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Albert Posis - serendipity






Medic Travel Log

#10_화원에게

 

 



자기 전 받은 할배의 문자 덕에 한참을 뒤척이다 늦게야 잠들었다. 더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살에 와닿는 온기에 눈이 떠졌다. 자연스레 밑을 내려보니 잠에서 깬 라일리가 품에서 꼼지락대고 있다.

 

“언제 일어났어요?”

“헉.”

 

열심히 내 가슴팍 부근에 머리를 부비던 그가 놀란 눈으로 나를 올려본다. 눈두덩이가 도톰하게 부었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졸음을 담고는 배시시 웃는다.

 

“아침부터 진짜 예쁘다.”

“…거짓말.”

 

그의 앞머리를 넘기며 말하니 기분이 좋은 듯 품 안에 더 파고든다. 내 가슴에 코를 묻고 킁킁대며 냄새를 맡다가 쪽-하고 짧게 입을 맞춘다.

 

“어쭈. 유혹해요? 아침부터?”

“아뇨.”

“그럼 뭐 하는 거예요.”

“주제 파악 중이죠.”

 

웅얼거리며 말한 그가 내 허리를 꽉 안았다. 그의 행동에 근심이 녹은 듯 사라졌다. 라일리에겐 그런 능력이 있었다. 주위를 멀게 하고, 생각을 멀게 하고 오롯하게 앞에 있는 라일리만 보이게 하는 능력. 열심히 주제 파악하는 그를 보며 눈을 감았다. 조금 더 자고 싶었다. 편안하게.

 

 

*

 

그의 낡은 캐리어에서 옷을 꺼내 라일리가 원하는 옷으로 입혔다. 지금은 가을인데 그가 풍기는 향기는 봄이었다. 당신과 함께면 사계절 봄일 수 있을까, 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이 스쳤다.

 

“라일리 냄새난다.”

 

소파에 앉아 오렌지 주스를 꿀꺽 마시던 그가 나를 보곤 제 옷의 냄새를 맡는다.

 

“가방에 향초가 있어서요.”

“좋아요. 라일리랑 있으면 화원에 온 것 같아요.”

“라일리 꽃 많이 예뻐해 주세요.”

 

자기가 말하고도 부끄러운지 빨개진 얼굴에 연신 손부채질한다. 화원. 라일리와 잘 어울리는 단어였다. 그 안에 들어가면 꽃길만 걸을 수 있는 그런 화원.

 

핸드폰을 들어 어제 답장하지 못한 할배와의 채팅창에 들어갔다.

 

[적당히 여행객 흉내 내고 오려무나.]

 

다시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문자였다.

 

“정국 씨.”

 

넋 나간 듯 핸드폰 화면만 쳐다보고 있자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들어 라일리를 쳐다봤다. 그가 눈을 접어 웃는다. 오렌지 주스와 앞에 놓인 쿠키 한 봉지를 어느덧 다 먹고는 배를 통통 두드린다. 어느 날 갑자기 내게 피어난 꽃, 나의 화원.

 

할배와의 대화창을 홀린 듯 지웠다. 여전히 답장은 보내지 못한 채였다. 천진하게 제 배를 만지는 라일리를 보며 내 목에 카메라를 걸었다.

 

“정국 씨, 오늘도 우리 행복하게 보내요.”

 

행복하게 보내자는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며 핸드폰의 전원을 종료했다. 그의 머리를 매만지니 그도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다. 현실에서 도피한, 겁이 많은 전정국은 몸을 숨길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숨기로 했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일어났다. 라일리에게 손을 뻗었다.

 

그가 내 손을 맞잡는다. 나는 그렇게 잠시 숨을 곳을 찾았다. 나의 화원, 라일리에게서.

 

 

 

*

 

 

 

얄밉긴 해도 태어난 순간부터 나를 봐온 차 비서가 내 니즈를 정확히 판단한다는 건 인정 해야 했다. 게이트를 나오자마자 내 이름을 쓴 푯말을 흔드는 직원이 우릴 반겼다. 내가 어떤 여행을 원하는지 제대로 파악 한 모양이다.

 

안내받은 곳엔 흰색 카브리올레가 주차되어있다. 내가 예약한 것도 아닌데 연신 탄성을 내지르며 좋아하는 라일리를 보니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차를 타고 호텔에 도착해서 라일리를 등에 업었다. 보는 눈이 많아 한사코 거절하는 그에게 ‘들어 안을까요, 업을까요.’ 협박하니 냉큼 업힌다.

