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1

얼마 전 특수전사령부에 인사이동이 진행되었다. 소령으로 진급한 시진이었지만 아직 알파팀을 맡을 적당한 후임자가 나오지 않아 나오기 전까지 행정일을 병행하며 알파팀 팀장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는 대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시진이있는 1중대로 새로이 들어온 행정병. 육사출신으로 이번에 임관한 신입이었다. 그 닥 똘망똘망해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몸을 잘 쓰게 생긴 것도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귀차니즘이 가득해 보인다랄까. 하지만, 뭐가 되었든 힘들었을 육사를 졸업한 새까맣게 어린 후배가 그저 귀여운 시진이 신입을 반갑게 맞이했다. 물론 자신의 보고서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반을 차지한다는 것은 곁에 있는 대영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

"이름이 뭐라고?"

"소위. 김민석! 입니다."

"육사 졸업이라며 기수는?"

"12학년도 72기입니다."

"벌써 72야? 난 61기 와 이러니까 나 진짜 나이 많아 보인다. 안 그렇습니까 부팀장?"

"팀장님 나이 많으시지 말입니다."

"저보다 많으신 분이 그러니 영...뭐 그건 그렇고 1중대 중대장 소령 유시진이다. 반갑습니다 후배님?"

"소위. 김민석! 저도 반갑습니다!"

민석의 머리가 시진이 말한 기수와 계급을 계산하느라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얼만큼 높은 선배인 걸까....

"정신차리고 이쪽은 우리 부팀장. 보자마자 일을 시켜서 미안한데 내가 좀 바빠서 괜찮지?"

"예. 그렇습니다."

"이거. 내일모레 보고있어서 PPT를 만들어야하는데 내일까지 부탁한다."

"예. 알겠습니다!"

바싹 군기 잡힌 모습으로 대답하는 신입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려주고는 자리를 알려주는 시진이다. 알려준 자리로 움직이려는데 별다른 노크도 없이 벌컥 열리는 집무실 문에 깜짝 놀라 몸을 돌리는 신입이다.




"선배!!!!"

"아 깜짝이야. 넌 임마 노크 좀 하라고 몇 번을 말하냐. 어? 인사는 또 어디다 팔아먹은건지...!! 어후.."

"단결. 아니 보고서를 이렇게 쓰면 어....누굽니까?"

"소위. 김민석!"

"아.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

"오-행정병? 일 잘하냐? 보고서 잘 써?"

"ㅇ...예?"

"에잇-못하게 생겼네. 난 대위 윤명주. 군의관이다. 종종 볼 테니 인사는 해야지. 반갑다."

"반갑습니다!"

"얘도 육사. 너 몇 기냐? 63인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선배 때문에 보고서 제가 다시 쓴 거 압니까?"

"모르지 나야."

"어우우--! 서상사 제가 데려갑니다."

"오늘 저녁 훈련있으니까 그 전엔 돌려보내라."

"어디 갑니까?"

"걱정 마십쇼. 서상사는 그냥 따라옵니다."

명주가 대영을 끌고 나가자 시진은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저 사내커플의 애정행각을 매일같이 보는 것은 고문이 따로 없었다. 치료를 위해 핸드폰을 켜 모연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수술중인 건지 받지 않는다. 풀 죽은 강아지마냥 시무룩해져서는 책상위로 엎어지더니 다시금 벌떡 일어나 집무실을 빠져나간다.


"그거 내일까지 꼭 해둬라?"

"예. 알겠습니다!"








#.

밤10시.

장시간 동안 연달아 이어진 수술로 피곤에 쩔어버린 모연은 '이제 끝나고 집가요. 밥도 못 먹고 피곤해서 죽음ㅜㅜ' 이라는 문자를 남기고 운전할 기력도 없는 건지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타이밍 좋게 부대를 벗어나는 시점 모연으로부터 문자를 받은 시진은 관사로 향하던 발을 돌려 곧장 모연의 집으로 출발했다.





