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쿠히나


존맛 설정 찾았어요... 

결벽증 심한 사쿠사 X 유일한 예외 히나타


494 결벽증 심해서 사람들이랑 닿는 거 싫어하는데 그 사실 숨겨서 진짜 친한 사람 아니면 심한 거 모를 듯. 근데 블자에서 연습하다 히나타가 오미랑 부딪힌 거임. 낑깡은 혼자 힘으로 벌떡 일어남.


진짜 죄송해요! 절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쿠당탕 날아간 건 히나타인데 사과하는 것도 얘인 웃긴 포인트... 


뭘 그렇게까지 사과를... 괜찮아?

아니 오미 상 접촉하는 거 싫어하시잖아요. 

뭐? 너 그걸 왜 알아.


494는 놀라지. 알려준 적 없는 걸 알고 있는데. 


엥? 알면 안 돼요?

아니, 어떻게 알았냐고.

그게 저번에 츠무 상이 실수로 건드렸을 때 표정 안 좋으셨고, 오늘도 똑같은 표정인 걸 보니 딱 봐도 싫어하시는구나 했어요.

... 너 생각보다 관찰력이 좋구나.


히나타 관찰력 다들 아시죠? 울 애기 볼보이 때 눈으로 모든 걸 흡수했잖아요. 


근데 표정에 대놓고 드러나진 않을 텐데. 마스크 쓰기도 했고 숨기는 데 이골이 나서.

오미 상은 배구할 때 빼고 움직임이나 표정 변화가 작아서 뭔가 더 세심하게 보게 된다고 해야 하나? 눈썹이 잠깐 10시 10분 모양이 되면 기분 나빠 하시는 거더라구요.

10시 10분...?

네, 금방 사라져서 캐치하기 힘들지만요.

생전 처음 듣는 표현이네.


사실 얘만 모를 뿐 찐팬들한테 10시 10분남으로 불릴 듯ㅋㅋㅋㅋㅋ 어쨌든 이 사건으로 히나타는 오미오미 맘 속에 호감도를 적립. 그 뒤로도 누가 자기랑 접촉할 거 같으면 부채나 핸드폰으로 가로막아주는 등 사소한 배려를 하는 히나타한테 감기기 시작함.

494 배구할 때 마스크 안 써서 히나타는 이 남자 맨얼굴 가까이서 볼 때마다 뚝딱댈 듯. 말 걸면 네! 아니요! 같은 대답 해서 어느 쪽이냐는 질문 자주 들음. 츠무도 존잘이지만 맨날 봐서 면역이 있는데 494는 면역이 제로. 익숙해질라 하면 다시 마스크 끼니까. 그걸 이상하게 여긴 494 질문하겠지.


너, 왜 배구할 때 내가 가까이 가면 고장나? 평소엔 멀쩡하면서.

... 그걸 몰라서 물어요?

모르니까 묻지?

치사하다 진짜... 자기가 잘생긴 줄 모르는 잘생긴 남자라니...

뭐?

오미 상이 너무 미인이라 그렇다고요! 이제 됐어요?


히나타는 부아가 치민 얼굴로 소리침. 그 뒤로 494도 뚝딱대기 시작해서 츠무 속으로 꼴값들떠네... 라고 생각함. 그러던 어느 날 494 우연히 히나타랑 닿았는데 기분이 하나도 안 나빠서 충격받음. 그 충격을 히나타의 볼 잡고 늘이기와 팔다리 주물주물대기로 표출해서 보쿠토한테 우와 변태같다~ 는 소리 들음.


옴, 오미 상 왜우부붑! 왜 그러세요! 저 뭐 잘못했어요?

아니. 잠시 가만 있어 봐.


아무리 만져도 더럽다는 생각이 안 나서 뭐야 결벽증 나았나? 이렇게 쉽게? 갑자기? 따위의 생각을 하는데 히나타가 꺄르륵거림.


으하학! 간지, 간지러워요!


멍 때리면서 만지다가 허리까지 가버린 손에 494 화들짝 놀라서 손 뗌.


