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체화 하지 않으면 글 못 쓰는 사람입니다.

- 처음 써보는 2세, 하지만 어리지 않아요.

- 2세 이름은 안 나옵니다.

- 사이 좋은 A반이 쓰고 싶었습니다. 

- 진짜 아키네이터 규칙과 많이 다릅니다.

- 글씨체 이거 괜찮네요. 









 멀지 않은 과거로.





 "개성에 걸려, 미래에서 왔습니다."


 느닷없이 나타난 소년의 자기소개는 당당하고 기이했다. A반 학생들은 이게 지금 무슨 소리인지 쉬이 이해하지 못했다. 개성에 걸린 것까진 알겠다. 그런데 미래에서 왔다니. 아무리 다양한 개성이 존재하는 사회이지만 시간을 넘는다는 SF적 개성은 처음 들어봤다.


 "어어, 전학생이 분위기 풀려고 하는 개그?"


 카미나리가 소년 옆에 있는 아이자와의 눈치를 슬쩍 보며 물었다. 하지만 유에이 히어로 과는 보통 학교처럼 전학생이 올 확률은 매우 드물다. 오히려 일반과에서 올라오는 편이 훨씬 가능성이 컸다. 


 "신원은 이미 학교 측에서 확인했다."


 아이자와는 일단 정체불명의 소년이 믿을만하다는 이유를 설명했다. 우선 소지하고 있던 학생증과 입고 있는 교복은 위조 흔적이 전혀 없는 유에이 것이며, 현 A반 학생들과 몇몇 선생님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더욱 확실한 검증을 위해 세뇌 개성을 지닌 보통과 학생의 도움까지 받았다.


 "...와아, 정말 미래에서 왔단 말이야?"

 "신기하다! 꼭 영화같아!"

 

 평범치 않은 상황에 학생들은 들썩거렸다. 그것도 미래에서, 자신들의 직속 후배가 나타난 거다. 물론 그 잠깐의 즐거움은 아이자와의 가벼운 눈짓 한 번에 바로 수그러들었다. 수수께끼의 소년은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어쨌건 이 녀석도 유에이 학생의 일원, 그것도 너희와 같은 히어로 과 A반. 개성이 해제되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때까지 우리가 도맡기로 했다."

 "혹시 개성이라는 게, 저 옆에 둥둥 뜬 인형인가요?"


 오지로가 소년의 머리 곁에 두둥실 파란 인형을 가리켰다. 소년은 이 인형이 바로 자신이 걸린 개성 '아키네이터'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자신이 걸린 개성에 대한 설명과 해제 방법, 그리고 어쩌다 이런 일이 닥쳤는지에 대한 이유도 설명했다. 


 "찻길에서 구한 아이한테 걸린 개성이에요. 아이가 아직 개성 조절을 못했거든요. 개성에 걸린 걸 보호자한테 듣는 도중에 갑자기 여기 와 있더라고요. 그래도 개성 해제 조건은 다 듣고 왔어요. 조건은 여러분들이 제 정체를 맞추는 거예요. 질문은 10가지만 가능하지만, 실제 대답은 마지막 10번째에 해야 해요."

 "꼭 수수께끼 같아!"

 

 하가쿠레가 투명한 손을 짝짝 치며 즐거워했다. 


 "저기, 그러면 만약 10번의 질문이 끝나고도 답을 못 맞추면 어떻게 돼?"


 미도리야가 조심스레 물었다. 거기까지 생각 못한 학생들도 아차했다. 자신들에게나 재미있는 이야기지, 당사자인 저 소년에겐 꽤 심각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소년은 태연히 웃을 뿐이었다. 우와, 잘생겼다. 아시도가 솔직하게 감탄했다. 갑작스런 등장에 잠시 몰랐던 거지, 소년은 눈에 띄는 미남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죠."


 소년은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되는 거냐, 네가 다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게 걸려있는데, 몇몇이 진지하게 걱정했지만, 소년은 주변만큼 심각하지 않았다. 솔직히, 잘 될 거란 믿음이 있었다.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립니다."

 

소년이 꾸벅 고개 숙였다. 날 선 인상과 달리 인사성 바르고 서글서글했다.


 "제 이름은..."


 본명을 말하려던 소년을, 파란 인형이 서둘러 막았다. 인형은 마구 몸을 흔들며 경고했다. 왜냐하면 소년의 이름은 그 정체를 알아채는 가장 커다란 단서였기 때문이다. 규칙 위반이었다. 그래서 소년은 잠깐 고민하다가, 멀지 않은 과거이자 미래에서 불렸던 제 애칭을 떠올렸다.


 "...꼬마, 라고 불러주세요."




 ---




 스스로 '꼬마'라 부르라고 했지만, 꼬마는 꼬마가 아니었다.


 히어로과 학생이라 체격은 잘 단련되었고, 키는 평균 이상인 걸 단번에 알 만큼 컸다. 단정하게 자른 머리칼은 타고난 건지 여기저기 헝클어져 있다. 그 아래 얼굴은 이목구비가 반듯하게 잘 잡혀 있었다. 약간 날이 선 느낌이 있는데, 웃을 때는 또 그렇지 않았다. 화창한 숲처럼 푸르고 다정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어느새 꼬마 주변에는 A반 학생들로 복작복작했다. 꼬마는 그런 반응이 익숙한지 덤덤했다. 


 "A반 대표 미남 둘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데?"

 "혹시 제가 생각하는 사람들인가요?"

 

 꼬마는 바쿠고와 토도로키를 가리켰다. 바쿠고는 꼬마를 힐끔 보고는 흥미 없다는 듯 콧방귀를 꼈고, 토도로키는 굳이 북적거리는 저곳까지 갈 마음이 없어서 제 자리에 앉아있었다. 꼬마는 저 두 사람이 제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하지만 그게 또 두 사람다웠다.


 "있지, 있지! 미래에서 우리는 어때?"

 

 세로가 흥분된 어조로 물었다. 다들 미래의 자신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과연 훌륭한 히어로는 되었는지, 지금처럼 사이좋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꼬마는 입가에 손을 올리고 가볍게 중얼거렸다. 말해도 되나? 어디까지 하면 되지? 그렇게 잠깐 고민하던 꼬마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근사한 히어로가 되었어요."

 

 그렇게 말한 뒤, 꼬마는 파란 인형이 살폈다. 인형은 잠잠했다. 아무래도 포괄적이면서 예상 가능한 미래는 말해도 되는 듯했다. 그럼 단서도 눈치껏 가르쳐줄 수 있단 뜻이다. 아주 중요한 발견이었다. 

  

 "그런데 왜 계속 존대야?"

 "일단 여러분들이 저보다 연상이거든요."

 "그래도 지금은 우리랑 동갑이잖아! 편하게 말 놔." 

 "오, 그럼 그럴게."


 꼬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놓았다. 사실 꼬마도 이쪽이 편했다. 급작스러운 변화에 학생들이 잠시 놀라다가 이내 깔깔거렸다. 꼬마의 말과 행동은 이상하게도 귀여웠다. 변성기가 온 목소리는 좋은 말로도 귀엽다고 말하기 그랬고, 겉모습도 귀여움보단 멋있는 쪽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가는지 모를 성이었다.


 "꼬마 쨩, 자리는 어디로 할래?"

 

 아스이가 마침 남아있던 책상과 의자를 가져오는 이이다와 우라라카를 가리켰다. 으음, 꼬마는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제 옆에 앉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꼬마는 처음부터 정했다는 듯이 미도리야를 가리켰다. 저는 아니겠거니, 하고 구경하던 미도리야가 깜짝 놀라며 어깨를 흠칫 떨었다.


 "이즈쿠 옆에 앉을래."

 

 오오오, 놀림이 약간 섞인 환호가 튀어나왔다. 꼬마는 책상을 아주 당연하게 미도리야의 옆에 놓았다. 말만큼 행동이 재빨랐다. 미도리야는 어버버 거리다가, 괜찮겠냐고 물었다.


 "왜 그런 걸 물어?"

 "그, 그거야, 나는 별로 재미도 없고..."

 "내가 이즈쿠랑 같이 앉고 싶어서 그래."

 

 꼬마는 구불거리는 미도리야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렸다. 내가 아는 당신은 이런 내 행동을 무척 귀엽게 보고, '왜 그러니?'라고 상냥하게 물어온다. 하지만 지금의 어린 당신은 그 나이대 소녀처럼 수줍어하고 어쩔 줄 몰라한다. 꼬마는 그 반응이 신기하고, 이런 생각을 해도 될지 모르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아, 꼬마는 역시 나도 어쩔 수 없다며 피식거렸다.


 "...알았어. 그만둘게."


 수줍어하는 미도리야를 위한다는 핑계로, 꼬마는 손을 내렸다.


 "나는 계속 하고 싶은데, 그랬다간 얼음 속에서 불타 죽을 거 같다."


 조금 전부터 제 뒤통수에 살벌한 시선이 꽂힌다. 그리고 그 시선은 점점 가까워졌고, 아니나 다를까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 토도로키는 손을 뻗어 꼬마의 인형을 찢어버릴 만큼 강하게 쥐었다. 인형은 꼬리를 흔들며 도와 달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심기 불편하신 토도로키를 말릴 용자는 없었다.


 하여튼 성질머리는, 꼬마는 남몰래 웃음을 흘렸다.


 "네 개성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인형한테 질문을 하면, 인형이 답을 해줄 거야. 질문은 10개 밖에 못하니까, 신중하게 해줘."

 "지금만큼 신중했던 적 없으니 걱정마라."


 사람 서넛은 그냥 죽일 것 같은 얼굴인데, 꼬마는 그 말을 본인에게 하려다 꾹 다물었다. 경험상, 토도로키가 저런 표정을 지을 때는 눈에 안 띄는 게 상책이었다. 꼬마는 제 장난이 좀 심했다고 반성했다. 토도로키는 꼬마를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 보낼 각오가 아주 충만해 보였다. 여기서 조금 더 놀고 싶은 꼬마는 너무 일찍 돌아가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럼 그 인형의 이름을 불러. '아키네이터'야."

 "아키네이터."


 토도로키가 인형의 이름을 부르자, 인형이 눈을 깜빡거렸다.


 "저 새끼..."

 "꼬마."

 "...'꼬마'는, A반 전원과 친한 사이인가?"

 

 질문을 받은 인형은 다시 한 번 더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는 파닥파닥 꼬리를 흔들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정답은, '예'입니다.]


 인형의 목소리는 개성 사고를 친 그 꼬마아이의 목소리였다.  




1. '꼬마'는 A반 전원과 친한 사이다.

 



 ---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온 A반 수업은, 의외로 별탈 없이 흘러갔다. 오전은 보통 국영수 위주의 일반 과목이 주를 이룬다. 히어로 지망생도 일단은 학생인지라, 거기다 유에이는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명문고이기에 수업 수준도 높다. 다들 수업 때만큼은 꼬마를 잊고 열심히 필기하고 문제를 풀었다.


 그리고 그건 꼬마도 마찬가지였다. 교과서는 아무래도 제 것을 쓸 수 없어 복사 받은 프린트물을 보며 공부하지만, 수업에 임하는 태도는 진지했다. 마침 진도가 엇비슷해서 수업 내용 따라가기에 무리가 없는 것도 큰 몫을 했다. 


 "......"


 하지만 종종, 고개를 들어 교실 풍경을 감상하곤 했다. 그때마다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마치 저만 없는 사진첩 속 추억에 빠져든 것 같은 기묘한 감각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교사한테 가볍게 꾸중을 듣고 말았다. 그래도 문제는 잘 풀어서, 미래의 유에이가 아직까진 괜찮다는 칭찬을 덤으로 받았다.


 "괜찮아?"


 수업이 끝나고, 미도리야가 꼬마에게 물었다. 조금 전 한눈 팔던 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꼬마는 별일은 아니고, 그저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게 신기할 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냥 정말, '신기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 풍경이었다. 이 속에 있는 자신에게 위화감이 들지 않는 것도 그랬다. 


 "그나저나 이즈쿠, 머리 기네."

 "유에이 입학하고 나서부터 기르고 있어."

 "내가 아는..."


 꼬마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지금 말하려는 미래는 아주 개인적인 내용일 수 있다. 규칙에 어긋나는 거면 어쩌나 싶어 인형을 살폈다. 그런데 인형은 별 반응이 없었다. 혹시 그건가, 꼬마는 조금 전 토도로키가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A반과 친한가.' 대답은 '예'였고, 그 덕에 A반 학생과 관련된 미래를 어느 선까지는 말할 수 있게 된 거였다. 그런 거냐고 인형을 바라보면, 인형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문제가 있으면 입을 막거나 몸을 흔들 거다. 응, 그러겠지, 꼬마는 그렇게 결정지었다.


 "...으음, 내가 아는 이즈쿠는 머리가 짧아." 

 "나 입학할 때는 완전히 숏컷이었어."

 "그랬구나. 잠깐만 옆으로 돌아볼래?"

 

 꼬마는 미도리야의 긴 머리칼을 한 뭉치 잡아, 그걸 몇 갈래로 나누더니 능숙하게 땋기 시작했다. 막힘없이 술술 움직이는 손은 솜씨가 좋았고, 그 손이 지나간 곳에는 예쁘장한 머리 모양이 나타났다. 근처에 있던 여학생들이 다가와서 즐겁게 감상했다. 


 "꼬마 너 잘한다! 내 머리도 해줄래?"

 "오챠코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좋겠다. 나는 머리가 짧아서 안 묶이는데."

 "미나 머리도 할 수 있어. 여동생이 그만큼 짧았을 때도 해줬어."

 "형제가 있군요. 어쩐지 그래 보여요."

