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녤윙] #1. 나쁜 피 (N’s Words)



아내는 조용하고 이성적이었다.


애초에 결혼이란 건 우리집안에서는 전략적 제휴관계 정도의 가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한 것과 같이 대물림되는 가풍이라고나 할까.  물론 애정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좋아 못사는 사람이 아닌 서로에게 부족한 걸 채워줄 수 있는 집안과의 결합이 결혼제도 실행의 주목적이었다. 그래서 내게 부부란 필요한 사이의 의미가 강했다. I need you 가 내게는 I love you와 같은 의미라고 생각되어 졌으니. 

그런 집안에서 나고 자란 내게도 언제나 연애와 결혼은 별개였다. 연애는 인간의 가장 밑바닥이자 원초적인 본능인 성욕을 해결할 상대와. 결혼은 우리 집안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상대와.  판사인 아버지의 권유로 법대에 진학해 변호사가 됐다. 아버지의 연줄로 판검사까지도 가능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남들 눈에 그럴싸한 직업이 필요해서였지, 정의를 구현하는 것 따위에는 별 관심 없었으니까.

2-3년간은 로펌에서 자리 잡기 위해 일에만 매달렸다. 일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딱히 재밌는 일이 없었으므로.  나는 우리 로펌에서 기업 인수합병 분야의 전문으로 일했는데 이혼전문이나 상속전문 변호사 보다 재미없어보이는 파트로 보여지겠지만  이 바닥이야말로 웰컴 투 더 정글. 동물의왕국을 한 번이라도 재밌게 봤다면 지루함이란 단어는 절대 떠올리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다. 양육강식. Do or Die. 살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죽이는 이 곳은 흡사 아마존이나 사파리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뭐 이 바닥에도 나름 각자가 믿는 정의는 있었다. 바닥에서 사서 천장에서 판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남의 것은 바닥으로 만들어 사고 제 것은 천장으로 만들어 판다. 이게 이 바닥의 생리이자 정의였다. 뉴스보면 힘들지 않게 볼 수 있지 않는가. 한 나라의 대표였던 자리보다 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 소위 말하는 로얄패밀리였다. 여기서 말하는 로얄은 돈이다. 어차피 변호사란 직업은 법이 허용한 사기꾼에 불과하므로 나는 그 옆에서 공생하는 우아한 노비정도나 될까.

몰락한 재벌집의 고명딸이었던 어머니는 드러내놓고 돈돈돈거리지는 않았지만 백화점 식품관에서 타임 세일하는 음식들을 주로 저녁식사로 드셨다. 학창시절에 그 몫이 때때로 나에게까지 올 때가 있었는데 차디차게 식고 보기보다 별 맛 없는 롤을 입에 집에 넣으며 허세라는 건 참 볼품없다는 생각을 잠깐 했던 것 같다. 진열돼 있는 모형을 입에 넣고 씹는 것 같은 거북스러운 느낌은 평생 나를 살찌지 않는 체질로 만들었다. 온기없는 식사는 먹는게 아니라 단지 채울 뿐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남들 눈에는 꽤 상류층처럼 보였을 거다. 판사라는 번듯한 직업의 아버지, 백화점 명품관을 제 집만큼 자주 드나드는 어머니. 하지만 판사 연봉은 대기업 임원의 그것보다 더 나을 것 없었고 어머니는 대기업 임원의 아내가 쓰는 돈 이상의 씀씀이를 가졌기에 우리 집안은 소위 빛좋은 개살구의 전형이었고 그러다보니 사람을 볼 때 경제적 풍요로움은 가치판단의 절대적 기준이 됐다. 내 아내는 그런 기준을 충분히 만족시키고도 남을만한 집안의 맏이였다. 소위 말하는 이 분야 뚜쟁이를 통해 처음 만났는데 28살 동갑에 피아노를 전공하고 음대 교수가 되기 위해 박사준비중인, 가진 게 돈 뿐인 집안의 장녀는 내 어머니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며느릿감이었다. 넘치는 재력과 인맥으로 몇 년 후엔 음대교수 자리까지 약속된 미래는 어머니의 영원한 결핍인 풍요로운 재력이란 조건을 충분히 메꿔 줄 것임에 분명했다.

나 역시 애초에 결혼에 대한 환상은 없었기에 싫은 이유를 찾기도 어려웠다. 아니 오히려 거침없는 씀씀이가 마음에 들기도 했다. 적어도 결혼 후 사랑을 갈구하는 불필요한 잔소리는 없겠구나 싶어 안심이 되기도 했다. 물욕이 애욕을 이기는 여자였고 그게 오히려 내게는 편했다. 그녀는 나와 만나는 동안 애정을 갈구하거나 내 뜸한 연락에 흔한 투정 한 번 부리지 않았다. 내 어머니가 아버지의 사랑을 물건으로 채웠듯이. 그녀도 못보던 명품 가방이 하나씩 늘어갈 뿐이었다.