... 나 잠깐 뭐 확인하고 올게.


그대로 아무 인간이나 붙잡아서 터치해 봤는데 소름이 오소소 돋고 더럽다는 생각이 듬.


뭐고! 오미오미 이 쫘식 뭔데 지가 붙잡아 놓고 그지같은 표정 짓노!


먀츠무의 고함은 깔쌈하게 무시한 494는 다시 히나타에게 돌아옴.


확인은 다 하셨어요? 

어어.

근데 저 만질 때 소름 안 돋으셨어요? 괜찮으세요?

그게, 이유는 모르겠는데 너한테만 더러움이 안 느껴져...


멍한 표정의 494는 혼란스럽대요


에엥? 저한테만요?

응, 너만 괜찮아.

뭐야... 그거 왠지 특별하게 느껴지잖아요. 그럼 저랑은 하이터치도 어깨동무도 가능한 거네요?

그런 셈이지.

잠시 실례할게요.


낑깡이가 494 확 껴안아버림.


이래도 괜찮아요?

어, 어, 어어...


결벽증 때문에 모부님이랑도 안 껴안는 494 따끈하고 적당히 단단한 오렌지한테 안겨서 뚝딱댐.


오미 상 품 안정감 있다. 가끔 안아도 돼요?

그, 그러든가...


히나타는 자기 등에 팔 두르고 있는데 494는 두르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허공에 팔 두고 굳어 있음. 이쯤되면 494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합리적 의심 : 얘 나한테 관심 있나?

그 뒤로 스킨십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둘은 너네 사귀냐는 질문을 오조오억개 받게 됨. 계속 아니라 하다 지친 히나타는 선언함.


오미 상은 그냥! 저를 핫팩처럼 쓰고 계신 것 뿐이에요!


더 이상하게 들리는 말에 수군수군... 물건처럼 이용해먹는다는 거야 뭐야 수군수군...


히나타, 조용히 해...

아니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잘 때 끼고 자는 테디베어같은 거요!


잘 때 끼고 잔다는 거야...? 다들 수군수군...


조용히 하라고 제발...


494만 수치사함. 그는 낑깡의 철벽아닌 철벽으로 자기 망상을 쓰레기통에 버리게 됨. 이렇게 말하는 애가 나한테 관심은 무슨. 근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기분이 더러워짐. 왜 기분이 나쁘지? 기분 나쁠 이유가 딱히 없지 않나. 혹시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결국 입덕부정기가 끝남. 젠장, 내가 얘를 좋아하는구나. 494는 같이 있으면 뚝딱거릴 거 같아서 한동안 약간 거리를 두는데, 문제는 히나타가 다른 애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게 거슬림. 보쿠토랑 하이터치하고 먀츠무가 머리 쓰다듬는 거 보면 빡침. 그래서 참다참다 히나타 혼자 있을 때 뚱한 얼굴로 팔 옷깃 잡아당김. 잡고 보니 자기가 뭐라 할 처지가 아니란 걸 깨닫고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지만.


오미 상, 할 말 있으세요?


근데 여상한 태도에 짜증나서 말 뱉어버림.


... 주지 마.

네? 잘 안 들려서... 

해주지 말라고...


마스크끼고 웅얼대는 스무 살 넘은 어른이.


네? 한 번만 더요.

다른 놈들한테 스킨십 허락해주지! 말라고...


점점 목소리 커지다가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 싶어서 목소리 작아짐. 옷깃 잡은 채 바닥만 보다 히나타 얼굴 봤는데 싱글싱글 웃고 있음.


오미 상 저 좋아하시나 보네요.

ㅁ, 뭐! 아니거든!

그래요? 아쉽네. 난 좋아하는데.

... 뭐?

좋아한다구요, 사쿠사 키요오미를.


494 머릿속에 온갖 생각 다 스쳐지나감. 오늘 만우절인가? 장난인가? 아니 얘가 이런 장난 칠만한 앤가? 그럼 진짠가? 진짜면 대체 언제부터?


언제부터 좋아했는데...?

음, 아마 블자에 들어왔을 때부터?

