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1930년. 재즈와 블루스의 도시는 또한 악명 높은 갱단과 마피아들과의 긴밀하고도 비열한 유대관계를 이어오는 중이었다. 어둡고 음울한 대공황시대, 거리에 넘쳐나는 실직자들의 탄식, 굶주림에 까슬해져만 가는 이웃들의 눈흘김, 하지만- 이 모든 슬프고도 시들한 것들을 천박한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부유한 자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시카고는 지금, 돈 많은 늙은 연인을 5발의 총성으로 들쑤시고는 홀연히 자취를 감춘, 갈가마귀처럼 새까만 머리의 매혹적인 남자, 존 조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시카고 트리뷴이 밝힌 바에 의하면, 존 조는 외국인 특유의 억양이 은근히 묻어나는 영어를 쓰는 이민자 2세대로, 거대 농장의 노동자 신분의 이민 1세대 부부의 아들이었다. 조 가족은 캘리포니아에 거주 중으로, 존과 그의 가족은 절연한 지 몇 년이나 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미디어가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스캔들을 좋아하는 여러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의하면- 백인 고용주들의 저열함에 치를 떨던 이민 1세대와 미국에서 아예 나고 자라 상대적으로 미국의 생활에 익숙한 이민 2세대 사이에 생길 수 있는 아주 흔한 갈등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의 부모는 ‘비록 이 먼 나라 타국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한국인이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켜야함’ 이라고 주장하는 바였고, 그들의 아들은 이를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든지 등의 대립.

 

 

이하는 공식적인 보도자료와 비공식적인 황색언론이 함께 인정하는 바로, 그래서 존은 부모를 등지고 나와 따사로운 햇살과 건조한 공기가 매력적인 캘리포니아를 떠나 높은 빌딩이 밀집된 마천루의 도시, 일리노이의 시카고로 혈혈단신 이주해왔다.

 

매끄럽고 검은 머리카락의 예쁘장한 소년, 존은 뛰어난 처세술과 본인이 가진 외적 및 내적 장점을 십분 이용해먹었다. 도시의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온갖 비밀스럽고 경박한 일을 마다하지 않고 행했고- 그는 마침내 부유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진짜배기(!) 상류층인, 그의 아버지뻘 되는 알파, 프랭클린 윌슨의 애인이 될 수 있었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마치 거치적거리는 실밥처럼 프랭클린과 존을 끊임없이 쫓아다녔다. 하지만 남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매력적이고 대찬 아시아 소년과 한 번의 결혼 실패로 인한 좌절감을 까맣게 잊은 백인 중년 남자의 투샷은 사교계를 심심치 않게 장식했다.

 

 

 

대공황으로 굶어가는 시민들이 즐비하다는 사실을 도저히 기억해내기 어려울 만큼 화려한 파티가 열린 어느 날 밤, 평소와 마찬가지로 당대 사교계에서 단연 가장 눈에 띄는 연인, 프랭클린과 존이 함께 참석했다.

그렇다, 프랭클린 윌슨이 그의 어린 연인에게 살해당한 날 밤에.

 

 

 

 

 

 

 

 

새까만 머리를 세련되게 뒤로 넘겨 세팅한 존은 정말 눈에 띄도록 매력적이었다. 샹들리에 조명에 은은하게 광이 이는 소재의 검은색 턱시도를 입은 존은 우아한 걸음걸이로 걸어 들어와 면식이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의 연인이 영향력이 제법 대단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게 웃어 보이며 그의 화려한 착장과 빛나는 치아를 칭찬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그리고 존 본인도, 그 친절한 말투 뒤의 경멸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저 잘난 알파를 홀렸을까, 경박한 오메가 같으니, 아시안 주제에, 뭐 이런 류의 빤한 경멸들.

 

그러나 그가 알 바는 아니었다, 결국 존은 노동자이자 비주류의 신분에서 값진 샹들리에와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흘러나오는 파티장의 주류 사회에 발을 들이지 않았는가!