내 아내가 될 소영가족들과의 상견례 자리는 내 인생을 바꿔놓은 운명적인 자리였다.  가진 건 돈 밖에 없소. 자랑하듯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무장한 미래의 내 장인어른의 팔목에는 5천만 원을 호가하는 파텍필립 시계가 위풍당당하게 자리해있었다. 경남지역에서 알아주는 건설사의 대표인 그는 미디어사업까지 손을 뻗어 그 바닥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지역 민영방송사 하나가 그의 것이었으니 무서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옆에 조용히 그림처럼 앉아있는 그의 와이프-역시 미래의 나의 장모님-는 마치 샤넬로 휘감은 명화속 여인과 같았다. 아마 재벌집 사모이면서 동시에 장인어른의 명품시계 역할을 할 장신구겠구나. 듣기로 사별 후 5년 만에 재혼한 후처라고 했다. 소문에 의하면 이름도 알리지 못한 배우출신으로 고위집 양반들을 상대하던 요즘으로 말하면 텐프로 같은 여자였다고 했다. 그런 사실이 내 결혼 결정에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와 누구와 재혼했던 차고 넘치는 재력가임엔 분명하니까.

“아드님을 참 훌륭하게 기르셨습니다.”
“다니엘은 저희 부부에게 자랑이랍니다. 그 흔한 말썽한 번 안 부렸을 정도니까요.”

장인어른의 말에 내 어머니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셨다. 그 따뜻한 시선은내 몸값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었고 경매하듯 내 자랑을 하나씩 풀어내는 어머니의 입담에 나는 어느덧 숨이 턱 막혀와 넥타이를 느슨하게 만들며 셔츠의 가장 윗단추를 푸를 수 밖에 없었다.

“날짜는 최대한 빨리 잡는 게 어떻습니까? 피차 미룰 필요가..”
“해 넘기지 말고 12월에 하시죠. 강변도 연말이 그나마 한가할겁니다”

이야기가 막바지를 향해 가는 듯 했다. 결국 이 이야기를 꺼내기위해 서론들을 만드느라 애들 쓰셨다.

“다니엘도 다니엘이지만 소영이는 가뜩이나 여자애라 아홉수에 걸리지 않게 올해 식을 올리시지요.”

역시 우리 어머니.
내 값을 올리는 전략뿐 아니라 상대방의 몸 값을 낮추는 방법 또한 잊지 않으셨다. 바닥에 사서 천장에서 팔아라. 어쩌면 M&A 전문 변호사인 내 핏줄은 어머니의 유전자가 더 많이 포함돼 있지 않을까. 그런 상념에 빠져있을 때였다.

우당탕탕. 요란스러운 소리가 룸 밖에서 들려왔다. 이런 고급 일식집에서 무슨 소란일까 싶어 모두가 놀라 일순간 말이 없었다. 뭔가를 내던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뛰어오다 뭔가를 떨어뜨린 것도 같은 소란스러움. 상대적으로 고요하기 짝이 없는 우리 룸의 문이 벌컥 열리며

“아 배고파”

그 녀석이 들어왔다.
아니 불쑥 떨어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아줌마 아저씨”

메고 있던 가방을 툭 던지며 양반다리를 하고 그 녀석은 예비 장모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방은 비어있는 게 뻔했다. 털썩하느는 소리가 책가방 소리치고는 지나치게 가벼웠으므로

“지훈아. 아줌마 아저씨가 뭐야.”

장모는 검지로 제 입술을 세로로 가로막으며 천방지축 그녀석의 소란스러움을 잠재우려고 애썼다. 우리 부모님과 소영의 눈치를 보는 장모의 모습이 애처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럼 뭐라고 해?”

그 녀석은 눈이 보물이었다. 소영의 가늘고 날카로운 눈매와는 다르게 크고 동그랬다. 눈꼬리가 길게 빠져있었는데 여자애들이나 할법한 눈화장을 한 듯 화려하고 고혹적이었다. 남자애를 보고 떠올릴 표현들은 아니었지만. 그랬다.

“아휴. 오냐오냐 키워서 애가 버릇이 없어요.”

제 엄마의 타박을 듣는둥 마는둥 하며 눈은 이미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는 음식들을 스캔하는 듯 했다. 오- 입술을 동그랗게 만들고 테이블을 좌에서 우로 하나하나 훑으며 표정이 수십 번은 변했다. 나는 그 표정만 보고도 그 녀석이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을 맞출 수 있을 지경이었다. 익힌 해산물은 호였고 싱싱한 생선은 불호였다. 새우튀김을 볼 때는 웃었고 깔끔하게 세팅된 도미회를 보고는 살짝 찡그렸으니까. 


테이블 위에는 싱싱한 해산물들이 즐비하게 차려져있었고 처음 서빙됐을 때와 큰 차이가 없어 추가로 주문을 넣지 않아도 됐었다. 피차 용건이 확실했기에 식욕이 돌지 않는 자리였는데 와중에 그 녀석만큼은 활기가 넘쳤다. 그 녀석은 엄지와 검지만으로 새우튀김을 들어 머리부터 제 입에 넣는다. 역시. 새우튀김부터 먹을 줄 알았다. 그 녀석의표정을 옳고 정확하게 읽었다는 뿌듯함에 내 입꼬리가 슬슬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내가 유일하게 쳐다도 보지 않은 메뉴를 선택한 그 녀석이 매우 궁금해졌다. 나는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었으니까.