 

침대 하나를 강조한 것처럼 지금까지 묵었던 방보다는 작았다. 아주 만족스럽다. 업힌 등에서 내려달라고 조르는 그를 더 바짝 업고 방을 구경시켰다. 침대에 누우면 마이애미 해변이 눈 앞에 펼쳐지는 전망의 방이다.

 

“진짜. 너무…. 최고예요.”

 

그가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바다 가고 싶죠?”

“네. 엄청!”

“발목 다 나을 때까진 방에서 못 나가요.”

“너무해요.”

“그러니까 땅에 발 디딜 생각 말아요.”

 

내가 연애할 때 설탕 일 킬로는 처먹은 듯 달달하다 못해 혀가 아려 지는 놈이란 걸 오늘에야 알았다. 그를 방에 가두고 나만 볼 생각을 하니 웃음도 비실 새 나왔다. 카메라 말고 집착하는 게 하나 더 생겼다.

 

“진짜 빨리 나을 거야….”

 

다짐하듯 귀에 대고 혼잣말을 읊조리는 라일리. 어쩌면 카메라보다 더 집착하게 될 수도.

 

 

 

*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탁 트인 바다를 멍하니 바라봤다. 둘 다 말이 없었다. 어쩌면 라일리가 심심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핸드폰 줄까요?”

“네?”

“가족들한테 연락할래요?”

 

무턱대고 집을 나선 지 일주일이었다. 걱정할 수 있는 시간이다. 내 물음에 잠시 고민한 라일 리가 고개를 젓는다.

 

“괜찮아요.”

“왜요.”

“여행 끝날 때까지는 그냥 둘만 있어요. 지금이 너무 좋아요.”

 

편안해 보이는 음성으로 그가 말했다. 여행 끝날 때까지는. 여행이 끝나면 어쩌겠냐고 묻고 싶었지만, 말을 아꼈다. 나는 겁이 많다.

 

…나는 무섭다.

 

 

 

 

마이애미에서의 시간은 마치 신혼부부의 주말 같았다. 호텔에서 지내며 라일리와 나는 별다른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오가는 대화가 없었음에도 마음이 편했다. 깨고 싶지 않은 꿈이다.

 

창밖을 보며 자다 깨길 반복하다 라일리의 발목을 정성스레 문질렀다. 우리 둘 다 하도 자서 얼굴이 탱탱 부었다. 침대에 거꾸로 누워 내게 한쪽 발을 맡긴 그가 다른 발로 내 무릎을 톡톡 건드리기도 했다.

 

“배고파요.”

 

그의 투정 섞인 목소리로 배고프다고 하면 곧장 룸서비스를 시켰다. 편식하지 않고 먹는 그에게 ‘돼지’라고 놀리면 ‘꿀꿀’하고 되받아치는 여유도 생겼다.

 

나는 라일리에게 잘 보이려고 일부러 그 앞에서 웃통을 벗고 운동을 하기도 했다. 운동하고 싶으면 지하의 짐으로 가라는 순진한 그의 말에 ‘라일리 도망갈까 봐요.’ 하고 대답하곤 윗몸일으키기나 팔굽혀펴기 따위로 몸을 자랑했다. 그럴 때면 라일리는 힐끔힐끔 나를 훔쳐보다 붉어진 제 귀를 혼자 만지곤 한다.

 

“아, 나도 운동해야 하는데.”

 

하며 제 배를 문지른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 한숨을 폭 내쉬곤 침대 옆에 놓인 감자 칩을 까서 먹는다.

 

“다리 다 나으면 해야지.”

 

스스로 다짐하며 아그작 과자를 깨무는 그를 보며 한참을 웃었다. 민망한지 침대에 엎드려 버리는 그의 모습을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오래오래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줬으면 좋겠다.

 

 

 

꼬박 삼 일을 호텔에서만 지냈다. 첫날의 엄포처럼 라일리의 발이 땅에 닿는 순간은 거의 없었다. 그 덕에 발목이 더는 아프지 않았고 움직임이 없어 포동포동하게 살도 올랐다.

 

“와, 저 살쪘죠.”

