 권지용에게 다가가는 제 모습을 생각하면 몸이 베베 꼬이면서 여간 쉽지가 않았다. 그런 요란한 백금발의 머리로 아침점심저녁 가릴 것 없이 선글라스 쓰고 쫓아다니는데 권지용이 설마 모르겠냐며 그냥 딱 눈 감고 가서 형님, 받아주십쇼, 제가 바로 형님 빠돌입니다. 라고 고백하라면서 답답해하는 채린과 대성의 닦달에도 쉽게 마음이 안 생기니 그건 또 그거대로 문제였다.

“대체 이유가 뭔데?”

“아, 모르겠어.”

“너 이러는 거 진짜 너답지 않은 거 알긴 알지?”

“아니, 채린아. 그게 있잖아. 쫓아다닐 때는 되게 좋았는데..”

“근데 뭐가 문젠데?”

 

쫓아다니면서 생각한 건데, 형은 나랑 너무 먼 사람 같아.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고 말을 하는 승현의 대답에 채린이 가늘게 눈을 흘기다가 승현의 화려한 금발을 마구 헝클어뜨렸다. 아씨 왜 그래, 오늘 형한테 잘 보이려고 세팅하는데 한 시간 걸렸단 말야. 버럭 화를 내는 승현의 카라멜라떼까지 내친 김에 뺏어서 쪼로록 흡입하고 채린은 승현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너랑 급이 다른 유명인사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단 사실에 한 번, 아무래도 그냥 한 달 제대로 삽질한 짝사랑으로 끝날 것 같단 사실에 두 번, 한 시간 세팅한 머리를 니네 형한테 넌 보여줄 용기도 없는 쫄보라는 사실에 세 번 안쓰러운 표정과 함께 영혼 없는 파이팅을 날려주고 채린은 매정하게 자리를 떠났고 시계를 물끄러미 보던 승현도 기운 없이 일어나며 자리를 떴다. 오전 11시 40분. 오늘은 지용의 출근이 늦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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