 "동생이 둘인데, 바로 밑에 있는 여동생은 아버지를 닮아서 좀 말주변이 별로 없어. 그치만 착해. 심성이 고와. 거기다 얼굴은 어머니를 닮아서, 아버지가 죽고 못 사시지. 물론 그 예쁨도 곧 있으면 막둥이한테 갈 예정이지만." 

 "예정?"

 "막내가 아직 어머니 뱃속에 있거든"

 

 꼬마는 미도리야의 머리를 마무리 지었다. 별거 없이 머리를 한데 모아 묶었던 것이, 어디 소풍가려고 예쁘게 꾸민 것처럼 화사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꼬마에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이 있단 사실에 깜짝 놀랐다. 제 또래 부모가 임신했다는 건 받아들이기 어려운 뭔가가 있다. 


 "부모님 정말 사이 좋으시구나."

 "좋긴 한데, 그걸..."


 네가 할 말은 아니라고 하려던 입을, 인형이 날아와 퍽 쳤다. 


 "아야! 으으, 지금 건 규칙 위반인가 보다."

 "개성이 은근히 까다롭네."

 "근데 토도로키. 아까 네가 물었던 질문은 무슨 뜻이냐?"

 

 키리시마가 표정 좋지 않은 토도로키에게 물었다. 토도로키는 미도리야의 머리를 아주 불쾌한 시선으로 보았다. 꼬마가 미도리야 머리를 서슴없이 만진 건 짜증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탄생한 머리가 미도리야에게 너무 잘 어울려서 베알이 꼴린 거다. 


 "...저 녀석, 통성명 하지 않았는데도 우리 이름을 알고 있어."


 미도리야 옆에 앉겠다고 할 때 '이즈쿠'라고 불렀다. 그 뒤엔 우라라카를 '오챠코', 아시도를 '미나'라고 불렀다.


 "그리고 내 개성을 알고 있어." 

 

 [얼음 속에서 불타 죽을 거 같다.]


 정체가 뭔지 알아내는 게 개성 해제 조건이니 아직 함부로 의심할 수 없지만, 적어도 미래의 A반 전원의 이름과 개성을 알고 있을 만큼의 연이 있다는 뜻이다.


 "거기다 고등학생이 이만큼의 히어로와 아는 사이라니, 나도 거기까진 아니야."


 유명 히어로 엔데버의 아들로 살아오면서, 토도로키는 제 아버지 말고는 어떤 히어로와도 접점이 없었다. 엔데버와 얽히는 게 싫은 것도 있지만, 본인의 경험상 그건 아주 드문 경우이다. 

 

 "으음, 토도로키 군 말대로면, 꼬마는 우리 중 누군가와 아주 깊은 관계라는 거군."


 사제 관계라던가, 이이다가 예를 들며 조금 더 쉽게 말을 풀었다. 학생들이 나지막이 감탄했다. 토도로키는 진짜 신중하게 대답을 고르고 골랐던 거다. 그저 꼬마를 향한 분노가 그 영민함을 가렸을 뿐이다.


 "그 관계를 추리하면 정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거네."

 "한 번 물어볼까? 질문은 예, 아니오로 하는 거지?"

 "그럼 내가 물어봐도 돼? 해보고 싶어!"


 하가쿠라가 손을 번쩍 들며 자진신청했다. 꼬마는 흔쾌히 인형을 넘겼다. 


 "아키네이터. 꼬마는 A반 중 누군가의 제자니?"


 인형은 눈을 깜박거리고, 몸을 마구 흔들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입니다.]

 

 


2. '꼬마'는 A반 중 누군가의 제자이다.





 "사제 관계라면, 나이 차가 제법 난다는 건가?"


 토코야미가 부리 아래를 쓸며 물었다. 꼬마는 대답 대신 싱긋 웃었다. 그것이 긍정이라는 건 누구나 다 눈치 챌 수 있었다. 설마 우리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있는 미래에서 왔냐고 미네타가 물었고, 꼬마는 그렇게까지는 아니라고 말했다.


 "분명 나이 차는 있어. 하지만 아까 말했잖아. 다들 근사한 히어로라고. 현역이야."


 그렇게 머나먼 미래는 아니었다. 


 "그럼 미래의 난 가슴 큰 미녀들한테 둘러 쌓인 호화스런 인생을 즐기고 있나?"


 미네타가 기분 나쁜 눈빛을 자아냈다. 내뱉은 숨결은 건전하다고 할 수 없는 흥분이 가득해서, 여학생들의 야유가 곧장 쏟아졌다. 미도리야는 제 뒤에서 미네타가 저러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다행히 금방 수업종이 울려서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사실, 저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

 "네 스승이 미네타 군은 아니지?"

 "절대 아니야."


 잠깐의 속삭임을 끝으로, 다시 보람찬 수업이 진행되었다. 꼬마는 이번 수업에서도 빛을 보였다. 수학 교사 엑토플로즘은 이번에도 제 취향이 반영된 골아픈 수학 문제를 내놓았다. 그리고 역시나, 꼬마가 반 장난 삼아 불려나왔다. 꼬마는 칠판에 적힌 문제를 잠시 보고는 슥슥 분필로 식을 풀고 답을 찾아냈다.


 "정답이다. 풀이가 아주 아름답구나."


 어디가? 학생들은 엑토플로즘이 말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눈을 찌푸렸다. 


 "수업만 제대로 들으면 이정도는 다 해요."

 "...미남들은 원래 다 저렇게 재수가 없냐."


 카미나리가 혀를 내둘렀다. 저것과 똑같은 말을, 예전에 다른 미남한테도 들은 적이 있었다. 



 

 ---




 "데쿠 쨩, 어디 가?"

 "토도로키 군이랑 마실 거 사러. 우라라카 상 뭐 사다 줄까?"

 "그러면 나 늘 마시는 거로! 나중에 돈 줄게."

 "꼬마도 뭐 마실래? 하나 사 줄게."

 "그러면 딸기우유."


 곽으로 되어 있는 거라고, 꼬마가 허공에다 손가락으로 네모를 그렸다. 미도리야는 그 모습을 멀뚱히 보다가 이내 푸스스 웃음을 터트렸다. 꼬마가 왜 웃느냐고 물으니, 미도리야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토도로키와 교실을 나섰다. 토도로키도 미도리야가 웃는 이유를 몰라 멀뚱히 눈을 껌뻑거렸다. 창문 틈으로 보이는 둘은 뭔가를 이야기했고, 토도로키는 그 이야기가 영 아니었는지 눈을 살풋 찡그렸다.


 "...저 둘은 사겨?"

 

 꼬마가 사라지는 둘을 보며 심드렁이 물었다. 지금 막 토도로키가 미도리야의 어깨를 손으로 감싸 제 품쪽으로 끌었다. 덕분에 미도리야는 지나가는 학생과 부딪치지 않았다.


 "...믿기지 않겠지만, 안 사귄단다."


 우라라카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주변에 있던 다른 학생들의 표정도 순식간에 득도했다. 아아, 꼬마는 뭔지 대충 감이 왔다. 당신들은 이때부터 여러모로 고생했구나.


 [보는 우리가 속이 터져서!]

 [자기들 일에는 어쩜 저렇게 눈치가 없었는지.]

 [꼬마 너는 절대 그러지 마라, 알았지?]


 꼬마는 어릴 적에 들었던 한탄 아닌 한탄을 떠올렸다. 아직 저에겐 마음이 가는 사람이 없지만, 만약에 생긴다면 절대 저 두 사람처럼 주위 사람 속 썩이는 짓은 하지 말자고 어릴 때부터 확실하게 생각해뒀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더니, 마침 미도리야와 토도로키가 마실 것을 사왔다.


 "우라라카 상은 이거고, 꼬마 꺼는 이거."

 "고마워."

 "근데 이 우유 미래에서도 팔아?"

 "어릴 때 간식으로 많이 먹었어."

 "혹시 이걸 먹어야 잘생겨지는 걸까?"

  

 미도리야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러나 싶었더니, 바로 옆에 서 있는 토도로키가 꼬마와 똑같은 딸기우유를 빨대 꽂아 마시고 있었다. 미도리야가 아까 웃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잘생긴 사람들은 다 딸기우유를 좋아하나 봐, 미도리야의 농담에 토도로키가 그럴 리가 있냐며 반박했다.


 '웃었다.'


 꼬마는 토도로키의 입꼬리가 그윽하게 올라간 걸 확실하게 목격했다. 그러다 토도로키와 눈이 마주쳤고, 토도로키는 거짓말처럼 웃음을 지우고 뭘 보냐는 듯이 꼬마를 응시했다. 꼬마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저도 빨대 꽂아 딸기우유를 마셨다.


 "...이즈쿠는 쇼토를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구나."


 이정도 장난은 쳐도 되겠지? 꼬마는 딸기우유 빨대를 살짝살짝 깨물며 즐겁게 말했다. 미도리야는 딸기우유만큼 얼굴이 붉어졌고, 토도로키는 그렇게 생각하냐며 미도리야를 빤히 바라봤다. 으아아아, 곧 죽어나가는 미도리야의 수줍은 비명이 울렸고, 꼬마는 기분 좋게 우유를 마저 마셨다.


 '당신이 이걸 좋아하는 이유를 아주 조금 알 것 같네.'


 딸기우유는 시간을 거슬러도 이렇게나 맛있다. 




 ---




 "꼬마가 몇 십 년 전에 온 것만 알면 대충 진도가 나갈 거 같은데."


 사토가 기숙사에서 만든 당근 컵케이크를 건네었다. 꼬마는 그걸 아주 기쁘게 받았다. 어릴 적부터 사토가 만든 케이크나 과자는 꼬마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좋아했다. 부모님도 사토가 만든 다과를 아주 좋아하셨다. 말 수 없는 여동생도 이것만큼은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아마 뱃속 동생도 태어나면 무척 좋아할 거다. 꼬마는 장담할 수 있었다.


 "......"


 코다가 무어라 작게 중얼거렸다. 꼬마는 응응, 고개를 끄덕이며 코다의 말에 귀 기울였다.

 

 "...코다 말이, 아까 누군가의 제자라고 했으니까, 적어도 10년 이상은 되었을 거라네."

 

 지로가 코다의 말을 전했다.


 "확실히 그정도는 되어야 겠네."


 오지로가 손가락을 접으며 대충 계산했다. 앞으로 자신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우선 사이드킥으로 활동하고, 그 뒤에 실력을 쌓아 전문 히어로가 된다. 막 프로 히어로가 되었다고 해도 곧장 제자를 받을 실력이 되는 것도 아닐 테니, 얼핏 잡아도 10년이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럼 위아래 게임으로 맞춰볼까?"

 "위아래 게임?"

 "누가 특정한 숫자를 생각해두고, 그걸 다른 사람들이 맞추는 거야. 예를 들어 숫자 28을 맞춰야 한다면, 50보다 위냐 아래냐는 물음에 50 아래라고 답하고, 그러면 50안에서 다시 또 25보다 위냐 아래냐 물으면서 숫자의 범위를 줄여나가는 거지."

 "오오, 그거 재미있겠는데?"

 "인형도 별 반응이 없는 걸 보면 해도 되나 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학생들은 바로 위아래 게임을 시작했다. 키리시마가 먼저 40을 불렀다. 꼬마는 잠깐 고민하다 아래를 가리켰다. 그 다음엔 오지로가 조금 전 예로 든 10을 불렀다. 꼬마는 위를 가리켰다. 꼬마는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에서 40년 전인 미래에서 온 거다.


 "으음, 그럼 15!" 

 "위."

 "35."

 "아래."

 "30은?"

 "그것도 아래."


 숫자 범위는 점점 줄어들었고, 이윽고 20년에서 27년 사이로 미래가 예측되었다. 


 "너 우리 자식뻘이잖아. 그정도나 되는 미래에서 온 거야?"

 "그걸 맞추는 게 댁들 일이지."

 "야, 이거 아주 뺀질거리네. 네 부모 얼굴이 궁금하다."

 "바쿠고! 너도 숫자 한 번 불러 봐."

 "쳇, 관심없어."

 "카츠키 매정하네. 내가 알던 카츠키 맞아?"

 "...뭐, 새끼야?"


 바쿠고가 빨간 눈을 부릅 떴다. 어이구야, 근처에 있던 학생들이 또 시작이라며 혀를 찼다. 미도리야는 바쿠고와 꼬마를 번갈아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정작 꼬마는 신경도 쓰지 않고 바쿠고를 흥미롭게 바라봤다. 마치 동물원의 사자를 지켜보는 아이 같았다.


 "미래의 카츠키는 엄청 유명한 히어로가 되는데."

 "그건 당연한 거지!"

 "그치만 왜 이렇게 빌런처럼 성격이 꼬장꼬장한 거야. 어릴 땐 나랑 놀아줄 만큼 착했으면서."

 "내가 왜 네 놈이랑 놀아줘!"

 "히어로 놀이에서 빌런 역할도 해줬잖아."

 

 기억 안 나느냐고 꼬마가 물으면, 바쿠고는 꾸욱 쥔 주먹만 부들부들 떨었다. 꼬마가 알려준 바쿠고의 미래는 아주 가정적이었다. 츤데레냐고 세로가 옆에서 피식 비웃으면서 은근슬쩍 거리를 두었다.


 "...25년!"


 더 엮이기 싫은 바쿠고가 신경질적으로 숫자를 부르며 다시 몸을 원래대로 돌렸다. 이번에 꼬마는 위아래를 말하지 않았다. 바쿠고가 찍은 숫자가 정답이었다. 이번엔 키리시마가 인형에게 '꼬마는 25년 후 미래에서 왔냐'고 물었다. 인형은 눈을 깜빡였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한 정답은, '예'입니다.]




 3. '꼬마'는 25년 후의 미래에서 왔다.




 "잠깐, 잠깐! 여기다 뭐 하나 질문 더 해도 돼?"


 조금 전 꼬마와 바쿠고의 대화를 듣고 뭐가 떠오른 우라라카가 인형을 잡았다. 


