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같이 먹을래? 누나가 사줄게.”

“아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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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뷔국대의 벚꽃 흩날리는 3월,

 

어느 대학교와 다른 거 없이 새내기들이 붐비는 입학식이다. 그런 입학식에는 마스크를 쓴 훤칠한 피지컬의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 남자를 통해 진행된다.

 

이 학교에는 입학한 지 한 달 만에 모두의 입에 한 번씩은 오른 남자 하나가 있다. 눈치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앞에서 말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걸 다 알고 이유도 눈치를 챘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다시 말해도 들어줄 거라는 걸 알고 있기에 모두의 입에 한 번씩은 올랐던 이유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마스크 쓰고 다니는 잘생긴 걔, 조소과 16학번 김태형]

마스크를 썼다는 것도 한몫을 했겠지만 물론 잘생겼다가 핵심이겠지, 근데 이상한 점은 아무리 미세먼지와 황사가 판을 친다고 해도 한 달이 지나도록 실내에서도 야외에서도 마스크를 안 벗었다는 거. 무튼 그나마 태형이랑 친하다는 같은 과 동기가 태형에 대해 알아낸 게 있다. 세 가지밖에 안 되지만.


1. 김태형은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2.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 길게 답을 하지 않는다.

3. 21세기 아무리 혼밥, 혼술이 유행이라지만 이상하리만큼 같이 밥을 먹거나 술을 하지 않는다.


 

처음 마스크를 쓰고 다녔을 때, 벗어 보라는 수많은 권유가 있었다. 물론 벗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의 태형을 향해서 두 가지의 소문이 돌았‘었’다.


첫 소문은 ‘하관이 못생겨서 마스크를 벗지 않는 것이다.’ 였다. 물론 같은 과의 진술(?)로 삽시간에 사라지기는 했지만. 어떤 진술이었냐면, 도시락을 급하게 까서 학교 벤치에서 입에 욱여넣는 김태형을 봤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핵심은 태형이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있었는데 학교 조소 실에 있는 조각상 다 부수고 김태형 얼굴 놔도 될 정도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소문은 ‘턱에 큰 흉터가 있다.’ 였다. 사실 소문이 그냥 소문으로 퍼지고 끝났으면 참 다행인데, 소문이라는 건 부풀어지고 부풀어지면서 퍼진다. 그리고 이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태형은 흉이 있다는 소문을 넘어서 어디 저 미국의 큰 조직에서 한국으로 파견 온 조직원이라는 말이 소문으로 퍼졌다. 하지만 그런 소문을 아는데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건지, 태형은 막상 본인은 처음 듣는 거라는 듯이 눈썹만 슬쩍 움직이고 만다.


아 그리고 다들 김태형한테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다. 그의 피부라고 봐도 될 정도로 빼는 걸 본 적이 없는 건 마스크 뿐만이 아니다. 정확히는 마스크 빼고 하나 더 있는데, 그건 그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자리 잡은 실버색의 심플한 반지이다. 문양 하나 없이 깔끔한 이 반지에는 ‘JK’ 라는 이니셜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 반지에 대해서는 두 분류로 갈렸다.


 

[애인이 있나 보네 초성이 JK인가] 하는 정상적인 사람들

[해리포터 팬 아니면 브랜드 이름이겠지] 하는 현실 부정형 사람들

 


다들 그의 소문 (미국 거대한 조직에서 파견된 조직원이라는 소문) 때문에 반지에 관해 묻지는 못하고 뒤에서 또 다른 소문만 만들고 있다. 이 정도로 소문이 많으면 거의 뭐, 소문들 합쳐서 소설을 쓸 수 있을 정도이다.

 


*

 


뷔국대의 마스크 남, 그래도 한동안은 잠잠했었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술자리에서는 본 적도 없으며 밥 한 끼 사준다고 해도 짧게 부정의 답을 하고 어딘가로 사라지기 일쑤인데 잠잠 안 할 리가 없었다. 사실 항상 태형은 잠잠했었다. 그런 이유로 이슈 거리가 없었다는 게 잠잠했다는 거보다 맞는 거 같기도 하고, 무튼 그런 태형이 또 주목을 받게 된 일이 생긴다.