-

불이 꺼져있는 집. 벌써 도착해서 잠이 든건가하는 생각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가는 시진의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깜깜한 내부. 사물을 인지하고자 눈을 깜빡이며 익숙해지기를 기다린다. 조심스럽게 움직여 모연이있을 침실로 들어가면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잠이든 모연이 보인다. 침대 옆에 놓인 수면등을 켜니 모연이 뒤척이며 손을 휘젓는다.


"응? 유시진씨?"

"접니다. 씻지도 않고 자는 겁니까? 많이 피곤했나봐요."

"..네..오늘 연다라..하는 바라메..."

눈을 뜨지도 못하고 웅얼거리다시피 말하는 모연이 너무나 귀여워 피곤한걸 알면서도 볼을 쿡쿡 찌르며 즐거워하는 시진이다.


"그래도 수술해서 화장은 안 했네요. 나 씻고 올테니 기다려요?"

"웅? 부대 안 들어...흐어.."

"내일 저녁 점호 전에만 들어가면 됩니다. 딱 기다려요?"

시진이 아무리 기다리라고 말해도 눈이 감길대로 감긴 모연은 옷을 갈아입을 힘도 없이 피곤함이 몰려오고있었다. 결국 시진이 나올 때까지 참지 못하고 다시금 잠이 들어버린 모연이다. 꼼지락 꼼지락 모연의 옆으로 파고든 시진이 핸드폰으로 알람을 맞춰 놓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버린다.





-

"으아악!!!! 유시진씨!!!"

"...으으음.....우리 오랜만입니다아-"

잠시 뒤. 모연이 경기를 일으키듯 발버둥을 치며 이불을 훽- 걷어내면 모연의 위로 얼굴을 부비적 거리고있는 시진의 모습이 보인다. 저리 떨어지라며 밀어내도 돌덩이마냥 꿈쩍 않는 시진의 등짝을 찰지게 때려보지만, 오랜만에 만난거라는 말 뿐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이는 시진이다.


"유시진씨이-!! 나 진짜 피곤한데...우리 내일해요. 응?"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다. 듣기로는 저녁훈련이 힘들었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던건지 너무나도 팔팔한 모습의 시진이다.

"강선생이 먼저 유혹했지 말임다"

"내가요? 언제?"

"내가 들어왔는데 너무 예쁘게 자고있었습니다. 그리고, 옹알옹알 말하는게 얼마나 귀여운지 여기여기 제 심장이 막...막 고장 난 줄 알았습니다."

"뭐에요? 말이나 못하면...그래도 지금은 안돼요. 나 진짜 피곤하단 말이에요."

딱 잘라 말하는 모연의 모습에 몸에서 떨어지며 항복하는 듯 하더니 얼마 가지 못하고 안되겠다며 다시금 붙어오는 시진에 결국 두손 두발 다 들어버렸다.












#. DAY

"흐아암...졸려."

"좀 잘까요?"

"가만 둘 거에요?"

"음....노력은 해보겠습니다."

노력은 무슨..시진의 눈이 '노력해도 안될 것 같습니다'라고 정직하게 말하고있었다. 모연이 됐다며 시진을 밀어내고 침대 밑에 떨어져있는 옷을 주워 들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

"내가 좀 심했나...? 오늘 나가서 뭐하지..."

모연이 씻기 위해 들어가고 홀로 남은 시진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알차게 보내는 걸까 하는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유시진씨. 뭘 그렇게 혼자서 중얼중얼거려요?"

모연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시진의 앞으로 다가와 앉는다.

"오늘 뭐할지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강선생 하고 싶은 거 있습니까?"

"음....쇼핑이요."

"쇼핑? 그 막 백화점을 계속 뺑뺑 돌고 옷 사고하는 그...쇼핑 말입니까?"

"네!!"

"아. 깜짝이야."