 "아키네이터, 꼬마는 바쿠고 군의 제자야?"

 

인형은 다시 한 번 더 눈을 깜박이며 몸을 흔들었다.


 [네 번째 질문에 대한 정답은, '예'입니다.]



 

 4. '꼬마'는 바쿠고 카츠키의 제자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를 아는 거구나!"

 "난 그거보다, 바쿠고가 25년 뒤에도 우리랑 연락하고 지낸다는 게 더 충격이다."

 "나도 그 생각했어."

 "바쿠고 짱은 새침떼기구나."

 

 아스이가 개굴개굴 기쁘게 웃었다. 바쿠고는 짜증내기도 귀찮아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미래에서 왔다는 제 제자라는 사실에 조금 흥미가 생겨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다들 그런 바쿠고를 보며 몰래 웃음을 삼켰다. 참으로 솔직하지 못한 녀석이다.


 "내 제자가 될 정도면 네 놈도 보통 강한 게 아닐 테지."

 "보통 이상은 하지. 나름 잘 배웠다고 생각해."

 "하! 그럼 실습 때 한 번 붙어보자고."

 "진짜? 요즘 카츠키는 귀찮다면서 잘 안 해줬거든."


 나이가 나이인지라, 꼬마가 이해한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바쿠고 놀리는 목적이 다분한 장난이었다. 바쿠고는 나중에 죽여버릴 거라며 평소처럼 소리 질렀다. 그러나 그 욕설이 꼬마에게 먹힐 리가 없었다. 정말 연이 깊은 사제지간인지, 꼬마는 알았다면서 아주 가볍게 넘어갔다. 


 "하지만 지금껏 나온 질문으로는 추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군."

 

 쇼지의 복제입이 끼어들었다. 학생들은 인형이 답해준 질문 4가지를 떠올렸다. A반 전원과 친하고, 누군가와 사제 지간이며, 25년 후 미래에서 왔고, 그의 스승은 바쿠고 카츠키다. 꼬마가 미래의 자신들과 깊은 사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겠는데, 질문들이 확실한 답을 가리키진 않는다. 


 그래서 A반은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제 남은 기회는 6개, 마지막 질문은 꼬마의 정체를 답해야 하기에 빼야 했고, 그러니 정확히는 5개가 남았다. 신중해야 했다.

 

 "근데 바쿠고가 왜 꼬마를 제자로 삼은 거지?"

 "히어로 놀이를 했다면, 꼬마가 진짜 꼬마였을 때부터 아는 사이라는 거잖아."

 "툭 까놓고 바쿠고 쨩은 아이랑 놀아 줄 성격은 아니잖아."

 "그런데도 빌런 역할까지 했다는 건..."


 학생들의 시선이 묘하게 변했다.


 "...아들?"

 

 키리시마가 조심스레 추측했다. 미쳤냐! 바쿠고가 결국 책상을 발로 걷어쳤다.


 "하나도 안 닮았잖아! 눈 씻고 찾아봐도 닮은 구석이 전혀 안 보이는데!"

 "그건 미래의 네 아내가 정말 열심히 태교해서 그런 거 아닐까?"

 "엄마를 닮았나 보지. 이야, 그나저나 바쿠고 네 성질머리 알고도 결혼해주는 여자가..."

 "이 미친 새끼들이 진짜! 야, 너도 뭐라고 말 좀 해봐! 아니면 아니라고!"


 바쿠고가 서둘러 꼬마를 찾았지만, 꼬마는 이미 인형에게 얼굴이 틀어막힌 채였다. 뭐라고 말하려 한 게 규칙 위반에 걸렸다. 그나마 자유로운 손이 허공을 붕붕 저었다. 필사적으로 바쿠고는 제 부모가 아니라는 뜻을 격하게 전했다. 다행히 인형은 꼬마의 손짓을 보지 못했고, 그 덕에 겨우 얼굴에서 떨어졌다.


 "허억, 허억! 진짜 죽을 뻔 했네..."


 꼬마는 거칠게 숨을 들이켰다.


 "너무 화나서 부모님 이름 말할 뻔 했어."

 "푸하하! 꼬마가 바쿠가가 아빠인 거 엄청 거부하네!"

 "당연하지! 우리 부모님이 훨씬 더 멋지거든?"

 "너는 진짜 내가 미래에서 조져버린다..."


 반드시 기억하겠다며 바쿠고가 관자놀이 핏줄을 불끈거렸다. 


 "어, 그럼 여기에 네 부모가 있긴 있는 거야?"


 지로가 이어폰을 빙글빙글 돌리며 물었다. 꼬마는 답이 없었다. 시선이 슬그머니 도망쳤다.


 "...뭐야, 그 반응? 진짜 네 부모가 여기 있어?"

 "우와, 소름! 진짜 소름!"

 "하긴, 25년 후면 우리도 결혼하고, 애도 있겠지."  

 "그럼 물어 봐! 인형한테 물어보자!"

 "후후, 사실 난 특정 인물 한 명을 생각해두고 있었지!"


 아시도가 쓰지도 않은 안경을 올리는 척하며 탐정 흉내를 냈다. 


 "바로 미도리 쨩!"

 "...나? 어, 나? 내가 부모라고?"


 미도리야가 화들짝 놀라며 덜커덩 의자를 뒤로 넘어트렸다. 저에겐 결혼이란 미래가 아득해서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미도리야는 아닐 거라고 손을 저어 부정했지만, 아시도는 그렇지 않다며 미도리야를 꼬마의 부모로 확신했다. 


 "미도리야, 너 언제..."

 "토, 토도로키 군? 아, 아니야! 나 아니야!"


 상처 입은 얼굴 한 토도로키에게, 미도리야가 격하게 부정했다. 그 사이 아시도는 제가 만든 혼란을 본 채도 하지 않은 채 추리의 근거를 열심히 설명했다.


 "왜냐면, 꼬마가 가장 먼저 호감을 보인 게 미도리 쨩이잖아. 손 닿는 것도 어째 자연스럽고 말이야. 본디 자식은 불안할 때 부모의 곁을 찾는 법이지. 철새가 자연스레 제가 가야할 남쪽 나라를 아는 것처럼, 길 잃은 멍멍이가 귀소본능으로 집을 찾아오는 것처럼! 여자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미나 쨩, 그건 적절한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봐."

 "말이 그렇다는 거야. 어쨌든 난 미도리 쨩을 꼬마의 엄마로 추리했어!"


 아시도는 냉큼 인형에게 물었다. 


 "아키네이터. 미래의 미도리야 이즈쿠가 꼬마의 엄마지?"


 다들 숨을 죽이고 인형의 대답을 기다렸다. 토도로키는 만약 인형이 예라고 대답하면 당장 불태워 없앨 것처럼 노려봤다. 우라라카는 왼쪽 붉은 머리칼 끝에서 자그마한 불길이 바삭바삭 흩어지는 걸 애써 못 본 채 했다. 이 질문에 미도리야의 생명 아닌 생명이 걸리고 말았다.


 [......]


 그런데 인형은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대신 어딘가 고장난 것처럼 삐그덕거렸다.


 [다섯 번째 질문, 대답 불가능한 오류를 발견했습니다.]


 인형은 질문에 오류가 있다고 두서 번 반복한 뒤, 오류에 대한 설명을 이어서 했다. 


 [미도리야 이즈쿠는 질문 속 미래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5. 미래에 '미도리야 이즈쿠'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 역할 마친 인형은 얌전히 꼬마 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분위기까지 원래대로 돌아간 건 아니었다. 찬물을 한 바가지도 아닌, 한 트럭을 쏟아부은 것처럼 교실 분위기는 냉랭했다. 


 "......"


 당사자인 미도리야는 영혼이 빠져 나간 것처럼 눈이 나갔다. 느닷없는 암 말기 선고에 시한부 인생이 되어버렸고, 곧 동그란 눈 밑에 굵다란 물방울이 맺히더니 뚝뚝 떨어졌다. 얼마나 놀랐는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었다.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물을 토도로키가 조심히 닦아주었다. 그제야 히끅히끅 놀란 울음이 새어나왔다.


 "...아니, 저기, 안 죽었어."


 꼬마가 뒤늦게 상황을 진정시켰다.


 "이즈쿠 너 살아있어. 안 죽었어. 진짜 안 죽었어."

 "흑, 진짜?"

 "그렇다니까. 그러니 울지 마."


 미도리야의 눈물은 꼬마의 심장을 땅밑까지 철렁이게 했다. 그제야 반 분위기가 조금씩 살아났고, 여기저기서 다행이라며 크게 안도했다. 특히 토도로키가, 눈물로 흠뻑 젖은 미도리야의 얼굴을 제 손바닥으로 닦으면서 가장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꼬마는 토도로키의 관자놀이에 맺힌 땀 한 방울을 보았다.


 '죄 지은 기분이야.'

 

 꼬마는 죄책감을 느꼈다. 


 곧 수업이 시작되었다. 꼬마는 수업 내내 집중할 수 없었다. 과거로 넘어온 걸 놀이처럼 생각한 게 잘못이었나, 꼬마는 서둘러 제 정체를 맞추도록 하는 게 좋을지 모른단 생각을 했다. 공부라하고 준 프린트물 위에는 자기가 지금껏 알아낸 개성의 규칙을 적었다.




하나. 말할 수 있는 미래는 포괄적이어야 한다.

둘. 인형이 대답한 질문 범위 내의 미래는 추가로 말할 수 있다.

셋. 질문에서 언급된 인물의 미래도 말할 수 있다. 

넷. 정답과 관련된 힌트는 말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전할 수 있다.

다섯. 인형이 눈치 채지 못하는 선에서, 몸짓이나 표정 등으로 힌트를 표현할 수 있다.




'개성 보유자가 어린 아이라 그런 걸까.'


 엄격할 것 같았던 규칙이 어린아이 눈속임 마냥 허술했다. 


 "아야!"


 그러다 머리 위로 가벼운 충격이 내려왔다. 고개를 올려다 보면, 인자한 미소 띤 시멘터스가 서 있었다. 돌아보니 주변 학생들의 시선도 꼬마에게 쏠려 있었다. 아아. 꼬마는 그제야 제 손이 입술 근처에 머무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저도 모르게 버릇이 튀어나온 모양이다.


 "불안한 건 알겠지만, 그래도 수업에 집중해야지."

 "죄송합니다."

 

 시멘터스가 다시 돌아가고, 꼬마는 입술을 만지작거리던 제 왼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그러다 절 보는 미도리야의 암녹빛 눈과 마주쳤다. 동그란 눈 아래 옅게 퍼진 주근깨가 혈색을 띠고 있었다. 아까 쉬는 시간에 운 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나랑 비슷한 버릇이네.]


 교과서 끄트머리에 미도리야가 작게 적었다. 글씨 옆에 그려진 웃음은 미도리야와 똑 닮았다.


 


 ---


 

 

 "오오, 이게 이때부터 있었어?"

 

 점심 시간, 꼬마가 식권 판매기를 쓰다듬으며 즐겁게 말했다. 아마 디자인만 똑같은 걸 쓰고, 저가 사는 미래의 것은 새것일 가능성이 컸다. 꼬마는 학교에서 받은 돈을 자판기에 넣었다. 가지고 있는 돈은 지금 연도보다 미래에서 찍은 거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 현재의 돈으로 거슬러 주었다.


 "내가 네 명 것도 살게."

 "진짜로?"

 

 돈 굳었다, 예! 우라라카가 환호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차피 학교에서 준 거고, 제법 되거든. 으음, 그러니까 이즈쿠는 카츠동, 쇼토는 자루 소바, 오챠코는 정식 메뉴, 텐야는 비프스튜. 맞지? 아, 텐야 비프스튜는 오렌지 주스 나오는 거고."

 "그걸 다 알고 있나?"


 이이다의 안경 너머 네모난 눈동자가 깜박거렸다. 정말로 우리와 친한 모양이네, 조금 감탄했다.  


 "꼬마는 뭐 먹을 거야?"

 "나는 자루 소바. 돈까스 튀김 곁들여서."

 "토도로키 군이랑 식성이 비슷하네?"

 "소바는 차갑게 먹는 게 맛있지만, 돈까스까지 곁들이면 더 맛있어."

 

 꼬마는 즐겁게 식사를 시작했다. 후루룩 면 넘어가는 소리 다음에 바사삭 돈까스 씹히는 소리가 군침 돋게 났다. 보는 사람이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똑같이 자루 소바를 먹던 토도로키가 젓가락질을 멈추었다. 지금이라도 튀김을 시킬까 고민했다. 

 

 "토도로키 군."


 미도리야가 제 돈까스 한 점을 내밀었다. 


 "바삭하진 않지만, 이거라도 먹을래?"

 "응."

 "꼬마 보니까 먹고 싶어졌지?"

 "...별로, 딱히."

 

 왜 거기서 부끄러워하는 건데, 우라라카와 이이다가 이상한 데서 세침을 부리는 토도로키를 어이 없이 보았다. 꼬마는 큭큭 웃으며 못 들은 척 했다. 토도로키는 미도리야가 건넨 눅눅한 돈까스를 입으로 곧장 받아먹었다. 으휴, 옆에서 우라라카 한숨을 푹 쉬었다. 이이다는 아예 무시하고 오렌지 주스만 벌컥였다. 


 "사실 처음부터 생각한 건데, 꼬마는 토도로키 군이랑 많이 닮은 거 같아."


 미도리야가 입안에 있던 음식을 꿀꺽 삼킨 뒤에 말했다.

 

 "머리색이나, 이목구비나, 취향 같은 거."

 

 미도리야는 제가 생각한 두 사람의 공통점을 읊었다. 예를 들면, 꼬마의 머리. 꼬마는 눈처럼 깨끗한 백발이다. 토도로키와는 반만 닮았지만, 미도리야는 그 색이나 분위기가 똑같다고 말했다. 


