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러니까 카논 씨가 찾는다던 친구가 아역배우 시라사기 치사토라고요?”

카논 씨가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까지 줄줄 늘어놓은 잔소리가 무색하게, 카논 씨는 인간 세상에 오자마자 이토록 쉽게 친구의 존재를 찾아버린 것이었다. 이름 세 글자만으로 친구를 찾는다기에 그것을 무모하고 부질없는 짓이라 여겼던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나도 이렇게 빨리 문제가 해결될 줄은 몰랐으니까.

“아무튼 다행이네요, 카논 씨. 친구를 정말로 금방 찾아서요. 이름만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까 저런 유명인이었다니…….”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치사토 짱, 유명한 사람이었구나. 웃는 표정은 어렸을 때와 꼭 닮았네.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걸.” 작게 웃는 카논 씨의 표정은 기뻐 보였다.

“하하……. 그럼 카논 씨는 치사토 씨를 만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요?”

“응, 될 수 있다면 같이 돌아가면 좋을 텐데. 얼른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 후후”

마치 시라사기 치사토를 이미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즐거워하는 카논 씨였다..

얼른 그 시라사기 치사토가 있는 곳에 카논 씨를 데려다 주고, 난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와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가지고 있던 휴대폰으로 ‘국민 여동생’ 시라사기 치사토가 속해 있는 사무소와 그 자세한 위치를 검색했다. 연예인에 별로 관심도 없던 내가 이런 걸 찾아보게 되다니……. 설마 그 시라사기 치사토가 인간이 아니라 인어고, 그런 사람과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엮이게 되다니…….

간단히 조사한 결과, 그의 소속 사무소는 우리 집에서 전철로 30분, 도보 10분. 여기서 조금 떨어진 번화가 빌딩숲 한가운데에 위치한 대형 연예기획사무소였다. 그 외에는 생각보다 별 것 없었다. 나는 카논 씨와 함께 그곳에 찾아가면 간단히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낙승이다, 낙승.

“그러면, 내일 아침에 해 뜨자마자 당장 출발해서 만나러 가요.”

거기까지 가는 방법을 모두 확인한 내가 카논 씨에게 말했다.

“후에에……. 내, 내일 당장?”

“원래 쇠뿔도 단김에 뽑는 법이잖아요. 뭐…… 저도 이 이상 질질 끌면 이래저래 피곤하고.”

얼떨결에 본심을 일러버린 나였다. 카논 씨가 약간 미안한 얼굴을 하자, 괜히 나도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하지만, 지금 오갈 데 없는 이 인어공주를 온전히 떠맡아 보살피는 건 나고, 그게 피곤한 건 맞잖아. 카논 씨를 위하는 착한 마음과 귀찮아하는 나쁜 마음이 머릿속에서 열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렇게 이런 저런 말을 나누다가, 샤워와 양치를 마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나는 카논 씨와 한 이불 안에 누웠다. 두 사람이 정자세로 나란히 누우면 겨우 잘 수 있는 1인용 이불에서, 나는 한 개밖에 없는 베개를 카논 씨에게 양보하고, 방 한 구석에 있던 무릎담요를 둘둘 말아 그것을 베고 누웠다. 우리 집에 신세를 지고 있다는 부채감이라도 드는 모양인지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입가를 꿈틀거리는 카논 씨에게 “이불이 하나밖에 없어서 미안해요.” 라고 전했더니, 그는 “아니야,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야지…….” 라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불, 끌게요.”

달칵 소리와 함께 소등된 방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시계의 초침 굴러가는 소리를 음악 삼아, 나는 지금으로부터 몇 시간 동안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인어공주……. 정말 말도 안 되는 설정인데, 그 사람이 심지어 흑마술사와 계약을 맺고 인간의 다리를 얻어 우리 집에 오고, 찾는다던 사람은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유명인……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상당히 현실과 동떨어져 있음을 다시 한 번 자각하고는 괴로워졌다. 지금까지 일들이 전부 꿈인 것만도 같고, 가공의 드라마 플롯 같기도 하고……. 아무튼 혼란스러웠다.

