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날이 있다. 촉이 너무나도 좋아서 딱 들어맞는 날. 문제는 그걸 알면서도 상황을 모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곤 한다. 예를 들면 끈끈한 연을 지니며 열심히 일 해 왔던 회사 상사가 급작스레 점심시간에 혼자 슬그머니 불러내, 회식 자리에서조차 먹어보지 못했던 고급스런 참치 대뱃살을 사준다던가- 아니면 정갈한 음식을 내다주는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 배를 빵빵하게 불리게 해준 후, 자네 고생했다네. 하고 사직을 권하는… 뭐, 그런 상황.


그래서 오늘 아침, 벼락이라도 맞은 듯 빳빳하게 하늘을 향해 솟아난 머리를 정리할 틈도 없이, 요란하게 귀를 찔러대는 알람소리를 끌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상체만 일으켜 그 찝찝한 기운을 고스란히 느낀 히나타였다. 겪어보지 못했으면 그냥 오늘 하루가 불길할건가 보다, 했지만 이건 한 두 번 경험해본 기운이 아니기에 히나타는 건조한 두 손으로 연신 마른세수만 해댔다. 좆됐다. 망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곤 딱 저 두 단어였고.



“미야기로 가라고요?”



그리고 제 예상과 전혀 다를 것 없는 일상이 오늘 주르륵 펼쳐질 '뻔' 했다. 이 '뻔' 이란 부분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평소 바락바락 소리만 크게 지를 줄 알던 우카이 잇케이 상사, 연구소 센터 소장이 오늘따라 제게 참으로 잘 해준다 싶어, 아. 오늘 나는 이 센터에서 기어이 잘리나보다. 하고 졸졸 쫓아다녔더니, 예상치도 못한 발언에 바보같이 쩍 벌어진 입이 오므라들 생각을 하질 않는다. 차라리 잘린다는 이야기가 소장의 입에서 나왔으면 올 게 왔구나, 했겠는데… 청천벽력 같단 말은 이럴 때 쓰나보다. 찝찝한 더위와 함께 몰고 온 허무맹랑한 발령 소식에 곱게 펴져있던 미간이 흉하게 일그러진다.



“가서 요양이나 하고 와.”

“네?”

“요양하고 오라고.”

“저 아직 창창한데요.”



요게. 하며 손주름이 가득한 어르신의 주먹놀음에 두 팔을 잽싸게 들어올리며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러니까, 저 아직 멀었다고요. 팔팔해요. 도쿄생활만 25년째인데 이제와서 그, 아니. 시골이라고 칭하긴 조금 그렇지만 그래도 도쿄보단 촌인 건 맞잖아. 억울하다는 눈빛을 보내어도 저 완강한 표정을 보라. 전근이나 가라는 소장의 얼굴이 이렇게 무서웠던 적이 있었나. 단연컨대 단 한 번도 없었으리라.



“저, 저 말고도 다른 애들도 많잖아요.”

“누구.”



누가 있더라. 히나타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저와 함께 일하는 동기들을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자신을 제외하곤 스포츠 메디컬 센터에 있던 대부분의 인력들이 전속 팀에 들어갔기에, 프리랜서라 불릴만한 사람이라곤 자기 혼자 뿐이다. 아, 그래도 며칠 전 까지 함께 식당가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야마구치가 떠올라,



“야마구치라던지-.”



라고 말하니 소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사람 하나 죽여버릴지도 모를 단단한 팔로 팔짱을 낀다.



“걘 이번에 B실업 배구팀 전속 물리치료사로 갔어.”



B실업팀이란 소리에 의자에 딱 달라 붙어있던 엉덩이가 절로 들썩였다. 배구라면 환장하는 걸로 센터 안에서도 유명했던 히나타기에, B실업팀에 메디컬 전담이 필요하단 소식이 일파만파 퍼졌을 때 저 자리는 저의 것이라며 센터 안을 누비며 외치던 게 엊그제인데! 히나타의 조막만한 두 손이 테이블 위로 쾅! 하고 내리쳐졌다. 죄 없는 붉은빛 나무젓가락과 뱃속으로 곱게 들어간 초밥덕분에 표면이 깨끗해진 하얀 그릇들이 히나타의 움직임만큼 들썩인다.



“그거 제 자리였잖아요!”

“그러니까 일자리 주잖아, 이 멍청아!”



억울해, 속상해. 난생 시골이라곤 대학 다닐 시절, 농촌 활동에 갔던 걸 제외하곤 단 한 번도 없었건만. 직장 때문에 제 마음의 안식처인 도쿄를 떠나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럴 거면 그냥 사표를 던지고 말지.



“그럼 저 그만둘래요.”

“진짜?”

“진짜요.”

“그래, 그럼.”



오, 노인네가 무슨 노망이라도 든 걸까. 이렇게 쉽게 물러날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나와도 소용없다는 걸 알리기 위해 무언의 언쟁으로 제 눈앞에 곱게 놓인 때깔 좋은 대뱃살을 입에 우겨넣었다. 녹는 게 예술이야, 역시 비싼 게 최고지. 물론 가성비가 좋은 횟집에 가서 먹는 횟감도 제 입 안을 행복으로 가득 메워주게 하긴 했지만, 얜 메워주는 정도가 아니다. 펄떡펄떡 춤을 추게 만들 정도의 맛이었다.



“…페이 두 배로 쳐주려고 했는데.”



그래. 그래서 비싼 게 최고고, 그럼 이 고급진 음식들을 마음 놓고 떵떵거리며 먹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히나타는 빈 접시에 오돌토돌 잘게 남아있던 밥풀들을 집기 위해 들었던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싱글벙글 웃고 있는 소장을 바라보았다. 아, 저 얼굴 본 적 있어. 에어컨이 쌩쌩하게 불어나오는 커다란 영화관 스크린에서 나오는 조커.



“두 배요?”

“원하면 조금 더.”

“갑자기 저한테 왜 그러세요?”

“그러라고 상부에서 지시 내려졌으니까.”