시진도 남자는 남자. 쇼핑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모연이 원한다는데 거절할 시진이 아니다. 모연의 제안에 옷을 갈아입고는 운전기사가 되어주겠다며 모연을 에스코트하며 백화점으로 향한다.





-

"유시진씨 우리 점심은 샌드위치 먹어요."

"샌드위치로 됩니까? 아침도 안 먹었는데?"

"저기 샌드위치는 언제 먹어도 맛있으니까. 싫어요 좋아요?"

"좋습니다.'

서로 마주앉아 먹기 좋게 샌드위치도 까주고, 음료에 빨대도 꽂아주고, 입에 묻은 빵 조각도 떼어주며 평범한 연애를 즐기는 이들이다. 계획했던 것처럼 병원에 잠깐 들려 일을 처리하고 나온 시진과 모연이 즐겁게 백화점으로 들어섰다.




-

"이거 어때요?"

"이쁩니다."

"그럼 이건요?"

"그것도 예쁘네요."

"둘 중 뭐가 더 괜찮아요?"

"둘 다 괜찮습니다."

"유시진씨."

"왜요~"

"이왕 쇼핑에 협조 하는거 제대로 좀 하면 안돼요?"

커플 옷과 커플 신발을 맞추고 싶다는 모연에게 협조하겠다며 싱글벙글하던 시진은 어디 갔는지, 그새 지쳐 모연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힘들어 죽어가는 시진이다. 그런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쇼핑하는 것보다 천리행군하는게 괜찮다고 말 할 정도인 시진이었으니 모연이 마음속에 참을 인을 새기며 참고 또 참았지만, 계속해서 건성건성으로 대답하는 시진의 태도에 뿔이 나기 시작하는 모연을 시진은 알아채지 못했다.


"나 지금 완전 협조 잘하고있는데?"

"됐어요. 그만 가요."

"어? 정말요? 이제 가는 겁니까? 그럼 이제 뭐하러 가는겁니까? 밥 먹으러 갑니까? 아니면 어디 으슥한 곳을 찾아 볼까요?"

가자는 모연의 말에 생기를 되찾으며 이것저것 물어오는 시진의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헛웃음'이었다.

"유시진씨는 나랑있으면 그런 생각 말고는 드는 생각이 없어요?"

"네? 그게 무슨...."

"나는 유시진씨랑 똑같은 옷도 입고, 신발도 신고 그러고 다니고 싶은데, 당신은 맨날 나만 보면 그거 할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아서요."

".....내가...말입니까?"

"네. 그 쪽이요."

"그거 저 아닙니다. 전 강선생이 하는 거면 뭐든 좋습니다. 신발 다시 구경하러 갈까요?"

그새 바뀌는 시진의 태도에 결국 마음이 상해버린 모연이 아무 말 없이 시진을 쳐다봤다.

"왜....그렇게 봅니까? 무섭게..."

"............"

"내가 뭐 잘못한 겁니까?"

"오늘은 그만 가요. 나 병원 들어가봐야겠어요."

"아니...강선생!! 오늘 휴간데 병원은 왜...아까 갔다왔지말입니다."

".....유시진씨는 정말..."

"........"

여전히 여자의 마음을 모르는 시진이었다. 잘 아는 것 같다가도 아닌 시진의 행동에 모연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저 뒷 말을 기다리는 시진의 표정은 모연의 행동을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다물어진 모연의 입은 다시 벌어지지 않았고 그대로 시진을 지나쳐갔다.


"강선생. 강선생!"

시진이 달려가 모연의 팔을 붙잡아 세웠지만. 뿌리치는 모연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저 조용히 택시를 잡아타는 모연의 뒤를 따라 병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한 동안 병원 밖에 서성이던 시진이 부대로 향했다.










#.

"단결. 관사로 안 가시고 왜..."

"오늘 당직."

"무슨 일...있으셨습니까?"

"......."

물어오는 우근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은 체 눈 위로 손을 올려버린다. 머리가 지끈거려옴을 느끼는 시진이다.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 시진의 모습에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무는 알파팀이다.


