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빈님의 작품 <겁쟁이의 인사법>에 대한 인터뷰입니다. 


※ 이 인터뷰는 어느 정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겁쟁이의 인사법> 간략 시놉시스 

이 소설의 '나'는 집을 나갔다는 엄마에 대해 어릴 때부터 항상 궁금해 왔었다. 어느날 그는 우연히 자신이 엄마가 원해서 낳은 아이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아빠에 대한 배신감에 휩싸인다. 그는 엄마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둘은 만나게 되는데……


Q. 안녕하세요!

A.  안녕하세요. 


Q. 오라드리밍 프로젝트에 어떻게 합류하시게 되었나요?

A. 강남역 사건 이후로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그저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아있던 여성들의 수많은 차별의 경험이, 이번에 강남역 사건으로 여론이 형성되어 터져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 사건이 있기 전에는 저도 제 자신이 예민한 게 아닐까, 하고 자기 검열을 무수히 했었거든요. 하지만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개인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사회가 여성에게 어떤 혐오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지 깨달았죠. 곧이어 #○○내 성폭력을 통해, 가부장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사회에서라면 성폭력이라는 문제가 내가 어딜 가든, 도사리고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겁쟁이의 인사법’은 페미니즘에 한창 관심이 많을 때 썼어요. 문단 내 성폭력 공론화 이후 내가 무얼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오라드리밍 프로젝트에 하엘 팀장님의 권유로 투고할 수 있게 된 것에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주인공의 성별을 시스젠더 남성으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A. 그걸 설명하려면 일단 이 소설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소설은 오라드리밍 프로젝트에 투고하기 위해 쓴 소설은 아니었답니다. 이 소설은 작년 겨울방학 때 스터디를 통해서 쓴 작품이었어요. 그 때 스터디에서 내준 주제가 ‘이기적 유전자’였거든요. 그 주제를 듣자마자, 자연스럽게 낙태죄 폐기 주제가 떠올랐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때 아마 페미니즘 이슈에 관심이 많아서였겠죠?

아무튼, 여성이 원하지 않는 아이를 가질 때의 이야기를 써야겠다 라고 마음을 먹자 남자 주인공이 제 머릿속에서 그려졌어요. 남자 주인공이기 때문에, 엄마가 이 주인공에게 더 심리적으로 거리를 둬요. 이 주인공도 엄마의 괴로운 삶에 대해 이해하는 데 한계를 느끼죠.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런  다른 성별이라는 현실적 장벽을 뛰어넘어, 타인과의 연대 가능성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건 뒤에서 더 설명하도록 할게요. (웃음)


Q. 겁쟁이의 인사법에서는 어떻게 보면 두 피해자가 등장합니다. 이 소설의 엄마도 피해자이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주인공도 피해자라고 할 수 있지요. 이 둘의 관계성이 이 소설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이 둘의 관계를 구상하게 되셨나요?

A. 이 소설을 써야겠다, 생각한 계기인 것 같아요. 이 소설에서 낙태죄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문학이나 미디어에서 원하지 않는 아이를 괴물로 묘사하는 식의 작품도 제 마음을 불편하게 했어요. 그 아이도 원하지 않는데 삶에 ‘던져진’ 피해자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거든요. 다들 잘 알다시피 미혼모라는 말이 있고, 사생아라는 말은 있는데 그 상황을 만든 남자를 칭하는 언어는 없잖아요. 미혼모와 사생아라는 관계만 남겨놓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참 잔인하게 느껴졌어요.

 미혼모와 그 아이의 긍정적인 관계를 다룬 작품들이라고 하면 모성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요. 저는 모성으로 묶이는 관계 말고,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두 피해자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다는 사람 대 사람으로 연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현주(‘나’의 엄마)과 주인공이 엄마와 아들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서로를 바라보지 않기를 원했어요. 이 두 캐릭터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아픔까지도 껴안을 수 있게 쓴 건, 이런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Q. 이 소설의 주인공 캐릭터를 만들어내면서 신경 쓰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타자화시키지 않는 것이었어요. 앞에서도 설명 드렸듯이, 원하지 않은 아이가 ‘괴물’처럼 묘사되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거든요. 그래서 무엇보다 이 아이가 사람처럼 느껴지길 바랐어요. 하나의 정체성-원하지 않은 아이-이 그 아이의 모든 걸 설명할 수 있게 되지 않게 신경 썼습니다. 그냥 기쁨도 느끼고 기대도 하지만, 고통을 느끼고 슬퍼서 눈물도 흘리는 그런 고등학생 남자아이로요.