 

부은 볼을 콕콕 찌르며 말하는 라일리가 한 손에 들고 있던 쿠키를 내려놨다.

 

“어디 보자.”

 

요리조리 그를 살피는 시늉을 하다 배를 쿡 찔렀다. 아직도 마른 몸이지만 그를 놀리고 싶은 마음에 놀란 척을 하며 입을 가렸다.

 

“와 라일리 배가….”

“왜요, 심각해요?”

“더 살찌워야겠어요. 잡아먹게.”

“으, 너무 징그럽다. 지금 되게 아저씨 같았어요.”

 

나를 밀어내는 그를 꽉 안았다. 버둥거리던 그가 이내 몸에 힘을 풀고 내 허리를 감싼다.

 

“저 이제 발도 다 나았는데.”

“그러게, 다행이다.”

“바다 가고 싶어요.”

 

안 그래도 오늘은 그와 나갈 생각이었다. 마이애미에 도착한 지 사흘 만에 처음으로 그가 제 발로 땅을 밟는다.

 

 

 

시원하게 천장이 열린 카브리올레가 바다의 중간을 가로질렀다. Overseas highway. 바다 위에 놓인 다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하늘만큼 파란 바다였다.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바람을 만끽한 그가 아이처럼 웃었다. 라디오에선 유명한 팝송이 나왔다.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마이크처럼 쥐고 그가 크게 노래도 부른다. 나도 그를 따라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흥에 겨운지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추던 그가 결국 아이스크림을 제 옷에 묻혔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일 초도 빠짐없이 모든 분 초가 앞다투어 좋았다.

 

시내에 도착해 그를 차에 앉히고 괜찮은 레스토랑이 있는지 살폈다. 뉴욕에선 라일리가 나를 위해 적당한 곳을 찾아내려 뛰어다녔는데, 일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나 바뀌었다.


마땅한 곳이 없어 타코와 부리또로 배를 채웠다. 새우 꼬리까지 씹어먹는 그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니 꼬리를 먹어야 건강해진다며 내게 통통한 새우를 건넸다.

 

“아 해요. 아.”

“꼬리 먹다가 다치면 어떡해요, 딱딱한데.”

“여기에 영양소 엄청 많아요. 정국 씨 빨리 아.”

 

막무가내로 입에 새우를 넣기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받아먹었다. 오도독 씹히는 새우 꼬리를 인상 쓰며 삼키니 작은 손으로 짝짝 손뼉 친다.

 

“잘했어요. 정국 어린이, 편식은 나쁜 거예요.”

“새우 꼬리 안 먹는 걸 편식이라고 하나요.”

“제가 그렇다면 그런 거예요. 저 라일리예요.”

 

양손에 각각 스푼과 포크를 쥔 채 라일리가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곧장 카메라를 들어 그의 모습을 찍었다. 가슴에 새길 또 하나의 추억이다.

 

 

왔던 길을 그대로 달려 다시 마이애미 비치로 돌아왔다.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해변을 걸었다. 따듯한 모래알이 발에 다닥다닥 달라붙었다. 파도가 발목을 스치고 갈 때마다 그가 간지럽다는 듯 웃었다.

 

“정국 씨, 바다 좀 봐요.”

 

걷던 그가 멈춰 서서 바다를 바라봤다. 쏴아아- 파도가 밀려와 하얗게 부서지고 다시 밀려왔다 부서지길 반복한다.

 

“낮에 드라이브할 때 봤던 바다는 새파랬는데 지금 바다 좀 보세요.”

 

바닷물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아까 봤던 바다와 다른 곳인 것처럼 붉은색이었다. 라일리가 허리를 숙여 손에 바닷물을 담았다. 투명한 물이 작은 손 가득 고였다.

 

“이것 좀 봐요.”

 

그가 손을 뻗어 고인 물을 내게 내밀었다. 그의 손안의 작은 바다가 찰랑인다.

 

“바닷물은 투명해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손에 고인 물을 다시 바다로 흘려보낸 그가 옷에 젖은 손을 닦았다.

 

“바다는 원래는 이렇게 투명한 색인데 어떨 때는 파랗게, 또 어떨 때는 지금처럼 분홍빛으로 보이는 거예요.”

“그러게요.”

 

한참 바다를 보던 라일리가 이번엔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본다, 물감을 칠한 듯 분홍빛의 하늘이었다.