기가 찬다. 내가 돈을 두 배로 준다고 해서 미야기로 내려갈 성 싶은 걸까. 히나타는 티비 드라마에서 갑이 된 위치가 된 사람처럼 그리 높지 않은 콧대는 하늘을 향해 치솟게 하고, 고개를 획 돌려 저를 빤히 바라보는 소장과 같이 팔짱을 낀다. 저, 절대 안 가요.  목소리는 왜 또 티나게 떠는 건지 자신도 모르겠다.



“지낼 곳도 따로 있는데.”

“…….”

“뭐. 그럼 이 건은 히토카 양에게….”



망설임 없이 핸드폰을 꺼내는 소장의 모습에 히나타의 말간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니, 사람한테 세 번은 물어봐야 예의 아닌가? 두 번 물어봤다고요 두 번. 히나타는 감히 상사의 핸드폰을 냅다 손에서 날쌘돌이마냥 빼낸다. 소장의 대각선으로 찢어진 두 눈매가 오늘따라 더 매섭게 느껴지긴 하였으나, 히나타는 그의 핸드폰을 붙잡은 손을 벌벌 떨며 이를 빠득빠득 간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히나타의 고개가 잘 익은 벼 처럼 점점 숙여진다. 얼굴도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가, 가서 뭘 하면 되는데요!”



승낙 아닌 승낙이 이루어지는 이 상황을 개탄하며, 몸이 힘을 빳빳하게 주고있던 히나타는 종내 고급진 음식들이 즐비해있는 탁상 위에 상체를 기대었다. 아아. 더러운 자본주의 사회. 돈이 제일인 세상. 하지만 원하는 걸 원 없이 하기 위해선 지폐가 필요하니.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은 순백의 자기그릇처럼 하얀 백기를 마음 속 높은 언덕 위에서 선 채 휘휘 흔들고 세 번 외쳤다. 자본주의 만세, 만세, 만만세.




*




[와, 그래서 진짜 간다고?]

“어. 가야지 뭐.”



짐은 딱히 많지 않았다. 본가가 도쿄에 있으니 필요한 짐이 있으면 언제든 본가로 향하면 됐고, 무엇보다도 자취방이 좁았기 때문에 물건을 쉬이 두질 못했다. 히나타는 대학을 입학하기 전 까지만 해도 자취에 대한 로망스가 가득한 순수한 소년이었다. 입에선 욕이라곤 해본 적 없는 순진무구함의 절정체. 그런데 왜 사람이 로망 하나 꿈꾸지 않는, 이런 꼴이 됐냐 물어본다면- 사회 나와봐라. 곱게 자란 인간도 모진 일들 겪다보면 저절로 굳세어지더라.



[근데 가서 뭘 하는데?]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지역이 적힌 종이 하나만 던져주고, 거기 집 주인 물리치료 전담하면 된다던데?”



히나타는 행거에 어수선하게 걸린 옷들을 하나씩 빼내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가기 전에 여름 옷들도 좀 사야겠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기껏해야 단색 반팔 서 너개. 혹은 후줄근한 반바지들. 하긴, 애초에 센터 안에 들어가 있을 땐 체육복만 입고 다녔으니 사복가짓수가 부족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월급도 두 배로 준다는데, 사치나 부릴까 싶어 오늘은 간만에 에어컨도 틀어본다. 삑, 소리와 함께 너무 간만에 틀어 찌린 냄새를 동반하는 미적지근한 바람이 먼저 불어온 게 좀 흠이긴 했지만.



[장기 팔리러 가는 거 아냐?]

“저주 작작 해라? B실업팀 들어갔다고 나한테 약 올리는 거지?”

[전-혀.]



맞구만 뭐. 히나타는 모난 입술을 비죽이며 푸르댕댕한 색을 지닌 캐리어에 옷을 우겨넣었다. 지퍼백을 사용해서 부피라도 좀 줄일까 싶었는데, 그건 또 귀찮다. 당장 필요한 것만 가방에 넣음 되는 거고, 가서 부족한 게 있으면 사면 되는 거다. 어제도 소장앞에서 나지막이 속으로 외친 말을 곱씹는다. 자본주의 만만세. 돈만 있으면 다 해결 돼. 히나타 쇼요의 인생 모토는 그러하다.



[그래도 그 의뢰한 사람, 돈 되게 많은가보다? 안 그러고선 남의 물리치료 페이를 두 배를 쉽게 부를 수가 있나?]

“그러게나 말이다. 누군지 참 궁금하네.”



대충 넣을 옷가지들은 다 들어간 것 같아, 히나타는 쌓여있는 짐들을 손에 힘을 주어 꽉 누른 뒤, 캐리어 지퍼를 굳게 닫았다. 옷가지만 정리하는데도 벌써 1시간이나 소모해버려 남은 짐들을 어찌 처리해야 할 지 막막해지는 시점이었다. 히나타는 땀에 절은 이마에 손을 얹으며 땅굴까지 파 낼 정도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옅게 저었다.



[아무쪼록 조심해서 다녀와.]

“진짜 유배가는 기분이네….”



히나타는 폭신폭신 케이크 스펀지같은 매트리스에 제 몸을 뉘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덕지덕지 붙여준 야광 별자리 스티커. 아, 저거 떼내야 하는구나. 안 그러면 방을 뺄 때 분명 집주인이 뭐라 할 것이라. 그리 생각하곤 눈을 감았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체력이라도 보충해두고 내려가야지. 가뜩이나 날이 너무 더워 쉽게 지치기 일쑤다. 




*




그래도 시대가 좋아져서, 다행히 미야기로 내려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돈을 내는 만큼 다른 지역으로 빨리 도착할 수 있으니. 이래서 히나타는 자본주의 만만세를 안 외칠 수가 없다. 도쿄에서 벗어나 펼쳐지는 풍경은 바다, 혹은 산. 아니면 드넓은 곡식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농촌가들. 그 모습들을 눈에 담으며 몰려오는 지루함을 애써 떨치기 바빴다. 다들 일하느라 메신저도 보지 않고, 타이밍도 참 나쁘게 역에 도착하자마자 이어폰을 잃어버려서 할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묵을 멘션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이어폰부터 주문하리, 그리 마음을 먹는다.


