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생뚱맞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진은 짙은 불길함을 느꼈다. 누구 하나 동조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열기 위로 쏟은 찬물같은 말에 염증을 드러내었다.

"뭐야, 하이진."

부르는 목소리에는 상대를 한껏 무시하는 투가 그득하다.

"뒤꽁무니나 따라온 놈이 그런 말 할 자격이 되냐?"

"풀어주자."

이진은 한껏 음색을 갸냘프게 만들었다. 마치 그 자신이 잡힌 사슴이라도 되는 양.

"응? 너무 어린 새끼잖아. 새끼들은 사냥하는 게 아니랬어."

"우리 세 시간이나 뛰어다녔다고."

다른 아이가 아직도 가쁜 숨을 쌕쌕 몰아쉬며 짜증을 냈다.

"저거 풀어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하는 거야?"

그 말에 무리들 속에서 안 된다는 소리가 파도처럼 일렁거렸다. 이진은 야유가 만들어낸 물에 익사당할 거 같았다. 숨이 턱 막혀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어차피......저 조그마한 애 데리고 잡아 먹을 수 있는 거도 아니고......"

"선생님께서 토끼 한 마리라도 잡아 오랬잖아. 애초 먹으려고 잡는 거 아니거든."

정우의 말과 똑같았다. 생존을 위함이 아닌 순전히 재미. 이진은 갑자기 고독감을 느꼈다. 주위에는 열 몇 명이나 되는 반 아이들이 있는데도.

"그러니......"

그러나 이진은 자신과 다른 이들에 대한 거북감을 숨긴다. 그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목소리는 최대한 부드럽게, 눈빛은 온화하게. 때문에 겁많고 소심한 사람으로 보일지라도, 제 말에 반감은 덜 가질수 있도록. 이진은 등을 곧게 폈다.

"더욱 풀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왜?"

마지막 물음은 무리들 제일 뒤쪽에서 들렸다. 어느새 온 정우가 팔짱을 낀 채 보고 있었다. 몇 아이들의 시선이 뒤로 쏠리자 정우는 빙긋 웃었다. 가뜩이나 지저분한 머리칼과 안경이 얼굴을 반을 가렸는데 히죽거리니 조금 멍청해보인다. 그러나 이진은 그 멍한 웃음이 자신과 있을 때는 단 한번도 짓지 않는 걸 안다.

"전쟁에서는 아녀자나 어린아이, 노인들은 건드려선 안 된다는 게 미덕이야."

이진은 제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무리가 반감을 갖지 않는 정도로 적당히.

"도춘 선생님은 전쟁에서 몇 년이나 있었던 분이시고, 선생님 인품 상 그 미덕을 아주 중시하실 거야."

"그래서?"

"그런 선생님이니 우리가 새끼여서 놓아주었다 말씀 드리면 분명 좋아하실 거야."

아이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몇몇 끄덕이는 아이들을 보며 이진의 얼굴이 환해졌다. 되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밝아진 목소리로 계속 설득을 하려 했다.

"우리도잖아. 어차피 먹을 게 아니라 재미라면 이건 잡은 셈치고,"

그러나 이진은 말을 채 이을 수 없었다. 별안간 고라니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버둥거렸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힘을 비축을 했는지 아까보다 훨씬 격렬한 반항이었다. 심지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한 매서움에,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놀란 아이들의 얼굴에는 어느새 분노로 뒤덮였다.

"저게!"

"야, 그물 벗겨진다 그물!"

고라니를 옭아매고 있던 그물은 어느새 점점 벗겨져가고 있었다. 대단한 힘이었다. 고라니의 벌겋게 독기 오른 눈은 좌우를 왔다거렸고 더운 콧김이 쌕쌕나왔다. 무엇보다 고라니의 비명은 마치 어린아이 울음소리와 닮아 있었다. 이진은 소름이 오도도 돋았다. 살려야 했던 생명은 이제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로 변해 있었다.

"도망간다."

"어딜!"

그리고 변한 건 고라니 뿐만이 아니었다. 이진의 말에 동요하던 아이들은 순식간에 광기어린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잡힌 고라니가 감히 저희들에게 발악을 한 걸 용납할 수 없었다. 그 중, 한 아이가 몽둥이를 들고 달려갔다.

"잠,"

이진이 미처 말릴틈도 없었다. 아이 역시 자신이 설마 몽둥이를 들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으니까. 불꽃처럼 확 피어오른 살의가 그를 지배했다. 아이는 몽둥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이윽고 비명과 함께 무언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이진은 몸에 있는 모든 털들이 바싹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다. 긴장한 눈으로 고라니를 내려본 이진은 곧 절망을 느꼈다. 고라니의 다리가 완전히 으스러지고 말았다.

"흐, 흐억!"

몽둥이가 떨어졌다. 아이는 질겁하여 뒤로 걸음질하다 그만 자빠지고 말았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은 공포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두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몽둥이를 때리며 누군가의 뼈가 박살나는 걸 온 몸으로 체감한 것이다. 그는 덜덜 떨다가 고개를 마구 저었다.

"나, 난 이제 못 해. 너희가 해."

얼음처럼 굳어있던 아이들이 말을 더듬거렸다.

"해, 했던 사람이 해야지."

"못 한다니까!"

"저거 이제 살기는 글렸고...그럼 우리가 죽여야 해?"

"그, 그냥 놔두자. 냅두면 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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