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 중에는 바다 깊은 곳에 산다는 반인반어에 대한 전설이 있다. 인어가 다리를 가지기 위해선 정식으로 사람과 결혼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이 되고 싶은 인어들이 난파되어 가라앉는 배에서 마구잡이로 선원들을 잡아간다는 전설, 결국 인어와 강제로 결혼을 한 이는 바다에 발이 묶여 남은 생 동안 해를 보지 못하고 쓸쓸히 죽어간다는 전설. 이 전설이 아이들 사이에서 괴담처럼 떠돌던 때는 공교롭게도 국가 간의 교류와 무역경제가 활성화 되던 시기였다. 덕분에 오래 바다에 나가있는 자신의 아버지가 해를 입을까 작은 소년, 소녀들이 늘 선착장에 나가지 못하게 선원들의 발목을 붙잡곤 했다.


“아빠, 인어괴물한테 홀리시면 안돼요. 알겠죠?”

“그럼, 약속하마.”


일등 항해사가 사랑스러운 딸의 걱정에 환한 미소를 보이며 거대한 무역선에 몸을 실었다. 이윽고 배는 요란한 기체를 내뿜었다.


“윤기야, 반대쪽 갑판에 있는 식료품 상자도 밑으로 내려야겠다.”

“네. 곧 가요.”


윤기는 선장의 아들이었다. 장차 이 큰 배를 몰 두 번째 선장이 되려면 빨리 뱃일을 배워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에 무턱대고 이 무역선에 올랐다. 처음 바다에 나가는 윤기에게 아이들은 인어에 대해 마구 말해주곤 했다. 속으로는 궁금해 하면서도 겉으론 냉담한 척 그럴 일은 없다며 맥을 툭 잘랐다.



“선장님 바람이...!”

“전원 돛 올리고 노를 젓는다!! 당장!!”

“예!”


저 멀리서 몰아치는 폭풍우에 방향이 바뀐 바닷바람은 순식간에 뱃머리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키는 이리저리 기울고 돛은 제멋대로 휘날렸으며 매서운 빗줄기에 시야가 흐렸다. 허둥지둥 돛대에 달려들어 돛을 올리는 선원들의 모습을 윤기는 넋이 나간 채로 바라보았다. 다급한 선택이 이 배에 탄 모든 생명을 좌우하는 냉정한 푸른 바다는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기운을 풍겨왔다. 갚판의 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던 윤기의 뒷통수에 대고 키를 붙들던 선장이 빽 소리를 질렀다.


“민윤기! 정신차려!!”


거대한 용오름이 솟은 수평선을 바라봤다. 허공을 응시하다 시야에 걸린 그곳에선 생전 보지 못한 신비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고작 그 몇 초, 찰나의 순간에 배가 급격히 기울었다. 돛대가 부러진 것이다. 채 묶이지 못한 돛이 어지러이 배 위에 나뒹굴었다. 그 여파로 몇몇 선원들이 바다에 빠져 허우적댔고 설상가상 배는 어느새 형성된 거대한 소용돌이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자연이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블랙홀 안으로 빠져드는 거대한 무역선은 그 몸집과 다르게 빠져나가려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배는 좌초되어 깊은 푸름으로 나지막이 저들을 반기는 물살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윤기는 눈을 감았다가 잔뜩 힘을 주어 부릅떴다. 빛이 들어오는 수면 위에서부터 부서진 뱃조각, 닻과 밧줄, 얼굴이 낯익은 사람들까지 하나 둘 푸르다 못해 어두운 바다 속으로 잠식해오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신이 실제로 있다면 이 바다에서 나를 구해달라고, 부디 구원해달라고 빌고 싶다. 가슴 깊은 곳을 채우는 바닷물에 막혀오는 숨을 토해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동심 속에서만 자리하고 있는 줄 알았던 인어가 휘황찬란한 지느러미를 뽐내며 침몰의 잔해들 사이로 헤엄치고 있었다. 윤기는 그 중 바다의 가장 아름다운 면, 수면의 빛깔로 치장한 인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인어가 고개를 돌리자 유하게 생긴 눈꼬리와 물 속에서도 빛나는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힘주며 애써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이 벌어졌다. 물거품이 인어를 가리며 흩어졌다. 부족한 산소 탓에 정신을 잃었다. 흐려져가는 의식을 붙잡아보려 온 힘을 다했지만 인어의 비늘이 태양빛에 반짝이는 잔상만이 보일 뿐이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축축하고 고요한 동굴 속이었다. 윤기의 눈 앞에는 은은한 에메랄드 빛이 도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몸을 일으켜 바로 앉는 순간 먼 동굴의 깊은 곳에서 찰랑이는 물소리가 들렸다. 윤기는 홀린 듯 안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마침내 소리의 근원에 다다랐을 때에는 그저 눈을 굴리며 경치를 감상할 수 밖에 없었다. 둥근 호수의 한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 그 위로 비추는 영롱한 햇빛에 반짝이는 보석같은 열매들까지. 어느 하나 동화같지 않은 게 없었다. 이 모든 게 동화라면 희대의 명작임에 분명할 것이다. 나무를 향해 한 발자국을 더 내딛었다. 그러자 호수의 물이 갈라지고 인어가 한 마리 나타났다. 바닷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던 그 인어였다. 분명 그 빛깔이다. 윤기를 힐끔 보더니 다시 물 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불쑥 머리를 내밀더니 윤기에게 나무의 열매를 건넸다. 가까이서 본 인어의 얼굴은 훨씬 더 깨끗하고 투명했다.