뭐야, 나보다 오래됐잖아.

흐흥, 역시 좋아하는 거 맞으셨구나.

... 아.


여러분은 자승자박의 현장을 보고 계십니다.


그럼 핫팩이다 테디베어일 뿐이다 발언은 왜 나왔어?

계속 부정하느라 짜증나기도 했고 오미 상은 저한테 관심 없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제 마음 전혀 몰랐어요?

몰랐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럼 제가 아무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이랑 안 닿게 신경 써주고 포옹하고 스킨쉽 스스럼없이 한 줄 알았어요?

어, 음,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한테 그런 수고 들여서 뭣해요?


뼈 때리는 팩트 폭력에 494 순살됐답니다.


... 미안.

물론 제가 헷갈리게 한 건 맞지만요. 대체 언제 나 좋아해주나 조금 괘씸했거든요.

허... 까마귀인 줄 알았는데 여우가 따로 없네.

그래서 별로예요?

아니, 난 여우같은 까마귀가 좋더라.


난 오른쪽이 여우처럼 왼 놀려먹는 게 좋더라. 히나타 히히 웃으면서 팔 벌리니 이번엔 494가 포옹함. 그럼 오렌지색 낑깡은 새까만 남자의 귀에 대고 장난스레 속삭이는 거지.


앞으로도 우리 재밌게 놀아요!


유치원생끼리 할 법한 귀여운 말에 494는 웃음.


그래, 잘 부탁해.



아님 같은 결벽증인데 바리에이션을 주는 것도 맛있겠다.. 히나타를 좋아해도 결벽증은 똑같이 적용되는 경우. 둘이 사귀긴 하는데 플라토닉 러브라 불러도 될 정도로 스킨쉽이 없음. 그래도 히나타는 이 사람이 날 안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란 걸 아니 이해함. 다만 연인의 얼굴을 만져보고 싶을 때가 있어서 가끔 같이 누워있다가 잠들면 몰래 쪼물딱대는 게 취미였음. 그 날도 그런 날로 옆으로 누워서 눈 결대로 동그라미 그려보고 코 톡톡 쳐보고 말랑말랑한 입술 붕어 만들어보기도 하며 실실댔는데 494가 어둠 속에서 눈 번쩍 뜸. 분위기가 흉흉함. 히나타는 아 큰일이다 이건 분명 화내신다. 오미 상이 나랑 거리 두자고 하시면 어떡하지? 설마 헤어지자고 하진 않으시겠지? 아니 빡대가리야 그러게 왜 결벽증 심한 사람 얼굴을 만져... 오만가지 생각 다 함. 귀신처럼 허옇게 질린 얼굴로 눈치만 보고 있는데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림.


너. 가까이 와.


찍소리도 못하고 가까이 가는데 눈 마주보고 화내시려는 건가? 그거 너무 무섭고 견디기 힘들 거 같은데 아ㅠㅠ 하는 심정. 일단 빌어보기로 함.


죄, 죄송...


그런데 494가 갑자기 입술박치기함. 히나타 경악해서 아무 소리도 못 내고 동공만 최대치로 확장시킴. 494는 뽀뽀하고 이맛살 찌푸린 채 이런 생각을 함. 역시 마스크를 벗고 하는 건 조금 소름 돋네. 그렇지만 예상보단 심하지 않아. 이 정도면 다음에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폭탄 발언을 던짐.


나중엔 더한 것도 해줄게.


얘는 폭탄 던지고 다시 잠을 청하는데 영혼 가출해서 어버법어버법거리던 히나타 곧 말뜻 알아듣고 자기 입술 가린 채 얼굴 새빨개지겠지. 홍당무가 여기 있대요. 뜨겁고 말랑했던 감촉이 아직 생생한데다 히나타의 머릿속에 자꾸 나중엔 더한 것도 해줄게- 가 메아리처럼 맴돌아서 결국 밤 샜다고 합니다.



전자 말고 후자라 가정하고 청혼 썰도 풀어봅니다. 그러니까 히나타랑 사귀는데 결벽증은 그대로 갖고 있는 사쿠사로.