머리가 빠개지도록 생각을 거듭하던 차에, 나는 문득 카논 씨, 잘 자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 천장을 향해 있던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아주 가까이에 먼저 잠든 카논 씨의 옆얼굴이 보였다. 어딘가 얼빠진 인상을 주는 여덟 팔자의 둥근 눈썹과 길고 숱이 많은 속눈썹, 오뚝한 코와 도톰한 입술이 한 데 모여 어울리는 얼굴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가? 정말 ‘사람이 아닌 것처럼’ 생긴 얼굴이다. 옛날 유럽 등지의 인어들은 아름다운 외모와 노랫소리로 뱃사람들을 홀렸다는데……. 흠, 카논 씨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근데 한편으론 사람이 이렇게 순진하고 요령이 없어가지고 그럴 수 있겠나 싶기도 하고……. 하여튼 괜히 이 사람만 생각하면 쓸데없는 공상이 많아지는 것이었다. 나는 그 뒤로 한참 동안이나 카논 씨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매끈하고 부드러운 입술을 살짝 만져도 보았다. 창문으로 새는 달빛을 받아 빛나는 부드러운 머리카락도 호기심에 쓰다듬어 보았다. 하지만 그가 잠에서 깨어나는 일은 없었다. 다른 마음이 있다기보다도,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카논 씨……. 잘 자요.”

대충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모르게 깊은 꿈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






*

“아…… 음, 지금이 몇 시야……. 알람은 왜 못 들었지…….”

“좋은 아침, 미사키 짱……?”

눈을 반쯤 뜬 채 머리맡을 더듬으며 휴대폰을 찾는 나의 옆에서, 방금 일어난 카논 씨가 상냥하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덜 뜬 눈으로 호를 그리며 웃는 그를 보자 어제의 일이 꿈이 아니라, 전부 진짜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이 느껴져 순간 아찔했다. 휴대폰으로 급하게 확인한 시간은 오전 7시 3분. 오늘은 토요일. 주말의 나 치고는 상당히 일찍 일어난 것이었다.

“아……. 뭐야, 별로 늦잠 잔 건 아니네요. 피곤해라……. 난 또, 하마터면 늦은 줄 알고.”

내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논 씨와 함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이불이 사라진 방 한가운데에 작은 좌식 탁자를 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내 옆에서, 카논 씨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면서도 조금이라도 나를 돕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그가 자리에 잠자코 앉아있도록 했다.


미니 토스터에 식빵 두 조각을 넣어 스위치를 당기고, 커피포트에 차 끓일 물을 올리고, 냉장고에서 꺼낸 잼 병을 버터나이프 한 개와 함께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잠시 후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식빵이 토스터 위로 튀어 오르자, 멍하니 앉아 있던 카논 씨는 깜짝 놀라 우에엥 하는 소리를 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방금 난 큰 소리는 빵이 다 구워졌다는 신호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보글보글 물 끓어 오르는 소리가 나고, 커피포트의 전원이 자동으로 꺼졌다. 나는 머그잔 두 개를 탁자 위에 올려둔 다음, 홍차 티백을 하나씩 넣고 각각의 컵에 같은 양의 물을 부었다. 연기가 피어 오르듯 붉게 우러난 찻물이 컵 안의 더운 물을 서서히 삼켰다.

카논 씨는 그 일련의 과정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며, “신기해…….” 라고 말했다. 뭐, 바다에는 물이 많으니까 굳이 이렇게 물을 전기의 힘으로 끓여서, 거기에 차 따위를 타서 마실 필요가 없으니…… 인어에게는 신기한 게 당연하겠지만.

나는 잘 구워진 빵 두 조각을 작은 접시 두 개에 각각 담은 후에 탁자로 돌아가, 접시 중 하나를 카논 씨 앞에, 다른 하나를 내 앞에 내려 놓았다.


“카논 씨, 우리 얼른 아침밥 먹고, 치우고 나가서 치사토 씨를 만나러 가요.”

나는 약간 피곤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응……. 고마워, 미사키 짱. 잘 먹겠습니다.”

그는 여전히 상냥한 말투로 대답해 주었다. 카논 씨는 식전 인사를 간단히 하고 나서는 네모난 식빵을 집어 마름모 꼴로 들고, 귀퉁이를 작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마른 식빵 조각을 오물오물, 꼭꼭 씹어 삼킨 그는 식빵이 아주 맛있다며, 바깥쪽은 바삭바삭하고 안쪽은 촉촉하다는 식으로 칭찬했다. 다행이네요, 하지만 그건 제가 구운 게 아니라 토스터가 구워준 거예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홍차를 한 모금 마시며 카논 씨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는 차를 마시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컵을 두 손으로 쥐고 자신의 입가에 조심스레 가져다 대었다.