물론 그 날도 평범하게 등교를 한 태형이었다. (평범의 기준은 마스크를 썼다는 거) 뭐 특별한 거 없었다, 오늘의 컨셉은 남친 룩인 듯 하얀 니트에 슬랙스를 배치했다. 덕분에 그냥 누가 봐도 뒤태부터 잘생겼다. 아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태형은 원래 매던 배낭에서 새까만 가방으로 바꿔 들고 왔다. 하지만 딱히 이슈가 될만한 건 아니었다. 사건의 태형이 강의실에 들어가 앞쪽 끝자리에 앉았던 거로 시작된다. 교수님이 들어오시기 전 남은 시간을 태형은 목을 스트레칭하는 데에 사용했다. 물론 고개를 돌리자 여러 개의 눈동자들이 따라왔다. 뭐 밀랍 인형이 고개 돌리는 거 같은데 어떻게 주목을 안 하겠어. 근데 그런 그가 그 관심을 받으며 새까만 가방에서 꺼낸 거는 한 손에 들어오는 사이즈의 작은 솜뭉치. 다들 그저 눈을 깜빡이며 작고 하얀 솜뭉치를 바라봤다. 하지만 정작 솜뭉치를 든 당사자는 따가운 시선은 신경도 안 쓰이는 듯 행동했다. 다들 솜뭉치를 뚫어져라 보다가 알았다. 뭐야 저거 토끼 인형이잖아? 물론 토끼라고 말하든 먼지라고 말하든 태형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검지손가락을 빼 작은 솜뭉치 그러니까 토끼 인형의 머리 부근을 쓰다듬었고 이내 꿀 떨어지는 얼굴로 바라보다가 눈을 접어 웃었다. 1차 충격은 여기에서 발생한다. 세상에 무관심해 보이는 태형이 웃었다는 거, 그것도 그저 작은 토끼 인형 때문에. 그리고 2차 충격은 태형이 교수님의 말에 환히 웃으면서 웃음기 잔뜩 품은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는 거다.


“토끼 인형 귀엽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 교수의 강의를 들었던 사람들을 통해 소문은 퍼지고, 또 퍼질 뻔했다. 다들 도대체 그 토끼 인형이 뭐길래 저렇게 태형이 행동하는지 의문이었지만 한국인의 냄비 현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듯 금방 사그라졌다. 태형의 한 마디가 부추겼기에 더 빨리 사그라들었다.


“뭐야, 여자친구가 준 거야?”

“아뇨. 저번에 제가 뽑았어요.”


그렇다 그래서 그저 소문은 ‘김태형은 작은 솜뭉치 인형을 좋아한다.’고 퍼졌다.

 


일명 마스크를 쓴 조각상 김태형은 착실하게 학교에 다녔고, 착실하게 다닌 만큼의 성적을 얻었었다. 아무튼 그런 태형이었고 뷔국대는 곧 또 소란스러울 예정이다. 봄이 오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새내기가 들어오기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얘기다. 뷔국대는 항상 새내기가 들어올 즈음에는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새내기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니라 새내기들이 태형에게 관심을 두는 바람에 17년도는 꽤 새 학기 치고는 잠잠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18년도는 달랐다. 잘생긴 사람 차고 많기로 유명했던 뷔국대에 ‘예쁜이’가 입학했다. 그러니 잠시 태형은 미뤄두고 18년도에 입학한 새내기, 그러니까 그 예쁜이에 관한 얘기를 해보도록 하자.

 

-


“안녕하세여”


처음 보는 사람이랑 곧장 말도 잘 이어가며 해맑게 잘 웃기까지 하는 이 아이. 이보다 좋은 첫인상을 남길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좋은 첫인상을 남기는 이 아이가 바로 그 예쁜이다. 그리고 이 예쁜이는 곧 ‘18학번 체교과 예쁜이 전정국‘ 이란 긴 수식어를 가지게 된다. 예쁜이라는 수식어에 참 알맞게 누가 봐도 예쁘고 잘생기고 홀로 다 하는 정국이었다. 그렇기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물론 예뻐서도 있지만, 사교성이 엄청났다. 어느 동아리를 가도 인사할 선배가 있었으며, 어느 강의를 들어가도 정국에게 인사하며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는 동기들과 선배들이 있었다. 그냥 한마디로 말하자면 피리 부는 사나이도 울고 가는 사교성을 가진 예쁜이, 그런 사람이 바로 전정국이었다. 뭐 10분이면 갈 거리가 30분이 걸리니 말 다 했지 무튼, 그런 사람이었다.

 


[18학번 사교과 예쁜이 전정국] 이란 사람은


피리 부는 사나이도 울고 갈 정국이지만 그건 해가 떠 있을 때 얘기였다. 정국은 저녁 약속은 절대 잡지 않았다. 그게 술 약속이든, 밥 약속이든. 얼마나 저녁에 정국의 얼굴을 보기가 힘드냐면 정국은 점심을 잘 먹으면서 꺄르르 웃다가도 어두워질 거 같으면 짐을 챙겨서 나간다. 무슨 약속이든 간에 해질 때쯤 딱 끊고 짐을 챙긴다.


“어 정국아, 어디 가려고?”

“아, 제가 선약이 있어서요. 먼저 갈게요!”