 

“하늘이랑 바다랑 마주 보고 있어요.”

 

어린아이 같은 말을 내뱉은 그를 따라 나도 시선을 하늘과 바다로 옮겼다.

 

“바다가 하늘을 품은 거예요. 그래서 하늘이 변할 때마다 바다색도 변하는 거예요.”

“….”

“하늘이 푸르면 바다도 푸르고, 지금처럼 노을 지면 바다도 노을이 져요.”

 

진지한 그의 말에 웃음이 난다. 아무래도 의대 다니는 게 거짓말인가 싶다. 빛의 반사와 같은 기본적인 과학 원리를 모를 리가 없는 그인데 말하는 건 동화에서 나올 법한 문장들이다. 놀려주고 싶은데 그가 몸을 돌려 나를 본다. 손에 든 내 신발을 가져가 모래 위에 올려두곤 내 어깨를 돌려세워 마주 보게끔 섰다.

 

“우리도 마주 보고 있잖아요.”

“네.”

“정국 씨가 저를 품은 거예요. 그래서 정국 씨가 자꾸 저 같아져요.”

“무슨 말이에요.”

“제가 많이 먹으니까 정국 씨도 많이 먹고.”

 

어쩔 수 없었다. 시킨 음식의 양이 너무 많아 자연스레 평소보다 많이 먹었다. 라일리가 내게 한 걸음 다가와 어깨와 목을 킁킁댄다.

 

“맨날 말하는 ‘라일리 냄새’가 이제 정국씨한테도 조금 나고요.”

 

그가 선물한 향초가 내 가방에도 들어있었다. 옷에 스미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늘은 새우 꼬리도 먹었잖아요.”

 

그가 건넸던 새우 꼬리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어봤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라일리를 품었다는 말이, 그래서 그 같아진다는 말이 좋았다. 천진하고, 무구한 그를 닮고 싶었다.

 

“라일리는 용감해요?”

“응? 저요?”

“네. 겁 많아요? 어때요?”

“저 용감해요. 라일리라는 이름의 뜻도 용감한 아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겁도 없이 파트타임  제안 받고 덜컥 정국 씨 따라왔죠.”

 

그가 아이처럼 웃었다. 그의 말처럼 새우 꼬리도 먹었으니 용감한 성격마저 품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에 미치니 말이 없어졌다. 별 시답지 않은 생각인데도 간절했다. 내 표정을 살핀 그가 팔을 슬며시 잡는다.

 

“근데 좀 오래 서 있었나 봐요. 저 발 아파요.”

“아.”

“정국 씨 등. 등 빌려주세요.”

 

뻔뻔하게 말하며 팔을 뻗었다. 우울한 감정에 잠길 새도 없이 손을 뻗으며 재촉하는 그에게 등을 내었다. 폴짝 업힌 그가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냄새를 맡으며 ‘음. 라일리 냄새’ 하고 말하며 목을 꽉 껴안는다. 마치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 또 자기식대로 위로하는 그였다.

 

 

*

 

 

해변이 잘 보이는 야자수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노을은 그새 더 붉어졌다. 라일리의 말처럼 바다가 하늘을 완전히 품었다. 수평선이 겨우 가늠될 정도로 비슷한 색을 띈다. 호텔 안에서 유리창 너머로 보던 풍경과는 또 달랐다.

 

“맥주 한잔할래요?”

 

내 말에 라일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가지 마요.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요.”

 

그에게 몇 번이고 당부했다. 이럴 거면 라일리의 핸드폰도 가지고 나올 걸 그랬다. 유치하지만 그가 어디 가지 못하게 신발 한쪽을 들고 길을 나섰다.

 

바다 근처라 보이는 건 호텔밖에 없었다. 편의점을 찾기 위해 결국 꺼둔 핸드폰의 전원을 켰다. 가장 가까운 편의점으로 뛰었다. 아직 라일리를 못 본 지 1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보고 싶은 걸 보니 아무래도 진짜 그를 품었나 보다.

 

 

라일리가 뭘 먹고 싶어 할지 몰라 과자와 과일, 조각 치킨까지 샀다. 잘 흘리는 것도 같으니 냅킨도 사고 물도, 사탕도 사니 큰 봉지가 가득 찼다. 오도카니 앉아 있을 라일리를 뒤에서 몰래 찍어야지 생각도 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데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미처 다시 끄지 못한 핸드폰이었다.