Q. 그렇다면 서현주 캐릭터를 만들어내면서 신경 쓰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앞 질문과 비슷한 답을 하게 될 것 같은데요. 서현주 캐릭터를 만들면서 가장 크게 신경 쓴 건 하나의 정체성(가정폭력 피해자 여성)이 그 인물을 잡아먹지 않게 하려는 거였어요. 가정 폭력 피해자 여성이나, 성폭행 피해 여성이 등장하는 문학, 미디어 작품을 보면 너무 가련하고, 그 사건으로 인해 인생이 망가져 버린 수동적인 캐릭터로 나올 때가 많잖아요. 그런 여성 캐릭터에게서 ‘피해자’라는 정체성을 쏙 빼보면 남는 이야기가 없고요. 저는 그들이 피해를 당했다, 는 사실에 고여 있지 않고 그 후의 삶이 궁금한데 거기까지 제시해주는 작품은 많이 보지 못한 거 같아요. 저는 젠더폭력을 당해도 그 이후의 삶을 독립적으로 살아나가는 캐릭터를 쓰고 싶었어요. 여기서 서현주는 그 집을 벗어난 후에 나름 독립적으로, 치열하게 살고 있어요. 더 중요한 건, 그 집을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주인공에게도 연대의 손길을 내밀게 되죠.


Q. 할머니란 존재로 아버지 이외의 가해자가 등장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A. 저는 개인적으로 페미니즘을 알고 공부해나갈 때, 가장 힘들었던 게 ‘여성’이 여성혐오적 발언을 해서 저에게 상처를 줬을 때인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저도 페미니즘의 페자도 모를 때 가해자로 산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게 아니었거든요. 이 소설의 할머니라는 캐릭터는 일종의 상징으로, 여성이신데도 오히려 가부장적인 질서를 수호하셨던 제 주변 분들의 사람들을 따서 만들게 되었어요.


Q. 합평을 통해 가장 도움을 받은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퇴고하기 전의 초고에서는 주인공이 엄마를 찾기 위해, 엄마 지인분들을 무턱대고 찾아가고 조르는 과정으로 나와요. 개연성 상으로도 무리가 있지만, 피해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방식이었죠. 현주 입장에서는 아들이 남편의 사주를 받고 자신을 찾는 것이라 생각하고 충분히 공포를 경험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페미니스트 작가가 되고 싶다는 사람이 이렇게 쉬운 방법을 사용해서 둘을 만나게 했었답니다.(하하) 퇴고 한 후엔, 현주가 아들을 만나는 것에 대한 ‘선택권’을 주는 내용으로 바꿨어요. 쓸 때는 그렇게 깊게 못 생각한 설정이었는데, 지적 받고 이래서 합평을 받아야 하는구나 생각도 했답니다. 두 번째는 현주가 원래 손목에 상흔이 남을 정도로 자해를 했다는 설정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소재가 가진 무게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그 소재를 쉽게 선택해서 사용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보다 현주가 그 집에서 벗어나고 독립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캐릭터로 쓰고 싶어 했으면서, 자살기도에 가까운 자해를 한다는 설정은 맞지 않는 부분이었죠. 합평 해주셨던 오라드리밍 멤버 분들 제가 언제나 감사하고 있답니다.


Q. 제목이 인상적이라는 평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짓게 되었나요?

A. 제목 칭찬 받으면 정말 뿌듯해요. 왜냐하면 제가 지금까지 쓴 소설 중에, 이 소설만큼 제목이 자주 바뀌었던 소설은 없었을 거예요. 게다가 이 제목으로 확정되기 전의 제목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었었거든요. 참고로, 처음 고민한 제목은 X같은 인생이었어요. 저 제목으로 확정이 안 되어서 정말 다행이지요.(웃음) 제목을 고민할 때, 마침 그 시기 제가 고민하고 있던 문제가 ‘왜 진짜 나쁜 놈은 빠지고 약자가 더 약자를 괴롭힐까.’였어요. 주인공은 겁쟁이에요. 그는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진짜 나쁜 놈이 아닌, 자신보다 더 약자인 엄마를 원망하게 되지요. 하지만 주인공은 결국 사과의 메시지를 건네요. 저는 이 소설에서 겁쟁이 주인공이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타자에게 인사하는 법을 썼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제목으로 짓게 되었습니다.


Q. 오라드리밍 프로젝트가 끝을 보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제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이 소설을 통해 마음껏 풀어내서, 발간 후에 후회는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이 책이 출간된다면, 그것만으로 너무 의의가 크고 제가 쓰고 싶었던 말들을 작품으로 내긴 냈다는 것에 굉장히 행복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제 말이 받아들여지고 독자분들의 마음을 위로하거나, 뭔가를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더더 행복할까요. 오라드리밍 프로젝트를 통해서 문학 내에서도 여성주의 담론이 더 많이 형성되었으면 좋겠어요. 불편하다고 느끼고, 표현하는 독자분들도 늘어나기를 원해요.

사실 요즘 펀딩이 성공하지 못하면 어쩌지……? 라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해요. 그런데 결국 곱씹어 보면 정말 후회가 없어요. 저는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소설로 쓰면서 행복했고, 그걸 만족하고 끝내지 않고 작품으로 나올 수 있도록 오라드리밍 회원으로서 최선을 다했어요. 그 험난한 과정을 함께해주신 오라드리밍 회원분들에겐 감사함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어요. 너무 감사해서 제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세요. (펀딩이 잘 되어서 꼭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건 제 작은 욕심입니다.) 정말,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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