"공하사."

"하사 공철호."

"먹을거 없냐?"

"홍삼있지말입니다."

"줘. 배고프다"

"강선생님이랑 저녁 안 드셨습니까!?"

"얼른 주지?"

까칠한 시진의 모습에 문제가 단단히도 일어났음을 짐작한 철호가 남아있는 홍삼을 모두 꺼내어 받쳤다.

한개. 두개. 세개를 먹던 시진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돌려 내무반에 위치한 시계를 확인한다.


8시. 점호까지 1시간이 남은 시간이었다.


"번호가....없네. 철호야."

"하사 공철호."

"어제 새로온 애. 김민석인가?"

"행정병 말씀이십니까?"

"어. 번호가 없다. 걔한테 가서 어제 내가 시킨거있어. 그거 좀 받아와라. 집무실 아니면 내무반에 있을거야."

"예 알겠습니다."

어제 맡긴 일이 생각난 시진이었다. 지금쯤으면 완성을 했겠고, 내일 점심 전까지 보고를 해야하니 얼른 확인을 해야했다.



철호가 나가고 시진이 시선을 돌려 대영의 행방을 물으면 제 여자친구를 만나러 명주가있는 의무대에갔단다. 연애상담이 필요할 것 같아 명주가 필요한데 지금 전화하면 또 방해한다며 난리를 칠게 분명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시진에게 모연과의 관계회복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 군말 없이 명주를 이 곳으로 불러드릴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

'단결. 무슨 일이십니까.'

'최중사 다쳤어. 내무반으로 좀 와. 빨리!'

'예? 어디가 말입니까? 어쩌다가!?'

'팔. 좀 심해. 피 엄청 난다. 빨리 와.'

'바로 가겠습니다.'

먹히지도 않을 수법이었지만, 혹시 사실이라면 큰일이니 의심이 가면서도 필요한 의료품을 챙기는 듯한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자 시진이 빙글빙글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연이 화가 난 이유를 모르겠는 시진이었다. 쇼핑하자고해서 열심히 따라다녀 줬고, 물어봐서 대답해줬고, 그만하자고해서 그러자고했고, 대체 뭐가 문제였던걸까....먹고있던 홍삼을 옆으로 치운 시진이 다시 침상위로 몸을 뉘였다.





-

철호  "팀장니임--!"

민석  "단.결!"

시진  "왔냐."

철호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아직 완성 못했답니다."

시진을 부르며 들어오는 철호와 인사부터 하는 민석의 모습이 살짝 대조적이다.

철호의 말에 몸을 벌떡 일으켜 민석을 바라보는 시진의 표정이 복잡해보인다.


시진  "왜?"

민석  "그게...어..컴퓨터가 고장이났습니다."

시진  "언제부터"

민석  "오전에 고장났습니다."

시진  "그런데"

민석  "내일 고쳐주신다고...하셔서...."

시진  "허, 참나- 와..이걸 어떡하지?"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아 가라앉아있던 시진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설명 좀 해달라는 듯 팀원들을 훑었다.



"내가 내일 발표있다고 말 안 했나?"

"하셨습니다."

"근데"

"컴퓨터가...."

"이 새끼 봐라? 뭐가 잘못인지 모르네?"


컴퓨터가 고장이면 보고를 했어야했다. 그랬다면 대영에게 부탁을했던가. 다른 컴퓨터를 사용하게 해줬다던가. 컴퓨터 수리를 좀 더 빨리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을 것이었다. 하다못해 시진이 부대복귀를 서둘렀을 것이다. 그랬다면 모연과 싸울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무슨 일이던 기승전모연이 되면 시진의 입에 웃음이 번지기가 마련이지만 지금 이 상황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 화만 나는 시진이었다. 대체 학교에서 뭘 배운 건지 이 모양으로 행정병은 어떻게 온 건지 오늘 따라 되는 일이 없다고 느끼는 시진이 결국 몸을 일으켜 세우며 험해지는 분위기에 얼어있는 민석에게 명령을 내렸다.