센터 소장이 제게 준 두 장의 종이. 하나는 자신이 묵을 멘션이라 하였고, 또 하나는 물리치료가 필요하다는 사람이 사는 지역의 이름이었다. 주소가 아니고, 지역 이름.


누구일까. 혹시 다른 지역으로 전근을 간 전례가 있냐고, 제가 유독 잘 따르던 미남의 스가와라 코우시에게 물어보니. 그 예쁜 눈망울이 여기 저기 도르르 굴려지다 손뼉을 치며 하는 말. 아니, 그런 적 없는데? 그 말에 히나타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냥 제가 운이 참 없는 사람인가 보다. 그렇게 결론을 지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도착했어요.]



제 몸집만한 캐리어를 끙끙 힘겹게 끌어내려 신칸센에서 내리니, 도쿄보다 더 푹푹 찌는 더위의 열기가 히나타의 온 몸을 둘러쌓다. 와, 환영식 한 번 끝내주네. 히나타는 도쿄역보단 인파가 덜 몰린 역 근처를 쭉 훑어보았다. 생각보단 덜 시골인가보다. 그냥 천장 높이가 조금 덜 높고, 역 내 디자인이 촌스러운 것을 제외하곤 도시와 별 반 다를 게 없었으니. 히나타는 어깨를 으쓱이고 캐리어 손잡이를 잡아 짐을 질질 끌고 갔다.



“아저씨, 일단 카루마이마치로 좀 가주세요.”



대충 잡은 택시에 몸을 실어 조금 더 외진 곳, 산이 그득한 곳으로 향한다. 미야기에 오기 전, 받아둔 지역을 대강 웹에 검색해보니 주변에 있는 거라곤 마트 몇 개, 주택가, 그리고 학교 정도 뿐이었다. 일거리에 지쳐 열이 머리 끝까지 차오를 때 즐길 유흥거리, 놀거리라곤 하나 보이지 않는 곳에 제 처지가 처연해보이긴 했지만 이미 온 걸 어떡해. 그냥 가야지. 콩, 하고 머리가 유리창에 닿았다. 조금 눈이나 붙일까 싶던 찰나,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진동에 시선은 옮기지 않은 채 손으로만 핸드폰을 꺼내어 들어올렸다.



[그러고보니 그 치료받는 사람의 이름을 가르쳐 준 적이 있던가?]



그걸 이제야 물어보시네요 소장님. 히나타는 심드렁하게 메시지를 작성한다. 



[안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제대로 된 주소는 언제 보내주시는 거예요? 지역만 알면 뭐 하냐고요.]



전송된 메시지를 잠시 바라보다 다시 바깥으로 시선을 돌린다. 푸르다. 도시와는 또 다른 경치에 신선함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 걸까. 히나타는 헤이즐넛 색의 두 눈동자에 담겨지는 시골의 풍경에 사뭇 새로운 감흥을 느끼게 된다. 빽빽한 높은 건물들로 들어 선 도쿄와는 달리 꽉 막힌 속을 뻥 뚫어주는 것만 같은 드넓은 자연의 광경에. 그리 감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손에서 메시지가 도착했단 진동이 부르르, 울린다. 



[이름은 카게야마 토비오.]



카게야마 토비오라…. 낯익은 이름이긴 했으나 히나타는 여즉 많은 이들을 만나기도 했거니와, 이름을 잘 외우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소장님, 이름만 주시는 거예요? 제가 주소 물어봤잖아요 주소. 그리 물어보니 한참 뒤에도 소장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기에, 히나타는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등골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하더이다. 우스갯 소리로 장기 팔러 가는 거 아니냐는 야마구치의 말이 떠오르는 때다. 지금 쯤이면 B 실업팀에서 열심히 부상을 겪고 있는 선수들을 케어하고 있을 야마구치를 속으로 울부짖으며 어딜 바라보아야 할 지 초점을 잃어버린 두 동공을 눈꺼풀로 살포시 가린다.

 

야마구치, 나 되게 이상한 일에 말려든 거 같아.







“감사합니다.”



택시에서 내리니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위 아지랑이와 여럿 주택가, 편의점 정도만 보인다. 안 그래도 건조한 에어컨 바람 덕에 목에선 수분 보충이 필요하다며 저들끼리 아우성을 질러댔기에 뭐라도 하나 사서 마시자 싶어 편의점 문을 열었다. 도둑 방지를 위해 달아둔 종소리는 도시에서도 수없이 들어왔지만 여기선 또 색다르게 들리는 거 같아 어깨를 으쓱인다. 워낙 날씨가 후덥지근하고 습하다보니 편의점 안도 당연히 작위적인 에어컨 바람이 숭숭 불 것이라 예측했던 저를 비웃기라도 하듯 안의 공기는 바깥과 다를 바 없었다. 뭐 이런 데가 다 있나 싶어 고개를 돌려 카운터를 바라보니, 진묵색의 머릿결을 지닌 사내가 손님을 반기지도 않고 창가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뭐야?”



진짜 뭔가 싶었다. 저렇게 일해도 사람들이 물건을 사가는 걸까. 미야기는 정말 이상한 동네야. 히나타는 탄산이 들어간 음료를 하나 꺼내들곤 카운터로 다가갔다. 저벅 저벅, 걸어가는 소리가 들림에도 사내는 히나타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저 두 눈동자는 어딜 그리도 보기에 손님을 응대하지도 않는 걸까. 카운터 직전까지 다가간 히나타는 그예 손을 말아쥐어 저와 일하는 사람 사이에 위치한 가판대에 콩콩, 소리를 낸다. 그러자 돌아보는 이의 외모에 헉, 하고 숨을 들이키게 되는 건 왜일까.


잘 생겼다고 해야 할까. 옆 모습과는 또 다른 냉한 모습에 텁텁한 공기로 둘러쌓인 이 곳이 순식간에 냉동고처럼 얼어버려 온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게 만든다. 눈엔 사파이어 보석이라도 박은 듯 반짝이는 게… 근래 센터에서 제가 점지한 꽃미남 스가와라보다 수 십배, 아니. 수 백 배는 더 미남이지 않은가!


