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단체에서는 같은 목적을 두고 함께 활동할 사람을 모읍니다. 특정 기간 동안 함께 활동하다가, 새로운 회원을 받아야 하면 새로운 기수를 모집하기 마련입니다. 기존 회원들은 모임에 남을 수도 있고 졸업을 하기도 합니다. 이게 동아리, 동호회, 팬클럽, 서포터즈 등이라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회사는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업력이 긴 회사는 그만큼 오래 다닌 직원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물갈이가 되고 신입사원이 많이 들어온다 할지라도, 적어도 한두 명 정도는 원년 구성원이 함께해야 하죠. 그게 여의치 않다면 1기와 2기를 모두 알며 중간에서 이들을 연결해줄 오작교 역할을 할 사람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만약 CEO와 경영진을 제외한 실무진 원년멤버(소위 말하는 1기)가 한 명도 남아있지 않은 회사라면? 심지어 1~2기 사이, 2~3기 사이에 존재하던 사람조차 없다면? 이건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동아리도 아닌데 기수별로 물갈이하며 인적구성을 바꾸는 회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1. C 회사

이곳은 제가 입사하기 전, 대대적인 물갈이가 두 번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저는 C사 2기로 입사한 셈이었습니다. 당시 C사 업력은 약 6년가량이었으며 CEO와 함께 창업을 했던 구성원들은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CEO의 친구인 가 실장도 중간에 입사했기에 원년 멤버라고 하긴 모호합니다.

사실 제가 종사하는 업계는 1~2년에 한 번씩 회사를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물갈이가 잦은 직군이라도 1기와 2기 사이를 잇는 징검다리는 있어야 하죠. 이곳은 1기 구성원 전원이 비슷한 시기에 퇴사했습니다. 가 실장이 회사 시스템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기존 1기 직원들과 갈등을 일으킨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덕분에 기존 업무를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2기 중 가장 먼저 자리 잡은 나 과장과 다 대리가 업무를 가까스로 수습해나가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업무 일선은 진정될 기미가 없었고, 충원을 시도해도 얼굴은 계속해서 바뀌었습니다. 모두 1기 구성원들이 퇴사한 것과 비슷한 이유, 그리고 가 실장이 받아오는 일(28화 참고) 때문에 버티지 않고 나가버린 것이죠.

이렇다 보니 회사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겠죠. 앞선 회차에서 언급한대로 나 과장과 다 대리가 무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24화 참고). 결국 다 대리는 가 실장과의 갈등이 극에 달해 퇴사했고 그 뒤로도 한참이나 C는 아비규환이었습니다.



#2. D 회사

D는 물갈이를 정말 자주 했는데요. 업력이 20년 즈음이라 제가 몇 기로 입사한 것인지조차 가늠이 안 가긴 합니다. 그나마 이곳에서는 동료 씨가 전임자와 제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아주 잘해준 덕분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여러 이유가 겹쳐 퇴사를 결정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저는 평소에도 "D 망해라",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머릿속으로야 20년 동안 사람을 부품처럼 갈아치우면서 버텼는데 앞으로도 잘 버티겠지, 하고 예측하긴 했지만요. 그런데 반전이 있었습니다. D에서 저와 동료 씨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간 겁니다.

그나마 회사의 옛 자료를 보고 어느 정도 추측을 할 만한 사람이 전부 없어진 셈이죠. 보지 않아도 D 회사의 업무 일선에 얼마나 혼란을 가져다주었는지 알만합니다. 그 외에도 BB와 거래가 끊긴 것, 경영난 등 여러 문제가 겹치긴 했겠죠. 결국 그 끝은 네, 그렇습니다(10화 참고).



#3. P 회사

G 회사가 싫어서 이직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에 면접을 봤던 곳이었습니다. 이 곳은 제 거주지역 업계에서도 꽤 이름이 알려졌었고, 소문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연봉도 제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었고 기존 회사와의 거리도 크게 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P에 가지 않았던 이유는 잡플래닛에 올라온 리뷰 때문이었습니다.

잡플래닛에 나와 있는 P 회사는 빛 좋은 개살구였습니다. 외부에서 보기엔 별문제 없어 보이지만, 임금체납과 추가근무로 기존 직원들과 갈등을 빚던 과정이 리뷰에 상세히 적혀있었습니다. 내부고발자가 아니고선 결코 모를 내용까지 말입니다.

엇비슷한 시기에 올라온 P 회사 리뷰는 두 건. 제가 들어가야 할 부서의 정원은 두 명, P 회사에서 뽑는 인원은 해당 직책 두 명.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은 딱 한 가지였습니다.

P 회사의 특정 부서는 전원이 퇴사했고 물갈이되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이죠. 이런 때에 입사하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부담이 크겠죠. 그 뒤로도 해당 부서에 들어간 사람이 없었는지 몇 달 동안 P 회사의 구인공고는 사람인에 꾸준히 올라왔습니다.



면접 때는 회사 구성원들의 면면을 자세히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새 팀에 잘 적응하기 위해선 사람들의 인성이나 성향도 알아야 하지만 상태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기존 사람들은 직장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상태요. 이건 회사에 직접 들어가 봐야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자신의 일터를 완벽하게 마음에 들어 하는 직장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도 오래 다닐 수 있는 회사는 그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임원진의 생각이 좋거나, 업계에서 발전 가능성이 보이거나, 복지나 근무 여건이 괜찮거나 하는 등의 조건 말입니다. 부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모두가 이런 조건을 갖춘 곳에서 일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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