 

차 비서의 문자였다. 여행 중엔 연락을 하지 말라고 했건만 이렇게 연락이 온다는 건 중요한 일이니 꼭 확인하라는 뜻이다. 전화가 아닌 문자로 하는 건 최대한 내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함이겠고.

불안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딱히 연락할 일이 없었을 텐데. 아직 경영에 뛰어들지 않은 나는 집안의 대소사가 아니면 받아야 할 연락은 드물다.

 

[여행 중 죄송합니다. 회장님 지시사항이라 문자 남깁니다.]

 

그럼 그렇지. 답장이 없으니 괘씸한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귀국하시고 바로 호림 그룹과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혹여 귀국 날짜를 미루실까 염려하시는 것 같습니다.]

 

호림 그룹과의 만남이란 정략결혼을 위한 선 자리임을 의미했다. 굳이 내게 말했던 선 자리임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건, 할배가 나한테 하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여행이 감시당하고 있는 걸까. 혹시 라일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라일리가 있는 해변으로 걸음을 빠르게 옮기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몇 번 가지 않아 차 비서가 전화를 받았다.

 

-네, 도련님.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사과는 됐고, 내 여행 감시해요?

-….

-사람 붙였어요? 갑자기 왜 선이며 뭐며 지랄이지.

 

험한 말이 나갔다. 마음이 다급해져 해변으로 뛰었다. 혹시나 그가 사라졌으면 한국이고 뭐고 없다.

 

-아닙니다. 항공권하고 호텔 예약 내역만 보고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왜. 일정 바뀌어서 그래요? 그래서 자꾸 호림 그룹이니 뭐니 하는 거예요? 이 정도도 예상 못 했어?

-도련님.

-말씀하세요.

-지금 대화 내용은 보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만 여쭤봐도 괜찮습니까.

-네.

-혹시 라일리 박과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신 게 아닌지요.

 

라일리를 두고 왔던 해변에 도착했다. 걱정과 다르게 라일리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다. 멍하니 바다를 바라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정에 변화도 없이 바다와 하늘이 닿은 곳에 시선을 둔다.

 

-…당신들이 보낸 사람이잖아. 그게 왜요.

-룸 두 개짜리 방에서 하나로 바뀌고, 즐기시지도 않는 스포츠카를 예약하신 걸 보고 회장님이 의아하신 모양입니다.

 

자기 같다고 나를 유독 예뻐하던 할배였다. 역시나 필요 이상으로 나를 너무 잘 안다. 그와의 사적인 모습을 들킨 것도 아닌데 말문이 막혔다. 아무 사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기엔 내가 차 비서에게 했던 부탁이 너무 투명했다.

 

오도카니 앉아 있는 라일리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검은 머리와 하얗고 가느다란 목 아래로 예쁘게 떨어진 어깨선. 마른 등이 보인다. 바다 냄새가 가득한데 어찌 된 게 바람을 타고 라일리 향기가 나는 것 같다. 중증이다.

 

-마음에 들어서 가지고 놀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되네요.

-….

-이럴 땐 어떻게 해요.

-…여행 재밌게 하시다 돌아오면 됩니다.

-가기 싫어지면요.

-…후회 없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오시면 됩니다.

-….

-사람들은 대부분 좋았던 추억을 좀먹으며 살아갑니다.

 

차 비서의 말을 끝으로 핸드폰을 종료했다. 꿈에 살고 싶은데 그럴 때마다 현실이 채찍질한다. 주제를 잊지 말라고. 결국엔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 여행객 흉내를 내는 전정국이 아닌 내가 살아온 전정국이 누구인지 자꾸만 상기한다.

 

나를 기다리던 라일리가 지루한 듯 기지개를 켰다.

 

“라일리!”

 

내 부름에 뒤를 돌아본 그가 양팔을 크게 휘저으며 나를 반긴다. 나도 손을 들어 가득 찬 봉투를 흔들었다. 그에게 달려갔다. 몇 분 만에 보는데 반갑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저 두고 도망간 줄 알았어요.”

“꿀꿀이 많이 먹을 거 같아서 이것저것 샀어요.”

“저 많이 그렇게 돼지는 아니거든요. 오, 치킨이다.”

