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언니의 연락을 받았다.

근 10년은 교류를 끊고 지내온 아버지의 소식이라 달갑지는 않았지만, 처음 그 말을 전해들었을 때에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눈물의 이유가 '내 아버지여서'가 아니라,  치매걸린 아버지라는 짐을 안게되어 결국 강제희생할 수 밖에 없는 자식의 타이틀이 새겨진 것 같아 스스로의 자기연민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인생에서 가장 증오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단연 아버지를 꼽곤 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아버지'라고 칭하는 것 자체가 과분하다고 생각될 정도다.


그도 그럴것이 어릴때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려왔고, 내가 어린나이에서부터 죽음을 매일같이 생각하고 대비할 수 밖에없게 만들었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정폭력이라고 해서 뉴스에 나오는 것 처럼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한것은 드물었다. 매일밤 술먹고 집에 들어와 큰소리를 치고 어머니와 싸우는건 예사이고, 칼을 들고와 어머니를 협박하며 다같이 죽자고 떠들어대곤 했었다.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술에 골아떨어져 자는동안 후라이팬으로 머리를 내려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극단적이고 어이없는 생각이었지만,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것을 보면 그 상상자체가 엄청난 공포감과 증오심으로 인한 안타까운 상상이었다.


물론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멀찍이 서서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칼을 들고 어머니를 죽이겠다고 설칠 때에도 찌르기 직전 어머니를 밀쳐내고 내가 대신 칼에 찔릴 타이밍을 재느라 긴장을 늦출수가 없었다. 


그러한 나날을 보내게 만든 아버지를 증오하는것은 당연하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 트라우마로 인해 길거리에서 언성을 높히는 중년남성의 목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쿵 내려앉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혐오하는 폭력적인 모습이 나도모르게 내재되어있음을 느꼈을때 그 절망감은 이루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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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버지가 알콜성 치매에 걸려 남은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언니의 말을 들었을 때에는, 단지 최소한의 의무를 지켜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즉 잘못되기전에 한번 얼굴이라도 비추는 것. 


곧장 언니와 함께 방문할 날짜를 잡고 아버지가 홀로 사는 집을 찾아갔다. 


사회복지사분께서 주기적으로 관리해주신다고 해서인지 집안은 생각보다 열악하진 않았지만, 못본새 머리가 모두 희어져 있었고 어떤 사고를 당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앞니 한쪽이 깨져있었다. 

이런상황에 참 걸맞게도 한껏 초라해진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안타깝거나, 어릴적 아버지의 잘못된 언행들을 용서할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느끼고 있는 모든 설움과 고난을 어릴적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합리화시키는 습관을 아직 버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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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번 아버지의 집을 방문한 이후로 아버지는 이틀에 한번정도로 나나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댄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내게 이유모를 공포심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회피하고 있었다.


더이상 안되겠다 싶어 전화를 받아, 회피하는 이유를 단호하게 말하며 더이상 귀찮게 하지말고, 과거의 업보를 반성하며 살아가라는 모진말을 쏟아냈다. 


그런 행동을 하면 나중에 '내가 너무 했나',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인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한테 비수를 꽂았어야 했나?' 등등의 후회를 하게될거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나는 냉혈한인가보다.


뿌리깊은 증오심은 언제쯤 사라질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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