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럼블디오 

 




분홍빛 꽃비가 내리던 것이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꽃이 지고 기온이 올라 마치 여름의 문턱에 온 듯한 날씨가 계속됐다. 남들에겐 후덥지근한 날씨겠지만 혼현이 펭귄인 경수와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두툼한 모피를 가진 설표 찬열은 더위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물론 두 사람의 아이인 도율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집안을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만들어보고자 겨울 내내 포근함을 주던 러그를 치워버리고 휑해진 거실을 선풍기와 세 가족이 채웠다. 거실에서 뭘 하고 있는가 하니 도율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낮잠을 즐기고 부부는 선풍기로 티격태격 중이었다.

 





“경수야.”

“아... 너무 더운데... 진짜 더워요...”

“선풍기 배 쪽으로 놓지 말라니까.”





 

저는 펭귄이라 괜찮다고 말하며 선풍기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그 상태에서 찬 것을 입에 달고 살아 여름이면 늘 감기니 배탈이니 잔병을 달고 사는 경수였다. 그걸 아는 찬열이 잔소리를 늘어놓자 듣기 싫은지 경수가 입을 삐죽 내밀고는 눈을 흘긴다. 미운 입 하지마라. 경수의 불퉁하게 튀어나온 입술을 잡고 살짝 흔들자 제 날개를 파닥이듯 두 팔을 흔들던 경수가 찬열의 가슴팍을 쿵쿵 때렸다.

 





“아프잖아요!”

“오구 오구. 우리 애기 아팠어? 호 해줄까?”

“수작부리지 마요.”

“수작 부리는 거 아닌데? 그냥 할 건데?”

“으악!”





 

얼굴을 마주보고 경수의 입술에 후, 후 바람을 불어주던 찬열이 그의 아랫입술을 살짝 머금었다. 평소답지 않게 애간장만 태우는 찬열에 경수가 작게 끙끙 앓았다. 으응, 그거 말구, 하고 보채는 경수의 말에 찬열이 푸스스 웃고는 고개를 틀어 깊게 입 맞췄다. 경수는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찬열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오물거렸다. 덥다고 투덜대던 부부는 어디로 간 건지 그새 불이 붙어 입술을 맞붙이고 쪽쪽대는 둘이었다.

 


애정행각에 열중한 찬열의 손이 경수의 티셔츠 속으로 침범해 허리를 쓸어내리고, 경수는 그것이 간지러운지 허리를 뒤챘다. 찬열의 손이 가슴팍까지 올라가려던 순간, 잠든 도율이가 자세를 바꾸며 우응, 하고 작게 소리를 내며 뒤척였다. 그에 놀란 경수가 찬열의 어깨를 밀쳤고, 찬열과의 입맞춤에 꽤 집중했던 건지 제 혼현까지 드러냈다. 황제 펭귄이 되어버린 경수가 찬열의 목을 안고 있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정쩡한 자세에 가뜩이나 큰 눈은 더욱 커져 도록도록 구르는 것을 본 찬열이 웃음을 터트렸고, 경수는 다시 잠든 도율이와 저를 보며 큭큭거리는 찬열을 번갈아 보았다.

 


벌을 받는 것 마냥 여전히 굳은 채로 허공에 들린 날개를 내려주고 진정하지 못하는 경수를 엉덩이를 받친 채 안는 찬열이었다. 경수의 보송보송한 엉덩이를 조금 도닥여주자 경수가 푸- 하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진정이 좀 되었는지 사람으로 돌아와 나 진짜 놀래써... 하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아, 진짜. 이 귀여운 걸 학교에 어떻게 다시 보내.”

“어?”

“예쁘고 귀여워서 반하는 새내기 있으면 어떡하지. 시커먼 복학생이 수작 걸면 안 돼요, 싫어요, 해야 된다.”

“나 학교 가요? 나 복학 해?”

“해야지.”

“진짜?!”

“응. 도율이는 어린이집에 맡기고. 이제 내가 외조해야지. 우리 펭귄.”

 





찬열의 말을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어느 새 들고 온 제 핸드폰을 열심히 두드리는 경수였다. 아마도 아직 학교에 남아있는 제 친구들에게 복학 소식을 알리고 있는 거겠지. 저렇게나 좋아하는 걸 보니 제 욕심에 도율이를 너무 빨리 가진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찬열이었다. 물론 쓸데없는 생각이기는 하지만 문득 이어지는 생각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1학기 복학은 물 건너갔고 당장 2학기 복학을 위해 도율이가 다닐 어린이집을 찾던 부부였다. 바로 근처에 반류 어린이집이 있는 것에 안도한 경수는 도율이와 어린이집을 방문했다. 다른 어린이집들에 비해 높은 담장을 가진 어린이집 앞을 기웃거리며 찬열에게 카톡을 보내던 경수는 제 옷을 꾹꾹 잡아당기는 도율에 허리를 숙이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어마, 어디야아?”

“도율이 친구들 있는 곳이지.”

“칭구?”

“응, 도율이 친구~”





 

친구라는 말에 볼을 한껏 밀어 올려 웃는 도율이의 모습이 경수와 많이 닮아 있었다. 봉긋 솟은 광대와 보드라운 볼 살이 귀여워 깨물어버리고 싶었다. 찬열이 가끔 제 볼을 앙앙 물어대는 것이 이런 기분이 들어서였나 하는 무의미한 생각을 하다 제 손을 놓고 어린이집 안으로 뛰어가 버리는 도율이에 정신을 차리는 경수였다.

 




“도율아! 엄마 손 잡아야지!”

