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형의 집


벨을 누르고, 대문이 열리기 무섭게 뛰쳐 들어오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서연이다.


“최집사님”


목소리 톤이 한껏 올라간 서연이 뛰듯이 안으로 들어온다.


“아줌마”


“아이구, 어지러워라.”


최집사가 아닌 전주댁이 서연을 맞는데

보자마자 껑충껑충 뛰며 전주댁을 안고 빙빙 도는 서연


2층서 응접실로 내려온 최집사가 서연을 보고는 정신 사나워하는데....



“서연아가씨 오셨습니까? ”


서연에게 인사하는 최집사

최집사의 등장에 전주댁이 서연의 엉덩이를 팡팡 두어번 두드려주고는 주방으로 자리를 옮긴다.


“네. 저기 승효 있어요? 오늘 온다고 했는데...”


승효에게 줄 것인지 몇 개의 쇼핑백을 들어 보이는 서연


“구승효 씨, 외출했는데요.”


“아.. 그럼 남정 이는요. ?”


“학원가셨죠.. ”


“아, 그럼 남형 이는?? 아. 남형이도 없겠군요.”


실망하는 서연, 어린아이처럼 팔을 휘젓고 발을 동동 거린다.




“나는 여기 있는데!”


서연이 실망감에 한숨을 푹 쉬고 있는데

뒤에서 들리는 소리


바로 조영기 회장이다.

새하향게 바랜 머리, 굵은 눈썹과 약간 매서워 보이는 눈매에 우직한 덩치, 남형과 언뜻 비슷해 보이는 얼굴


뒤에는 머리숱이 없이 휑한, 대쪽 같아 보이는 외모를 가진 서연의 아버지, 진만식 회장이 있다.


“아저씨!”


서연이 그런 조회장을 반갑게 맞는다.



“어쩐 일이냐. 오랜만이다. ”


“히잇, 아저씨.”


서연이 쇼핑백을 바닥에 쿵 하고 내려놓고는 조회장에게 달려가 안긴다.


“원 녀석도 말만한 처녀가...”


서로 반가워하며 소파에 앉는 서연과 조회장, 그리고 진회장 .


“파리에 가있었어요, 요즘 고모가 거기 가있거든요. 아빠한테 들으셨죠?.”


“응, 들었지, 파리생활이 좋았나보네, 얼굴이 더 예뻐졌는걸.”


“아뇨. 그냥 그랬어요.

딱 한 가지만 빼고요.

날씨도 않 좋고, 저 물갈이 하는지

배 아파서 며칠을 고생했어요.“


“저런, 조심하지 않고…….

그래 그럼 좋았던 거는 뭐니?“


“추억이요. 우리엄마랑 함께 한 추억

아저씨, 저 일곱 살 때 엄마랑 갔던 레스토랑이 아직 있더라고요.

오래된 건물들이랑 언제가도 변하지 않는,, 그런거요. 파리가면 난 항상 7살이고 우리엄마는 거기 있을 것만 같고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밝게 얘기하는 서연, 그런 서연을 안쓰럽게 쳐다보는 진회장


“그래. 좋은 추억은 오래 오래 힘이 쎈 법이지. 승효라는 그 아이 만나러 왔니?

승효란 애는 지금 집에 없는 모양이구나.“


“네. 승효도 만나고 겸사겸사 밥 먹으러 왔어요. 전주댁 아주머니가 청국장 맛있게 띄었다고 하셔서..”


“나 원 참.. ”

진회장이 서연의 넉살에 혀를 껄껄 찬다.


“아저씨 여기에 방 한 칸만 주세요. 하숙생으로 저 받아주시면 안 돼요? 먹고 자고 하면서 낮에는 승효랑 놀게요 요즘 너무 심심해 죽겠어요.”


“아이, 그럼 진회장이 외로워서 쓰나.

예쁜 딸 서연이만 보고 사는 양반인데…….“


“요즘 회사일로 아빠가 얼마나 바쁘신데요. 며칠째 얼굴도 제대로 못 보다가 여기서 보는 건데요.”


“원 녀석도, 그래놓고 형님만 찾는 거 보세요. 지 아빠보다 형님을 더 좋아한다니까요.”


“치 아빠도.”


“그랬구먼, 진 회장 요즘도 바빠?”


“연 초부터 신경 쓸 일이 좀 많기는 했어요. 저도 그만 김사장 한테 맞기고 은퇴해야지. 갈수록 힘들어서 못하겠네요.”


“그런 소리 말아. 아직 한참이야. 잘 꾸려서 서연 이한테 물려줘야지…….”


“근데요, 아저씨, 남정이는 대학까지 미국으로 가는거에요? 재외국민 전형으로

한국서 입학해도 될 텐데요.“


“그러게요. 형님 그래도 아직 어린데 즈이 아버지 밑에서 대학까지는 다니는 게 낫지 않을까요?