사쿠사는 잠에 취한 채로 눈을 반쯤 떠서 주황색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아주 당연한 듯이 거기 입을 맞춤. 누군지는 떠올릴 필요도 없었음. 그에게 주황색은 이미 내 것이 된 지 오래니까. 샴푸 냄새인지 상큼하고 달콤한 내음이 맡아졌음. 어쩐지 몸에 뭔가 무게감이 느껴졌는데 그 정체는 바로 히나타의 팔이었음. 더워... 에어컨을 틀지 않고 잤다는 걸 떠올리면서 사쿠사는 히나타의 이마에, 콧등에, 입술에 도장을 찍음. 시기는 한여름이었고 불쾌지수는 하늘로 치솟는 날이었는데 조금도 히나타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음. 사쿠사는 문득 조용히 거대한 깨달음을 얻음. 나 이런 사람 아니었지 않나. 스킨십이라면 되도록 피하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는 특히 접촉을 삼가고, 누군가와 닿기라도 하면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니었나. 히나타의 입가에는 자면서 생긴 침 자국이 있었음. 그걸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평소랑 크게 다르진 않았음. 더럽네. 근데 신기한 건 기분이 나쁘진 않다는 거였음. 괜찮아. 얼마나 괜찮냐면, 저기 입을 맞춰도 기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게 평생을 결벽증이라는 동반자와 함께한 사쿠사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는 본인만이 알았음. 사쿠사가 생각했던 것보다 히나타 쇼요라는 사람이 자기 인생의 일부가 된 거였음. 히나타에게도 자신에게도 땀이 나고 있는데 그걸 느끼면서도 사쿠사는 미동도 하지 않았음. 이미 붙어 있는데도 더 붙어 있고 싶다는 욕망이 차오르면 차올랐지. 


어쩌면 나는 내가 날 사랑하는 것보다 널 사랑하는지도 몰라. 


잠에서 깬지 얼마 안 돼서 목소리는 낮고 갈라졌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았음. 사쿠사는 그 말에 평온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설핏 웃음. 밖에는 매미가 시끄럽게 울고 있었지만 사쿠사는 고요했음.


정말인가 봐. 너, 나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사쿠사는 아프지 않게 히나타의 이마를 툭 침. 히나타의 눈 코 입을 바라보고, 무슨 꿈을 꾸는지 찌푸려지는 미간을 쫙 펴주고, 제게 알 수 없는 마법을 부린 연인을 가만히 응시하던 사쿠사는 감겨 있던 눈이 떠지는 순간을 맞이함.


으음... 오미 상, 깼어요?


몽롱한 눈빛을 보던 사쿠사는 만약 눈동자에도 키스할 수 있었다면 진작에 입술을 댔을 거라는 생각을 함. 대답 없이 자길 응시하기만 하는 사쿠사를 이상하게 여긴 히나타는 좀 잠에서 깸.


오미 상? 왜 그래요?

난 널 너무 사랑하나 봐.


갑작스러운 말이었고 사랑이라는 단어를 잘 남발하지 않는 사쿠사였기에 히나타는 혹시 오미 상이 아픈 건 아닌가 걱정이 치밈. 팔을 들어 이마에 손을 대보고 싶었지만 사쿠사가 자신을 속박하듯이 안고 있어서 불가능했음.


혹시 열 나는 거 같아요?

안 나. 멀쩡해. 이렇게 머릿속이 깨끗할 수도 없을걸.

그래요?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어?

알죠.

모르는 것 같은데.

진짜 아는데...

사실, 어느 쪽도 상관없어. 몰라도 돼.


사쿠사는 생각했음. 알든 모르든 나는 사랑을 멈추지 않을 테니까. 숨을 한가득 들이마신 사쿠사는 가슴이 무언가로 가득 차 뻐근해지는 걸 느낌. 


네가 흙탕물에 뒹굴어도 널 안을 수 있을 것 같아. 결벽증이 있는 내게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몇 년 전의 사쿠사 키요오미에게 미래에 네가 그럴 거라고 하면 절대 안 믿었을걸. 넌 늘 말도 안 되는 일을 가능케 해.