시원한 곳에 있던 캔이 바깥 공기와 마주해 생겨버린 물기들이 히나타의 손바닥을 흠뻑 적셨다. 그 캔을 멍하니 든 채 앞에 서 있는 사내를 응시하니, 그예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히나타의 손에서 캔을 자연스레 빼내간다. 아. 이 순간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진다. 천천히 제가 든 캔을 가져가는 사내의 손엔 외모와 어울리지도 않게 굳은살이 덕지덕지 흉하게 나 있었다. 뭐 하는 사람일까. 편의점 일을 한다 해서 이런 손을 지닐 수는 없을 텐데.



“120엔입니다.”



120엔이라 말하는 목소리마저 섹시하다고 느끼는 나. 비정상인가요? 지나가는 사람 하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자신은 변성기가 지났음에도 여즉 여자아이 목소리 같다고 대학시절 까지도 놀림을 당하곤 했는데, 제 앞에 선 사람은 뭐 하나 빠지는 거 없이 완벽해 보여서 그런가. 


문득 예전, 물리치료만 듣기에 수업이 지겹다 느껴 복수전공하던 상담심리학 교수님이 학생들이 꾸벅꾸벅 수업시간에 인사를 하도 해대니, 책을 덮으시곤 우스갯 소리로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자신에게 없는 걸 남이 가지고 있으면  동경심 같은 게 생긴다 하던 이상한 이야기. 딱 그 꼴인 거 같다. 



“손님?”

“아, 네, 네!”



미야기에 오자마자 허둥대는 꼴을 야마구치가 보았다면 크게 비웃었을 것이다. 혼자여서 다행이지. 히나타는 주머니 속에 대충 구겨진 채 갈 곳을 잃고 있던 지폐 한 장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사내는 별 말 없이 그 돈을 받아들여 거스름돈을 마련한다. 뭐, 어딜가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손님에게 말을 거는 경우는 드물었다. 심지어 자신도 학생 시절에 편의점 일을 할 땐 말을 걸어오는 아저씨나, 아주머니들. 여럿 사람들의 관심이 귀찮아 그냥 물건만 사고 넘어가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하곤 했는데…. 갑작스레 그 자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게 되다니. 히나타는 꼭 말아 쥔 손의 손톱을 세워 여전히 물기가 가득한 손바닥을 꾹꾹 누른다. 더위 때문인지, 아니면 낯선 환경에 대한 경계심 때문인지, 그저 손바닥을 누르는 것일 뿐인데 온 몸 전체에 짓누르는 게 느껴진다.



“여기있습니다.”



조그만 검은 비닐봉투에 음료수를 넣어 건네어주는 자의 얼굴을 다시금 바라본다. 필시 조각미남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다면 저 사람을 빗대어도 좋겠단 생각과 함께, 히나타는 그의 손에 들린 봉지를 받아냈다.



“안녕히 가세요.”



정작 가게로 들어올 땐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이가 -착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아까보단 조금 더 살갑게- 제게 인사를 건네어온다. 아. 히나타는 무뚝뚝함이 묻어난 그 인사가 나름 마음에 들어 봉지를 들지 않은 오른손을 위로 든다. 안녕히 계세요! 간만에 활발한 인사를 건네면서.





*




아무리 도쿄에 비해 시골이라 할 지라도 가구 수가 적은 건 절대 아니었다. 히나타는 그저 이름 하나 적힌 종이만 들고 마을 곳곳을 탐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주소 없냐고요, 주소. 그리 물어보아도 소장은 이름만 안다고 했을 뿐이다. 대체 자신이 형사도 아니고 왜 이런 무식한 노가다를 시작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 의뢰한 사람 대체 누구예요. 혹시 저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그리 물어보자 또 그건 아니란다. 의뢰한 사람도 대강 어디 쯤에서만 산다는 것 까지만 알고 그 외엔 아무것도 모른다고. 환장할 노릇이다. 페이 두 배라고 제안할 때 부터 알아봤어. 씨발.


끊어질 것만 같은 동아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파출소에 가서 물어보니, 주민의 개인 보호상 주소는 알려줄 수가 없다한다. 히나타는 억한 심정으로 제 면허증을 보여주며 있는 사정, 없는 사정 싹싹 긁어 부탁을 해도 자기네에선 해결해줄 수 없는 일이라고. 아아,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그래서 지금 뭐 하고 있냐고? 도쿄에서 이토우씨 찾기라도 하는 심정으로 휴대용 선풍기를 돌돌 돌리며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다. 뭐, 마을 탐방하는 거 까진 좋다. 앞으로 얼마나 있을 지 모르지만 자신이 새로이 거처할 곳을 파악해두는 건 절대 나쁜 일이 아니다. 다만 지금은 여름. 조금이라도 바깥에 서 있으면 땀줄기가 절로 생겨 옷들이 소금물에 절어진 곳에 들어갔다 나온 듯 짠내로 뒤덮는 그런 찝찝한 계절인 게 문제였다. 히나타는 볼 멘 소리를 골골 내며 팻말들을 하나씩 확인한다. 



“없어, 없다고. 없어!”



카루마이마치로 전체를 다 경보를 하여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눈 앞이 시커멓게 흐려지다가, 새하얗게 점멸됨을 반복한다. 저는 전생에 나라를 구하지 못했나보다. 대역죄인이었나보다. 안 그러고선 20대 중반, 이렇게 일이 꼬여도 제대로 꼬일 수가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목말라!”



휴대용 선풍기 바람은 이제 더위를 동반해주기만 할 뿐이다. 시원한 바람은 개뿔. 이러다 열사병으로 돌아가시는 게 아닐까, 심히 걱정이 되던 그 때였다. 어제 보았던 편의점이 눈 앞에 보였다. 아, 사막을 정처없이 걸어다니는 행인의 눈에 조그마한 오아시스라도 발견한 것만 같은 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히나타는 얼굴 전체에 고루고루 맺힌 땀방울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진 편의점 문 손잡이를 꾹 잡았다. 뜨듯한 열기도 이젠 여기서 안녕이다!



“어라?”



