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로잔나 데 메디치는 태생부터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자가 아니던가. 그러니 그 늙지 않는 자는 뼛속까지 해적이었다.


 그래. 모험가도, 여행가도, 해군도 아닌 해적이었다. 

뱃머리에 손을 얹어 고함친다. 파도가 부서지고, 오후 느즈막한 해는 물러나는 퇴물 주제에 빌어먹게 따가웠던가. 펑, 대포가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바다를 달려 나가면 선장의 목에 따라 핏대가 불거진다. 마지막 한 놈까지 놓치지 마라! 전부 바다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거다! 

해적이란 그런 족속이었다. 진주 목걸이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아야 할지언정 제 목에 걸려 있지 않아서는 안 되었고, 금화 한 궤짝이 아무 쓸모없이 발받침으로나 쓰일지언정 아예 제 배에서 내려버리는 것은 용납하지 못했다. 존귀한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그린 해도는 가지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바다 깊숙히 수장되어 풀어지고 헤집어져서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것이 낫다고 여기는 자.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바다를 호령하던 젊을 적의 그녀는 누구보다 무자비했다. 감히 어느 해적도 그녀의 앞에서 깃발을 빳빳히 세우지 못했으며 감히 어떤 상인들도 그녀가 지나다니는 해역을 통해 길을 뚫지 못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그러니까 누구에게라도 실제 나이를 대면 눈을 비비거나 귀를 의심하는 시점이 오고 나서는 누그러졌는지도 모르겠다. 책임질 것이 늘면서였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로잔나 스스로가 더 잘 알았다. 그것은 누그러진 것이 아니라, 그저 인내하는 법을 배운 것 뿐이었다. 천천히 먹이의 숨통을 조이는 뱀이, 몸뚱아리 안에서 죽어가는 작고 여린 짐승이 오롯이 제 것임을 알고 있듯이. 


로잔나 데 메디치는 헬가 슈미트를 가지고 싶었다. 

로잔나 데 메디치는, 헬가 슈미트를 가지고 싶어졌다.

그건 내 거야. 왜냐하면 그건 보는 순간 누구도 탐내지 않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처음 본 순간 그랬다. 그 진하고 아름다운 황금색 눈을 보는 순간, 탐욕스레 금화를 모으는 동화 속 용들과도 같이.


 저건 내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막상 탐욕스러워야 할 용은 헬가 슈미트의 옆에 서 있었는데. 길게 늘어뜨린 머리가 바닷바람을 머금고 두어 번 흔들리면 꼭 그 끝을 잡아 뱃머리에 장식하고 싶어졌다. 꽤 아름다울 것 같았다. 그런 배에서 노을을 보며 술이라도 들이키면 꽤 술맛이 좋아질 것 같았다. 호탕한 웃음소리와 기합소리와 고글 안쪽 가늘게 휘어지는 용기사의 눈을 상자에 담아 저만 본다면. 생각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그러니 감히 장난을 걸고. 감히 이 사르디나의 수장을 놀려먹고. 감히 이 내가 없는 곳으로 휙 날아가 버려도. 


그건 제 것이라고 여겼다. 그야, 로잔나는 사람도 보물도 놓친 적이 없었으며 제 손에 쥔 것을 놓는 법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애초에 손에 쥔 적이 없었음을 깨닫고야 만다. 로잔나 데 메디치는, 지친 듯 눈을 감고, 창을 짚고 무릎을 꿇은 헬가를 본다. 감긴 눈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과거에 대한 후회이며, 떨리는 손 끝 빠져나가는 것은 현실에 대한 끝없는 분노일 것이니, 헬가 슈미트는 다시는 이전처럼 살지 못하리라. 로잔나는 헬가의 볼을 천천히 쓸며 이 지친 용기사의 이름을 부른다. 헬가 슈미트. 돌아오는 답은 없다. 이 미련한 것은 영혼의 반쪽을 뜯겼음에도, 용을 사랑한다. 동시에 증오한다. 결국 용을 죽인 것이 용이었기에. 그러니 감히 로잔나가 깨닫기를, 이 더없이 사랑스러운 것을 강제하면, 그리한다 하여도 너 나를 증오하거나, 너 나를 사랑하거나, 너 내게 굴복하고 순종할 일 없겠구나. 네 심장은 이미 용에게 바쳐 버리고 여기 남은 것은 타다 남은 잿더미 뿐이니. 



그러니 헬가 슈미트의 이마를 쓸며......아, 차라리 담아 놓을 것을. 

선실 가장 깊숙한 곳에 가두어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하고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할 것을. 

아무것도 만나지 않았을 시기의 너를 약탈해 버릴 것을. 어리던 너를 잡아다 나만이 아는 작고 아름다운 섬에 가두어 놓을 것을.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헬가 슈미트가......

그렇게 길들여진 헬가 슈미트는 자신이 사랑하는 헬가 슈미트가 아닐 것을 깨닫는다. 깨달음은 언제나 가장 최악의 상황에서, 가장 최악의 형태로 찾아오는 법이고 로잔나는 그걸 후회라 이름붙인다. 로잔나 데 메디치는, 당대 최악의 해적은, 사르디나의 수장은.


용을 잃은 용기사를 품에 안으며 해적은 웃지 못한다. 이것은 너의 전부가 아니다. 그러니 너는 내가 유일하게 온전히 손에 넣지 못한 보물로 남으리라.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것이며, 손에 넣지 못했기 때문에 더 빛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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