“보물이야. 바다의 보물.”

“...”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신비하고 우아한 기품이 저절로 입을 다물게 하는 것 같다. 용기를 내어 희뿌연 안개를 일으키는 뽀얀 뒷모습에 대고 물었다.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잠시 침묵하던 인어가 뒤를 돌아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바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찾아.”



윤기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곳은 낯선 바다향의 침대 위였다. 동굴의 종유석에서 흐르던 지하수, 온 몸을 휘어감듯이 빛나던 신비로운 기운까지 겪었던 모든 것이 허황된 꿈처럼 느껴졌다. 팔을 침대 어귀에 짚고 몸을 일으키는데 벽 너머에서 가는 미성이 들려왔다.


“어? 깨셨네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는 거짓말처럼 인어와 닮아있었다. 우아함이 흐르는 얼굴과 유하게 휜 눈매, 도톰한 앵두빛 입술과 희고 맑은 피부까지 인어가 환생이라도 한 듯 보였다. 윤기는 담담하게 행동했다. 물거품처럼 부서진 그 인어의 존재와 닮은 사람을 이번에는 선명하게 남겨두고 싶었다. 그는 다친 팔뚝에 붕대를 감아주고 이야기 해줄 것이 있다며 윤기의 옆으로 다가왔다. 침대에 걸터앉은 윤기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작은 의자에 앉아 반짝이는 무언가를 건넸다. 푸른 에메랄드빛으로 생경하게 빛나는 그것은 인어가 제게 준 것이었다.


“그쪽이 떠밀려 올 때 손에 꼭 쥐고 있던 거예요.”

“...”

“근데 저한테도 같은 게 있더라고요.”


모양은 조금 다르지만 안에 비춰지는 청빛의 바다는 같았다. 천장에 매달린 작은 전구에서 나온 노란 빛이 보석에 반사되어 숲의 색을 내뿜었다. 그 남자는 악수를 청하며 이름을 물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직 이름도 모르네요. 지민이에요. 박지민.”

“...민윤기예요.”


그의 손을 잡자 또 다시 푸른 기운이 윤기를 감쌌다.




결국 인어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형, 우리 처음 만난 날 있잖아요. 그때 나 한눈에 반해버렸던 거 알아요?”

“진짜? 우와 나 복 받았네. 우리 지민이가 반할 정도면.”


나란히 해변을 거니는 흔한 연인의 모습은 둘과 퍽 어울렸다. 수면의 빛을 가진 보석으로 만든 목걸이도 서로의 목에 자리하고 있었다. 윤기는 이런 지민과의 관계를 전설이 아닌 운명이라 믿기로 했다.


아름답고 찬란한 바다의 운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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