안녕이어야 하는데, 왜 잠겨있어. 히나타는 애타는 눈동자로 안을 들여다보니, 분명 에어컨도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고 있고- 불들이 훤히 켜져있는 걸 봐서 잠시 자리를 비운 걸로 보였다. 아, 지금 당장 들어가서 좀 쉬고 싶은데. 히나타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편의점 앞에 쭈그려 앉았다. 이러고 있으면 언젠가 오겠거니 싶었다. 여름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더위에 약하다. 탈수도 쉽게 일어나는 편이라 늘 물이 든 텀블러를 들고다니는 편이었는데-. 늘상 센터 안에서 일만 하고 외근은 자주 하지 않았던 탓에 제 체질을 까먹은 게 잘못이었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누굴 탓할 수도 없는 상황이네 이거.


 히나타는 풀이죽어 푹 숙여진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았다. 아지랑이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도로가가 보이고, 우거진 풀숲이 보였다. 길게 쭉쭉 뻗어진 풀잎들을 보며 쟤네도 햇볕을 견디는데, 저라고 버티지 못하는 걸 보니 풀보다 더 못한 존재같이 느껴지는 게 아닌가. 젠장 젠장 젠장. 거의 1년치 욕은 여기 와서 다 하는 거 같다. 히나타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시선을 거두려 했다.


그 때 제 눈길에, 동그란 진묵색 정수리. 풀숲 안 쪽에 사람의 정수리가 눈에 들어온다. 어어, 저거 설마 편의점 알바생인가? 생기 없던 히나타의 두 눈동자에 힘찬 기운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축 늘어졌던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쭈그려 앉아있던 두 다리는 본능적으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게 된다. 히나타는 그 검은 정수리가 보이는 곳으로 걸음을 향했다. 제발 편의점 알바생이길 바라면서.



“어...”



다행히 히나타의 바람대로 그 정수리의 정체는 알바생이 맞았다. 맞는데, 아리송한 광경에 히나타는 잠시 걸음을 주춤였다. 냉미남 편의점 알바생이 아주 매서운 눈빛으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기에 히나타의 눈동자도 절로 옆으로 돌려지니, 세상에. 삼 색의 점박 무늬를 몸에 지니고 있는 새끼 고양이가 바들바들 떨면서 편의점 사내에게서 뒷걸음을 치고 있는 게 아닌가. 히나타는 다시 알바생으로 눈을 돌렸다. 아, 손에 들린 캔 먹이를 보니, 대충 어떤 상황인 지 짐작이 가 히나타는 어깨를 으쓱이곤 편의점 사내의 옆으로 다가가 그가 쪼그려 앉은 것 처럼 자신도 대충 자리를 잡고 앉는다.



“고양이 좋아하세요?”



갑작스런 히나타의 등장에 놀란 사내가 동그래진 눈으로 히나타를 바라보았다. 아, 미안해요. 너무 집중하고 있길래. 히나타는 머쓱 웃음을 지으며 양해를 구한다. 사람이 놀라면 억 소리도 안 난다더니, 아마 저 편의점 사내는 딱 그 꼴인 셈이었다. 



“그렇게 딱딱한 표정으로 노려보기만 하니까 얘들이 안 다가오죠.”



히나타는 혀를 끌끌 차며 검지 손가락만 펼쳐 양 방향으로 휘휘 젓다, 이내 그 손가락 마저 접어 약간 주먹을 오므린 모양을 한 후 고양이를 향해 쭉 뻗었다. 사내는 히나타가 무슨 행동을 하는가 싶어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히나타와 고양이를 번갈아 바라보기만 했다.



“고양이는 이렇게 인사해야 한다구요. 자, 봐요.”



옳지, 이리와. 히나타는 우쭈쭈, 갓난 아기를 대하는 것 처럼 셀쭉 웃음을 지으며 손등을 더 천천히, 새끼 고양이를 향해 뻗었다. 그예 방금 전까지 편의점 사내에게 다가오지도 않던 째깐한 새끼 고양이가 걸음을 한 발짝씩 떼는 게 아닌가. 인사를 하고, 냄새를 맡게 하는 게 먼저라고요. 히나타가 씨익 웃으며 사내를 바라보니, 또 미묘한 표정을 지은 채 고양이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다. 불그스럼 달아오른 두 뺨과 휘둥그레진 두 눈이 어릴 적, 자신이 배구 경기에 푹 빠졌던 그 표정과 똑 닮아있어 풉, 하고 웃음이 절로 터졌다. 사내는 히나타의 웃음은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듯 자신도 손등을 쭉 뻗으니, 히나타의 냄새를 킁킁 맡던 삼색 고양이가 이젠 사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호기심에 푹 빠진 표정이 제법 볼 만 하다고, 그리 생각이 들었다.



“좋은 거 가르쳐 줬으니까 편의점 문이나 열어줘요.”



뭐, 냉미남의 그런 새로운 면모를 본 것도 좋지만-. 저 지금 목 말라서 뒤질 거 같거든요. 손등 냄새를 여럿 맡다  바닥에 내려진 먹이통에 고개를 박아  열심히 먹는 새끼 고양이를 지켜보던 편의점 알바생을 향해 히나타가 손을 뻗었다. 남자는 아, 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죄송하다는 인사를 건네며 히나타의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주잡힌 손에서 후끈한 열기가 전해졌다. 생긴 것과 다르게 손이 참 뜨거운 사람이네. 땀 차는 걸 싫어하는 히나타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손을 빼내곤 먼저 편의점 문으로 향했다. 더위를 식히고 다시 일이나 하러 가야지. 조금이나마 땡볕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온다.





*





“오늘이 며칠.. 아, 벌써 일주일 지났어?”



멘션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벽가에 떡하니 걸린 달력을 바라보니. 그어진 붉은 X자 그림이 7개가 된 것을 보자마자 히나타는 짧은 혀를 끌끌 차며 편의점에서 사온 물건이 가득 담긴 검은 비닐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곤 주머니 속에 있는 잔돈을 손에 쥐어 꺼내어보았다. 어디 보자, 오늘은 제대로 주셨나. 100엔 짜리가 하나, 둘, 셋... 아.