서연의 말을 거드는 진회장


“왜긴, 빨리 치워버리려고 그러지.”


서연의 물음에 깊은 한숨을 쉬는 조회장


“내가 전쟁 통에 부모 형제 잃고 하나 있는 남동생 거둬서 이때까지 키워났더니. 이놈의 새끼, 육십 줄이 코앞인데 아직도 나잇값을 못하고 자식 건사 하는 건 손을 놨으니……. 사고 친 조카 놈은 내가 일단 데리고 있는데…….“


“ 조씨집안 남자들은 어째 하나같이 꼴통새끼들, 아이고 이놈의 팔자. 남정이 그놈 사람 상하게 하고 소년원 가려는 거 이번엔 꺼내줬지만, 이제 그놈 새끼 나도 몰라. 맘 잡고 대학을 가든, 칼질하는 깡패가 되든……. 다 지인생이지.... ”


“아휴, 형님, 지엄마 세상떠나고 마음못잡고 있는데, 새살림 차린 지 아버지랑 좋게 지낼 수 있었겠어요? 어린 마음에 잠깐 삐둘어진 거지, 맞아요 형님말씀처럼 미국가면 외가식구들도 있고 한 두살 더 먹으면 지 아버지랑도 화해할거에요.”


“이번에 남정이 미국가게 되면 남형이도 딸려 보낼 생각이야. 해외지사 경험도 있어야지. 이번기회에 같은 애물끼리 겸사 겸사 치워보내면 나야 속편하지 뭐.”


“에이, 아저씨 남형이가 들으면 섭섭하겠어요. 어떻게 봐서 남형이랑 남정이랑 같은 급이에요? 남형이가 언제 아저씨 말씀 어긴 적 있어요? "


"형님도, 남형이만한 아들이 어디있다고?“


“아이고, 빈말은 누가 못하나.. 진 회장 자네가 싹퉁 머리 없는 새끼하고 한번 일주일이라도 살아봐.”


“서연아, 너도 내년에 남형이 따라 미국으로 가서 일이년 지내다 오는 게 어떨까? 어학실력도 좀 키우고 견문도 넓히고.”



"아빤, 또 나 어디로 보내려고, 회사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다니까. 대학원까지 나 공부 할 만큼 했어요.“



뜬금없는 진회장의 얘기에 당황하는 서연, 공부얘기를 하는 아버지 얘기에 질색하기는 했지만, 남형과 함께 라니 마음속으로는 영 싫지만은 않다.


“그래, 서연아. 아저씨가 서연이 장학금 줄게. 이건 어떠니? 남형이든 남정이든 둘 중 한 놈만 데리고 살아주라. ”


“아이고, 형님.”


“우리 서연이 다른 집에 시집보낼 생각하니 너무 아까워서 그러지. 우리 집은 어떠니? 내가 아주 잘할게, 두 놈 중에 한 놈만 사가라.”


“어느 놈이 괜찮으실 거 같은데요?”

조회장의 농 섞인 말에 답하는 서연


“한 놈은 어린 맛으로 데리고 살고, 한 놈은 뭐……. 두둑이 책임비 낼게, 반품은 안 된다. 어느 쪽이 좋겠니?”


“책임비 내신다는게 남형이에요? 그럼 전 남형이요. 돈 많이 주세요. 평생 놀고먹게요. 히히 ”


“그래. 서연아, 남형이 얼른 데려가라.”


조회장이 만족한 듯 호탕하게 웃는다.

진회장도 조회장을 따라 껄껄 웃는다.


잠시 뒤.


저녁 무렵, 집안의 인터폰이 울리고,

남형과 승효가 들어오는데, 바로 서연이 보인다. 둘을 반겨주는 서연


“어서와, 밥때 딱 맞춰왔네. 너희 기다리다가 아저씨랑 아빠랑 먹으려던 참인데…….”


“그래.”



승효와 함께 주방으로 간 남형

식탁위에는 음식이 가득 차려져있고,

이제 막 수저를 들참인 모양새인데


“아버지 , 들어왔습니다.

승효야. 인사드려, 우리 아버지“

오른쪽은 서연이 아버님이셔.


“안녕하세요. 구승효라고 합니다.”


조회장을 보자마자 고개를 팍숙여 꾸벅 인사를 하는 승효, 진회장에게도 이어 인사를 한다.


승효를 보자마자 당황한 듯 놀라는 눈치의 조회장과 진 회장


조회장의 첫아들, 남준 의 얼굴을 빼다 박은 듯한 모습이다. 진회장 또한 딸 서연에게 미리 들어 알고 있었지만 새삼스럽게 놀라는 눈치다.


“그래 남형이 후배라고”

당황한 내색을 감추는 조회장이 승효를 반갑게 맞으며 묻는다.


“네.”


“23살이라고?”


“네…….”