"박아"

민석이 시진의 말에 서있던 자리에서 바로 몸을 숙였다. 딱딱한 바닥에 몸을 지탱하려니 어질한 기분이었다. 같이 들어왔던 철호와 시진의 맞은편에 앉아 DVD를 보던 광남. 그리고, 기타 줄을 튕기며 놀고있던 우근 또한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하고있었다.


"보고 왜 안 했어?"

"그게...."

"대답 똑바로 안 해!?"

머뭇거리는 모양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언성을 높이자 움찔하는 모든이들. 그리고, 큰 소리에 뭔 일인가 싶어 열린 문으로 뛰어 들어오는 명주와 대영이 보인다.


"단결. 이게....뭐..최중사다쳤다고...?"

다쳤다는 최중사는 너무나도 멀쩡해보였고, 어제 인사를 나눴던 소위라는 녀석은 집무실이 아닌 알파팀 내무반에서 얼차려를 받고있는 것이며, 모연과의 데이트를 하고와 기분이 좋아야 할 시진의 표정은 왜이리도 화가나있는건지 알리가 없는 명주와 대영은 상황 파악이 되질 않아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대답. 상관 말이 우습나."

"아닙니다! 그...많이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너가 뭔데 판단을 해!!? 중요하고 안하고는 내가 판단하는거다. 알아들어!?"

"예. 알겠습니다"

"윤명주는 나랑 얘기 좀하고, 나머지는 나 올 때까지 감시해."

"단.결!"

팀원들을 뒤로하고 시진이 내무반을 나섰고, 들고있던 응급키트가 무색하게 멀쩡한 우근의 팔을 한 번 봐준 명주가 시진을 따라 나섰다.







-

"선배. 무슨 일입니까? 최중사 팔은 뭐고 아까 걔는 뭐고...설마 또 저 낚으신 겁니까?"

"나 어떡하냐?"

명주가 들고 왔던 구급상자는 아무래도 시진의 계략이었던 듯했다. 그냥 오라고했다면 대영과의 데이트를 위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달려오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하필 타이밍이 맞지 않아 잘못한 민석으로 상황파악이 늦은 것 뿐. 하지만, 시진은 명주의 궁금함은 풀어주지 않고 자신의 상황이 더 급했다.



"뭘 말입니까."

"그게 문제가 아니야. 강선생이 화났어."

"강선배가 말입니까? 왜?"

"몰라. 그게 문제야. 왜 화가 난 건지 모르겠어. 나 어떡하냐?"

"그래서 화난 선배 두고 부대로 돌아온 겁니까?"

"하필 오늘 당직이다. 거기다 내일 올릴 보고도있고...후..."

불과 몇 분 전. 언성을 높이던 시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표정으로 푹 늘어진 강아지마냥 시무룩한 모습에 명주가 고개를 저었다. 도통 이해할 수가 없는 양반이다.




"오늘 뭐했는지 쭉 말해보십쇼."

명주의 말에 '그러니까'로 시작해 모연과의 1박2일을 줄기차게 읊는 시진이다. 아침에 과일을 깎아먹고 병원에 갔다가 샌드위치를 먹고 백화점에간 것까지.


아무도 없는 집무실 테이블에 마주앉아 시진의 말을 듣던 명주가 어느 순간 표정을 확 구기자 시진이 하던 말을 멈추고는 명주를 빤히 쳐다본다.


"뭐지. 뭐야? 내가 잘못한거야?"

"정말 강선배가 왜 화난 건지 모르겠습니까?"

"어. 그러니까 미치겠지."

"강선배가 커플티 맞추자고 했고, 거기에 선배는 좋다고 동의했고. 그럼 끝까지 협조를 잘 하셨어야죠. 무조건 좋다. 예쁘다. 괜찮다. 이렇게 말한다고 되는게 아니지말입니다."