 


“또 거스름 돈 잘못 주셨네.”



땀에 축축히 젖은 옷의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손빨래를 하려 주머니 속에 데굴데굴 굴러지던 돈들을 손으로 꺼내고 보니, 580엔이 남아있는 게 아니라 380엔이 남아있다. 실수라고 하기엔 차액이 너무 큰 편이 아닌가. 모르는 이가 듣기엔 실수일 수도 있지! 라고 말하기엔 이 실수를 단행하신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엔 그 얼굴도 겸사 겸사 보러 가고, 삼색 새끼 고양이에게 먹이를 함께 주는 맛으로 걸음을 향했던 거긴 한데. 이젠 그냥 차액을 받기 위해 걸음을 되풀이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얼굴 잘생긴 거랑 다르게 산수는 더럽게 못하네. 그래도 신은 인간을 공평하게 만들긴 했나보다- 라는 푸념과 함께 히나타는 툴툴대며 오늘 물건을 사며 받아낸 하얀 영수증을 가방 안에 집어넣고 폭신한 침대가에 대 자로 엎드린 채 베개에 고개를 파묻었다.



“카게야마 토비오오오오오..”



이런 사소한 일도 꼬이는데, 도맡은 일이라고 쉽게 풀릴 리 만무하다. 

며칠을 걷고, 또 걸은 노력이 가상하다고 하늘에 계신 알라신께서 감명이라도 받으신 건지 결국 '카게야마 토비오'라고 팻말이 걸린 집을 발견하기는 했다. 했어. 여기까진 좋았다. 세상을 다 가진 듯 두 발이 방방 뛰기 바빴지. 다시 말하지만 도맡은 일이 쉽게 풀리진 않았다. 왜냐고? 히나타는 단 한 번도 물리치료를 행해야 하는 이를 만나질 못했으니까. 


으리으리하고, 전통이 있어 보이는 집 한 채만이 고독을 씹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어서, 히나타는 혀를 끌끌 차며 돌아올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엔 어차피 자기가 상대하는 이에 대해 거짓 보고서라도 올릴까 했지만 그러기엔 차마 양심이 찔리는 터라, 히나타는 어중 떠중 센터 소장에게 오늘도 메신저를 보낸다. 저기, 소장님. 그 사람 이름 말고요, 핸드폰 번호는 없어요? 난감한 건 그 쪽도 마찬가지인 건지, 전화가 걸려 와선 하는 말이 미안하단 소리였다. 못 산다 진짜. 목 끝까지 차오르는 화를 꾹꾹 눌러 담아서 그런지 조만간 홧병이라도 날 성 싶다.



“대체 어떤 사람인 거야.”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기에 여럿 사람에게 이리 엿을 먹일 수 있는 걸까. 사람 하나 물리 치료하기 이리 힘들어서야 원. 이러다 근무 태만으로 잘릴 위기를 맞이하게 되어 백수가 될 것을 상상하니 제 귤색 머리끄댕이를 부여잡고 소리없는 아우성을 지르기 바쁘다. 끝내 '카게야마 토비오씨를 찾습니다.' 라는 전단지라도 배포해야하나, 그런 엉뚱한 상상까지 하게 되 버렸으니 할 말은 다 한 거 같다. 


이러다 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게 된다면, 이건 다 그 이상한 의뢰자 때문인 것이다. 절대 자기 탓이 아니다. 정보 하나 제대로 주지 않은 그 사람 탓이라구. 히나타는 피곤에 절어 뻑뻑해진 눈을 손등으로 벅벅 비비며 몸을 일으켜 침대 헤드 근처에 있던 노트북의 헤드를 열어재꼈다. 넌 이제 센터에 나올 이유가 없어! 해고야! 라고 소장이 그리 말할 것을 대비할 말들을 미리 적어두기 위함이었다.





*





“아니, 얼마나 시골이면 카페 하나가 안 보여.”

-돈이랑 여가를 바꿨다고 생각 해.

“그렇지만 이건 좀 심하잖아.”



산 중에 갈 곳이라곤 고작 편의점 하나. 혹은 공원, 아니면 놀이터. 딱 이 정도였다. 휘황찬란하던 빌딩들 속 에어컨 바람이 쌩쌩하게 나오는 카페라곤 전혀 없는 이 동네에서 히나타는 오늘도 편의점으로 발검음을 유유히 옮기고 있었다. 큭큭, 그러게 누가 거기로 가라디? 야마구치의 조소에 화가 들끓어 올랐지만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기에 울화통은 잠시 접어두도록 하자, 그리 다짐하는 히나타다.


평소엔 오후 7시 즈음에 편의점을 들렸다 나왔는데, 오늘은 이것저것 도쿄에서 넘어 왔던 짐들을 정리하다보니 시곗바늘이 어느새 8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하루라도 카페인 섭취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음 날 오전에 누구에게라도 신경질을 부리는 히나타였기에, 걸음이 귀찮아도 편의점으로 향해야만 했다. 어쩌다 카페인 중독이 되어버려서. 쯧, 혀를 짧게 차는 소리도 이 시골동네에선 아주 크게 들린다. 도시였다면 쉬이 묻혀질 소리였지만.



-시골에 모기는 좀 없냐?

“엄청 많아. 다음엔 읍내 약국 가서 물파스 잔뜩 사올 거야.”

-너 안 그래도 모기들한테 엄청 뜯기잖아.

“내 피가 그렇게 맛있나봐.”



어깨를 으쓱이며 히나타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 왼쪽 팔을 향해 오른손으로 짝, 하고 살을 맞부딪혔다. 아주 시커멓고 족히 4cm정도 되어보이는 모기가 제 팔뚝에 앉아 바늘을 들이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려친 손바닥을 바라보자마자 헉. 하는 소리와 함께 히나타는 급히 주머니 속에 있던 휴지로 이물질을 닦아냈다. 얼마나 많은 피를 뽑아 마신 건지. 코딱지를 파서 나는 피도 이 정도로 나진 않으리라는 생각만 들 뿐.



-아무튼, 일은 좀 잘 처리되면 좋겠네.