 "확실히 닮긴 닮았군. 근데 왜 몰랐지?"

 "그러게. 아, 혹시 꼬마가 잘 웃어서 그런 거 아닐까?"


 웃음이란 똑같은 사람의 인상도 단번에 바꿔버린다. 하물며 서로 다른 두 사람은 오죽할까. 토도로키는 어지간해선 안면근육을 쓰지 않고, 꼬마는 서글서글하니 잘 웃고 다녔다. 웃음이 그 만큼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낸 거다. 


 "또 있지, 꼬마 눈도 양쪽 다 색이 달라."

 

 오른쪽은 짙은 하늘색이고, 왼쪽은 암녹색이다. 둘 다 어두운 색이라 정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특징이었다. 미도리야는 바로 옆에서 꼬마를 보았기에 알아챌 수 있었던 거다. 


 "진짜 토도로키 군처럼 오드아이네. 데쿠 쨩 잘도 눈치 챘다."

 "어쩐지 토도로키 군이랑 닮은 거 같아서, 눈이 자주 가더라고."

 "그럼 이즈쿠도 내가 미남이라고 생각해?"

 "어? 아, 응. 토도로키 군도 미남이고, 꼬마도 미남이고. 닮은 꼴 미남이네."


 헤헤, 미도리야가 머쓱하니 뒷덜미를 쓸었다. 꼬마가 그러냐며 피식 웃었다.


 "...난 미남이 아니야."


 잠깐 생각하던 토도로키가 미도리야에게 말했다. 


 "토도로키 군 미남이야. 왜 잘생긴 걸 본인이 몰라!"

 "그러는 너도 네가 예쁜 걸 모르잖아."

 "가, 갑자기 왜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건데! 나는 안 예뻐!"

 "너 예뻐. 너야말로 네가 예쁘고 귀여운 걸 좀 알아."

 "토도로키 군 지금 나 놀리는 거지? 그런 거지!"


 미도리야가 울 것 같은 얼굴로 투덜거렸다. 당연히 얼굴은 목 아래가지 새빨겠다. 하지만 토도로키는 진심이었다. 그의 표정에 거짓은 일도 없었고, 그 때문에 미도리야는 어버버 말을 더듬거리다 두 팔 들어 얼굴을 번쩍 들어 가렸다.


 "...꼬마야,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먹어."

 "...오챠코랑 텐야는 익숙해 보이네."

 "...익숙하고 자시고, 포기한 지가 오래다."

 "보면 체하니까 묵묵히 아래만 보고 식사해."


 꼬마는 우라라카와 이이다와 함께 서둘러 음식을 비어갔다. 그치만 우라라카의 충고에도 몰래 고개 들어 여전히 티격태격하는, 저렇게 알콩달콩한데도 사귀지 않는다는 둘을 보았다. 사실, 꼬마는 저것보다 더한 것도 어릴 때부터 보아왔다. 그리고 그건 꼬마에게 아주 당연한 일상이었다.


 점심을 다 먹고 교실에 돌아가니 아시도가 꼬마 일행들을 서둘러 불렀다. 일찍이 점심 다 먹은 학생들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수업은 실습이라 서둘러 탈의실로 가야 하는데, 다들 뭘 하고 있는지 둥글게 뭉쳐 있었다. 


 "아까 그 질문 말인데요."


 야오료로즈는 '미래에 미도리야 이즈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형의 대답이 마음에 걸렸다고 말했다. 그래서 수업 때도 고민하다가, 꼬마가 보여줬던 기이한 버릇 하나에 엄청난 힌트를 얻었단다.


 "미도리야 상, 미래에 성이 바뀐 거 아닐까요?"

 "성이 바껴?"

 "결혼을 했단 소리에요!"

 "겨, 결혼!"


 으아아, 미도리야가 겨우 잊었저 제 미래 이야기에 입술을 벌벌 떨었다. 그러건 말건 야오요로즈는 자신의 생각을 즐겁게 떠들었다. 순진무구한 부잣집 아가씨는 이런 걸 참 좋아했다. 


 "꼬마가 살던 곳에서 미도리야 상은 남편 분의 성을 따르는 거예요. 그래서 인형이 미래에는 미도리야 이즈쿠가 없다고 답한 거고요. 질문 오류는 바로 그 때문이에요. 질문 자체가 틀린 거였어요!"

 "뭐야, 그러면 진짜 미도리야가 꼬마 엄마야?"

 "그치만 얼굴은 안 닮았는데."

 "중얼거리던 버릇이 미도리야랑 판박이었잖아."

 "인형한테 물어볼까?"

 "인형 질문 한정되어 있다고. 그런 걸로 막 물어도 되는 거야?"

 "무작정 꼬마가 미도리야 아들이냐고 했다가 또 오류나면 어떡해."

 "그렇네요. 남편 분 성을 모르니까 함부로 확인도 못하고."

 

 끄응, 모두가 머리를 모아 고민하던 중에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토도로키였다.


 "꼬마 성이랑 미도리야가 미래에 사용하는 성이 같은지 인형한테 물어 봐."

 "너 진심이냐?"


 카미나리가 진지하게 물었다. 점심시간 전까지만 해도 미도리야가 꼬마랑 살갑게 구는 걸 눈에 레이저 나올 것처럼 노려봐놓고는 저렇게 침착하다. 뭔 심경의 변화인지 몰라도, 토도로키는 미도리야의 결혼 여부가 궁금하면 인형한테 물어보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으응, 물어봐도 될까요?"

 "그게 내 정체를 밝히는 것과 관련된다고 생각하면."


 꼬마는 흔쾌히 인형을 건넸다. 인형을 받은 야오요로즈가 목청을 다듬었다. 정작 질문의 당사자인 미도리야는 흘러가는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어버버 뒤쳐질 뿐이었다. 그 야무진 머리가 감당을 못했다.


 "아키네이터. 결혼한 미도리야 이즈쿠의 바뀐 성씨는, 꼬마의 성씨와 같은가요?"


 이번 질문에도 '미도리야 이즈쿠' 본명이 다 들어갔지만, 조건을 달아서 붙이니 오류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인형은 눈을 깜빡였다. 당연히 대답도 예상한 대로였다.


 [여섯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입니다.]

 



 6. 결혼한 '미도리야 이즈쿠'의 바뀐 성씨는 '꼬마'의 성씨와 같다.




---




 히어로 기초학 실습 훈련은 각자의 개성을 더욱 단련하는, 소위 말하는 '필살기' 훈련이었다. 처음에야 다들 환호하고 들뜬 마음으로 임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해야 더 개성의 효력을 높일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때문에 고통받는 수업이기도 했다.


 꼬마는 야오요로즈의 도움을 받아 체육복을 입고 수업에 참여했다.


 "그러고 보니 꼬마 개성은 뭐야?"

 "너도 엄마 닮아서 증강형이냐?"

 "그나저나 애 엄마 어디갔어? 애 엄마!"

 "혼자 그 위에 숨어서 뭐하는 거야! 아들이랑 같이 훈련해야지!"


 애 엄마, 유부녀, 꼬마 어머님, 학부모.


 미도리야는 단 몇 분만에 이 어마어마한 별명들을 얻었다. 짓궂은 반 친구들은 미도리야를 놀렸고, 미도리야는 놀림을 피해 제일 높은 암석 모형 위에 올라가 있었다. 개성이니 필살기니, 그런 게 지금 문제가 아니었다. 뭘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이 나서 정신이 없었다. 서 있는 것도 힘들어서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분명 꼬마가 그랬지? 어머니가 임신 중이라고."

 

 유후, 밑에서 저질스러운 휘파람이 들렸다. 미도리야는 눈물을 그렁거리며 귀를 꽉 막았다. 


 "야이 미친 놈들아! 너희 진짜 적당히 안 할래!"

  

 그나마 다행이라면, 저질스러운 농담은 즉각 여학생 연합이 처절하게 짓뭉겠다. 의도치 않게 필살기를 남학생, 그 중에서도 미네타에게 집중적으로 행사하며 실력도 다졌다. 특히 우라라카가 눈부신 성장을 보였는데, 개성으로 미네타의 몸을 가볍게 한 뒤에 다리 하나를 잡아 마구 휘둘렀다.

 

 "미안."


 밑이 소란스러운 와중, 꼬마가 쪼그려 앉은 미도리야 옆으로 다가왔다. 미도리야는 보는 사람이 불쌍할 정도로 흠칫 몸을 떨었다. 꼬마는 쓴 미소를 지으며 살짝 거리를 두었다.


 "그, 그게, 진짜야?"


 내가 네 엄마야? 네가 내 아들이야? 미도리야의 울음 섞인 물음에, 꼬마는 대답 대신 제 옆에 둥둥 뜬 인형을 가리켰다. 인형은 혹여 꼬마가 대놓고 답이라도 말할까 감시 중이었다. 인형의 감시가 좀 전과 비교하면 무척 강화되었다. A반이 꼬마의 정체에 가까워지고 있단 뜻이다.


 "난 그 대답에 답할 수 없지만, 이렇게 모두를 만나게 되어서 무척 기뻐."

 

 꼬마는 진심이었다. 이렇게 모두에게 관심 받고, 즐겁게 떠들고 놀던 때가 언제였던가. 히어로 놀이를 하면 항상 빌런이 되어 주었고, 만날 때마다 과자나 장난감을 선물로 주었었지. 나는 당신들이 오는 날이면 두근거리며 잠을 설쳤고, 돌아갈 때면 가지 마라고 엉엉 울었다. 


 하지만 그런 나날도 시간이 흐르면서, 당신들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히어로가 되고, 나는 나 대로 나이를 먹으면서 더는 어리광을 부리기 곤란한 입장이 되었다. 그렇게 어린 나와 당신들의 즐거운 때는 가장 행복한 추억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 꼬마가 벌써 이만큼 컸네.]


 이제 나는 그 추억처럼 놀기엔 부끄러웠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그런 나를 보며 기뻐해줬다. 아마 내 마음을 전부 알고 있었을 테지. 그래서 아닌 척 툴툴거렸지만, 사실은 아주 많이 기뻤다. 


 '그래서 과거로 온 걸까.'


 길에서 구해준 아이가 건 개성은, 수수께끼나 스무고개 같은 단순한 게 아니라, 어느 사람이 그리워하던 어린 마음을 알아채주고, 다시 한 번 더 즐겁게 놀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설령 지금 이 순간이 어느 과거의 한 순간이 아니더라도, 그저 개성이 보여주는 환상이어도, 꼬마는 좋았다. 


 동생들에겐 미안하지만, 이렇게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던 시절이 그리웠다.


 "나도 아직 애인가 보다."

 

 그리고 꼬마는 그런 제 속마음을 아주 싱거울 정도로 인정했다. 자신이 아직 애라는 것도 지금에서야 알았다. 당신들의 지금 모습을 보니 알 수 있었다. 우린 아직 어리고, 서툴고, 장난 치며 놀 수 있는 나이다. 물론 히어로과 학생이 마냥 놀 수만은 없지만.


 "그러니까 이즈쿠 너도 미래에 있을 일로 너무 머리 아파 하지 마. 지금의 너는 결혼도 안 했고, 어른도 아니야. 나랑 똑같은 '꼬마'야. 부끄러워해도 되고, 창피해도 돼."

 

 미도리야는 코를 훌쩍이며 꼬마를 멍하니 바라봤다. 


 "꼬마는 어른이구나."

 "그냥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편이야."

 

 너무 머리 아프게 고민해봤자 답은 나오지 않는다. 이 대범한듯 태평하고 느긋한 성격은 또 그 사람을 닮아서, 씨도둑질은 함부로 못한다는 능글맞은 농담도 주변에서 종종 들었다. 그러면 항상 당신은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했지. 그런 점은 또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역시 이즈쿠는 귀엽네."

 "너 까지 왜 또 놀려...!"

 "아니, 진짜 귀여워. 그리고 내가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이런 모습을 보겠어."

 

 장난기가 돋은 꼬마가 둘 사이에 있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미도리야는 벌떡 일어나 다시 피했지만, 꼬마는 또 그 거기를 좁혀 다가왔다. 얼굴에는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웃음과 장난스러움이 어려 있었고, 미도리야는 그 모습에 눈이 팔려 꼬마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농담 안 하고, 진짜 내가 10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방과후에 아이스크림 하나 하러 가자, 이렇게 수작부렸을 거라고 말하려던 순간, 무언가가 꼬마의 뒤통수를 둔탁하게 내려쳤다. 혹이라도 난 것처럼 아린 뒤통수를 쓸면서 뒤를 돌아보니, 토도로키가 수트 주머니에 삐딱하게 손 꽂은 채 서 있었다. 뒤통수를 때린 건 살짝 들린 오른 발인 모양이다. 지금 신은 저 부츠, 얼음에서 미끄러지지 마라고 스파이크 박은 거 아니었던가? 꼬마가 서둘러 아픈 뒤통수를 문질렀다. 다행히 손에 피가 묻어 나오지 않았다.


 "바쿠고가 너 부른다."

 "나? 아아!"


 대련하기로 했지, 그제야 약속을 떠올린 꼬마가 서둘러 밑을 내려다봤다. 바쿠고는 약속을 잊고 저 혼자 위에 있는 꼬마에게 욕 같은 거친 말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미 양손에는 폭발이 멈추지 않았다.


 "저 망할 꼬마가! 너 빨리 안 내려와!"

 "카츠키는 이래나 저래나 성실하네."

 

 꼬마가 태평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랬더니 거친 말이 지하수처럼 펑펑 쏟아졌다. 바쿠고는 어디서 친한 척이냐 니트로 비슷한 것을 마구 터트렸다. 반면 주변에선 천하의 바쿠고를 막 대하는 꼬마의 용기에 감탄하며 크게 웃었다. 가까이서 지켜보던 미도리야는 새삼 놀라며 경악했다.