“카논 씨, 그거 엄청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조, 조심해요……!”

카논 씨는 주의를 주는 나를 흘긋 쳐다보면서 호로록, 하고 액체를 살짝 빨아들였다. 홍차를 몇 모금 더 마시는 소리가 났다.

“이거, 엄청 향긋하고 맛있는 걸…….”

“그래요? 저는 사실 홍차보단 우유가 좋던데. 다행이다. 하하.”

둘이서 먹는 아침식사가 혼자일 때보다 아주 조금 더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카논 씨, 인어는 뭘 먹고 살죠?” 식빵에 잼을 펴바르면서 내가 물었다.

“보통은 새우나 작은 생선을 먹어. 해초나 다른 작은 바다생물을 먹을 때도 있어.”

카논 씨 나름대로 자세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빵은 먹어본 적이 없었어……. 어제 미사키 짱이 대접해준 도시락도, 바닷속에선 안 먹으니까, 후후…….” 뭐가 즐거운 건지 웃으며 덧붙이는 카논 씨는 마른 빵을 한 입 더 베어 물었다..

나는 손을 내밀어 카논 씨가 두 입 베어 문 식빵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버터나이프를 들어 빵 한 쪽에 잼을 바르며, “보통은 이렇게 먹어요. 이건 딸기…… 그러니까 식물의 열매로 만든 거예요.”라고 가르쳐 주었다. 카논 씨는 그것을 유심히 보더니, 뭔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카논 씨에게 다시 질문하기 시작했다.

“흠…… 인간 세상에 와서 이질감이 들거나, 거부감이 생긴다거나 그런 것은 없나요? 그리고…… 언어도 있잖아요, 카논 씨는 인어인데 어떻게 이렇게 말이 한 번에 통하는 거죠?”

나는 드디어 어제부터 정말 묻고 싶었던 것을 물어 보았다. 처음 욕조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카논 씨는 일본어로 이야기했다. 또, 평범한 인간 아이는 걸음마를 배울 때 만 번 이상 넘어져야 한다는데, 카논 씨의 경우에는 생전 처음 생긴 다리로 몇 분만에 걸을 수 있게 되고, 사람의 옷을 입는 것에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아무런 저항감 없이 음식을 먹고……. 어젯밤에도 그런 걸 한참 생각하다 머릿속이 의문투성이가 되었던 것이었다.

“앗, 그건 계약 내용에 들어있었어.”

카논 씨가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계……. 그런 간단한 이야기였나요…….”

“인간 세상은 아무래도 모르는 것도 많고, 처음에 적응하기까지 오래 걸릴 것 같다면서……. 인간과 잘 말할 수 있고 그들의 생활에 적응할 수 있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조건으로 붙였던 거야…….”

“으음……. 그렇구나, 좀 더 복잡한 사정이 있는 건가 생각했는데 의외네요.” 내가 약간 놀라며 대답했다.

아주 터무니없는 이유까지 가정해 보았던 나에게 그의 즉답은 별로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었지만, 그냥 카논 씨에 관한 의문 한 가지가 완전히 해소된 것에 적당히 만족하기로 했다.


우리는 남은 빵을 마저 먹고 차를 다 마신 후에 함께 접시를 정리했다.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카논 씨는 탁자 다리를 접어 원래 있던 곳에 기대어 놓고, 내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내가 옷장에서 카논 씨에게 어울리는 옷을 고르는 동안 카논 씨도 내 옷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왜 모든 옷에 비슷한 글자가 써 있는 거냐고 물은 그에게 나는 “별 건 아니고, 그냥 제가 좋아해서요.”라고만 대답했다. 카논 씨에게 핑크색 후드 티와, 선물 받아놓고 한 번도 입은 적 없는 긴 스커트를 입히고, 나는 그를 내 앞에 앉혀 한 쪽 머리를 조금만 올려 묶어주었다. 예전에 여동생의 머리를 곧잘 묶어주었던 것과 같은 모양새였다. 양치를 하고, 양말과 신발을 신고, 모자를 눌러 쓰고 나갈 채비를 마친 나는 지갑에 두 사람 분의 교통비와 여분의 현금이 제대로 들어있는 것을 확인한 다음 대문 열쇠를 단단히 잠갔다. 오전 8시 30분 즈음이었다.