"아니 예쁘고 괜찮은걸 예쁘다고 하는게 왜?"

"어휴... 완전 서상사랑 똑같지 말입니다.”

“…….?”

“상황 봐가면서 선배도 옷 고르는 척도 좀 하고, 입어보기도 좀 하고 그러면서 진심으로 협조하셔야지. 대충 대충 예쁘다고하면 어느 여자가 좋아라합니까? 그리고, 그만 하자고 한다고 거기서 좋아하면 강선배 기분이 좋겠습니까? 그리고 뭐요? 으슥한 곳? 이 냥반이!! 저였으면 이 구급상자 선배한테 썼을겁니다."

"........"

"입장 바꿔 생각해보십쇼. 강선배가 선배랑 같이 좋으려고하는거지 강선배 혼자 좋다고 그랬겠습니까?"

"....그럼 어떡해?"

"어쩌긴 뭘 어쩝니까. 당장 강선배 한테가서 약속부터 다시 잡고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야죠."

"나 오늘 당직이다. 거기다 내일 보고 PPT도..하 김민석 이 새끼!하...."

"그래서 아까 분위기가 그랬던 겁니까?"

"PC가 고장이라 못했단다. 그래 놓고 보고도 안하고 하아..요즘 애들 왜 저러냐? 기본도 안 된 놈들 데리고 뭘 하란건지..."

"그런 애들한테는 매가 답인데 참 아쉽지말입니다."

"나중에 육사로 전출신청 할 까봐. 이것들 교육시키러."

"어우. 지금도 행정이라면 기겁하시는 분이 괜히 가셔서 사고치면 큰일입니다."

"그런가?"

"일단 강선생한테 연락부터 하십쇼. PPT야 점호하고 밤새 하시면 되는 거고"

"그래야지. 가봐"

"수고하십쇼. 단결."

시진이 손을 들어올려 명주의 인사를 받고는 핸드폰을 켜 모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 그 시각 알파팀 내무반.

시진이 명주와 내무반을 나서자 긴장이 풀리듯 주저앉는 3명의 팀원들과 딱딱한 바닥에 머리를 박고있는 신입을 번갈아 보던 대영이 무슨 일이냐며 묻는다.



"팀장님이 시키신 일이있는데 안 했답니다."

"내일 발표자료? 왜?"

"컴퓨터가 고장나서 못했는데 보고를 안 했답니다. 고로, 오늘 당직이신 팀장님은 밤새 PPT를 만드셔야 한다는 거죠."

"혼날짓했네. 그래도 어지간하면 이렇게까지 화내지 않으실텐데..."

"제 생각엔 강선생님이랑 무슨 일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들어올 때부터 저기압이셨습니다."

"불 난 집에 기름 부었구만?"

"그런셈이죠."



5분.

10분.

15분.

머리가 뚫리는게 이런 기분이구나...싶은 민석이다.


따지고들면 지금 내무반에있는 이들은 자신보다 계급이 낮았지만 그렇다 한들 뭐라 할 수는 없었다. 민석은 하늘같이 높은 시진의 명령을 받고있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내무반에 남아있는 이들은 말 그대로 감시만 하고있었다.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져도 딱히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힘든 듯 신음소리를 내도, 무릎이 땅에 닿았다고 해도 무방한 자세를 해도 딱히 제지 하지 않았다. 그리고, 5분이 더 지나고 20분이 되었을 쯔음. 시진이 반응 없는 전화기를 들고 내무반으로 들어왔다.



관물대 정리를 하고있는 대영과 기타 줄을 튕기며 앉아있는 우근. 저번 더블데이트에서 가지고 온 늑대와 토끼인형에 새로운 옷을 만들어주고있는 광남과 철호. 그리고, 내무반 바닥에서 낑낑거리고있는 민석까지. 감시하란다고 진짜 감시만 하고있는 이들이었다.