 "너희 뭐하냐."


 아이자와가 이제 그만 놀아라고 잔소리를 했다. A반 학생들은 기본은 성실해서, 크게 대답한 뒤에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미도리야도 슬슬 정신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리를 풀었다.

 

 "좋아! 나도 이제 집중할 거야! 노는 거 끝!"

 "미도리야 넌 뭘 하려고."

 "공중 이동을 연습하고 있거든. 높은 암석 위를 계속 이동할 거야."

 

 뿅뿅, 미도리야가 뒤꿈치를 들썩이며 훈련 내용을 설명했다. 뛰는 흉내가 뒷발 차는 토끼 같았다. 


 "그건 이미 잘하고 있지 않나?"

 "조금 더 먼 거리를 안정적이고, 정확하게 달리고 싶어. 실수하면 데미지가 커지니깐."

 "조심해라. 무리하지 말고."

 "걱정해줘서 고마워. 토도로키 군도 조심히 해."

 

 미도리야와 토도로키는 서로를 응원했다. 그 사이에 멀뚱히 있던 꼬마는, 저 둘이 분명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걸 까먹었다고 확신했다.


 "그럼 훈련 열심히..."


 하라고 말하려는 찰나, 미도리야가 딛고 있던 암석에 투툭 금이 갔다. 미도리야가 눈치 채기 무섭게 몸이 뒤로 떨어졌다. 데쿠 군! 우라라카의 새된 비명이 높이 울렸다. 지도 중이던 아이자와와 다른 선생님들이 서둘러 미도리야 쪽으로 달려갔다.


 미도리야는 떨어지는 순간, 제 발차기를 허공에 때려 박아 그 반동으로 공중에 뜰 요령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밑에 자신을 구하려고 달려오는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있었다. 발차기를 하려던 발이 주춤거렸고, 미도리야의 생각을 눈치 챈 아이자와가 서둘러 학생들을 주변에서 대피시켰다.

 

 "미도리야!"

 "으으읍!"

 

 그때 닮은 듯 안 닮은 두 외침이 들렸다. 첫 번째는 토도로키였고, 두 번째는 인형한테 입막음 당한 꼬마였다. 두 외침이 들리는 동시에 거대한 얼음이 암벽을 타고 내려와 떨어지는 미도리야를 따라잡았다. 미도리야는 얼음을 미끄럼틀 타듯 쪼르르 무사히 내려왔다. 


 "데쿠 군 괜찮아?"

 "어디 다친 곳은 없어?"


순식간에 몰려든 학생들은 미도리야를 걱정하고 살폈다. 아이자와가 오고 나서야 학생들은 한 발치 떨어졌다. 아이자와는 암벽이 또 다시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학생들을 그 주위에서 대피시켰다. 그리고 미도리야의 부상 여부를 확인하고, 주위를 조금 더 살피라는 잔소리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그나저나 토도로키 녀석, 개성으로 눈도 만들 수 있었나."


 아이자와가 미도리야가 타고 내려온 얼음 위에 소복히 쌓인 하얀 것을 가리켰다. 아, 그제야 미도리야는 저가 얼음 위로 떨어졌을 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토도로키의 얼음은 무척 단단해서, 떨어지는 사람을 구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런데도 아프지 않았고, 미도리야는 제 체형이 고스란히 찍힌 얼음 위 하얀 눈밭을 믿기지 않는 눈으로 보았다.


 '아니야, 이건...'


 토도로키의 개성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아니다. 왜냐하면, 토도로키가 지금 연습하고 있는 개성 증강 훈련이 바로 공기 중 수분을 얼려 눈을 만드는 훈련이었다. 미도리야는 매일 밤, 자기 전에 기숙사 밖에서 토도로키가 눈을 만드는 훈련을 구경했다. 토도로키는 아직 싸락눈 수준을 아주 잠깐 만든다. 이렇게 푹신한 함박눈을 단번에 만들지 못한다.


 그럼 이 눈은 누가 만든 거지?


 미도리야는 답을 찾고자, 제가 떨어진 암벽 위를 올려다 봤다. 거기엔 이 눈처럼 새하얀 머리를 한 남자가 둘 있었다. 한 명은 반은 붉고 반은 하얀 머리였다. 그는 아직 눈을 만드는 게 서툴러서 매일 밤 훈련한다. 그리도 또 다른 한 명은 미래에 결혼한 저의 바뀐 성씨와 똑같다는 백발의 남자였다. 


 "......"


 미도리야 손에 쥔 눈이 바드득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이 눈은 바로 꼬마의 개성이었다.


 


 -




 "후우..."


 꼬마는 무사히 지상에 안착한 미도리야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너무 놀라서 그만 평소 부르는 호칭이 튀어나왔고, 그걸 규칙 위반으로 받아들인 인형이 후다닥 입을 막아버렸다. 꼬마는 인형을 붙잡고 너무한 거 아니냐고 투덜거렸다. 


 "너 때문에 집에 못 돌아가는 게 아니라, 이생을 못 돌아 올 뻔했어."


 개성 규칙 지키려고 사람 숨통까지 막다니, 자칫 했다간 개성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미도리야가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형은 묵묵부답이었다. 자기 필요할 때만 움직이는 얄미운 녀석은 제 일 다해 만족한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꼬마는 조금 전부터 저를 노려보는 토도로키를 마주했다. 제 옆을 노려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다. 


 "지금 걸로 눈치챈 건 아닌 거 같고."

 

 언제부터? 꼬마가 두 손을 가볍게 들며 물었다. 노려보는 토도로키의 시선이 한 풀 꺾였다. 사실 꺾일 것도 없었다. 꼬마를 향한 토도로키의 시선은 오전과 비교하면 독기나 기분 나쁜 감정이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도 노려본다는 말보다는 묵묵히 응시하는 쪽이었다. 


 "식당에서."

 "아닌 척해도 눈치가 빠르네."

 "빠른 건 미도리야지. 다만 그 녀석은 이상한 데서 둔하거든."

 

 특히 저와 관련되는 것에는 세상 누구보다 둔하다고, 토도로키가 애정이 담긴 욕을 흘렸다. 꼬마는 충분히 공감했다. 미도리야는 누구보다 눈썰미가 좋고 관찰력이 뛰어나다. 반면 제 일과 관련된 건 이상하게 맹해서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늘 사곤 한다.  


 그래, 예를 들면.


 '눈 앞에 있는 이 남자.'


 한 평생 미도리야 이즈쿠, 아니, 결혼해서 성이 바뀐 이즈쿠를 가장 가까이서 걱정하는 존재.


 "...있잖아, 답은 질문 다 하고 해주면 안 돼?"


 꼬마가 토도로키에게 부탁했다. 토도로키가 붉은 머리 쪽 눈썹을 위로 살짝 올렸다. 집에 돌아가고 싶었던 게 아니었던가, 그런 생각이 얼굴 위로 온전히 드러났다. 꼬마는 암벽 아래로 얼음 미끄럼틀을 만들었다. 그것도 왼손으로.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얼음 미끄럼틀을 가볍게 훑었다. 그러자 미끄럼틀 양 옆으로 안전 기둥이 세워졌다. 지켜보던 토도로키가 눈을 크게 떴다.


 "참고로, 내 스승님은 캇쨩이긴 해도, 캇쨩한테만 배운 게 아니야."


 카츠키라는 이름 대신, 꼬마는 바쿠고에게 어울리지 않는 애칭을 불렀다. 토도로키가 아는 한, 바쿠고는 그 애칭으로 불리면 누구든 상관않고 욕부터 날린다. 하지만 딱 한 사람에게만 그 애칭을 허락했다. 


 "캇쨩은, 아니, 지금은 카츠키라 불러야지. 카츠키는 분명 내가 스승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지만, 개성의 활용과 증진은, 이 개성을 물려준 사람에게 배웠어."

 "......"

 "그 외에도 많은 걸 당신들한테 배웠어. 사실, 모두랑 이렇게 노는 거, 생각보다 너무 기뻐. 오랜만에 옛날로 돌아가서 나 혼자 예쁨 가득 받는 거 같거든.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야. 그땐 동생들 없이 오로지 나 혼자였거든. 그렇다고 차별 받고 자란 건 아니야. 그만큼 그 시절이 그리웠다는 거야."


 평소엔 이런 생각 잘 하지 않는데, 지금은 나와 당신이 동갑이기에 할 수 있었다.


 새로운 동생이 태어나면, 이제 저와 여동생이 그 녀석을 지켜야 한다. 동생이 생겨서 기쁜 건 정말이지만, 저도 모르게 책임감이나 질투 엇비슷한 걸 느끼고 있었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늦둥이한테 질투라니, 고등학생이나 되어 놓고 이러는 것도 웃기니 제 감정을 무시했을 뿐이다.


 그래서 요즘 어린 시절이 자주 떠올랐던 모양이다.


 한번이라도 더, 그때로 돌아가 모두에게 예쁨 받고 신나게 놀고 싶었다.


 "같이 수업 듣고, 수수께끼 풀고, 밥 먹고, 간식도 나눠 먹고."


 꼬마가 그리워한 추억은 아주 소박하고 유치했다. 그리고 그 유치한 바람은 오늘, 아주 색다른 경험으로 다시 이루어졌다. 그러니 적어도 학교 수업이 끝난 방과후에 모든 질문을 끝내주었으면 했다.


 "그래도 질문은 해야겠어."

 "냉정하네. 이제 질문 3개 남았다고."

 

 3개의 질문이 끝나면, 마지막 네 번째 질문에선 수수께끼의 답을 말해야 한다. 토도로키는 그러건 말건 인형을 잡았다. 토도로키는 꼬마의 색 다른 눈을 보았다. 멀리서 보면 차이가 없지만, 가까이서 보면 분명 두 눈은 도드라진 차이가 난다. 오른쪽은 짙은 파란색, 왼쪽은 암녹색. 한쪽은 아버지의 눈이고, 다른 한쪽은 어머니의 눈이다. 


 "아키네이터."


 인형의 이름을 부르며, 토도로키는 꼬마의 머리를 툭 쓰다듬었다. 꼬마는 아주 잠깐 멍을 때리다 이내 휙 고개를 돌렸다. 둥그런 귀가 빨갰다. 토도로키는 아무도 몰래 미소 지었다. 토도로키에겐 아주 익숙한 반응이었다.


 "꼬마의 개성은 유전인가?"


 인형이 눈을 깜박이며 몸을 흔들었다.


 [일곱 번째 질문에 대한 정답은, '예'입니다.]



 

 7. '꼬마'의 개성은 유전이다.




 '개성'.


 전체 인구의 8할이 타고나는 초능력의 명칭. 그 중 2할은 대부분 개성이 막 나타나 세상이 혼란스럽던 사람들이니, 지금은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다. 그러니 현재는 일단 태어난다면 4살 전후로 자연스럽게 발현되며, 전 세대인 부모로부터 유전으로 이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상식인지라, 굳이 토도로키가 조금 전 질문으로 물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토도로키는 물어야만 했다. 그래야 꼬마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으며, 제 가슴에 아련히 남은 불안함도 사라질 터다. 그리고 실제로 토도로키는 어느 때보다 속이 후련한 얼굴을 했다.


 '생각보다 인성 너무 안 좋은데.'


 꼬마는 토도로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였다. 어쩔 수 없었다. 토도로키는 꼬마에게 개성을 물려준 사람과 똑같았고, 꼬마는 그 사람의 피를 이어받았다. 거기다 저 남자와 사랑해서 결혼한 상대방의 피도 이어받았다. 토도로키의 까만 만족감은 영 그랬지만, 이해는 했다. 그리고 은연중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건 토도로키의 생각대로 되어야 나중에 저가 태어날 테니까.


 "속도위반은 하지마."


 꼬마가 말했다. 그것만 지키면 미래는 바뀌지 않을 거다.


 "...노력은 할게."

 "아니, 진짜로 하지마."


 애 앞에서 못할 말이 없다고 꼬마가 타박했다. 속도위반 하지 않으려고 왜 노력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속도위반 하려는 욕심이 충만하다는 건가. 그전에 둘은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니라며. 꼬마는 토도로키의 검은 욕심과 욕망에 혀를 내둘렀다. 미도리야 쪽은 확실하지 않지만, 이쪽은 이미 상대를 이성으로 보고 있었다. 꼬마는 눈을 감고 기도했다. 바라건대, 당신들 학창시절에 나와 만나는 일이 없기를.

 

 어쨌건 꼬마의 개성은 그만큼 중요한 단서였다. 


 그리고 꼬마가 A반 모두에게 개성을 보인 건, 바쿠고와의 대련 중이었다. 어차피 나중에 토도로키의 질문이 알려질 거니, 그 전에 자신이 직접 보이는 게 좋을 듯 싶었다. 그렇다고 또 지금까지 일부러 숨긴 것도 아니었다. 아무도 개성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고, 설령 말한다고 해도 인형이 그 꼴을 봐줄 리가 없다. 인형은 말로 단서를 주는 걸 무척 싫어했지만, 몸으로 하는 건 어느 정도 관용을 베풀었다.


 바쿠고의 폭발을 막을 만큼 두껍고 단단한 얼음벽, 그리고 틈을 주지 않고 덤비는 바쿠고의 시야를 가린 눈보라. 얼음벽은 꼬마의 오른손에서, 눈보라는 허공을 훑는 왼손이 닿는 공기가 얼면서 생겼다. 


 꼬마와 바쿠고의 대결은, 1학년 체육대회 결승전을 떠올리게 했다.


 "어, 얼음 개성?"

 "저거 혹시..."

 "그러고 보니까 둘이 좀 닮았, 나?"


 꼬마의 개성은 아주 커다란 힌트가 되었고, A반 학생들이 수군거림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꼬마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아니, 솔직히 다들 눈치챘다. 근데 이건 생각보다 커다란 충격이어서, 아무도 쉽게 말로 꺼내지를 못했다.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는 개성, 그리고 겹쳐보이는 표정.