 

냉큼 치킨 한 조각을 꺼내 입에 물었다. 오물오물 씹는 그에게 맥주 한 캔을 따서 건넸다. 벌컥 마신 그가 ‘크으.’ 소리를 냈다. 자기가 먹던 치킨을 자연스레 건네기에 나도 한 입 먹었다. 이번엔 입을 댄 맥주를 주기에 그것도 똑같이 마시고 ‘크으.’ 소리를 따라 냈다.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바다 냄새와 라일리 향기가 섞였다. 복잡한 내 속을 모르는 라일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사 왔다며 봉투 안을 구경했다. 곧 해가 질 것 같았다. 카메라를 들어 눈앞의 바다를 찍었다.

 

“…이렇게 좋아하면서.”

 

이번엔 과일을 꺼내 문 그가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다. 아마도 틈만 나면 사진 찍는 내게 하는 말인 것 같다.

 

그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 사진을 한 장 더 찍었다. 



하늘을 품은 바다. 하늘과 똑 닮은 색을 띄는 바다. 해가 지기 직전의 붉은 바다였다. 만족스러웠다. 카메라를 내려두고 맥주를 들이켰다.

 

“가고 싶은 곳 있어요? 바다는 실컷 봤잖아요.”

 

삼 일을 호텔에서 보내긴 했지만, 오늘로 나흘이었다. 좋았던 추억으로 좀먹고 산다는 차 비서의 말을 믿기로 했다. 최대한 많은 곳에서의 라일리를 보고 싶었다.

 

“정국 씨 덕분에 상상만 했던 곳은 다 가고 있는 거 같아요.”

“그래도, 여긴 꼭 가봐야지 하는 곳 없어요?”

“음…. 좀 유치한 곳이어서 거긴 나중에요. 정국 씨가 좋아할 만한 곳은 아니에요.”

“어딘데요.”

“저도 어릴 때야 가고 싶었지, 지금은 딱히. 그냥 궁금만 한 거예요. 유치해.”

 

그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미국에서 어릴 때 가고 싶은 유치한 곳이라면 뻔했다. 디즈니랜드. 동화 속 공주님과 왕자님이 산다는 디즈니랜드.

 

우리에게 나중은 없다. 차마 그에게 나중엔 기회가 없으니 이번에 가자고 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좋아한다는 걸 알자마자 이별을 생각하는 건 잔인한 일이다.

 

“내일은 어디 갈까요. 이제 라일리가 정해요.”

“정말요?”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긴 그가 조심스레 내 손등을 두드렸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카스트로라는 곳이 있어요.”

“네.”

“성 소수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도 하고, 그 도시에선 게이 퍼레이드도 크게 열리고…. 어릴 때부터 궁금했어요. 뉴욕은 안 그래 보여도 폐쇄적인 부분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의 목소리가 진지했다. 우리 둘 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놀라운 것도 없었다. 뉴욕 델리에서 할아버지가 남자친구냐고 묻는 순간 자연스레 알았는데 라일리 입에서 ‘게이’라는 말이 나오는 건 의외였다.

 

“정국 씨는 남자 좋아하는 거 언제 알았어요? 알았을 땐 어땠어요?”

 

자연스레 사적인 얘기가 나왔다. 그가 내게 묻고 싶은 게 수백 가지가 된다는 걸 안다. 참고 있는 것도, 어쩌면 나보다 그가 더 불안할 것도 안다.

 

“고등학교 때 알았어요. 그냥 별로 놀랍지는 않았어요. 그런가 보다 했죠.”

 

어렸을 때부터 내게 공적인 사랑과 사적인 사랑이 나뉘어 있다는 걸 알았다. 정략결혼이 당연한 친척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유난스러운 사랑을 할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연애의 감정이 들 순 있으나 가정을 꾸리는 건 정해진 사람과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게이라는 것도 상관없었다. 누굴 사랑하든 결혼할 사람은 정해져 있으니까.

 

“커밍아웃은 했어요?”

“아뇨, 굳이. 라일리는요?”

“전 했어요. 지금도 가끔은 믿지 않으시지만.”

“힘들었겠어요.”

“네. 그래도 숨기기 싫었어요.”

“용감하네요.”

“제 이름이 용감한 아이라는 뜻이라니까요. 부럽죠?”

 

부럽다. 쉽지 않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용기가 부럽다. 내겐 애초에 없던 선택지이기에 용기가 필요할 일도 아니었지만, 라일리를 만나고선 마음이 이상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모습이 궁금해졌다.