 

 

 

 

 

프랭클린은 그의 어린 연인에게 푹 빠져있었고, 그 연인이 원하는 것이라면 그는 그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고 청을 들어주었다. 멋진 옷과 비싼 보석과 진귀한 수집품! 그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고, 이 대미를 장식할 딱 한 가지만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청혼. 이것만이 그를 진정한 주류사회의 일원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진짜 사파이어 가 박힌 만년필과 새로 뽑아준 진한 크림색 포르쉐는 애석하게도 아무 것도 약조해주지 못하는 터였으니, 그는 그의 손가락에 다이아몬드 반지가 끼워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존은 이 바닥까지 이렇게 단 시간 만에 온 만큼, 눈치가 제법 빠른 사람이었다. 저에게 홀딱 반한 이 중년의 남자가 저에게 요 최근 들어 뭔가를 숨기는 모양새가, 머잖아 그의 꿈이 이뤄질 것만 같았다! 누가 알겠는가, 아마 오늘일 수도 있다.

존은 사교계의 온갖 인사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정교한 무늬가 새겨진 대리석 바닥에 이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자신을 올려다보며 커다란 알이 반짝이는 다이아 반지를 제 약지에 끼워주는 상상을 했다. 그 후 본딩까지 이뤄지면 정말 완벽하겠지. 아, 그것만이 그가 절실히 바라던 것이었다, 그 단 한 가지!

 

 

 

 

 

 

 

 

“잠깐 가서 찰스에게 인사하고 올게.”

“오, 뉴튼 부부가 왔군요! 같이 가요.”

“아니야, 오늘 메이들린은 오지 않았어- 알파들끼리 하는 시시한 이야기야, 오메가들하고 내 욕이나 하면서 즐겁게 있으라구.”

 

 

프랭클린의 농담에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이 킥킥대며 존에게로 모였다. 존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프랭클린은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춘 후 사람들에게 눈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존, 턱시도가 정말 아름다워요.”

“고마워요, 프랭크가 아는 유명한 뉴욕의 디자이너가 저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준 옷이에요.”

“뉴욕이라구요! 그래서 느낌이 달랐군요.”

“관심이 있다면 디자이너의 이름을 알려 줄게요. 시카고의 디자이너들의 옷만 입기엔 인생이 너무 짧잖아요?”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리며 연신 존에게 거짓된 호의를 드러내 보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 그 거짓된 호의조차 내보이길 거부한 이가 하나 있었다. 제프리 마일스는 푸른 눈과 밝은 머리색의 전형적인 백인으로, 허나 출신은 존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다. 석탄공의 아들인 그는 존과 마찬가지로 갖은 수를 써 상류층 알파를 낚아챘으나, 최근 그 정치계 인물인 남편과의 불화설이 불거지고 있는 탓에 예민해져 있었다(역시, 호사가들의 입담에 의하면, 남편이 밖에서 다른 오메가와 자식을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민자 출신 주제에 대놓고 신분을 세탁하려 드는 데다 눈에 띄기까지 하는 존이 고깝게 보일 리가 없었다. 게다가 술이 몇 잔 들어간 상황이니, 그는 거칠 것이 없었다.

 

 

제프리는 얼음장 같이 새파란 눈을 가늘게 뜨며 뾰족한 목소리로 존에게 대꾸했다. “하긴, 당신은 특별한 재봉사가 필요하겠어요. 당신 인종의 작고 깡마른 몸에 맞는 옷을 디자인하려면요. 아, 돈 많은 늙은 알파 애인이 있으니까 당신이 뭔들 못하겠어요, 그렇죠?”