그런데도 5분만 걸어가면 또 아는 사람이 정국의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건다. 심지어 말을 건 사람은 정국과 겹치는 강의가 하나도 없는데 그 교수님 어떠냐, 성적 잘 받았던데 팁 좀 알려줄 수 있냐 등등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정국과 말을 걸었다. 그런 개수작들을 정국은 ‘집 가봐야 해요.’ ‘저 집 가야 해요.’ 등 집에 가야한다는 이유로 전부 끊어냈다. 덕에 다들 ‘아주 집에 꿀단지라도 있나 보지.’ 라며 중얼거렸고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근데 참 이상한 게 뷔국대에는 독특하게 저녁에는 절대 볼 수 없는 인물이 학교에 두 명이나 있지만, 그 둘을 겹쳐서 생각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 이유는 다들 서로 알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기 때문일 거다. 둘의 과가 완전히 달랐기에 건물도 겹치지 않았을 뿐만이 아니라 애초에 겹치는 강의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 둘이 만나는 걸 본 적도 없어서 다들 의심할 겨를이 없었다. 아니다 정정하자면, 원래는 없었었다. 정국의 손에 그 솜뭉치가 있기 전까지는,

 


검정 비니에 검은 티 그리고 검은 바지. 저승사자도 울고 갈 패션을 선보인 정국의 옷이었다. 이 더운 여름과는 거리가 좀 있어 보였지만 뭐 독특한 패션은 아니었다. 하지만 걸어가면 가는 곳마다 아는 선배들이 힐끔 정국을 쳐다보고 ‘오늘따라 귀엽다.’라는 말을 던졌다. 선배들의 말에 정국은 살포시 웃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그 날 마지막 교시를 마친 정국은 가방에 책을 넣고 나갈 준비를 했다. 근데 정국의 뒤에서 “어허, 제이케이. 그 인형은 뭐야?” 하고 물어왔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얘기하는 김 선배의 말투에 묘한 비웃음이 묻어났고 정국은 살짝 뒤돌아 웃음기를 싹 지웠다. “선배, 전 마음에 드는데 왜요?” 마냥 아기 토끼처럼 웃으며 말 걸던 애가 그렇게 굳히고 말하니까 순간적으로 강의실 안이 싸했다. 물론 그런 느낌이 들자 김 선배는 웃으며 이 분위기를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아니 했었다.


“야, 왜 정색을 하고 그러냐, 귀여워서 그렇지, 귀여워서 근데 그 토끼 인형 좀 낯이 익은 거 같기도 하고, 인형 뽑기에 많나……, 아 그거네 기억났다. 조소과 걔, 김태”


인형을 툭툭 치면서 말을 이어 하다가 정국의 표정을 살피려고 고개를 드는 순간 김 선배는 태형과 눈이 마주쳤다. 태형은 그 큰 눈을 삼백 안을 만들고 쳐다보고 있었다. 다만 그냥 바라보는 게 아니라 완전히 노려보는 듯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살짝 무서워진 김 선배는 정국을 작게 부르면서 뒤에 보라고 복화술을 펼쳤다.


“네? 뒤요? 어, 형!!!”

“구가!!!”

“둘이 아는 사이?”

“선배, 저 먼저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어어, 그래, 이게 무슨 일이야 하하하하하하……,”


순식간에 강의실 문이 닫혔다. 그리고 그 텅 빈 강의실에는 김 선배 혼자 남았다.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고 김 선배는 그저 눈을 깜빡였다.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다시 기억을 되짚어 봤고 김 선배는 엄청난 사실을 알아버렸다. 지금 김태형은 지금 반년에 한 번 보일까말까 한 빙구 웃음을 난사하며 정국을 데려간 거야? 아니, 우선 쟤네 둘 서로를 어떻게 알지? 그리고 그 토끼 인형 김태형 거 맞지? 근데 왜 전정국이 들고 있지? 한참 고민을 하다가 우선 건물을 나와서 다음 수업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다시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 계속 중얼거렸다. 쟤네 둘, 야, 이야, 그러네, 정국이 제이케이, 이야 그 반지 이니셜이 그런 거였어? 그리고 정국이 과잠은 이니셜 T, 즉 태형 와. 혼자 셜록이라도 된 듯 중얼거리던 김 선배는 박수를 치더니 “그러네! 그래서 이야아, 천재 김석진. 톱니를 돌렸어”라고 말했다. 물론 평소에도 혼자 개그치고 웃는 걸 취미로 삼는 김 선배라서 다들 ‘저 선배 또 저래.’ 하고 넘어갔지만,

 


아아, 근데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좀 많은 거 같지만 중요한 두 가지만 쓰자면, 이 두 가지다.

 


1) 김태형은 왜 항시 마스크를 쓰는가.

2) 왜 김태형과 전정국은 저녁에 볼 수도 없는가.

 


그 과거의 시작은 태형이 주민등록증을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얼마 안 지나서이다. 사건 중심에는 다 녹은 메X나를 손에 쥐고 있는 빨간 머리의 남자와 울고 있는 흑발의 좆고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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