지지리 운도 없이 때 맞춰 넘어져주는 '다섯 번'이라고 말하는 것은 막내인 철호였다. 말하면서 민석을 한 번 바라보기 위해 시선을 돌리던 철호가 시진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단결' 인사를 하자 그제서야 하나 둘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시진을 바라본다.


"다섯번?"

"아. 감시하라고 하셔서..."

"30분동안 5번이면 체력이 너무 부족한데? 4학년 땐 학생회 아닌 이상 훈련 때 말고는 딱히 굴려질 일도 없으니 그러려니 하지만...그래도 생각보다 너무한데?"

"으..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건 없고, 일어서"

차마 자신의 직속상관 앞에서 머리를 만지며 아픈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얼굴로 피가 몰려 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차마 시진의 눈을 마주보지는 못하고, 애써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응시한 체 차렷 자시를 취한 체 시진의 다음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상관이 일을 시키면, 결과만 보고하는게 아니라 중간보고도 하는거다. 그래야 중간에 수정을 하던 다른 지시를 내리던 할 수 있어.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바로 보고해. 모르는게있으면 내가 아니더라도 집무실에있는 상관들한테라도 물어보고, 누구한테 물어봐도 대답해준다. 너처럼 그냥 손 놓고 가만히있지는 않아.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덕분에 오늘 하루가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네."

"아.죄..죄송합니다!"

"가서 점호 준비해."

"단결!"

시진의 명령에 민석이 신속하게 내무반을 빠져 나가자마자 대영에게 엉겨붙으며 신세한탄을 한다.



"서상사아. 나 어떡합니까?"

"강선생님이랑 싸우셨습니까?"

"강선생이 내 전화를 안 받습니다..."

"송선생님한테 한 번 해보십쇼."

"아! 그래야겠습니다. 그리고, 서상사 오늘 저 도와주셔야 합니다."

".......?"

"아 PPT말입니다. A4는 정말이지...어후..."

시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자 대영 또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황당한 표정으로 시진을 바라본다.

'상관만 아니었으면....'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 사이. 상현이 전화를 받은 것인지 표정이 밝게 변하는 시진. 아무리 생각해도 시진의 안에는 다른 인격이 존재한다. 라는 결론에 도달한 알파팀원들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현을 통해 모연과 전화연결에 성공한 시진은 절대 전화를 끊게 두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필사적이었다. 자신의 핸드폰이 모연이라도 된 것 인냥 꽉 붙잡고 어쩔줄을 몰라하며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강선생. 내가 잘못했습니다. 우리 내일 다시..아니아니. 강선생 언제 시간됩니까? 내가 내일 진짜 큰일이있어서 내일은 안될 것 같고...아니 지금 당장 병원에가고 싶은데 오늘 당직이어서 못 갑니다. 거기다 오늘 새로 온 애가 사고쳐서 해야 할 일도 있고,,,,,아니! 변명 아니지 말입니다. 지금 갈까요? 당직은 명주나 서상사한테 맡기면 됩니다. 지금 갈까요? 내가 미안합니다아...네? 정말요!? 진짜? 내가 모레 꼭 가겠습니다. 방송국으로 가면 됩니까? 그럼 강..."

"팀장님 9시 10분전 입니다."

"아잇..알았습니다. 강선생 저 이제 점호하러가야합니다. 내가 끝나고 다시 전화하겠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진짜진짜 미안했습니다. 네. 흐흫..나도 사랑합니다. 수신양호!"



전화를 끊고 내무반을 나서 집무실로 향하는 시진의 발걸음이 가볍다.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언제 그랬냐는 듯 기분 좋은 모습에 내무반에 남아있는 이들은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정말이지 중대장이자 팀장으로서의 시진과 한 여자의 남자로서의 시진의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모연과의 전쟁이 이대로 끝나지 않았다면 점호시간, 더 나가 내일 아침까지 여파는 계속되었을 것이었다.




어떤 자잘함이 시진의 신경을 건드렸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모연의 너그러운 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부대원들이다.









우주인 : 끄적끄적 내 마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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