 

 

 

갑자기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무리가 조용해졌다. 그들이 아무리 천박하다 한들 그래도 불문율이 있었다. 인종, 성별, 형질에 관한 얘기들은 이런 겉만 핥은 사교계 모임에선 애초에 입에 올려서도 안 되는 기피 대상 소재였다. 제프리는 이 싸한 침묵이 맘에 드는 듯 실실 웃으며 존을 눈빛으로 떠보았다. 오메가라고 다 같은 오메가인 줄 알아? 존은 제프리의 얼굴에서 이와 유사한 경멸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존도 절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존은 저한테 숨길 생각도 없는 적의를 내보이는 제프리가 우스웠다. 질투만큼 얄팍하고 하찮은 감정도 없었다. 혼인까지 한 오메가가 처신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서 네 알파가 밖에서 씨를 뿌리고 혼외자식을 만드는 동안, 너는 여기에서 술에나 취해 너 우스운 꼴을 스스로 만들고 있구나. 존은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흰 치아가 완벽히 보일 정도로만 양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어보였다.

 

 

 

그리고 존은 그 무리를 바로 떠나버렸다. 괜히 남은 사람들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우물쭈물대다가, 그 중 몇은 이게 혹시 존에게 잘 보일 기회일까, 싶어 존을 따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존은 그 오메가들에게 정중한 말투로 거부의 의사를 밝혔다. 어쨌든 제프리가 아무리 우스웠다고 해도, 존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까지는 성공했으니까. 존은 제 애인에게로 가 머리가 아프다, 몸이 안 좋다 몇 마디를 좀 칭얼댄 후 응석을 부리며 집으로 돌아가 페로몬이나 맘껏 풀며 곧 제 알파가 될 남자를 구워삶기로 했다. 여기서 시덥잖은 다른 오메가들하고 잡담이나 하는 것보다야 훨씬 나은 계획이었다.

 

 

 

그래서 존은 프랭클린을 찾기 위해 홀을 누볐다. 그러나 그는 거들먹거리는 알파들이 모여서 저속한 농담을 던지는 무리에도, 담배를 태우는 무리에도, 심지어 예쁘장한 오메가들이 모여있는 곳에도 없었다.

 

존은 미간을 있는 대로 좁힌 채 제 알파가 있을만한 곳을 찾기 위해 정말 말 그대로 구석구석을 뒤졌다. 그러다, 그는 연회장 밖의 정원 은밀한 곳에서 희미하게 풍겨져오는 그의... 알파의 페로몬을 느꼈다. 어쩐 일이지? 그러나 그 의문은 아주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바로 뒤이어 느껴지는 하찮은 오메가의 페로몬.

 

 

온 몸의 열이 머리로 쏠리는 기분을 느끼며, 존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왠만하면 사람들이 찾지 않을 만한, 혹은 찾는다면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합을 즐기기 위해서만 찾을 것 같은 그런 장소.

 

 

 

 

“흣, 으응, 아앙, 안 돼.... 아.... 너무 좋아...”

 

 

 

이 알파향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제 연인의 것이었고, 잘도 외설스러운 소리를 내뱉는 오메가 새끼는... 제프리 마일스였다. 존은 야외에서 부끄러움도 없이 맨 다리를 활짝 벌리고 과장된 표정의 얼굴로 헐떡이는 제프리와 욕정에 이글거리는 얼굴을 한 채 남의 오메가의 다리 사이에 제 성기를 들이밀고 있는 프랭클린을 발견하고 만 것이다.

 

 

 

“오, 씨발.”

“....! 오... 존.”

 

 

 

냅다 욕설부터 박는 존을 보고 멈칫 놀란 프랭클린이 우선은 몸을 일으킨다. 아래에 누워서 오메가향을 질질 흘리던 제프리는 존을 보자 이 상황을 바래 마지않았다는 것처럼 씩 웃으며 존을 올려다보았다.