 

 우린 왜 이걸 지금까지 알아채지 못한 걸까.


 대놓고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



 

 "확실히 두 사람, 닮았어☆"


 교실에 돌아온 학생들 중, 가장 먼저 용기를 내어 말을 꺼낸 건 아오야마였다.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처럼 살아가는 눈부신 아오야마는 이럴 때야말로 자신이 먼저 나서야 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용기는 매우 적절햇다. 덕분에 다른 학생들도 어찌어찌 입을 열수 있게 되었다. 

 

 "토도로키 상의 오른쪽 머리색과 똑같네요."

 "꽤 눈에 띄는데, 왜 눈치채지 못한 걸까?"

 "나도 데쿠 쨩이 식당에서 말해줘서 알았어. 그치, 이이다 군."

 "나 역시 못 알아 보았다. 선입견이란 참으로 무섭군."


 아무것도 몰랐다가, 의심이 한 가닥 피어오르니 눈에 보이지 않던 공통점이 속속 들어온다.


 "이즈쿠 쨩은 언제 알았어?"

 "어, 어?"

 

 떨어지지 않는 얼굴 열을 계속 손부채질로 식히던 미도리야가 흠칫 놀랐다.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라 원래 얼굴이 자주 붉어지지만, 이젠 잠깐 낫는 것도 없이 계속 붉었다. 그 이유는 제 옆에 떡하니 앉은 꼬마와, 그 바로 뒤에 서서 둘을 지켜보는 토도로키 때문이었다.


 "그, 그러니까, 아니, 안 건 아니고, 그냥 닮았구나, 하고..."

 "모성이란 대단하군."


 토코야미의 말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 모성이라니! 내가 안 낳았어!"

 "나중에 낳을 예정이잖아."

 "아니, 그건, 그러니까, 예정이라면, 아니, 그게 아니라!"


 뭘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미도리야가 책상에 머리를 쿵쿵 박았다. 보다 못한 토도로키가 미도리야의 빨개진 얼굴에 제 오른손을 가져갔다. 차가운 오른손 체온은 뜨거운 얼굴에 닿기 무섭게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미도리야는 받아들일 수 있는 허용 범위를 초과했다. 


 "다들 그만해. 이러다 데쿠 쨩 죽겠어."


 보다 못한 우라라카가 나서서 말렸다. 마침 아이자와가 종례를 하기 위해 교실로 들어갔고, 학생들은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토도로키 역할을 꼬마가 이어받아, 왼손으로 미도리야의 열 오른 얼굴을 식혀주었다. 아이자와는 그런 미도리야와 꼬마를 아주 잠깐 이상하게 보았다.


 "일단 꼬마."

 "예?"

 "이거 가져가라."


 아이자와는 출석 인증서를 내밀었다.


 "나중에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면, 이거 학교에 제출해라. 오늘 하루 땡땡이 안 치고 수업 다 들었으니 주는 거다. 일단 교장 선생님이랑 내 서명이 있으니 담임한테 줘라."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네 이름을 몰라서 안 썼는데, 너희 아직 꼬마 정체 못 밝혔냐?"


 어지간히 좀 빨리 끝내라고 아이자와가 한 소리 했다. 하하하, 어색한 웃음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저희도 꼬마 정체를 밝히고 싶지만, 이게 은근히 용기가 필요해져서, 쉽게 하지를 못해요. 어느 누구도 그렇게 용기 내어 말하지 못했다. 


 "그럼 꼬마는 기숙사 행이군."

 

 아이자와가 덥수룩한 머리를 벅벅 긁었다. 




 ---




 "뭐? 질문이 3개밖에 안 남았다고?"


 기숙사 거실에 모인 아이들은 꼬마한테서 질문이 3개밖에 없다는 사실을 들었다. 깜짝 놀란 키리시마가 저도 모르게 큰소리를 쳤고, 그 옆에 앉아있던 아시도가 눈을 찡그리며 귀를 막았다. 키리시마는 서둘러 사과하고 다시 목청을 다듬었다.


 "4개가 남아야 하는 거 아냐?"

 "키리시마 말이 맞아. 우리 질문 총 6개 했어."

 "아아, 그게, 실습할 때 쇼토가 하나 했어."


 꼬마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토도로키를 향했다. 토도로키는 마침 제 방에서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온 참이었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 미도리야 옆에 앉았다. 미도리야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오늘 하루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낸 건 누가 뭐래도 미도리야였고, 이제 학생들은 미도리야를 놀리기는커녕 동정했다.


 오히려 보고 있자니 불쌍해서, 들어가서 쉬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치만 이제 그럴 수도 없었다. 꼬마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미도리야가 반드시 있어야 했다.


  "토도로키 너 뭐라고 물었는데?"


 지로가 미도리야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어쨌건 이제 남은 질문 수는 3개지만, 그 중 마지막 하나는 꼬마의 정답을 말할 때 써야 하니 실제로 남은 질문 기회는 2개였다. 남은 질문 기회도 중요하지만, 토도로키가 물은 일곱 번째 질문도 중요했다. 이미 다들 꼬마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아챘지만, 그래도 토도로키가 뭐라고 물었는지 궁금했다.


 "꼬마의 개성은 유전이냐고. 그랬더니 인형이 그렇다네."

 "야, 너 겨우 그런..."


 상식 중의 상식을 알려고 몇 없는 질문 기회를 쓴 거냐고 타박하려던 지로의 이어폰 귀가 굳어졌다. 얼굴 위 표정도 그만큼 굳어졌다. 지로만이 아니었다. 꼬마와 토도로키를 제외한 모두가 놀랐다. 


 "자, 잠깐! 그러니까, 그 당연한 걸 묻긴 했는데, 꼬마의 개성이 유전이라면..."

 

 머리에 쥐가 내린 카미나리가 지금까지 들은 질문 7가지를 힘겹게 중얼거렸다. 그 옆에서 야오요로즈가 개성으로 만든 종이와 연필로 받아적었다.


 꼬마는 A반 모두와 친하고, 누군가의 스승이고, 25년 후의 미래에서 왔고, A반 누군가의 제자이며, 그 누군가는 바로 바쿠고고, 바쿠고이 소꿉친구인 미도리야는 미래에 없으며, 그 이유는 결혼해서 성이 바뀐 탓이고, 그렇게 바뀐 성씨는 꼬마와 같으며, 꼬마의 개성은 유전이다.


 첫 번째부터 일곱 번째까지 나열된 질문은 어색했다. 하지만 순서를 조금씩 바꾸고, 여기에 질문 외에 알게 된 것을 첨가하니 꼬마의 비밀에 확실히 가까워졌다.


 25년 후 미래에서 온 꼬마는 A반 모두와 친한데, 그 이유는 결혼해서 성씨가 바뀐 미도리야로 추측된다. 꼬마는 미도리야의 바뀐 성씨와 똑같은 성씨를 지니었다. 그러니 두 사람은 분명 가족일 거고, 25년 후라는 시간을 추측하면 모자관계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연으로 바쿠고 카츠키의 제자가 되었을 거다. 


 하지만 꼬마의 개성은 얼음이다. 개성은 유전으로 이어지는데, 모친으로 추정되는 미도리야는 증강형이다. 그렇다면 꼬마에게 개성을 물려준 건 모친이 아니라, 얼음 개성을 지닌 부친 쪽이라는 거다.

 

 그렇게 정리된 질문들은 꼬마와 반만 닮은 사람을 지목했다.


 "미도리야 주위에 얼음 개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야, 말하지 마!"

 "얼음 개성 가진 사람이 쟤밖에 없을까봐?"

 "그치만 이즈쿠 쨩 성격이나 지금 상황을 보면, 다른 사람 만나는 건 힘들어."

 

 아스이는 미도리야의 수줍음 많은 성격을 언급했다. 미도리야는 이성과의 사귐이 무척 서툴다.  


 "...알아! 사실, 우리 다 알고 있어!"


 카미나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낮은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와 연필이 흔들렸다.


 "근데 그걸 인정하는 게 싫어! 나만 그런 거 아닐꺼야! 안 그래? 우리 다 마찬가지일 거라고!"


 카미나리가 부들부들 끝이 흔들리는 손가락으로 미도리야의 남편 후보를 가리켰다.


 "'넌 결국 나랑 결혼하게 되어 있어'라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미도리야 옆에 있는 저 자식이 너무 짜증나고 밉상이라 인정하기 싫다고! 저거 지금 우리 이야기 귓등으로도 안 들어!"

 

 그 말대로, 미도리야의 남편 후보 영순위는 아주 지긋이, 여유로운,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열은 이글이글 뜨겁게 타오르는 채, 그런 눈빛으로 미래의 아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도리야는 처다보지도 못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지은 것도 없겄만, 이미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미도리야 옆에 있던 꼬마는 슬그머니 소파에서 내려와 바닥을 기다시피 도망치다가, 토도로키의 손에 옷자락을 잡혔다. 하필 또 목깃이 울대를 눌러 켁 소리가 멋없게 터져나왔다.


 "기정사실, 어딜 가려고."

 "켁, 이, 이거 좀, 아니, 그전에 기정사실이라니?"


 그거 설마 나? 꼬마가 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가 우리 두 사람의 기정사실인데, 딱 옆에 붙어 있어."

 "저기, 아침에 나보고 '저 새끼'라고 한 거 기억 안나?"


 태세 전환이 빛보다 빠르잖아, 꼬마가 목깃을 정리하며 투덜거렸다.


 "내가 내 새끼한테 새끼라고 부른 게 뭐 잘못이라고."

 "...큰일났다. 이거 분명 속도위반 저지른다."

 

 꼬마가 진심으로 제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미래로 다시 돌아가면, 제 생일이랑 나이가 완전히 바껴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속도위반으로 태어난 제 손위형제가 있거나, 최악의 경우엔 아예 제 존재가 없어질 수도 있다. 


 꼬마는 제가 알고 있는 미래의 '토도로키 쇼토'와, 젋은 시절의 '토도로키 쇼토' 사이의 괴리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신이 이런 사람이었나, 꼬마는 고개를 저었다. 꼬마가 아는 '토도로키'는 이렇게까지 막 나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설마 저랑 동생 앞이라고 일부러 참고 있었나. '그게' 자제하고 있었던 거라면, 꼬마는 할 말이 없다. 어째 금단의 상자를 연 기분이다.


 '이러니 막내가 생기지.'


 어머니 뱃속에 있는 동생을 떠올렸다. 꼬마는 부모님의 쉴 틈 없는 사랑을 주책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지만, 지금 보니 주책이 맞다. 그것도 당신 때문에 주책이다. 애먼 어머니는 무슨 죄인가.


 "...으아아앙."


 토도로키의 독주는 결국 미도리야를 울리고 말았다. 주근깨가 옅게 박힌 뽀얀 볼 위로 서글픈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당황한 꼬마가 제 소매로 미도리야의 눈물을 서둘러 닦았지만, 멈출 기미가 없어서 헛수고였다. 우라라카가 방에서 가지고 온 수건으로 눈물이랑 콧물을 닦아주었다.


 "토도로키 군 진짜! 왜 이렇게 섬세함이 없어!"


 보다 못한 우라라카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나 뭐 잘못했나?"


 진심으로 아는 바가 없는 토도로키가 꼬마에게 물었다. 꼬마는 한심하단 표정으로 답을 대신했다.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뭔 기정사실이고 나발이야!"

 

 캬아아아, 우라라카가 성을 냈다. 그러면서 미도리야를 토닥이는 두 팔은 멈추지 않았다.

 

 "너 이것도 성희롱이야! 데쿠 쨩은 아직 순진무구한 고등학생이라고!"

 "여기 기정사실 있잖아."

 "있으면 뭐해! 내가 아까 말했지? 너희 아직 사귀는 거 아니라고! 또 기정사실 같은 소리 해봐! 두 사람 결혼 내가 목숨을 걸고 방해할 거야! 너희 둘이 애 가지려고 노력하는 순간마다 내가 방에 들어간다!"

 "오, 그건 좀..."


 토도로키가 진심으로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이거 당사자들 앞에서 해도 되는 이야긴가?'

 

 대화를 듣던 꼬마는 없던 두통이 생길 지경이었다. 당사자 둘이 서로 좋아하는 건 다들 알고 있지만, 그걸 당사자 앞에서 저렇게 이야기 해도 되나? 그리고 말 그대로 사귀는 것도 아닌데 결혼 이야기까지 저렇게 막 꺼내도 되는 건가?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건가? 


 꼬마가 지끈거리기 직전이 머리를 손으로 누르는 중, 토도로키가 우는 미도리야를 데리고 기숙사 내 부엌 쪽으로 갔다. 다들 숨을 죽이고 부엌에 간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물론 들리지 않았다. 지로라면 자세히 들을 수 있는 모양이지만, 그녀는 제 이어폰과 귀를 손으로 꾹 막은 채였다. 그냥 저 두사람 대화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그 와중에 바쿠고는 성질 뻗쳐서 혼자 방으로 가버렸다. 더 있다가는 제 명에 못 살거라며 어르신 같은 말을 했다. 모두 그 말에 공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토도로키와 미도리야가 다시 돌아왔다. 


 "담판을 짓고 왔어."

 

 하도 울어서 딸꾹질하는 미도리야를 대신해, 토도로키가 말했다. 잘 보면 둘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거기에 무어라 지적하는 건 없었다. 저 둘은 평소에 저정도 스킨쉽은 숨 쉬듯이 하는 모양이었다. 꼬마도 오늘 교실에서 세 번 정도 봤다. 


 "속도위반은 안 하고, 결혼한 뒤에 어느 정도 둘이 자리 잡은 뒤에 아이를 갖자고."

 "...뭐?"