카논 씨와 함께 시라사기 치사토의 사무소를 찾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대단한 길치인 카논 씨는, 내가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곧장 인파에 휩쓸려 사라지거나 길모퉁이에서 나를 놓치고는 했다. 또, 길을 잃었을 때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카논 씨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린 순간 바로 그를 찾으러 뒤쫓아 가야만 했다.

“카논 씨……. 안되겠어요. 제 손을 잡아요.”

전철 환승구에서, 벌써 세 번째 카논 씨를 잃어버렸다가 찾아낸 내가 말했다.

“미, 미안해…… 미사키 짱…….” 그가 사과했다.

“괜찮으니까 얼른 가요.”

카논 씨의 손을 단단히 붙잡은 나는 잡은 손을 뒤로 뻗은 채 앞장서서 걸었다. 카논 씨의 손은 따뜻하고, 손바닥이 약간 땀에 젖어 있었다. 나는 이따금씩 카논 씨가 잘 따라오고 있는 지 확인하면서, 그를 데리고 플랫폼에 올라가 환승 전철에 탑승했다. 주말 아침이라고는 하지만 만석에, 서서 가는 사람도 많은 전차 안에서, 카논 씨가 가만히 서서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관찰했다.

두 정거장을 통과하고 세 번째 정거장에 도착한 급행열차는, 시라사기 치사토가 속한 사무소 근처에 있는 역에 정차했다. 나는 카논 씨에게 내리자는 신호를 준 후에, 그의 손을 잡고 열린 문을 천천히 통과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쏟아져 나온 출입구 안으로, 우리의 양 옆에 두 줄서기 하고 있던 또 다른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밀려들어갔다.

개찰구를 통과한 우리는 서쪽 출구로 걸어 나갔다. 나란히 서서 계단을 오르고, 미리 찾아본 대로 큰 길을 따라 쭉 걸어가는 동안, 카논 씨는 일렬로 줄지어 있는 번쩍이는 고층빌딩숲과, 그 1층에 자리한 잡화점이나 카페 같은 것들을 열심히 구경하고 있었다.

“카논 씨, 걷는 데 집중하지 않으면 또 길 잃어버린다구요.”

“에헤헤…… 미안. 나도 모르게 푹 빠져버렸네…….”

한 번 한숨을 작게 쉬었다. 하지만 카논 씨의 기분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기에, 나는 더 이상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기로 했다.


나란히 걷다 보니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나름대로 인간 세상에 잘 적응해 가고 있던 카논 씨가 깜짝 놀란 것은, 길가에서 산책하는 커다란 강아지를 목격했을 때였다. 멀찍이서 걸어오던 강아지가 우리를 보더니 냄새를 킁킁 맡으며 다가왔다. 내 손을 꼭 붙들고 있던 카논 씨는 “……이건?” 하고 나를 쳐다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강아지예요.”

나는 얌전하게 다가오는 북슬북슬한 골든 리트리버에게 상냥하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강아지……?”

“음, 반려동물…… 아니, 그러니까……. 우리가 돌봐 주고 교감하면서 같이 사는 동물……? 그런 거예요.”

나는 주인에게 잠시 허락을 구하고, 강아지를 조심스레 쓰다듬어 주며 설명했다. 카논 씨는 내 설명을 듣고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골똘히 생각하더니, 별안간 “음……, 알겠다!” 하고 외치며 두 손바닥을 마주쳤다.

그러자 “멍!” 하고, 커다란 강아지도 카논 씨를 따라 아주 큰 목소리로 경쾌하게 짖었다.


“꺅……?!”

귓가에 카논 씨의 외마디 비명이 들리고, 그와 동시에 그는 허리를 굽혀 내 등 뒤로 살짝 숨었다. 대형견의 우렁찬 짖음에 놀란 카논 씨는 오늘 아침 식빵이 튀어 올랐을 때보다 몇 배는 더 깜짝 놀란 것 같았다.

“카논 씨……? 괜찮아요?”

나는 정말로 걱정이 되어서 물었다.

“응……. 조금…… 놀랐을 뿐이야. 복슬복슬하고 귀엽게 생겼는데…….”

그는 숨겼던 고개를 빼꼼 내밀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런 카논 씨가 재미있어서 조금 웃었다. 가던 길을 다시 가는 강아지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나서, 우리는 다시 손을 맞잡고 목적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미사키 짱, 알 것 같아……. 강아지 말이야.”

“음, 강아지? 어떤 거요?”