 

 

 

존은 프랭클린이 적어도 어떤 변명이라도 할 줄 알았다. 이 천박한 오메가가 나를 꼬셨어, 존, 내겐 너뿐인 것 알잖아, 내 진짜 오메가는 너뿐이야, 뭐 이런 것들. 하지만 프랭클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존은 이 저열한 알파가 저에게 평생을 약조할 생각은 꿈에도 없으며, 그저 젊고 예쁜 오메가를 맛보고 가지고 놀려 했을 뿐, 그에게 존은 지금 이 밑에서 제 남편이고 뭐고 알 바 아닌 듯 싸구려처럼 다리를 벌리고 있는 석탄공의 아들 오메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존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깊은 분노에 휩싸이고 있었다. 기가 막힌 모욕에, 그리고 미래를 기대했던 저의 희망에 대한 수치심에, 그는 눈앞에 별이 튀어 오르는 것을 느낄 지경이었다. 상황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저 존이 생각할 수 있는 거라곤 박살난 제 자존심과 다시 2등시민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주 흥미로운 소문이 뒤따라 붙은 오메가의 미래뿐이었다.

 

 

 

마침, 또는 안타깝게도, 존의 턱시도 주머니 안에는 프랭클린이 매력적인 제 오메가를 위해 호신용으로 쓰라고 사준 자그마한 권총이 있었다. 물론 프랭클린은 이를 머리맡의 협탁 등에나 두고 쓰라는 용도로 준 것이었지만, 존은 오늘따라 무심결에 이 권총을 가지고 나왔고, 그다음에 그가 한 행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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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오메가 재즈킬러의 5발의 총성!

알파 살인으로 시카고를 뒤흔들다!

 

 

 

 

 

 

다음 날 조간신문 1면에 실린 헤드라인이었다. 가운데에는 존의 측면 얼굴이 찍힌 사진이 실려있었고, 그 양 옆과 아래로 빼곡하게 관련 기사가 실려 있었다. 중간 중간에는 별 친분도 없던 오만 인간들의 과장된 인터뷰가 같이 기재되어 있었다.

 

 

시카고 트리뷴은 독자적인 정보 공급처를 찾았다며 존의 출신에 대해 보다 더 자세히 밝혔고, 다른 크고 작은 신문사와 라디오에서도 앞다투어 비슷한 내용을 실어댔다.

황색언론들은 신이 나서 있는 정보 없는 정보를 다 끌어다가 아주 자극적인 기사들을 양산해냈고, 사람들은 새로운 소식이라면 기꺼이 귀와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있었다- 돈이 많아 시간도 많은 자들은 경박한 취미를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즐기는 부류였으니!

 

하지만 어떤 언론에서든, 이 오진 오메가에 대한 기사의 마무리는 항상 이와 같았다-

지금, 도대체 그는, 어디에 있는가?

 

 

 

 

 

 

 

“.... 재미있는 일이 다 있군.”

 

 

 

아주 값비싼 마호가니 목재의 가구들과 고급스러운 향수의 냄새, 맞춤 재단 된 세로 줄무늬의 감색 정장까지, 모로 봐도 돈 깨나 들인 방의 주인인 돈 깨나 있을 법한 남자가 시가를 입에 문 채 불분명한 발음으로 중얼거린다.

 

대단한 언변으로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는 중인,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전형적인 악한 변호사, 칼 어반은 읽던 신문을 접어 내려놓고는 킬킬대며 몸을 푹신한 의자 위로 뉘였다.

 

 

 

 

 

돈을 들이는 취미라면 마다할 리가 없는 칼이 존의 존재를 모를 리가 없었다. 부유한 자들의 사교 파티에 잘도 참석하던 칼이, 늙은 알파 옆에 서서 사람 홀리는, 매력적인 가짜 미소를 짓던 존을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만 존은 프랭클린 윌슨의 오메가로 이름을 날리던 중이었고, 알파가 있는 오메가에게 다른 알파가 접근한다는 것은 그 알파에게 큰 실례가 되는 일이었기에 칼은 그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오메가들끼리 모여있을 때 대화를 하는 걸 들어보면 기가 막히도록 대차고 낯이 두껍던데. 칼은 생각했다. 하기사, 그만큼 설치고 다니니 당연히 미움도 받았겠지. 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오메가들은 아주 눈엣가시처럼 그를 보았을 거야, 잘난 출신 오메가든 아니면 천한 출신 오메가든.