히나타는 아무 말 없이 사쿠사의 말을 경청했음. 사쿠사도 그걸 느꼈고 그는 어느 때보다 둘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았음.


히나타 쇼요.

네, 사쿠사 키요오미 상.

나와 결혼해 줘. 아니, 결혼하자.


히나타의 눈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커졌음.


갑작스러운 거 아는데... 널 무조건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못 주는데...


사쿠사의 말끝이 흐려졌지만 그는 말을 멈추지는 않았음.


적어도 그건 약속해줄 수 있어. 네가 불행하면, 나도 불행할게.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할게.


말을 마친 사쿠사는 뒤늦게 반지도 없이 너무 무드 없이 청혼했나 싶어짐. 히나타 눈치를 보며 가만히 있는데 대답이 없어서 더 걱정스러워짐.


... 거절, 할 거야?


쭈뼛쭈뼛대는 그 모습에 히나타는 상황에 안 맞게 빵터짐. 웃는 게 좋은 건가 나쁜 건가 가늠을 못하던 사쿠사는 허망하게 그 웃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음. 웃음을 그친 히나타는 입가에 호선을 그린 채 제 연인을 응시했음. 히나타의 눈빛이 달라진 걸 확인한 사쿠사는 긴장했음.


오미 상, 우리 같이 행복해져요. 평생.


수락의 의미를 읽은 사쿠사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한숨을 깊게 내쉼.


오미 상, 결혼식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 뭐 하게요?

입 맞추는 거?

예행연습 할까요, 우리?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고 사쿠사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히나타와 입술을 포갰음.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만약 히나타가 한 말이 거짓이어도 사쿠사는 그 말을 믿을 거 같았음. 평생이라는 불확실한 말이 이토록 끔찍이도 달다는 사실은 히나타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테니까.



■ 츠무히나


츠무는 처음으로 자신이 히나타를 화나게 했다는 걸 알았음. 히나타가 잠시 시간을 갖자는 말을 꺼냈으니까. 그 말을 들었을 때 아츠무는 세상이 노래지는 것 같았음. 히나타가 삐쳤을 때 장난치며 그걸 푼 적은 있었지만 진짜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음.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들이 하는 말은 대부분 한결같았음.

-일단 히나타가 말하는 대로 시간을 가진 뒤 사과해라. 화는 시간이 지나야 풀리는 법이다.

아츠무는 그 말대로 기다렸음. 가끔, 아니 솔직히 말하면 매일 밤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며. 한 번은 사무랑 술 마시며 히나타랑 헤어지기 싫다고 울면서 주정부린 적도 있었음. 


넘 걱정 마라. 안 헤어졌다 아이가!


라는 사무의 말에도 위로되지는 않았음. 사적으로는 시간을 갖는 연인이었지만 공적으로는 둘 다 블랙자칼에 소속되어 있었으므로 배구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긴 했음. 그러나 사적인 얘기를 꺼내려고만 하면 히나타가


아직 때가 아니에요.


라고 단호하게 쳐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음. 그날은 그런 날이었음. 비록 경기는 지긴 했지만 최선을 다해 플레이했던 날. 근데 보쿠토가 손짓하더니 자길 불러냈음. 따라가다 보니 도착한 곳은 라커룸. 평소처럼 방방거리지도 않고 조용해서 무슨 일 있나 고민해보았지만 알 수는 없었음. 


봇군, 머선 일이고?

츠무,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얘기는 비밀이니까 어디에도 얘기하면 안 돼.


정색한 채 분위기를 잡고 얘기하니 츠무도 덩달아 긴장함. 보쿠토로부터 듣게 된 얘기는 정말 뜻밖이었음.


무, 뭐?

오미가 쇼요 좋아한 적 있었다고.

뭐, 뭐, 뭔...


츠무의 머리가 평소대로 돌아가지 않았음. 체감상 원래 반 바퀴만 회전해야 하는데 360도로 돈 것 같았달까.


술 마시면서 해준 얘기니까 취중진담일 거야.