 세로의 팔꿈치에서 테이프가 맥없이 줄줄 떨어졌다. 떨어진 테이프는 기가 막혀서 접착력도 없었다. 테이프만큼 덜 떨어진 소리도 입에서 흘러나왔지만, 아무도 거기에 태클걸지 않았다. A반 모두가 그러했고, 꼬마도 마찬가지였다.

 

 "그, 그래서, 두 사람 이제 사겨?" 


 꼬마가 용기를 내서 물었다. 이젠 머리가 아픈 수준을 넘어, 터지기 직전이다.


 "아니."

 "왜?"

 

 그리고 머리랑 같이 속도 터질 예정이었다. 설마 여기서 이렇게까지 답답한 일을 경험하고 갈 줄이야. 그냥 옛날 생각하면서 즐겁게 놀다 가면 안 되는 건가? 꼬마는 누구든 좋으니까 서둘러 제 정체를 아키네이터에게 말하고 집에 돌려보내 줬으면 했다. 더 머물다간 저도 제 명이 못 살 성 싶다. 


 "솔직히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서."

 "그게 제일 중요한 거잖아..."


 꼬마는 아직 제대로 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무뚝뚝한 여동생이 책상 서랍 안에 숨겨둔 순정만화를 놀리려고 몰래 꺼내서 본 적은 있다. 거기 나오는 남녀는 다 사랑하면 사귀던데. 그러니 둘도 사겨야 하는 거 아닌가? 꼬마는 토도로키의 면상에 순정만화책을 집어 던지고 싶었다.


 "난 미도리야랑 사귀고 싶은 게 아니야."

 

 그럼 지금 당신들 앞에 있는 나는 뭐란 말인가.


 "미도리야를 완전한 내 것으로 만들어서 죽을 때 같은 묘비 아래..."

 "...이즈쿠, 너 이 남자랑 결혼하면 안 돼."


 꼬마가 토도로키를 밀치고 미도리야의 어깨를 잡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꼬마가 뭐라고 말할 때마다 인형이 입을 틀어막고 방해했다. 미래와 직접 관련되는 이야기를 하려 했기 때문이고, 열받은 꼬마가 보다 못해 인형을 잡아 바닥에 팍 내쳤다. 그랬더니 인형이 도리어 달려들어 꼬마의 머리에 쿵쿵 몸을 박았다. 그래봤자 솜뭉탱이라 아픈 것도 없지만 기분이 퍽 나빴다.


 "...누가 빨리 내 성씨 좀 맞춰."


 어차피 다 알 거 아니야, 그 착했던 꼬마가 처음으로 음산한 분노를 표출했다. 카미나리가 꼬마 몸 주변에서 퍼져나오는 냉기에 몸을 오싹 떨었다. 화내는 걸 보니까 토도로키 판박이네, 라고 중얼거렸다. 


 "그럼 내가 묻도록 하지!"


 이이다가 총대를 맸다. 반장으로서 어지러운 기숙사 내 질서를 정리할 책임감을 가졌다.


 "아키네이터, 꼬마의 성씨는 토도로키인가?"

 

 인형이 눈을 깜박였다.


 [여덟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입니다.]


  


8. '꼬마'의 성씨는 '토도로키'다.




 "나 토도로키로 안 태어나도 돼. 이즈쿠 네 미래가 훨씬 중요해. 너 인생 한 번 뿐이다? 다음 생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 이즈쿠 너 진짜 잘 생각해. 지금 여기서 쇼토한테 코 꿰이면 다시는 도망칠 기회 없어! 내가 봐서 아는데, 저 인간 진짜..."


 겨우 말을 하게 된 꼬마가 필사적으로 미도리야를 설득했다.


 "와아, 자기희생..."

 "저건 진짜 자기 미래를 바치는 거지?"

 "꼬마가 고생이 많다."

 "저런 부모 밑에서 잘도 성실하게 자랐네."

 "반면교사가 되는 거겠지."


 학생들이 너도나도 꼬마의 용기에 탄복했다. 꼬마는 미래에 저가 안 태어나도 되니, 미도리야에게 토도로키는 아니 된다고 진지하게 설득하고 타일렀다. 정작 그 옆에 떡하니 있는 토도로키는 심드렁이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 그치만..."


 미도리야가 쭈뼛쭈뼛 손가락을 비비 꼬았다.

 

 "토도로키 군이랑 함께 있을 수 있는 건, 아주, 아주 기쁜데..."

 "...이즈쿠, 쇼토한테 약점 잡혔어?"


 꼬마가 진심으로 물었다.


 "아, 안 잡혔어! 토도로키 군은 그런 짓 안 해."

 

 하고도 남을 인간이라는 말이 목청까지 도달했으나, 꼬마는 애써 꾸역꾸역 말을 삼켰다. 뒤에서 '콩깍지가 제대로 꼈어.'라는 오지로의 한탄이 들렸다. 꼬마는 그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미도리야는 그런 창피와 수모를 겪고도 토도로키 편을 들고 있다. 꼬마는 미도리야가 사람 좋은 성격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사람이 좋은 게 아니라, 호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히 걱정이 되었다. 


 "토도로키 군은 상냥하고, 친절하고, 멋있고..."


 미도리야는 묻지도 않은 토도로키의 장점을, 정확히는 제 눈에만 보이는 장점을 나열했다. 이거 중증이야, 꼬마가 치밀어오르는 반항기를 꾹 참았다. 부모님에게도 하지 않은 반항심이 여기서 들끓을 줄이야 누가 알았을가. 꼬마는 애써 침착했다.


 "...그런 토도로키 군이, 이런 나랑 평생 같이 있고 싶다는데, 엄청 고마운 거잖아."

 "아니, 이즈쿠 너 귀엽고 예뻐. 그리고 토도로키는 단순한 변태에다 스토커고."

 

 꼬마가 마마보이네, 아빠 닮았잖아, 뒤에서 아시도와 하가쿠레가 쑥덕거렸다.


 뒤에서 뭐라고 하던 말던, 꼬마는 필사적으로 미도리야를 설득했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고개를 계속 저었다. 도리어 나중에는 '우리가 사이 좋아야 꼬마가 태어나는 거잖아!'라는, 평소의 미도리야라면 절대 못할 발언까지 서슴없이 던졌다. 그때 토도로키가 지은 사랑스러운 표정은, 꼬마가 태어나 지금껏 본 것 중 가장 무섭고 오싹한 것이었다. 


 "꼬마 쨩, 포기해."


 아스이가 꼬마의 힘 들어간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이미 포기한 지가 오래인 A반은 기가 다 빠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아스이도 웃고는 있지만 피로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




 저녁은 보통 기숙사 식당에서 제공하는 식사나, 본인이 직접 부엌에서 간단하게 만들어 먹는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젔으니 A반 학생들도 저녁을 먹을 때가 왔다. 오늘 기숙사 저녁은 누구나 불평불만 하지 않고 먹는 카레라이스에 바삭바삭하게 튀긴 감자 크로켓이었다. 


 "...식욕이 없어."


 우라라카가 수저로 카레를 맛없게 휘적거렸다. 


 "이쪽은 밥맛이 없어."

 "난 올라올 거 같아."

 "물려서 못 먹겠어."

 "얘들아, 저녁밥은 죄가 없어."

 "그래. 죄는 저쪽에 있지."


 A반 전원 원망이 담긴 눈초리가 식탁 끄트머리를 향했다.


 "미도리야, 아아 해봐."

 "괘, 괜찮아. 내가 먹을 수 있어."

 "그치만 먹여주고 싶어. 맛있는 건 다 먹여주고 싶어."

 "토도로키 군..."

 

 거기엔 평소보다 찰싹 달라붙어 유난스럽게 저녁을 먹여주고 받아먹는 걸 반복하는 미도리야와 토도로키가 있었다. 둘이 나란히 앉은 식탁 아래가 시끄러운데, 그 밑에서 둘이 발을 교차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리고 둘 앞에는 홀로 밥 잘 먹는 꼬마가 있었다. 조금 전까지 두 사람의 사이를 이해 못하던 모습과 비교하면 상당히 태연했다.


 "아니, 솔직히 지금도 이해는 안 가."


 꼬마가 카레 한 입을 꿀꺽 삼킨 뒤 말했다. 사귀지도 않고 결혼과 아이를 약속하다니, 꼬마의 상식으로도 저 둘은 분명 이상했다. 하지만 그거랑 상관없이, 저 모습은 평소에도 많이 보던 거였다. 면역이 된 거다. 오히려 저것보다 더한 것도 많이 봐왔다. 솔직히 저 둘이 키스한다고 해도 덤덤할 자신이 있다.


 "대견한 녀석...!"


 남학생들이 눈물을 삼키며 꼬마를 동정했다. 


 "...야, 바쿠고 카레에 핫소스 반 병 부었다."


 키리시마가 빨갛게 물든 바쿠고의 카레라이스를 발견했다. 바쿠고는 그거로도 모자라서 다시 남은 반 병을 더 부었다. 다른 학생들은 매운 향에 의지해 꾸역꾸역 밥을 억지로 삼켰다.


 어찌어찌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꼬마는 뒤늦게 기숙사 구경을 했다.


 "이즈쿠 방은 올마이트 투성이구나!"


 꼬마가 감탄하며 이리저리 둘러봤다. 미도리야는 쑥스러워하며 자기가 모은 피큐어와 상품들을 설명했다. 꼬마는 제 집 서재에 진열된 올마이트 굿즈들과 똑같은 미도리야의 굿즈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굿즈들은 관리가 잘 되어서 달라진 게 없었다. 기껏해야 색이 좀 바란 게 다였다. 


 개중 진열된 봉제인형 하나는 꼬마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거였다. 집에 가면 같이 찍은 사진도 있다.


 그 다음은 토도로키 방이었다.


 "역시 다다미네."

 "너네 집에도 있어?"

 "부모님 침실만 다다미 깔았어."

 

 꼬마나 여동생 방은 남들 집처럼 평범하게 나뭇바닥 깔고 벽지를 발랐지만, 부모님 주무시는 안방만큼은 아버지 취향에 맞춰 다다미를 깔고, 침대 대신 푹신한 요를 펼쳐 주무신다. 친가가 오래된 저택인지라, 그런 방이 아니면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그 외에도 이이다 방, 우라라카 방, 바쿠고 방도 구경했다. 미네타가 예전에 제 방 못 보여줬으니 한 번 들어오라고 여학생들을 꼬셨다가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꼬마는 변함없는 미네타에게 남몰래 감탄했다.


 "...으음, 이제 그만 갈까."


 방을 다 구경한 꼬마가 기지개를 쭉 키며 말했다. 


 "벌써?"


 미도리야가 섭섭한 목소리로 말했다. 꼬마는 싱긋 웃으며 입고 있는 제 교복을 가리켰다. A반은 전부 편한 차림을 하고 있는데, 꼬마 혼자만 교복이었다. 이제 A반은 숙제를 하고, 씻고, 잠이 들어야 했다. 자신들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꼬마는 다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방을 보니까, 가족들 생각이 나서. 걱정하고 있겠지."

 "아..."

 "거기다 다들 이제 내 정체 알고 있잖아."


 안 그래? 꼬마가 씩 웃으며 물었다. 다들 서로를 힐끔 보며 쓴 미소를 지었다. 

 

  "대신, 가기 전에 한 가지 부탁해도 될까?"


 꼬마는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을 말했다. 




 ---



 

 펑펑, 어두운 밤하늘 위로 화려한 불꽃이 터졌다.


 "와아! 예쁘다!"

 "다음에 이거 해보자!"

 "좀 더 강력한 걸로!"


 꼬마가 부탁한 건 '모두 함께 모여 하는 불꽃놀이'였다. 어릴 때 모두와 함께 했던 불꽃놀이가 인상 깊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때 꼬마는 아직 밑에 동생이 없는 외동이었고, 웬일로 다들 일정이 맞아서, 부모님과 삼촌이모들이 전부 모여 동창회를 겸한 캠핑을 했었다.


 [삼춘, 삼춘! 뭐하고 놀꺼야아?]

 [우리 꼬마가 하고 싶은 건 다 해줘야지!]

 [그러면 있지, 나랑 물총 놀이해!]

 [오오, 멋진데? 누가 사줬어?]

 [아빠가 사줬어! 근데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쉿쉿, 꼬마는 입에 손가락 가져가 대며 비밀을 부탁했다. 삼촌들은 웃음을 참으며 알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미 그 비밀은 꼬마 엄마의 귀에 들렸고, 꼬마 아빠는 나중에 잔소리를 제법 들었어야 했다.


 '그때 재미있었지.'


 삼촌들과 물놀이도 하고, 이모들이랑 튜브 타고 놀고, 고기 구워 밥먹고, 다시 또 물놀이 하고, 아빠한테 안겨 낮잠 자고, 엄마랑 씻고, 저녁 먹고, 자기 전에 모두 함께 불꽃놀이를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하늘 위로 터진 불꽃이, 강 위에도 화려하게 터졌었어."

 

 꼬마가 펑펑 하늘 위로 올라가는 불꽃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때 기분이 나?"


 미도리야가 물었다. 꼬마는 고개를 저었다. 


 "응. 오히려 그때보다 훨씬 재미있어. 엄청 즐거워."

 "그거야 다들 너랑 같은 나이니깐."

 

 조금 더 친숙하겠지, 스파클라 불꽃을 세 개 챙겨온 토도로키가 떡하니 꼬마 옆에 앉았다. 미도리야 옆에 앉을 줄 알았더니, 꼬마가 의외라는 시선으로 토도로키를 바라봤다. 토도로키는 미도리야와 꼬마에게 가지고 온 스파클라 불꽃을 하나씩 건넸다. 그리고 왼쪽 개성으로 불꽃 심지에 불을 붙였다. 


 "와아, 이거 예쁘다!"