“제발 제발. 나 진짜 이번 달에 올릴 보고서 내용이 전혀 없어서 큰일이란 말이야. 아니 어떻게 사는 지역이랑 이름만 툭 던져주고 그 물리치료 받아야 하는 사람을 찾으러 가냐고. 이게 21세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인 거야? 어?”

-그래도 소장님은 너 내려간 거에 의의를 두는 거 같던데?

“말이야 그렇지. 아무 성과 없으면 잘리는 게 먼저 아냐?”

-그건 동의.



에휴. 히나타나, 수화기 너머에서 히나타를 상대해주는 야마구치나 서로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야마구치는 본디 심성이 고운 친구라, 누구라도 난처한 상황을 맞딱드리게 되면 함께 걱정에 빠지는 타입이었다. 마음같아선 당장이라도 미야기에 내려가 위로를 해주고 싶었지만, 알다시피 이젠 어엿한 직장을 가진 사회인이기에 현실성 없는 위로는 목구멍으로 꼴딱 삼키며 히나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조만간 좋은 소식으로 연락 주길 바랄게.

“그래… 그래도 야마구치, 너가 연락줘서 힘이 좀 난다….”



말동무라도 없었으면 심심하다못해 따분한 이 시골 마을에서 어찌 지냈을까 싶다. 뚝, 끊기는 전화에 히나타는 화면을 멈칫 바라보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거스름돈을 잘못 받았다는 걸 증명해주는 영수증과 잔돈이 들어가 있는 주머니 속에 쏙, 하고 집어넣었다. 커피를 사러 간 김에 오늘도 그 멍청한… 아니, 조금 모자란 냉미남에게 잔돈을 좀 제대로 달라고 부탁이나 해야지 싶다.



“…어?”



맴맴맴, 매미가 튼튼한 등나무에 달라 붙어 온 동네를 시끌벅쩍하게 만드는 소리와, 저벅 저벅 걸어가던 하나의 걸음소리만 들리던 이 공간에서 또 다른 이의 발걸음 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그냥 지나가는 주민이겠거니, 하고 어영부영 넘어가려는데 글쎄 신장이 꽤 커보이는 사내라서. 아! 혹시 편의점 알바생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나온 방향도 다름 아닌 불이 훤히 켜져있는 편의점 쪽. 손에 무언가 들고 가는 걸 보니 평소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던 그 봉투가 맞는 듯 했다. 옳거니! 심심하기도 했고, 그나마 미야기에 내려와서 유일하게 말동무가 된 그에게 카페가 없음을 푸념하기 위해 그를 따라  발걸음을 있는 힘껏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봐요, 이봐요!”



키가 작다 해도 달리기에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다. 중학생 때는 체육대회 때 100m 계주에서 1등을 한 경력도 있는, 일명 날쌘돌이라고 불리는 사나이였단 말이지. 그런데 저 알바생은 자신이 뒤쫓아온다는 걸 아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집에 얼른 들어가 항문으로 빠져나올 똥을 얼른 배출하고 싶어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저 사람도 열심히 달음박질을 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운동선수들이 런닝하는 모습과 사뭇 비슷해 그를 따라잡으려던 히나타도 고개를 갸웃거리긴 했지만.


히나타의 외침은 허탈하게도 허공으로 퍼져나갔다. 꽥꽥, 있는 힘껏 목청을 써 사내를 불러보려 했지만 뒷 편으론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쉴 틈 없는 추격전이 시작된 것만 같았다. 한 여름밤 모기가 득실한 시골에서 고르지 않은 울퉁불퉁한 도로위의 달리기라니. 자칫 잘못하다간 발을 헛딛어 제 발목이 성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최대한 발바닥에 힘을 꽉 주며 그의 속도를 따라잡으려 애를 썼다. 얼마 입지도 않았던 허연 반팔 셔츠 안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된 상태다.



“이봐요, 이봐… 에?”



자신의 체력도 남들에게 뒤쳐진다 생각하지 않았는데, 저 사람도 만만치 않은 체력소유자인 것 같다. 근 2km를 일정한 속도로, 그것도 재빠르게 달리기를 했으니 말이다. 요 근래 달리기를 하는 건 너무 오랜만인지라, 히나타는 답지 않게 숨을 헐떡거리긴 했지만 그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문제가 되는 건 바로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기이한 상황 때문이었다. 어떤 상황? 기가 막힌 로또 1등에 당첨된 것만 같은 상황.



“여기…….”



히나타가 늘 오전 10시에 맨션에서 출발하여, 11시부터 그늘이 없으면 버티기 힘든, 땡볕이 쬐는 오후 5시까지 열심히 기다리고 있던 그 ‘카게야마 토비오’ 라는 문패가 걸려있는 집 안으로 사내가 들어섰다. 컴컴해서 아무런 불도 켜지지 않은 곳이 그 사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팍, 하고 환하게 조명들이 켜지는 게 아닌가. 조명이 하나 둘 씩 켜질 때 마다 히나타의 눈에도 전기가 들어오듯 천천히 빛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로또…!”



히나타는 자신의 일 상대, 그러니까 물리치료를 담당해야 하는 사람을 마침내 찾게 된 것이었다. 몸속에 부족했던 카페인을 충전시키기 위해 편의점으로 향하다, 우연찮게 만나게 된 그 사내. 카게야마 토비오. 히나타의 입가에 미소가 잔뜩 번져나갔다. 재수야 재수. 이건 신이 주신 기회라니까! 평소 무교라서 딱히 모시는 신은 없었지만 아무렴 어때. 신은 아무 때나 찾는 게 제 맛이지. 히나타는 도톰한 혀로 각질 하나 없는 입술을 슥, 훑으며 문패가 걸린 곳을 향해 열심히 달려갔다.


꿀꺽. 침이 절로 삼켜졌다. 긴장한 탓에 혀를 이로 꽉 깨문 채 달달 떨리는 손가락이 초인종으로 향한다. 드디어 만나게 되었어. 내 전담 치료자! 드디어 나도 보고서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구! 기쁘면 눈물도 나온다는 속설이 있던데, 처음에 들었을 땐 뭔 개 소리인가 했지만 이젠 믿을 법도 했다. 땀인지는 구분이 안 갔으나, 눈가에 맺힌 건 분명 눈물이 맞으니까.