오미가... 쇼요를... 그러니까 라이크가 아니라 러브의 의미로?

응. 러브의 의미로.


츠무는 보쿠토가 고개를 저어주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보쿠토는 고개를 끄덕였음. 츠무는 울고 싶어졌음. 그러다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이 떠오름.


그럼 내는 여기 이렇게 있으면 안 되는 거 아이가?

아니, 얘기 안 끝났으니 들어 봐. 츠무츠무, 내가 이걸 무슨 자격으로 얘기하는 거 같아?

친구로서 경고해 주려고...?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어. 근데 이거, 오미가 얘기해 달라고 한 거야.


보쿠토는 전생에 이야기꾼이었나 싶을 정도로 이야기에 몰입을 잘 시켰음.


어엉...?


츠무의 입이 벌려진 채 닫힐 줄을 모름. 


와, 와...?

나중에 다른 사람한테 이런 얘길 들으면 이상하게 와전될까 봐 나한테 똑바로 전해달라 했어. 잠깐의 풋사랑이었고 지금은 끝났다는 사실을. 본인이 얘기하기엔 분위기 어색해질 거 같다고 하더라.

맞나...


납득이 가는 이유였음.


분명히 마음 접었으니까 절대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 그러니 걱정 마.

아, 알았다.

그럼 이제 돌아가자!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현남친이 걱정이 안 될 리가 있겠음? 보쿠토랑 같이 돌아가는 츠무의 머릿속은 복잡했음. 오미가? 쇼요군을? 내 애인을? 마음 접었다 캤는데 마음이 으데 쉽게 접히나? 마, 만약 아직 좋아하고 있는 거믄... 이거 블랙자칼 내 삼각 치정관계 되는 거 아이가?! 어카노?! 온갖 생각이 휘몰아침. 그렇게 경기장 안으로 돌아갔는데 막상 돌아가고 나니까 경기도 끝났는데 왜 왔는지 의문이 듬. 그때 아츠무의 시야에 관객석에서 관객들이 들고 있는 거대한 현수막이 들어옴.


[둘의 결혼을 진심을 다해 축하합니다!]


뭐고? 누구 결혼하나? 그런 의문을 담아 보쿠토를 쳐다봤는데 실실 웃고 있음. 너무 기분 좋아 보이는 나머지 음? 설마 봇군이 결혼하나...? 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름. 그때 관객들이 소리침.


미야 아츠무-!


아츠무는 깜짝 놀라 그쪽을 바라봄. 내, 내를 와...? 아직도 영문을 모르는 츠무와 모든 걸 알고 실실 웃고 있는 팬들 그리고 블랙자칼 관계자들. 관객들이 다시 입을 열었음.


히나타 쇼요-! 


다음으로 관객들이 외칠 말은 정해져 있었음.


둘의 결혼을 진심을 다해 축하합니다-!!


멍해진 츠무와 열렬히 휘파람을 불고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치는 관객들. 츠무는 멍해진 얼굴이었음. 그때 츠무의 시야에 들어오는 썬샤인보이 히나타 쇼요. 히나타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채 미소지으며 츠무에게 다가왔음. 


츠무 상, 많이 놀랐죠?

이게 대체, 머선...

제가 준비한 이벤트예요. 사귀는 동안 츠무 상이 이벤트 많이 해주셨으니까 청혼은 제가 성대하게 해드리고 싶어서요!


여전히 멍한 얼굴의 츠무에게 얼굴 가득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히나타가 한쪽 무릎을 꿇었음. 그리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손에 받쳐 내밀었음. 사람들의 환호성이 더욱 커졌음. 그건 예쁜 반지였고, 그걸 본 츠무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괴상한 감정을 느끼며 울음을 터뜨림. 다리 힘도 풀린 탓에 울면서 주저앉은 츠무는 잠시 당황했다가 다시 웃음을 터뜨린 히나타의 포옹을 받았음.


내, 내느은...! 쇼요군이 헤어, 지자고 할까 봐...! 느무느무 무서웠다...!