 스파클라 불꽃은 빛으로 된 민들레 같았다. 화려하지만 소박한 멋이 있었다. 세 송이의 불꽃 민들레가 옹기종기 모여 화려하게 빛을 피워냈다. 미도리야가 사람 없는 제 옆쪽에다 불꽃을 흔들었다. 마치 불꽃에 리본이 달린 것처럼 이어지는 기분이었다.


 "기이한 체험이네."

 "왜?"

 "그거야 나랑 미도리야의 기정사실이랑..."

 "그놈의 기정사실, 진짜."


 이러다 기정사실 안 되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꼬마가 결국 한소리했다. 그랬더니 이어 나오는 토도로키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반드시 너랑 다시 만날 거야."

 "......"

 "자신 있어."

 "...속도위반은 안 돼."

 "내 새끼라서 이렇게 반항심이 심한가?"

 "이래뵈도 효자 소리 듣고 자랐는데..."


 그렇게 말하는 꼬마의 불꽃이 꺼져버렸다. 꼬마는 다 쓴 불꽃을 물 담은 양동이에 버렸다. 양동이엔 어느새 다 쓴 불꽃이 가득했다. 급하게 편의점 가서 사온 거라 오랫동안 놀만한 양이 아니었다.


 "그럼, 아홉 번째 질문을."


 거짓말처럼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꼬마 혼자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내가 할게."


  아스이가 손을 내밀었다. 꼬마는 기꺼운 마음으로 인형을 건넸다. 인형을 받은 아스이가 꼬마의 머리에 손을 뻗었고, 꼬마는 쓰다듬기 좋게 허리를 숙였다.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이었고, 아스이는 어린 동생을 사랑스럽게 대하는 눈빛으로 꼬마를 바라봤다.


 "기분 탓이겠지만, 정말로 꼬마 쨩이 우리 조카인 거 같아."

 "최고의 칭찬이야."

 "꼬마 쨩을 보면, 이상하게 집에 있는 동생들 생각이 나."

 "나도 츠유를 보면, 내가 좋아하는 이모 중 한 명이 떠올라."

 "최고의 칭찬이야, 개굴."


 아스이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건네받은 인형의 이름을 불렀다.


 "아키네이터, 25년 후 토도로키 쇼토와 토도로키 이즈쿠는 꼬마의 부모니?"   

 

 인형이 눈을 깜빡였다. 


 [아홉 번째 질문에 대한 정답은, '예'입니다.] 


 

 


 9. 25년 후 '토도로키 쇼토'와 '토도로키 이즈쿠'는 '꼬마'의 부모다.




 아홉 번의 질문이 끝나자, 인형은 조금 더 높이 날아올랐다.


 [물어볼 수 있는 아홉 번의 질문을 조금 전 모두 물었습니다. 마지막 열 번째 질문은 정답을 말해야 합니다. 틀릴 경우에는 다시 열 번의 질문 기회가 주워집니다.]


 "대답이 틀려도 못 돌아가는 건 아니네."


 꼬마는 내심 안도했다. 그래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마지막 질문을 듣기 전에, 모두에게 한 마디 해도 될까?"


 꼬마가 인형을 품에 안으며 A반 모두를 둘러봤다. 아마 지금이라면, 모두에게 평소처럼 말해도 될 듯 싶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인형의 눈치를 살폈다. 인형은 마지막이니 봐주겠다는듯 눈을 감고 있었다. 쓸데없는 배려는, 꼬마는 인형의 머리를 살짝 꼬집었다.

 

 "...이모들, 삼촌들."


 꼬마가 A반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 덕분에 재밌었어. 쑥스러워서 말은 못했지만, 항상 이모랑 삼촌들 존경하고 좋아하고 있어. 캇쨩이랑은 오늘 대련해서 무척 기뻤어. 그래도 이기지 못한 건 아쉬웠어. 역시 한참 모자란 가 봐."

 "당연하지! 날 이기려면 한참 멀었어."

 "아슬아슬하게 이겨놓고 허세는..."

 "닥쳐, 떡순이!"

 "시끄러워! 히이잉, 괜히 꼬마가 그렇게 말해서 더 슬프잖아..."

 "나중에 또 만나자고!"

 "다시 태어나면 또 놀아줄게."

 "우리도 무척 즐거웠어."


 A반 학생들은 꼬마를 둘러쌌다. 한명씩 꼬마를 안아주고, 격려하고, 머리를 쓸었다. 그제야 A반은 처음 꼬마를 만났을 때 느낀 감정의 정체를 알았다. 훗날 만나게 될 자신들의 소중한 조카를 향한 사랑스러움과 귀여움이었다. 


 실컷 어린아이 취급을 받은 꼬마는 그대로 미도리야와 토도로키 앞에 섰다.


 그리고 미도리야를 꼬옥 안았다. 


 "어머니, 당신은 내게 최고의 히어로야. 항상, 언제나, 앞으로도 영원히."

 "꼬마야..."

 "낳아줘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줘서 고마워. 오늘은 울리기만 해서 미안해. 돌아가면 잘 할 테니까, 물론 잘 못하겠지만, 그래도 노력은 할게."

 

 으으응, 미도리야가 고개를 저었다. 한발치 떨어져서 본 미도리야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웃고 있었다.


 "미래의 나는 엄청난 복을 받았나 봐. 이렇게 착하고 잘생긴 아들이 있잖아."

 "철 없는 마마보이지."

 "네 입으로 말하냐, 그걸."

 "시끄러워, 아버지."

 

 꼬마의 핀잔에 토도로키가 피식거렸다. 꼬마는 미도리야를 한 번 더 세게 끌어안았다. 미도리야도 꼬마의 넓은 등을 감쌌다. 토닥토닥, 꼬마의 등을 다독이는 손은 꼬마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작았다. 이 작은 손이 저를 지금까지 키웠다고 생각하니 괜히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아버지는, 가끔 나한테 이런 말을 했어."


 미도리야에게서 떨어진 꼬마가 토도로키 앞에 섰다.


 "'나는 과연 좋은 아버지가 되고 있을까?', '너희에게 잘해주고 있는지 모르겠어.' 도대체 그런 말을 왜 어린 우리한테 하는 건지 이해를 못 했어. 하지만 나중에 아버지랑 할아버지 사이 이야기를 듣고, 그제야 알았어.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우릴 대했는지."

 

 꼬마의 말에 토도로키가 일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내게 최고의 아버지야."


 꼬마는 토도로키도 안았다. 꼬마의 키는 토도로키와 비슷했다.


 "우리를 제대로 봐주고 있어. 물론 여동생한테는 도가 좀 지나칠 때가 있지만, 그래도 우린 아버지 좋아해. 아버지는 서툴지만 열심히 노력해. 아버지가 우리한테 준 사랑, 제대로 알고 있어."


 꼬마를 안은 토도로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꼬마가 아프다며 엄살을 피웠다. 


 "그치만 속도위반은 안 돼."

 "...노력한다니깐."

 "노력이 아니라, 하지를 마."

 

 살다살다 부모의 속도위반을 걱정하는 자식이 어디 있냐고 꼬마가 투덜거렸고, 미도리야가 킥킥 어깨를 떨었다. 그거 당신 웃을 게 아닌데, 꼬마는 어딘가 맹한 어머니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어떤 의미로는 어머니가 아버지 눈에 들어선 게 다행일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아니, 이즈쿠."


 꼬마가 인형을 미도리야에게 건넸다.


 "마지막 질문, 부탁할게."

 "응. 꼬마야."

 

 인형의 이름을 부르기 전, 미도리야가 꼬마를 불렀다.


 "나중에 봐."

 

 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인자한 미도리야의 미소는, 꼬마가 익히 아는 그 사람의 모습이었다. 꼬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이내 그 미소와 닮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응, 나중에 봐!"


 미도리야는 인형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질문했다.


 "아키네이터, '꼬마'는 토도로키 쇼토와 토도로키 이즈쿠의 아들이지?"


 인형, 아키네이터는 눈을 깜박이며 몸을 흔들었다. 


 [열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 입니다.]




10. '꼬마'는 '토도로키 쇼토'와 '토도로키 이즈쿠'의 아들이다.




[이로써 수수께끼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꼬마와 인형은 모습을 감추었다.




 ---

  

 


 "...응? 우리 여기서 뭐하는 거야?"


 키리시마가 운동장에 서 있는 저와 친구들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알싸한 화약 냄새가 남아있고, 저와 몇 명의 손에는 다 쓴 불꽃놀이가 들려 있었다. 잘 보니 한 구석에 다 쓴 불꽃놀이를 담근 물양동이도 있었다. 아아, 그제야 불꽃놀이를 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라? 근데 왜?"


 즐겁게 논 건 알겠는데, 불꽃놀이를 하게 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건 키리시마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아리송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뭔가 감이 안 잡히는 모양이었다.


 "다들 괜찮은가? 어디 아픈 곳은 없고?"


 이이다가 서둘러 상황을 살폈다. 다행이 모두 다친 곳이나 이상이 있는 곳은 없었다. 다만 아련히 가슴 한 쪽이 허전하고, 기억 속 어딘가가 비어졌다. 하지만 그마저도 아주 잠깐이었다. 다들 곧 아무렇지 않아졌고, 불꽃놀이 재미있게 했다며 왁자지껄 떠들었다. 


 "...토도로키 군."


 다시 기숙사로 가는 길, 미도리야가 토도로키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미도리야?"

 "뭐가 좀, 기분이 이상해."

 "어디 아파?"

 "으으응, 그건 아닌데, 왜 이렇게 허전하지?"


 미도리야가 제 가슴을 쓸며 애달픈 표정을 지었다. 사실 토도로키도 미도리야처럼 어딘가 텅 빈 감정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답을 찾을 방도가 없고, 기묘한 슬픔도 조금씩 흐려져갔다. 미도리야와 토도로키는 잊고 싶지 않았지만, 제 의지와 상관없이 가슴은 다시 평온해졌다. 어딘가 빠진 듯한 기억도 다시 찬찬히 돌아오고 있었다.


 "...참, 나 이번에 DVD 샀어! 전에 말했던 거. 토도로키 군, 숙제 다하고 나랑 DVD 볼래?"

 "좋아. 나중에 숙제랑 베개 챙겨서 방에 갈게."

 "베개는 왜?"

 "DVD 다 보면 늦을 거 아니야. 그러니 거기서 그냥 자게. 안 될까?"

 "어어, 안 될 건 없는데, 침대에 둘이 못 자지 않을까? 혹시 떨어지면 어떡해."

 "그럼 미도리야 네가 내방 올래? 내 방 이불이니까 침대보다는 편할 거야."

 "그럴게, 그럼!"

 



 ---




 꼬마가 눈을 떴을 때는, 아침에 제가 구해준 아이의 어머니가 개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라, 돌아왔네?'


 옆을 돌아보니 인형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아이가 꼬마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이의 품에 파란 인형이 들려 있었다. 아아, 그제야 꼬마는 걸렸던 개성이 완벽하게 풀렸음을 알았다. 꼬마는 아이의 어머니에게 이제 괜찮으니 걱정 마시라고 말했다.


 "형아."


 아이가 꼬마를 불렀다.


 "재밌었어?"

  

 아이는 꼬마가 개성에 걸렸던 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즐겁게 놀다 왔어."

 "응!"

 "앞으로는 차 조심해. 그리고 다른 사람한테 개성 함부로 걸지 말고."


  아이와 헤어진 꼬마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편의점 잠깐 갔다온 거 치고는 참 스펙터클한 순간이었다. 꼬마는 조금 전까지 저가 있었던 25년 전 과거를 떠올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어울렸던 건 단순한 환각이었을까. 하지만 무척 생생했다. 지금도 손에는 스파클라인지 뭔지 하는 불꽃놀이 막대기를 쥔 감각이 남아있다. 그리고 제 팔로 안은 젊은 시절의 부모님 모습도 생생했다. 


 '아버지는 그대로 나이가 드셨고, 어머니는 어째 늙지를 않아.'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도 연세에 비하면 상당한 동안이신데, 아무래도 그 피가 진한 모양이다. 여동생도 어머니를 많이 닮아서 나이보다 어린 느낌이다. 캇쨩 스승님이랑 이모삼촌들도 별로 다른 건 없었다. 얼굴에 주름이 는 건 차이이려나.


 "......"


 그러다 문득 해야 할 일이 떠오른 꼬마가 휴대폰을 들었다.


 아주 잠깐의 수신연결음을 지나, 딸깍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어머니? 그냥 전화한 거야. 몸은 괜찮아? 응, 응, 아버지 또 출근 안 하려고 했다고? 하여튼 예전부터 병적이었네. 응? 아아, 그냥 이래저래 들은 게 있어서. 어머니랑 아버지 사귀지도 않고 결혼이랑 아이 약속 했다며? 어떻게 알았냐고? 하하, 그건 당연히 비밀이지."


 꼬마가 큭큭 어깨를 떨었다.


 아무래도 인형과 함께 했던 과거 여행은 환상이 아닌 모양이었다. 

 

"삼촌들하고 이모들은 뭐 연락 없어? 나야 뭐 뉴스로 보는 게 다니까. 어, 동창회 해? 언제? 토요일 밤에? 그럼 나도 가도 될까? 학교에 외박증 끊으면 안 될까? 어어, 진짜 한 번 와줄 거야? 캇쨩은 안 오는 척 해도 보러 와줄걸? 저래 뵈도 나 좋아하거든."


 꼬마의 통화는 제법 오랫동안 이어졌다.


 "참, 어머니."


 통화를 끊기 전, 꼬마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어머니를 불렀다.


 "...주말에 한 번 찾아갈게."


 뭐 먹고 싶은 건 없어? 수화기 너머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임신한 제 몸보다 기숙사 생활하는 아들을 더욱 걱정했다.  


 "딸기우유."

 

 아버지랑 똑같은 거로, 꼬마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멀지 않은 미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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