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말은 그 남자를 다시 만나려면 어떻게 연락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는 건 이름과 어떻게 생겼는지 뿐. 미적지근하게 식은 석쇠구이 요리를 자신에게 나눠줬던 이상한 남자는 식사가 끝나자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나가면서 뭐라고 했더라. 칼을 잘 갈아 놨다고 했었나? 손을 묶어뒀던 헝겊을 끊을 때 칼에 베인 상처가 꽤 깊었는지 옷을 입고 짐을 챙기는 남자의 손목에 감겨있던 흰 붕대 일부에 약간 피가 스며나와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건지 혼자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어쩌면 자신이 이런 걸 계속 기다려 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게 정확히 뭔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자기와 이름이 같은 그 남자는 지금까지 만나본 적 없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샤말은 그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여관의 주인에게 샤말이라는 남자에 대해 물어봤건만 이곳에 자주 오는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1,2주에 한 번 꼴로 들를 뿐이라고 하니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시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확인해 볼 게 있는데 안타깝다고 생각하며 며칠을 보냈을까? 우연히 그를 마주쳤다. 피와 살점이 흩뿌려지는, 어두컴컴하고 곰팡내가 나는 기괴한 동굴 안에서.

입구가 여러 개인 동굴 안에 마물이 있었고 채굴 작업을 하던 광부들 중 일부가 실종되거나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전투를 할 수 있는 자들이 그 기분 나쁜 동굴 안에 들어가 마물을 처리하는 임무를 완수하면 되었다. 샤말은 원래 그 임무에 참가할 예정은 아니었으나 예전에 신세를 졌던 활잡이 하나가 자기 대신 동굴에 들어가 달라고 부탁했다. 

어둡고 깊은 동굴은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값비싼 광물이나 암석이 그 안에 넘쳐났고 딱 그만큼 인간을 해치는 마물이 사는 경우가 많았다. 이걸, 굳이 해야 하나? 돈, 좋긴 해도 목숨보다 중한 건 없지 않아? 샤말은 이런 종류의 일엔 큰 관심이 없었으나 부탁을 거절하기는 힘들었다. 활잡이는 이 임무가 위험해서 인원이 부족하면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넌, 무기는 뭐든 잘 쓰잖아. 그의 칭찬에 조금은 으쓱해졌다. 보수는 두둑한 편이었고 재수가 좋으면 그 안에서 색다른 재미를 발견할수도 있을테니 해 보자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들어간 동굴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양쪽 손목에 감겨 있던 흰 붕대였다. 새로 감은 것처럼 새하얗다. 방패를 들고 있는 손목의 붕대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 봤고 맑고 투명한 잿빛 눈 역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 안녕, 샤말.

- ......안녕.

- 오랜만이야.

- 그런가. 며칠 안 된 것 같은데.

여자가 흥, 하고 코웃음을 친다. 샤말은 잠시 방패를 내려 놓고는 상대방을 천천히 살펴 보았다. 오늘은 활이군. 전투를 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긴 하지만 특히나 이 여자는 다루지 못하는 무기가 거의 없나 보다. 체구가 작은 여자가 들기에 꽤 힘들어 보이는 장궁인데도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상대방이 성큼 크게 한걸음 자신에게 다가와서 샤말은 반사적으로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곧 벌어질 전투 때문에 긴장한 것인지 여자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고 샤말은 그 입술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붕대를 감은 양쪽 손목을 조심스레 만지작거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 보던 사내가 붕대를 만지작거리며 방어적으로 한걸음 뒤로 물러난 순간 샤말은 놀랍게도 이 남자를 다시 만났을 때 얻고 싶었던, 내면의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남자를 내 집으로 데려가고 싶어. 그리고 나 때문에 생긴 저 붕대 속의 상처를 확인하고 싶어. 옷을 벗으라고 한 다음 아직 멍자국이 남아 있는지 보고 싶어. 이번에도 얌전히 묶인 채로 있어줄 건지 확인하고 싶어.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하세요? 포스트를 구매하고 이어지는 내용을 감상해보세요.

  • 텍스트 4,527 공백 제외
80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