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나마 목도한 진짜 생일에게 심심한 인사를 건네며.






 

 

토니 스타크에게 생일이란 무척이나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피곤하고, 무료하며, 또한 지치는 날로. 자신의 탄생을 기념한답시고 불러대는 여러 파티까지야 좋았다. 멋 모르던 때라면 모를까, 회사에 자리를 잡고 어느 정도 여유를 갖게 된 후부턴 제법 잘 즐기고 다녔으니. 게다가 축하? 마다할 이유가 없지. 그러나 아무리 소싯적 판 벌려 노는 게 취미였다한들, 불유쾌한 만남이 계속된다면야 누구든 꺼리지 않을까. 하물며 이제 번잡한 소란을 그다지 즐기지도 않음에야.

돌이켜 보면 아마, 당시부터 생일마다 쏟아지는 관심을 만끽할 수 없었던 이유에는 자신을 마치 환한 등불마냥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들이 싫었던 탓도 포함되어 있었으리라. 주고 싶지 않은 애정을 건넨 척 연기하는 것이 마뜩잖아서. 남이 저로 인해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개운하지 않아서.

 

여기까지 생각한 그가 뉘였던 허리를 도로 세웠다. 그리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각종 잡동사니와 한 소년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스스로도 잘못한 건 아는지 이 문제의 장본인-피터 파커는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가만히 토니의 불호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이유가-"

"......스타크 씨 생일이시잖아요. 그래서..., 그, 뭐라도 해보려고.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참, 아무튼 하루도 사고를 안 치고 무사히 넘어가는 법이 없다. 말이라도 못 하면 덜 얄밉지. 자연스럽게 한숨이 길어진다. 업 스테이트의 꼴을 보아하니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일을 친 듯했다. 눈을 굴리자 여기저기 묻은 생크림이며 풍선 그리고 갖가지 장식이 보였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평소보다 배는 바쁜 자신의 생일날 구태여 일정을 취소해 집에 돌아오게 된 이유는 다 저 덜 자란 꼬맹이 때문이었다. 녀석이 앞 뒤 안 재고 무작정 시작한 일명, 토니 스타크 생일 파티 준비. 그거 때문에.

 

좋아. 낭만이든 유치든 다 괜찮단 말이다. 예전에 비해 부쩍 너그러워진 스스로를 자화자찬할 정도로 최근 자신은 피터에게 거는 타박의 횟수와 빈도가 줄었다. 그랬더니 보란 듯이 큰 건을 물어왔다.

어떻게 하면 고작 저런 소품으로 아이언맨의 개인 공간을 여기까지 어지럽힐 수 있지? 덕택에 청소 로봇은 갈피를 못 잡다가 몇 겹으로 엮어둔 실에 걸려 헛바퀴질을 반복했고, 결국 방의 엔트로피가 상정 가능한 범위를 넘어 급기야 프라이데이로 하여금 회의 도중 긴급 알림을 울리게 만들었다. 빠르게 상황을 수습하니 남은 건 보기 썩 좋지 않은 얼룩과 자국. 군데군데 아직 다 떼어지지 않은 테이프와 종이 조각이 눈길을 끌었다.

실소가 샜다. 딱 어린애가 생각할 법한 이벤트이긴 했다. 그것도 저 꼬맹이의 실제 나이인 고등학생 수준, 그 이하의.

 

"됐으니까 케이크나 꺼내봐."

 

반쯤 포기한 채 툭 뱉었더니 피터가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 고개를 들었다. 반짝이는 눈이 마치 헉, 어떻게 아셨어요? 라 묻는 듯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럼 생일 파티 준비했다면서 메인은 빠트리려 했어? 무심하게 대꾸하자 앗 그렇구나! 라며 연신 감탄을 한다. 피터는 간단한 추론-심지어 그에겐 정말 단순한-마저 대단하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딱히 싫지 않았다. 저 모습이 내게 점수를 더 따보기 위한 작위적 행동이 아님을 알고 있으니까.

 

"오래 기다려야 해?"

"금방 돼요!"