아뜨뜨. 코스의 마지막 메뉴라 서빙 된지 5분도 채 안 돼 김이 폴폴 나는 바삭한 튀김을 입 안에 넣었다가 뜨거웠는지 치아로만 겨우 물고있다 이내 참지 못하고 앞접시 위로 도로 툭 뱉는다. 고등학생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교복 입는 태가 18살, 제 나이보다도 한참 어려 보인다. 볼록한 선홍빛 광대에 상대적으로 다른 부위보다 넓은 어깨지만 한 품에 안길 것 같은 여린 체구. 큰 눈에 우주를 담은 듯 한 맑은 눈동자. 핏빛 입술까지. 어찌 보면 갓 태어난 아이 같기도, 달리 보면 꼬리 아홉 달린 요부 같기도 했다. 그 녀석은 상당한 미인인 제 엄마를 닮은 듯 했다. 어느새 내 시선은 그 녀석의 머리 끝부터 하나씩 훑어내고 있었다. 시선을 뗄 수 없기 만드는 기운이 있었다. 순간마다 변하는 표정이라던지 남성도 여성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듯한 중성적인 이미지라던지. 뭐 하나 지루한 구석이 없었다. 천방지축의 행동은 어딘가 다듬어지지않은 미지의 땅 같기도 했고 단정하고 어디 하나 모나지 않은 이목구비는 명화 속 소년. 아니 소녀 같기도 했다. 소영이 언젠가 말했었다. 배 다른 남동생이 있다고.  전처의 자식인 소영과 후처가 데리고 온 지훈은 물과 기름 같다고. 술집 여자 출신의 새어머니를 은근 아래로 낮춰보던 소영이 지훈을 저와 같은 높이로 봐 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제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싸고도는 만큼 지훈을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고 10살이나 차이나는 배다른 동생의 무게감은 새털 같았다. 못 배운 한을 아들에게 풀어내 듯 강남 8학군에 전학시키고 부산에 거주하는 부모를 대신해 함께 살 고급빌라를 하나 사줬다고. 빌라 임대수익이 자신의 용돈이라며 웃으며 이야기하던 유난히 말이 많았던 소영과의 그 날. 그래서 우리의 첫 관계는 호텔에서였지.

지훈은 달아오른 입술을 식히려는 듯 제 앞에 놓여있던 물을 입 안 가득 머금고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그러다 종국에 나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나는 이유 없이 숨이 턱 막혀왔다. 그 녀석의 눈은 마치 블랙홀과 같아서 계속 바라보다가는 빠져버릴 지도 모르겠다는 아주 유치한 상상을 잠깐한 듯도 했다. 그런 나의 망상을 깨준 건

“안녕. 잘 생긴 형”

그 녀석의 윙크였다.

지루하다 못해 죽은 자들의 대화 같던 우리 자리에 해빙의 소리가 감지됐다. 당황스러운 내 부모의 시선, 난처해하는 장인 장모의 시선, 매섭도록 차갑게 쏘아보는 소영의 시선을 모두 무시하며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겠다는 지훈의 시선은 이미 도미초밥에 가 있었고 그 시선을 따라 이번에도 오른손을 뻗어 간장을 푹 찍어 제 입에 쏙 넣는다.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녀석의 붉은 손끝이 왠지 선정적이었다. 초밥을 입에 넣고 검지를 쪽 소리 나게 빨아들였다가 내뱉는다. 그러면서 다시 해맑게 웃는다. 시선은 다시 나를 향한 채. 유혹하는 걸까. 의도했다면 역시 저주받은 요부가 맞고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면.. 말이 안 됐다. 아니 어쩜 아직 고등학생인 녀석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미친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미 그 때부터 지훈의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소영과 결혼하겠습니다.

나는 그 날 내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확실한 대답을 했다. 이만한 자리 없다. 소영이랑 결혼해라- 하는 어머니의 말에 매번 그런가요-하며 애매한 웃음만 흘렸던 내가.

그녀와의 석 달, 10번의 형식적인 데이트, 세 번의 무난했던 섹스, 그리고 그 날의 상견례.

그 때야 비로소 확신이 들었다.
이 여자랑 결혼하기로. 그래서
이 아이와 엮겨보기로.
 
지루하면서도 권태롭던 내 인생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는 돌멩이가 하나 던져진 느낌이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그 당시 내 생각보다 훨씬 큰 파장이라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뭐 알았어도 피할 방법은 없었다.
어디선가 갑작스럽게 던져졌기에.
아니 피할 생각이 애초에 없었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애정해 마지않던 아비치의 사망 소식에 좀 다크한 글이 쓰고 싶어 즉흥적으로 써내려간 글입니다. RIP Avicii


청춘보다 느리게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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