에이, 헤어지긴 우리가 왜 헤어져요. 내가 츠무 상 벽에 똥칠할 때까지 데리고 살 건데. 

그라믄, 화, 화는 안 난 거가?

네, 안 났어요. 화난 척해서 미안해요.

으허엉...!!


화가 안 났다는 사실에 안도감과 동시에 부아가 치밀어오른 츠무는 더욱 울었음. 히나타는 오구오구 내 남친 마음고생 많이 했구나 하고 어화둥둥했고. 한동안 거하게 울어버린 츠무는 붉어진 눈가와 불어터진 눈을 갖게 됨.


우와, 츠무츠무 못나졌다~!


보쿠토가 이런 말을 하자 다들 공감하며 웃었음. 평소라면 잘생기기 그지없는 얼굴이 약간의 못생김을 첨가한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히나타는 그런 츠무마저도 사랑스럽다는 듯이 응시했음.


그럼 츠무 상, 제 청혼 받아주시는 거죠?

당연하제...


히나타는 함에 든 반지를 빼서 내밀었고 츠무는 냉큼 손가락을 내밀었음. 반지는 약지 손가락에 꼭 들어맞았음. 뭔가 생각난 츠무는 반지를 감상하며 벅차오름을 느끼다 말고 보쿠토를 돌아봄.


봇군, 그럼 아까 했던 말은...

당연히 구라지!


보쿠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당당히 외쳤고 츠무는 역시 그랬던 거구나 하며 허망한 표정을 지었음. 

(근데, 과연 어느 쪽일까요? 보쿠토는 굳이 눈치를 안 보는 거지 눈치가 없는 게 아니죠. 그런 보쿠토가 사쿠사의 과거 풋사랑을 눈치채고 츠무에게 알려준 걸까요 아니면 정말 시간끌기용 아무말이었던 걸까요? 정답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바로 그것입니다^^)



■ 키타히나


히나타 은퇴하고 나면(은퇴하지마흐흑) 키타네 농장에 자주 놀러가겠지. 같이 벼도 베고 사과도 따고 농사지을 듯. 자고 가는 빈도가 조금씩 늘어날 거고 그만큼 히나타의 물건이 키타네 집에 늘어남. 칫솔이라든가 베개라든가 충전기라든가 옷이라든가 하는 게. 히나타는 농사가 힘들긴 해도 하고 나면 은근 뿌듯한 게 자기랑 나름 잘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함. 하는 동안은 힘들어서 배구와 관련된 잡생각도 차단할 수 있어서 좋음. 키타랑 함께 있으면 아무 말 안 해도 편안해지는 것도 좋고. 그러던 어느 날 키타가 트럭에 자길 태움.


저희 어디 가요?

가 보믄 안다.

잉?

비밀이야.


키타의 장난스러운 말에 히나타는 그러려니 했음. 제 연인은 자신을 지옥으로 끌고 갈 만한 사람도 아니었으니 어딜 가도 상관없었음.

그 날은 유난히 날이 좋았음. 구름이 뭉게뭉게 푸른 하늘에 피어올라 있었고 태양은 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데 바람이 시원해서 온도는 그리 덥지 않았음. 조용한 시골에 트럭 소리만 울려퍼졌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가니 저절로 마음이 평온해졌음. 이대로 살아가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로. 한편으로는 그래도 되나 하는 마음이 들었음. 어딘가 이상한 말이었지만 꼭 배구를 배신하는 것 같기도 해서. 그때 트럭이 천천히 속도를 줄였고 키타가 입을 염.


쇼요. 눈 감고 있어라.

눈을 왜요?


그렇게 되물으면서도 히나타는 제 연인을 향한 강한 신뢰감으로 눈을 바로 감았음. 속도가 느려지던 차가 좀 가더니 어느새 멈췄음. 운전석 쪽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키타가 걷는 소리가 나더니 제 쪽 문이 열렸음. 키타는 눈을 감은 히나타 손을 잡고 내려줌. 히나타는 궁금했지만 눈을 뜨지는 않았음. 키타가 뭔갈 보여주고 싶다는 걸 알고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얌전히 기다릴 뿐.