 

절대,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애초에 움직일 생각도 없었건만 몇 번이나 강조하더니 피터는 냉장고로 후다닥 달려갔다. 빨리 오실 줄 알았으면 미리 꺼내둘 걸! 그의 혼잣말이 귀에 닿았다. 상하지 말라고 보관해둔 모양이었다. 하긴, 언제 돌아올 줄 모르는 게 제 일상이었으므로 다 차려두는 것보다 저 편이 현명하긴 했다.

네가 사고만 안 쳤으면 실제로 10시는 지나서 들어왔겠지. 장난스럽게 타박한 후 토니가 작업실 의자에 도로 앉았다. 좌우지간 일정은 어차피 파토 났고, 시간도 저녁을 훌쩍 넘겼다. 밖에서 시달리는 건 이쯤이면 충분하니 당장은 나름대로 고심했을 꼬맹이의 노력을 즐기는 것도 괜찮을 성 싶었다.

 


피터는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 본인도 어디 뒀는지 잊어버린 걸까. 일반 규격보다야 크겠지만 냉장고는 그다지 넓지 않은데. 그럴 리 없다는 걸 알지만 어찌 되었건 벌써 15분째 저를 방치해둔 이 발칙한 녀석은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데리러 가기 전까진 코빼기도 안 보일 심산인 듯했다.

가만히 있으라 해놓고선 끝내 무거운 엉덩이를 떼게 만들지. 더 기다리길 포기한 그가 일어섰다. 이것도 어찌 보면 능력이다. 그 바쁘고 남에게 관심 없기로 유명한 토니 스타크가 하나하나 관심 기울여가며 신경 쓰도록 만든 셈이니.

 

"Kid?"

"...어, 스타크 씨? -왜 오셨어요! 제가 가져간다니까!"

 

느닷없이 등장한 토니를 보며 피터는 허둥지둥 무언가를 숨기기 바빴다. 그것 때문이었군, 속으로 낮게 중얼거리며 그가 물었다. Kid, 뭘 감추려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완전 아무것 같은데."

 

이거 내 냉장고야. 잊었어? 고로 저 안에 보관한 이상 난 그 정체를 확인할 권리가 있다고. 말도 안 되는, 그러나 한편으론 묘하게 납득되는 논리를 구사하며 토니가 그에게 요구했다. 보여줘.

 

"신경 쓰실 거 없어요! 위험한 것도 아니고, 그냥 좀...!"

"위험하고 말고는 내가 판단할 사안이지. 나는 아까 그 난장판도 충분히 위협적이었거든?"

 

게다가 일단, 그렇게 필사적으로 싫다 하니 더 궁금하잖아. 뒷말을 쏙 삼킨 채 그가 천천히 다가갔다. 아, 정말 안 보셔도 되는 거라니까요! 토니가 가까워질수록 피터는 거의 냉장고에 들어가다시피 붙으며 도리질을 쳤다. 이쯤되니 정말 호기심 때문에라도 포기할 수 없었다. 대체 뭐길래.

 

"이, 이거 들어주세요! 올라가요 이제!"

 

피터가 건넨 건 길거리에 흔하게 놓인 케익 상자였다. 아마 나름대로 열심히 선별해 제 용돈이 허락하는 안에서 사온 것 같은. 뭐야. 있었잖아. 역시, 꾸물거린 건 지금 얘 뒤에 있는 저것 때문이군. 물론 그러거나 토니의 관심사는 이미 옮긴지 오래였다.

 

"싫어. 난 폭탄으로 의심되는 저 미지의 물건을 반드시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겠어."

"무, 무무, 무슨 폭탄이에요!?"

"혹시 알아? 꼬맹이 네가 멋도 모르고 주워온 장난감이 사실 날 암살하기 위한 고도의 작전에 포함된 무기일지도 모른다고."

"진짜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그럼 못 보여줄 이유가 뭐가 있어."

"그, 그으... 으아-!"

 

차마 말을 못 이은 피터가 본인도 답답했는지 입술을 삐죽였다. 정말, 관심 가지실 이유가 전혀 없는 건데, 사실 버리려 했는데. 웅얼웅얼거리는 혼잣말이 공간을 가득 메울 새로 쏟아졌다.