“함께 사는 동물이라는 거……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아서……. 예를 들면, 나도 우리 집에 사는 해파리에게 먹이를 주거나…… 같이 놀거나, 둥둥 떠다니거나 하면서 노는 걸 좋아했거든…….”

“해, 해파리요?”

예상치 못한 신선한 답변에 나는 살짝 말을 더듬으며 반문했다.


“응, 힘을 빼고 물 속을 둥둥 떠다니는 해파리를 보고 있으면 나까지 편안해지고……. 또 그 미묘한 몸통의 곡선은 정말 정말 귀여워.”

뺨에 한 손을 얹은 채 사뭇 진지한 얼굴로 해파리의 좋은 점에 대해 논하는 카논 씨가 귀여워서 나는 그만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강아지를 보고 바닷속 해파리를 키우던 일을 떠올리다니 인어는 인어인가 보구나 싶기도 하고, 해파리의 모습을 그렇게 열심히 분석하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이상해……? 비, 비웃지 말아줘, 미사키 짱…….”

“아하하, 죄송해요, 제가 그만……. 하지만 비웃은 건 아니었어요. 그냥 카논 씨가 귀여워서…… 하하……”

“너무해…… 그, 그치만 해파리를 키운 건 정말이고…….”

나는 살짝 침울해진 카논 씨를 열심히 달래며 걸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시라사기 치사토가 속해 있다는 연예기획사무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젊고 건장한 체격의 경비원이 두 명이나 붙어 지키고 있는 이 곳은, 현재의 일본 영화계를 주름잡는 일류 영화배우들부터 유명한 아이돌 그룹까지 많은 스타를 배출해낸 유명한 대형 기획사였다. 찾아가기만 한다면 당연히 시라사기 치사토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출발한 나는 이 곳에 저런 삼엄한 경비가 달려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왠지 미션의 허들이 올라간 기분이었다.


“저…… 실례합니다.”

나는 굳은 표정의 카논 씨를 등 뒤에 매달고, 경비원 중 한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그들이 무슨 일이냐고 반문해오자 나는 이 곳에 소속된 배우 시라사기 치사토 씨를 만나러 찾아 왔다고 간단하게 용건을 전했다.

나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빠르게 눈빛을 주고 받았다. 그러더니, 우리에게 ‘팬과의 사적인 만남은 소속 연예인의 안전 상 삼가고 있으며, 연예인에게 보내는 선물은 이곳 관리인의 검사를 한 번 거친 후 전달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건조한 말투로 설명했다. 나는 곧 우리가 그들에게 연예인을 만나러 온 극성 팬으로 오해를 받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뇨, 제 말은……. 저희는 치사토 씨의 그냥 팬이 아니에요. 여길 보세요. 이 사람은 치사토 씨의 오랜 친구예요. 그래서 이렇게 만나러 온 거고요.”

나는 내 뒤에 서 있던 카논 씨의 몸을 살짝 붙잡아 경비원에게 내밀어, 그들에게 얼굴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은 아까의 무미건조한 말투를 거두고,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음…….” 하고 우물거렸다.

“정 안 되겠다면…… 본인에게 직접 확인을 받고 싶어요. 치사토씨에게 ‘카논’이라는 친구가 만나러 왔다고 전달이라도 해주세요.” 나는 그들에게 덧붙여 요구했다.

두 사람은 나의 말을 듣더니 정말로 곤란하다는 표정을 보였다. 아……. 이건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 민폐를 끼치는 일인가.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무엇보다도 시라사기 치사토를 만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자, 그들 중 조금 더 직급이 높아 보이는 사람이 다른 한 명에게 눈짓을 하더니, 무전기를 꺼내 들고 무어라 이야기를 하며 입구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러는 동안 남은 한 명은 우리더러 ‘알겠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하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던 경비원이 다시 나온 것은, 그가 들어갔을 때로부터 5분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구둣발을 또각거리며 걸어 나오더니, 나를 보고 ‘시라사기 씨가 그런 사람은 모른다고 말했다’며 무표정으로 전언했다. 그러고는 한숨을 길게 한 차례 내쉬고, 우리를 문 밖에서 내쫓듯 돌려보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그럴 이유가 없다며 말대꾸를 했지만, 충격을 받은 듯한 카논 씨는 그들에게 뭐라고 한 번 대들지도 못하고 있었다.

“잠시만요, 그럴 리가 없어요……! 뭔가 잘못된 거 아녜요? 제대로 전한 것 맞아요?”

그렇게 소리쳐도,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들의 임무에 충실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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