-띵동.

“저, 저기요?”



청아하게 울리는 벨소리를 끝으로, 히나타는 목을 높이 세워진 벽 너머로 쭉 빼며 상대를 불렀다. 저기, 카, 카게야마씨? 분명 불도 켜졌고, 안엔 인기척이 있는 게 바깥에 서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자신이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설마 자신이 헛 것을 본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긴 했지만, 에이 설마. 유일한 장점 중 하나인 시력이 그런 허무맹랑한 실수를 할 리가 없지. 히나타는 허탈하게 웃으며 다시금 초인종을 눌러보기 위해 손을 뻗던 순간,



“흐익!”

“누구십니까?”



라고 말하며 불쑥 문을 여는 상대, 카게야마 때문에 심장이 철렁하고 떨어져 내려갈 뻔 했다. 무슨 발걸음 소리도 죽이고 다니는 걸까. 히나타는 놀란 가슴께를 손바닥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며 진정시키려 애를 쓰긴 했지만,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저기요? 그 때 정수리 쪽을 향해 들려오는 중저음의 목소리에, 히나타는 쭈뼛쭈뼛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편의점은 조명이라도 밝았기에 인상이 덜 험악해 보였는데, 이거 완전… 어둑한 밤에 보니 검은 도포를 입은 저승사자만치 무서운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아, 저, 저는요….”

“…아, 당신.”



살짝 놀란 눈치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걸 보니, 그래! 편의점에서 얼굴을 한 두 번 본 것도 아닌데 기억을 못 할 리가 없지! 히나타는 방금까진 서늘했던 간담에서 쿵쿵쿵, 활기를 찾은 듯 심장박동이 요란하게 빨라졌다. 잠자코 앙, 하고 닫혀있던 두 입술이 천천히 떼어진다.



“누구세요?”



히나타는 속으로 한탄이 가득 찬 숨을 뱉었다. 그와 동시에 뒷통수에 알 수 없는 묵직한 물체가 쾅! 하고 머리를 치고 간 느낌이 들어 고개는 절로 푹 숙여진다. 와, 나 매일 당신네 편의점에 찾아가서 물건 사는 사람이거든요! 히나타는 순간 몰려오는 뻐근함에 목 언저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애써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달래기 위해 쉼호흡을 열심히 해대며 말을 이어갔다.



“저, 그 매일 거스름돈 잘못 주셨다고… 바꾸러 간 사람인데요…. 새끼 고양이 먹이도 같이 주고…. ”

“…아.”



아? 그게 끝이야? 우리 그래도 일주일 가량 얼굴 맞댄 사이인데! 히나타는 차오르는 화를 분출하기 위해 저보다 고개를 빳빳이 들어올려 눈을 치켜들었다. 히익, 하지만 어둠 속에서 본 사내, 그러니까 카게야마 토비오의 눈빛이 더 냉랭하여 히나타는 얼음장에 갇힌 것 처럼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게 되었다.



“그런데 무슨 볼일이신지.”



맞다. 자신은 지금 잔돈보다는 그, 의뢰를 받은… 그 일을 하기 위해 여기까지 쫓아오게 된 것이니까. 히나타는 양 허리춤에 주먹을 말아 쥔 손을 갖다 대곤 의기양양하게,



“오늘부터 당신의 전담 물리치료사 입니다! ”



라고 대답했다. 도쿄 카라스노 스포츠 메디컬 센터 소장님 소개로 오게 되었어요! 히나타는 고른 허연 치아를 훤히 드러내며 손을 건네었다. 일명 파트너라고요 파트너. 히나타의 해사한 웃음을 내려다보던 카게야마의 인상이 더욱 험악해져갔다. 근데 그게 무섭기 보다는, 겁에 잔뜩 질린 삼색 새끼고양이… 같은 모습이라, 웃음기가 옅어지던 히나타는 고개를 갸웃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카게야마씨? 그와 동시에 그의 어깨가 흠칫거린다.



“…물리치료요?”

“네! 혹시 어디 다치신 곳이 있다던지….”



히나타의 걸음이 한 발자국 떼어지자, 동시에 그의 걸음도 뒤쪽을 향해 걸음이 옮겨진다. 어, 왜 피하는 거지? 히나타는 이 사내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팔을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뻗어지는 순간, 그가 재빠르게 문고리를 잡고 히나타의 몸을 살짝 밀쳐내면서 대문을 쾅! 하고 닫았다.



“잘못 찾아오셨네요.”

“네?”



벙찐 히나타가 닫힌 대문에 주먹을 콩콩 두드렸다. 저, 이거 좀 열고… 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게야마로 추정되는 발걸음 소리가 점점 자신이 선 곳에서 멀어지는 것이 들려왔다. 아, 안 돼! 이제 만났는데! 히나타는 애처롭게 그의 이름을 연신 부르며 문을 두드린다.



“이봐요, 카게야마씨!”



도시였다면 소음공해로 방해받았을 법한 데시벨로 외치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인기척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허망한 감정과 함께 히나타는 멍하니 굳게 닫힌 나무 대문을 보고, 높은 벽 너머로 비춰지는 조명을 번갈아보다 한숨을 쉬며 녹진해진 몸을 돌렸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긴 했는데, 일단 시간도 늦었고…. 무엇보다도 카게야마 토비오가 저 편의점 사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그걸로 된 것이다. 언제든 찾아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치료를 도울 수 있으니 자신은 잘릴 이유가 없어진 셈이었다. 간만에 맥주나 한 캔 들이키고 잘까. 찝찝함이 서려있긴 했지만 그 감정보단 뿌듯함이 더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까. 히나타는 기지개를 쭉 피며 카게야마의 집에서 걸음을 떼었다. 옮기면서도 슬쩍슬쩍 여전히 고요하고, 어찌보면 고독함이 물씬 묻어나는 그의 집을 틈틈이 엿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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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비상에서 뵙겠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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