낯을 가리며 조회장의 얼굴을 똑바로 못 쳐다보는 승효. 남형이 나이가 들면 이런 모습일까, 어렵고 불편하기만 하다.


“어디 아픈 데는 없고?”


“네?”


“네, 없습니다.”


어디 아픈 곳은 없냐는 조회장의 질문에 당황한 승효가 급히 대답한다.

자신의 큰아들 남준과 유난히 닮은 승효가 마음에 쓰이는  조회장


“그래, 남형이랑 남정이랑 잘 지내고

힘든 거 있으면 꼭 말하고, 일단은 앉아서 밥부터 먹자고……. “



“그래, 승효야 얼른 앉아 . 국식겠다.”


“아니요. 저희 일찍 저녁 먹고 왔어요.

승효 너는 여기 있는 것보다 2층 가서 얼른 쉬는 게 좋겠다. 내일 아침에 보자.


“아냐, 승효야 와서 앉아”


“네.”


서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형의 얘기에 승효가 꾸벅 인사를 하고 2층으로 올라가고 남형이 테이블에 앉는다.

자리도 불편할 뿐만 아니라 남형의 의견을 따르고 싶은 승효다.


커다랗고 긴 테이블


남형과 조회장만이 쓰기엔 너무 큰 식탁이다.


“저는 됐어요.”


남형이 자리에 앉자마자 밥과 국을 내오려는 전주댁의 행동을 막는 남형



남형은 식사를 대신한 채, 목이 탔었는지 물 한잔을 꿀꺽 마신다.


“저녁 먹고 온 거야? 그래도 같이 먹자고 하지.. 한 두숟가락 이라도 같이 먹는 정이 있는건데... ”


2층으로 승효가 올라가버리고 서연이 아쉬 운듯 말한다.


“나는 승효 얼굴도 별로 못봤네.”


“나중에 보면 되지, 밥도 먹고 들어왔고, 괜히 처음 보는 사람들 불편하지 않겠어? 일찍 쉬는 게 낫지.“


서연의 지청구에 답하는 남형, 그 말이 냉정하다.



“서연이 말이 맞지, 어차피 같이 지내게 될텐데.. ” 조회장이 남형의 행동을 못마땅해 하며 말한다.


“학교는 휴학했다고?”


“네, 아저씨. 승효, 착하고 잘 할거에요.

성격이 내성적이긴 한데 똑똑하고 얼마나 착한 애인데요. 남정이가 괴롭힐까봐 걱정되지만.....“


서연이 승효의 칭찬을 한다.


“그래, 서연이 네가 보증하는 애면 확실한 거지……. 한집서 살면서 같이 밥 먹게 됐으면 식구 고 가족이다. 집안일을 잘 다스려야 밖에 나가 큰일을 할 수 있는 거다. 남형이 너는 회사일만큼 남정이랑 저 아이 신경 잘 써라. 남의 집 귀한 새끼, 상하는 일 없게 남정이 놈 단속 잘하고…….”


“네.”


조회장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모래 씹은 표정의 남형이 대답한다.


“아저씨, 저도 신경 쓸게요.”



“형님, 서연 이한테 듣자하니, 아까 승효라는 애 사정이 안 좋나 봐요. 아버지가 간이식을 받았다고, 글쎄 남형이가 수술이며 시골에서 올라와서 지내는 집 마련이며 도와줬다고 하네요. 그 얘기 듣고 남형이가 다 속이 꽉 찼구나 얼마나 기특하던지……. ”


“그래.”


진회장이 남형을 칭찬하는 말을 무뚝뚝하게 받는 조회장, 물끄러미 남형을 본다.


“자기 밖에 모르는 네가 웬일이냐.”


“서연이 때문에요.”


조회장의 물음에 인상이 굳어지는 남형이 짧게 대답하는데, 난데없는 서연이 핑계를 댄다.


“서연이 때문에?”


“서연이 친한 후배 라서요.

서연이가 주위사람들한테 참 잘하는 좋은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그랬어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서연 이처럼 좋.은.사.람. 되고 싶어서……. “


조회장의 말에 대답하는 남형의 대답에 가시가 돋쳐 있다. 자신의 일 하나부터 열까지를 비난하기에 앞서는, 자신과 정 반대의 조회장이 너무 끔찍하고 싫은 남형이다.


‘노친네 얼른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며 살아오다가 몇 달 전 부터 조남정이라는 골치 아픈 사촌동생까지 챙기라는 조회장의 명령에 집까지 들어오기 싫었었는데, 그 골칫덩어리 남정 덕분에 승효를 집에 들였으니 이걸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되는 것인가?


“그만 올라가보겠습니다. 서연아 조심해서 들어가고…….”


남형이 자리에서 진회장과 서연에게 인사를 하고 2층으로 올라간다. 자신에게 의례적인 인사를 하는 남형을 보는 서연의 볼이 발그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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