 

“저희 부모님은 세탁소를 하세요. 동네에서는 되게 유명해요.”

 

묻지 않은 자기 얘기를 시작했다. 집이 어려운 건 아니지만 형제들이 많아 나가야 할 돈이 많은데 의학대학원 학비를 감당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여기선 전액 장학금 주는 경우도 많거든요. 근데 우리 집은 해당이 없다는 거예요.”

“부자구나.”

“지표가 웃긴 거죠! 수입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저희 부모님을 감당해야 할 아이들이 세 명이나 있다구요. 왜 지출은 안 보는 거지? 진짜 웃긴 도시야.”

“한국에서도 그 비슷한 일들이 있어요.”

 

어디서나 사람 사는 얘기는 비슷했다. 물론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지만 대학 동기들에게 학비에 관련해서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가 이제야 딱 제 나이로 보였다.

 

“사실 대학원 안 갔으면 취업할 곳이야 많았거든요. 그래도 의사가 너무 되고 싶은 거예요.”

“왜요?”

“멋있잖아요.”

 

의사에 대한 소명 의식에 대해 말할 줄 알았던 라일리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그가 웃겨 푸하하 웃으니 ‘왜요, 의사 멋지지 않아요?’ 하고 반문한다. 분명 그보다 더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그였다. 이제 라일리의 농담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휴학해서 SAT 강사하고 돈 벌려고 했어요. 이제 막내까지 대학에 가서 부모님 등골이 휘게 생겼거든요. 근데 지도 교수님한테 연락이 왔어요. 고액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는데 해 보지 않겠냐고.”

 

교수님이 소개한 자리이니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고, 부르는 액수에 조건은 보지도 않고 일단 오케이를 한 그였다. 생각보다 사연 있는 타입은 아니었다.

 

“근데 당장 한 시간 내로 준비하고 병원으로 가라는 거죠. 놓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바로 짐 싸서 나온 거예요.”

 

늦었다며 헐레벌떡 뛰어온 라일리가 생각났다. 세미 정장을 입었던 그였다. 벌컥 커튼을 젖히고 숨을 고르던 라일리.

 

“그렇게 해서 일하게 된 거구나. 그리고 병원에서 나 보고 반하고.”

“….”

“유언이 얼마나 와닿던지. 웁.”

 

라일리가 내 입에 멜론 한 조각을 넣어 입을 막았다. 달콤한 과즙이 입에 퍼졌다. 민망한 듯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켠 그가 비워진 캔을 소리 내며 구겼다. 취기가 올라 얼굴이 발그레한 라일리가 맥주 한 캔을 더 땄다.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달싹인 그가 술을 다시 들이켜곤 나를 쳐다본다. ‘정국 씨는요?’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였다. 내게 궁금한 걸 묻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다.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정국 씨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말해요.”

 

마치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 그가 말했다.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입이 떨어지지 않아 애꿎은 과자 봉지만 만지작거렸다. 그에게 나에 대해 뭘 말해도 될지 생각했다. 할 수 있는 말이 몇 개 없었다. ‘흠흠.’ 라일리가 헛기침 한다. 말을 재촉하나 싶은데 나를 보고 방긋 웃는다.

 

“당신 이름은 전정국. 음, 일단, 부자 같다. 그것도 엄청.”

 

내가 아닌 라일리의 입에서 나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잠자코 그의 말을 들었다.

 

“보물 1호는 카메라고 사진 작가가 되고 싶지만 당장은 못 한다.”

 

뉴올리언즈에서 나눈 대화였다. 해진 카메라 줄에 관해 얘기하다 우선순위가 아니기에 당장은 할 수 없다고 했었다.

 

“오이를 싫어하고 새우 꼬리도 안 먹지만 이제 먹게 됐다.”

 

앞으로 새우 꼬리를 먹을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먹지 않을까.

 

“운전을 잘하고 노래는… 아까 흥얼거리는 걸로 봐선 나보단 못한다.”

“흐흥.”

 

자신감 넘치는 그가 귀여워 웃었다. 다 맞는 말이다.

 

“게임을 할 줄 알지만 즐기지는 않는다. 도박으로 돈 날릴 일은 없다. 후각에 예민하다. 라일리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다.”