자, 인제 눈 떠도 돼.


히나타가 눈을 뜬 뒤 본 것은 보랏빛의 향연이었음. 그곳은 라벤더가 한가득 핀 넓은 벌판이었음. 


우와. 우와...!


히나타는 감탄하며 라벤더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음. 파랗디 파란 하늘과 보랏빛 라벤더의 향연은 눈을 즐겁게 해주기 충분했음. 


맘에 드나?

맘에 들다마다요! 엄청 예뻐요! 근처에 이런 곳이 있었어요? 

맘에 든다 카니 다행이다.


히나타는 라벤더를 손으로 조심스레 건드려 보았음. 촉감을 느낀 뒤 코를 들이밀고 냄새를 맡아봄.


라벤더 향이 나는 물건이랑 진짜 라벤더는 향이 좀 다르네요.

하모. 원조는 다른 법이제.


가운데에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으며 보랏빛 세상 속으로 들어간 히나타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짐. 찰칵 소리가 난 건 그때였음. 뒤를 돌아본 히나타는 키타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발견함. 


예뻐가.

제가요, 아님 라벤더가요?

당연히 라벤더제.

너무하다~


히나타의 장난스러운 말에 키타도 장난으로 응수했음. 히나타는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발견하고 주저앉음. 그리고 손으로 뭔갈 하는 것 같더니 잠시 후 됐다! 라고 소리침.


신스케 상, 손!

내가 강새이가.


키타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손을 내밀었음. 히나타는 키타의 약지 손가락에 방금 만든 꽃반지를 껴주었음.


이건...


키타는 놀라서 히나타를 쳐다보았음. 


예쁘죠?

응, 엄청 예쁘다.


키타는 보라색 꽃반지를 살살 만져보며 슬며시 미소지었음.


내도 답례로 만들어 줄게.

오, 좋아요.

다 만들 때까지 보믄 안 된다.

옛썰!


키타는 뒤를 돌고 주저앉은 뒤 손을 움직였음. 히나타는 라벤더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음.


손 내밀어 봐라.

다 됐어요?


히나타는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손을 내밀었고, 키타는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줬음. 라벤더로 만든 꽃반지가 아니라 보석이 달린 꽃 모양 반지를.


키, 키타 상, 이게 뭐...


눈을 휘둥그렇게 뜬 히나타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음. 그 순간을 위해 기다린 듯 바람이 제때 불어 키타의 머리카락을 간지럽혔고 라벤더 향기가 물씬 풍겼음. 키타의 뒤에는 흔들리지 않는 파란색 하늘과 흔들리는 보라색 라벤더가 있었음. 지나칠 정도로 예쁜 광경이라고 히나타는 생각했음. 


내랑 같이 살자, 쇼요.


키타는 볼에 홍조를 띈 채 수줍게 미소지으며 히나타를 응시했고 그 눈 안에는 다정하고 따스한 사랑이 담겨 있었음. 히나타는 그 사랑의 온도에 자신이 속절없이 녹아내리는 걸 느꼈음. 


지금껏 니 인생의 목표가 배구였다믄, 인제는 내가 니 인생의 목표가 되고 싶다.


라벤더 향이 나는 보랏빛 청혼이었음. 거절할 수 없고 거절하기도 싫은 청혼이기도 했고.


... 이미 된 것 같아요, 그거.


히나타는 홀린 듯이 당신은 이미 내 인생의 목표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고, 키타의 수줍은 미소는 환한 웃음으로 탈바꿈됨.


그거 증말 기쁘다.


사랑으로 벅차오른 히나타는 그 마음을 감출 생각도 않고 키타에게 달려가 안겼음. 그렇게 여름을 닮은 남자는 겨울을 닮은 남자와 아주 오래도록 붙어 있었음.













꽃 모양 반지는 이런 느낌으로 생각했어요.


라벤더인 이유는 키타의 탄생화가 라벤더이기 때문이에요. 근데 우연히 꽃점을 봤는데 이거 완전 키타상 아닌가요? 완전 똑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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