 

 

 

 

 

뭐, 결말이 궁금한 아주 흥미로운 얘깃거리였지만, 칼은 지금 제가 취할 수 없는 오메가의 지저분한 가십보다 더 실질적인 일을 하러 갈 참이었다. 진짜 오메가 창부들과 질펀하게 노는 일 말이다. 오메가 창부들은 칼의 재산과 사회적인 위치를 미치도록 탐냈고, 어떻게든 그의 눈에 들려고 애를 썼다. 칼에게는 손해 볼 것 없이 아주 즐거운 일이었다(그는 ‘손해’라는 단어를 정말 싫어했다- 본인 한정으로! 남의 손해야 그에겐 밥줄과도 같은 일이었으니까).

 

칼이 사실은 출신도 모르는 천애고아였으며 땟국물이 줄줄 흐르던 옷과 침대보의 시절을 지나왔다는 것은, 글쎄,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칼은 정말 잘생긴 우성알파였으며, 결국 지금은 머리와 재능 하나로 떼돈을 벌어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의 기를 세우기 위해 돈을 아낌없이 쓰고 그를 추켜세우는 말을 듣기 즐겨하는 졸부였으니, 오메가 창부들에게는 그 어떤 존재보다도 탐이 나는 자였다. 저에게 교태를 부리며 향을 풀고 몸을 내던지는 오메가를 보는 것은, 칼에게는 무엇보다도 큰 즐거움이었다.

 

 

 

 

 

이런 대단한 계획이 있는데, 이 대범하고 매력적이며 저와 마찬가지로 하찮은 도덕심을 가진 오메가가 지금 그의 눈에 들어오겠는가? 뭐, 당장 뿅 하고 나타나서 제 바짓가랑일 붙잡고 날 변호해달라고 애원하면 또 모를까.

 

 

 

칼은 또 킬킬대며 책상 위에 놓여있던 감색 우단 중절모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어제 막 세차가 끝난 포드를 몰고 가야지. 아마 입구에서부터 침을 흘리며 달려들 테지. 칼은 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즐거움을 상상하며 의자에서 막 몸을 일으키려 들었다. 그때, 사무실 문이 열렸다.

 

 

 

“... 이봐, 그웬돌린! 들어올 때는 무조건 노크를 하라고 했잖아. 자넨 빌어먹게 예쁘고 유능한 오메가 비서지만, 가끔은... 내 말을.....”

 

 

 

 

 

딱히 방문하기로 한 사람이 없었으므로, 칼은 문을 벌컥 연 사람이 제 비서 그웬돌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급히 문을 닫고 들어오는 사람은 그의 비서가 아닌, 그가 방금 전까지 신문에서 보던 바로 그 남자였다- 존 조.

 

 

 

 

“...... 도와주세요.”

 

 

 

 

존은 파티장에서 보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무척 수척해진 얼굴을 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칼에게... 애원했다. 무릎을 꿇은 채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애원했다면 보기가 더 좋았겠지만, 우선 칼은 이 세상 두려운 게 없던 것처럼 도도하게 굴던 오메가가 그에게 뭔가를 부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기로 했다. 칼은 아주 활짝, 즐거운 티가 역력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의자에 몸을 편히 묻고 길고 잘생긴 손가락을 맞댄 채 그를 바라보았다.

 

 

 

 

모로 보나, 대어가 제 발로 그물로 기어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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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영화 시카고 보고 삘받아서 썼음.

하지만 후는 기약이 없으므로 이 카테고리에 올려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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