 




경수의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뛰어가는 날쌘 도율이를 따라 작은 놀이터를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어린 반류들이 모여 수업을 하고 있는 교실이 보였다. 복작복작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웃음소리가 듣기 좋게 나고 잠시 둘러본 건물도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곳이었다. 도율이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것을 잠시 잊고 어린이집 안을 기웃거리던 경수는 어느 선생님에게 안겨 있는 도율이를 보고 당황해 뛰어갔다.

 





“으아- 죄송합니다!”

“어마!”





 

도율이가 경수를 보자마자 턱시도 표범으로 퐁 하고 변한 뒤 선생님의 품에서 뛰어내렸고, 경수는 그런 도율이를 품에 안았다. 또래 친구들을 잔뜩 만나 어지간히 기분이 좋았는지 품에서 갸릉 갸릉하고 우는 것에 경수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 혹시 오늘 어린이집 입소 관련 상담 신청 하신 분인가요?”

“네, 네!”





 

상담실로 자리를 이동한 경수는 고새 잠이 오는 지 제게 칭얼대는 도율이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집이 아닌지라 불편한 것인지 앞발로 눈을 부비고 경수의 품으로 더욱 파고들며 잠투정을 해댔다. 익숙하게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데 경수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어린이집 입소와 관련한 서류를 작성하며-도율의 나이 란에 24개월이라 적자 선생님이 흠칫 놀랐다- 경수의 신상을 적어 내려가자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실례지만...”

“네?”

“혹시 미혼모... 이신가요?”

“...네?”

“반류 미혼모 지원 프로그램이라는 게 있어요. 신청 방법도 어렵지 않아요!”

“아, 아니... 그...”





 

중종에 가까울수록 본능에 충실한 반류들이었다. 순수 혈통을 따지면서도 아랫도리 간수 못하고 가임 남성 반류를 임신시키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이 흔한 일이기도 했다. 언뜻 봐도 어려보이는 경수의 외모에 중종의 혼현을 가진 도율이를 보고 경수를 어느 중종으로 인한 욕망의 피해자로 본 것인지 그녀는 반류 지원 정책을 이것저것 안내했다. 물론 어린 엄마와 아이를 버린 파렴치한-병원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찬열-을 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경수의 손을 붙잡은 선생님은 흥분한 건지 콧김을 내뿜으며 거대한 불곰의 혼현을 조금씩 내비쳤다. 그 기세에 해명도 하지 못하고 열정적인 선생님이네, 하고 감동만 하고 입을 벌린 채 가만히 앉아있던 경수였다.

 




“으아아앙!”





경수의 품안에서 잠들었던 도율이가 중간종 불곰의 냄새에 눈을 떴다가 그녀의 거대한 혼현을 보고는 울음을 터트렸다. 도율이는 혼현이 반쯤 풀려선 귀는 뒤로 바짝 젖히고 두툼한 꼬리를 크게 부풀린 채 아장아장 걸어가 경수의 손을 붙잡고 있는 불곰의 발을 고사리 손으로 투닥투닥 치기 시작했다. 핑크빛 발바닥이 감춰진 솜뭉치가 퐁퐁 치는 것이라 아프진 않았지만 아이를 울린 당황스러움에 불곰 선생님은 혼현을 감추는 것도 잊은 채 허둥거렸다.

 





“어마 잡아 머그지마!”

“하핳, 도율아, 엄마 괜찮아. 이리와, 아가.”





 

처음 본 거대한 불곰의 혼현이 무섭긴 했는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진정하지 못하는 도율이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콧물도 잔뜩 흘러 닦아주려는데 도율이 짜뇨리 아브아- 하고 서럽게 외치더니 경수의 품에서 벗어나 도도도 뛰어가 누군가에게 안겼다.

 





“억, 도율이 얼굴이 왜 이래?”

“어? 찬열이 형!”

“상담 다 했어? 여기 어린이집 시설도 좋고 괜찮은 거 같은데?”

“이거 서류만 마저 적으면 돼요. 도율이 코 좀 닦아주세요.”





 

경수가 도율이 전용 손수건을 내밀자 찬열이 익숙하게 도율이의 코를 닦아주었다. 손은 섬세하고 다정하게 움직이면서 짓궂은 말을 던지는 것은 잊지 않았다.

 





“응. 아이고, 도율이 얼굴 지지야 지지.”

“도유리 지지 안냐!”





 

찬열의 등장으로 단란한 가족을 졸지에 한 부모 가족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불곰 선생님은 당황한 듯 들썩거렸다. 제 혼현을 아이들이 무서워한다는 걸 알면서 기어코 드러내 아이를 울리기까지 하고. 눈에 띄게 축 쳐지는 그녀의 모습에 경수가 살짝 웃어보였다.

 





“그... 저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자주 오해 받아요.”





 

경수가 쓴 서류를 받은 불곰 선생님이 경수와 찬열을 번갈아보더니 눈빛이 다시 사나워졌다. 울음은 그쳤지만 끅끅대며 딸꾹질을 하는 도율이에 경수가 챙겨온 보리차를 꺼내 먹이고, 찬열은 불곰 선생님과 상담을 이어나갔다. 상담을 하는 동안 그녀의 묘한 시선을 받은 찬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저 선생님 왜 저러셔...?”

“형아가 도둑놈이라서요.”

“...뭐?”

“나 치즈 돈까스 먹고 싶어. 우리 저녁 먹고 들어가요.”

“...으응.”

 





찬열이 축 늘어진 도율이를 안고, 경수는 여전히 얼굴 가득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 찬열의 손을 잡았다. 손이 맞닿자마자 풀어지는 찬열의 얼굴에 경수도 볼을 밀어 올려 방긋 웃었다. 해가 저물어 선선해진 날씨에, 곤하게 잠든 우리 아이와 손을 잡은 것만으로도 전해지는 따스한 감정. 아, 좋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터져 나온 말에 부부의 웃음소리가 길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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