 

생각보다 나를 잘 파악했다. 그가 아는 내가 궁금해 몸을 돌려 라일리를 마주 봤다.

 

“나이는…. 내 또래로 보인다. 군대를 다녀왔다고 하니까… 나보다 형인가?”

 

그의 혼잣말과도 같은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웃었다. 두 살이나 어리다고 하면 어떤 반응일까. 말하면서 신이 난 듯 그도 내 쪽으로 몸을 돌려 앉았다.

 

“복근이 있다. 가슴에도 근육이 있다. 운동을 습관처럼 한다. 좀… 보여주기식인 것 같기도 하다.”

“푸하하하!”

 

해가 떴던 자리엔 별들이 빛을 대신했다. 야자수 사이로 푸스스 소리 내며 바람이 들어왔다. 단정한 라일리의 머리가 바람에 날렸다.

 

“병원에서 라일리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

“라일리가 자꾸 좋아진다.”

“….”

“한국 가기 싫다.”

 

내 마음을 꿰뚫는 듯 줄줄이 전정국의 속마음을 나열하는 라일리. 표정엔 웃음이 걷혔다.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이 궁금하지만 듣기 싫었다. 아직 자신을 정면 할 자신은 없다. 라일리가 내 손을 잡았다. 여전히 나는 입을 다문 채였고 라일리가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무섭다.”

“...”

“지금이 좋아서 앞으로가 무섭다.”

“...”

 

다 알고 있었다. 나와 지내면서 내가 걱정하는 찰나의 순간을, 라일리는 모두 다 알고 있었다. 여기서 눈물을 쏟으면 25년 전정국 인생 가장 멋대가리 없는 순간이 될 테니 꾹 참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

“그냥 지금은 마음 가는 대로 해야겠다.”

“...”

“끝.”

 

말을 마친 라일리가 맥주를 마셨다. 대답 없는 내게 캔을 건넨다. 말없이 캔을 받아들었다. 틀린 것 하나 없는 라일리의 말에 웃었다. 좋았던 추억을 좀먹고 사는 것. 라일리라는 사람이 내가 앞으로 살아가며 가끔 꺼내 볼 사람이 되겠다는 건 이미 예상한 바였지만, 그걸로 충분할까. 그리움으로 괴로워지면 어떡하지. 더 깊어지기 전에 그만둬야 할까. 지금 그만두면 쉬울까. 시간과 마음이 비례하면 좋겠지만 이미 그러기엔 나를 컨트롤 하기가 힘들다.

 

라일리와 전정국은 결국 어떤 모양으로 서로의 인생에 남게 될까. 만난 지 열흘 된 사람을 두고 느끼는 감정이란 게 우습다가도, 고작 열흘에도 이런데 한 달이 지나면... 왜 할배가 그답지 않게 나를 걱정해서 하지 않아도 될 선전포고를 하며 내 여행을 방해하는지. 알 것 같다.

 

“라일리.”

“네.”

“박지민 씨.”

“네?”

 

본명을 알게 된 순간부터 부르고 싶었다.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없다고 하니 더 부르고 싶었다.

 

“박지민.”

“...”

 

그는 내 나이를 영영 모를 테니 호칭 정도는 생략해도 되지 않을까.

 

“지민아.”

“...”

“우리 잘까.”

 

그를 안아도 해소될 갈증이 아니라는 걸 안다. 어쩌면 더 괴로워질 수도, 미래를 더 두려워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지금 내가 그렇다. 안고 싶다. 할 수 있는 표현을 다 하고 싶다.

 

“우리 오늘 잘까.”

 

섹스하자는 말을 떨면서 하게 될 줄 몰랐다. 남들한테 쉬운 게 라일리한테는 어려워질 줄 몰랐다.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눈을 피하지 않았다. 바람에 머리가 흩날렸다. 예뻤다. 용감한 그가 멋졌다. 라일리가 엉덩이를 조금 움직여 내게 더 가까이 앉았다. 내 손을 살며시 잡는다.

 

“네.”

“...”

“자요.”

“...”

“오늘 나랑 자요.”

 

무색의 음성이었다. 내가 떨고 있다는 것도 다 안다는 듯 그가 내 손을 힘주어 잡았다.

 

어느덧 하늘은 완연한 어두움에 잠겼다. 하늘을 품은 바다 또한 보이지 않는 우리의 미래처럼 검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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