한 눈 파네. 그리고 피터의 틈을 발견한 토니가 그 틈을 타 냉큼 안쪽으로 감춰뒀던 예의 물건을 낚아챘다.

 

"아...!"

"Kid, 넌 아직 한참 이르..., 이게 뭐야?"

 

손에 잡힌 건 그러니까, 다른 쪽 손에 있는, 케이크 상자의 손잡이와 거의 같았다.

 

"오늘 네 주변에 나 말고도 생일인 사람이 있어?"

"그게 아니고..."

"그럼?"

 

고작 둘이 있는데 케이크 하나론 부족할 것 같아서 몰래 숨긴 거야? 꼬맹아, 나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닌데. 고작 이 정도 돈 더 썼다 해서 화낼 이유도 없고. 성장기이니 많이 먹어야지. 오히려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야. 홀로 그의 의도를 짐작하며 이어지는 토니의 말에 피터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라는 뜻이다. 네가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고? 그럼 왜. 다른 사람 생일을 챙기기 위해서도 아니면서 굳이 두 개를 마련할 이유는 없잖아. 아님 누구 초대하려 했어?

 

"이것도 스타크 씨 껀데요...."

"...아까의 복수야?"

 

우물쭈물 털어놓은 피터의 한 마디에 토니가 어정쩡하게 답했다. 보기보다 단 걸 좋아하는 내 취향을 알아준 건 고맙네. 근데 이거 다 먹으면 혀가 얼얼해지거나, 그게 아니라도 과식으로 하루 종일 속이 더부룩할 것 같다고. 욕심이 과했어. 한편으론 침착하게 이 상황을 평가하면서. 아마 작은 중얼거림을 듣지 못했다면 이 감상이 최종 평이 되었을 테다.

 

"그으... 이건 망쳐버려서,"

"망쳐?"

 

망쳤다. 묘한 어감에 토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파티시에가 만들었을 케익이 망쳐질 게 뭐가 있지? 혹시 들고 오면서 다 쏠려 뭉개졌나. 충분히 그럴 법하긴 했다. 그래도 저 성격에 케익을 막 흔들며 달려오진 않았을 텐데. 그 증명으로 처음 받은 멀쩡한 모양의 케익도 있고.

그나저나 잘 보니 둘이 포장도 좀 다르잖아? 맛집까지 찾아 따로 사왔나?

 

"스타크 씨 얼굴을 만들고 싶었는데... 제가 케익은 처음이라-"

"-잠깐, 잠깐만. Kid, ...이거 네가 만든 거야?"

 

뭔가 묘하게 틀어진 듯한 피터와 자신의 대화를 대조하던 토니가 설마 싶어 물었다. 직설적인 물음에 피터의 얼굴이 한 차례 울그락불그락 물들더니, 귀까지 달아오른 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대답의 의미는 구태여 설명할 것도 없었다.

하, 그러니까 이게 이 맹랑한 피터 파커의 작품이라고.

 

"허어."

"으아아..., 그, 죄송해요. 저 손재주 있는 줄 알았는데, 요리는 젬병인가봐요."

"그건 그래. 이건, 전혀 내 얼굴이 아니잖아."

 

정체를 알게 된 이상 보지 않는 것도 실례였다. 멀쩡하고 예쁘기까지 한-피터의 표현대로라면- 케익을 뒷전에 둔 채 포장을 푼 토니가 실소를 흘렸다. 삐뚤어진 눈썹이나 꾹 눌린 코, 아무렇게나 난 입을 포함해 케익의 상태는 형편 없었다. 하물며 늘 최고만 접하다 보니 심미안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토니 스타크에겐 더더욱 모자라 보였다. 이게 나라니. 상황에 따라선 화가 날 수도 있을 만큼 케익의 모습은 토니 스타크에게 선물하기에는 무척 부족했다. 피터가 숨기려 한 이유도 조금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웃음이 났다. 기분이 좋았다. 생일만 되면 쇄도하던 어떤 선물보다 값졌다.

 

"그래도 고마워. 마음에 드네."

"네, ...네?"

"대신 다음부턴 혼자 땅 파지 말고 주변의 도움을 받든가, 프라이데이라도 불러."

 

난 이렇게 찌그러지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봐야 아려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피터의 정면 가까이 얼굴을 붙인 토니가 싱긋 웃었다. 어, 어어- 순간 당황해 어버버 허둥대던 피터는 그제야 그가 자신을 놀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반칙이에요! 물론 그 불만이 토니의 행동을 바꿀 리는 만무했지만.

 


"아무튼 먹자. 이러다 내 생일 다 지나겠다."

"앗, 맞다."

 

퍼뜩 떠올린 피터가 원래의 화제로 돌아와 주섬주섬 빵칼을 꺼냈다. 이거 말고, 사온 거 드실 거죠? 당연한 듯 단정짓는 어투에 토니는 말로 하는 대신 피터가 만든 쪽 케익을 조금 썰어 낼름 한 입 먹곤 짧게 감상을 남겼다.

 

"맛은 생각보다 괜찮네."

"아앗,! 어, ......진짜요...?"

"거짓말 할 이유가 없잖아? 난 맛없는 거 맛있다고 못 해."


물론 네 숙모의 쿠키는 빼고. 그땐 내가 잘 보여야 했으니 예외야. 씩 웃으며 덧붙이자 그제야 놀라고 불안해 하던 피터의 표정이 풀렸다. 다행이다. 눈에 띄게 안심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올라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니가 피식 웃으며 검지로 피터의 코를 살짝 누른 채 짓궂게 물었다.

 

"만약 내가 발견 못 했으면 이거 어쩌려고 했어?"

"버, 렸겠죠...?"

"아깝게?"

"하지만 실패작인걸요. 잘 만들지도 않았고. 이상하고. ...부끄럽고."

 

 그래도 네 정성인데 아무렴 그 정도 센스도 없을까. 그리고 꼬맹이 넌, 네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비춰지는지 더 알 필요가 있어. 네 작은 행동과 배려 하나하나가 얼마나 날 변화시키는지.

순간 뱉으려던 본심을 겨우 삼킨 토니가 애써 유리 가면을 썼다. 하마터면 다 드러낼 뻔했네. 아이의 선물이 자신을 꽤 기쁘게 한 모양이다. 그냥 기쁜 것도 아니고, 이성적인 판단 때문에 보류해뒀던 욕심을 표출해버릴 만큼.


사실 피터 파커라는 인간 자체가 그랬다. 토니 스타크에겐 참 새로운 종류의 사람. 어리고 미숙한 걸 싫어하는 자신이 실수하는 그를 보며 짜증보다 걱정을 앞세웠다. 모든 게 완벽해야 했던 토니 스타크의 삶에 어떤 것이든 어설픈 피터 파커의 존재는 무척이나 신선하고, 동시에 제법 들뜨게 만들곤 했다. 너무나 아낄 수밖에 없는 소년. 애정을 주는 데에 구태여 이유가 필요치 않은. 그저 사랑해야 하고, 또 사랑하게 되는 꼬맹이.


그래서 방금 전 무심코 좋아한다고, 여지를 남길 뻔했다.

 

"생일 축하해요, 스타크 씨."

"...토니."


하지만 하루 정도는, 마시지도 않은 술에 취한 척 나의 실수를 용인해줄 수 없을까.


"네?"

"오늘 생일인 사람은 토니 스타크 뿐이야. 모든 스타크 씨가 아니라."

"하지만 어차피-"

"토니 스타크."

 

집요한 요구에 소년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고집불통. 스타크 씨도 저랑 같다니까요. 이내 소심하게 중얼거리곤 피터가 축사를 정정했다.

 

"-생일 축하해요..., ......토니."

 

그리고 수줍은 치하를 받으며 토니는 웃었다.

1년 중 딱 하루. 오직 내가 나로 존재하게 되었음을 환영 받는 날이니, 오늘만은 너를 마음껏 사랑해도 괜찮으련다.

 

 







- 토니 스타크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HappyBirthdayTonySt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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